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3화
사냥개를 풀어라 (4)
어렸을 적.
형은 나보다 뭐든지 잘했다.
공부도, 운동도, 하물며 미술과 음악조차.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을, 언제나 형은 간단하게 해냈다.
어린 나의 눈에는 3살 차이의 형이 마치 슈퍼맨과 같은 초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환상이 아닌, 각성자라는 진짜 초인이 나타난 이후부터 상황은 변했다.
황도 12궁의 성좌.
그중 사자자리 성좌의 선택을 받은 나와 달리, 형은 그 어떤 성좌에게도 선택받지 못했으니까.
‘형을 이길 수 있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열등감은 내 원동력이 됐다.
그 누구보다 노력했고, 처절하게 힘을 갈고 닦았다.
그렇게.
-하하. 8성… 8성이 됐다고? 그것도 사자자리의?
나는 형이 닿을 수 없는 까마득한 경지에 올라섰다.
형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얼마나 처참한 절망을 느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형.
형은 나날이 수척해져 갔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무기력증에 빠진 채 방 안에 틀어박혔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그 원인이 나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형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괴수가 창궐한 세계.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동생에게 보호만 받고 있다는 사실이.
원래라면 자신이 지켜줘야 했을 존재에게, 오히려 보호를 받고 있다는 자괴감이.
형을 병들 게 만들었다.
-형… 제발.
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이 경지까지 끌어 올린 것도 형에 대한 열등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해했기 때문에.
공감했기 때문에.
그 감정은 쉽사리 사라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
형과의 거리는 점차 멀어졌다.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은 악취를 풍기며 썩어 갔다.
-우혁아!! 나도 각성했어!! 나침반자리의 성흔이 생겼다고!
그러던 중, 형이 각성했다.
진심으로 기뻤다.
형과 예전처럼 사이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물론 나침반자리의 성흔으로는 황도 12궁의 성흔을 지닌 나와 같은 경지에 올라서는 건 요원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형이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찾길 바랐으니까.
━값비싼 창과 장비를 사줬다.
길드 일이 바빠 자주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 사이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렇게 희망을 품었다.
그렇게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이신혁 씨는 지금 저희한테 붙잡혀 있다고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헛소리? 으음. 이거 그럼 증거 사진을 보내드려야겠네요.]띠링.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이 사진, 은.”
창날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창.
창대에는 발할라 길드의 상징인 포효하는 사자의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쿵, 쿵.
거칠게 심장이 뛴다.
뜨거운 열기가 뒷덜미를 타고 올라와 뇌를 달군다.
‘이건.’
자신이 이신혁에게 선물해준 창이다.
주문 제작으로 만든, 세상에 단 하나뿐인.
형만의 창이다.
“━너, 뭐야.”
머리가 새하얗게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
미칠듯한 감정의 격류가 폭발하듯 치솟아 올랐다.
“누구냐고 이 새끼야!!!!”
울부짖듯 외쳤다.
[제 이름은━ 유진, 이라 합니다.]유진, 유진, 유진.
그 이름을 뇌리에 새긴다.
물론.
본명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납치범이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힐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신혁은, 자신의 형은 저놈에게 붙잡혀 있다.
“원하는 게 뭐야.”
[25일까지 현금 30억을 준비해서 백운산 정산 부근에 있는 천문대로 오세요.]30억.
그걸 위해 자신의 형을 납치했던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30억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칠성의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흑사자’ 이우혁의 형을 납치해갈 정도는 절대 아니다.
‘노리는 건━ 형이 아니라 나, 인가.’
그렇기 때문에 부르는 거다.
그들이 치밀하게 만들어둔 ‘덫’으로.
[물론 우혁 씨 혼자서요. 다른 사람을 부르면… 아시죠?]스마트폰 너머로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까득!
이를 악물며 터져 나오려는 욕지기를 간신히 억눌렀다.
“너… 만약 형의 털끝이라도 건드렸다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야~! 이거 무서워서 어쩌죠? 푸하하하핫!!]“…….”
이우혁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우우웅!!
왼쪽 가슴에 새겨진 사자자리의 성흔이 푸른빛을 뿜어냈다.
사나운 야수 같은 마력이 끓어올랐다.
[앗! 이거 말꼬리가 길어졌네요! 그럼 제 말 기억하시죠? 25일까지 현금 30억. 백운산 정상으로. 하하하! 시간은~ 어디 보자, 그래. 천문대니까 별이라도 볼 겸 저녁쯤이 좋겠네요!]“…….”
[그럼. 그때 보죠.]뚝.
전화 통화가 끊어졌다.
-콰득!
움켜쥔 테이블이 박살 났다.
“유, 진.”
으드득. 쿵! 콰지지직!!!
요동치는 마력이 주변으로 뻗어 나가며 사무실 안에 있던 고급스러운 장식품들이 죄다 박살 나 쓰러졌다.
“유진, 유진, 유지이이이이인…!”
타오르는 안광.
뇌수가 끓어오르는 분노가 이성을 불살랐다.
-똑똑.
“길드장님?”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김선영이 들어왔다.
그녀는 난장판이 된 사무실 안을 둘러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무슨 일이세요?”
평소 냉철한 모습으로 길드원을 이끌던 이우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처 입은 야수와 같은 모습.
덜덜덜.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살기에 김선영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
이우혁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입술을 짓씹었다.
-다른 사람을 부르면… 아시죠?
머릿속에 떠오르는 납치범의 목소리.
“아무 일도 아….”
아니, 라고 말하려던 이우혁은 이내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길드장님? 괜찮으세요?”
“…….”
기나긴 고민의 시간이 끝나고.
이우혁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지금 당장 협회에 연락해.”
“협회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늘게 뜬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게이트에 나가 있는 길드원들 다 소집해.”
놈이 원하는 대로 ‘덫’에 걸려줄 생각은 없었다.
“━전쟁이다.”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 *
“자아.”
통화를 마친 오진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미끼는 뿌려뒀다.
이제 분노한 사냥개가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길 기다릴 차례.
‘어떻게 나오려나?’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단, 협회에 연락하겠지.”
발할라 길드와 협회는 동맹 관계다.
직접적인 지원이 아니더라도, 협회의 뛰어난 정보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그쪽으로 연락할 수밖에 없다.
소수 정예 길드의 특성상 정보력이 달릴 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유진’이란 이름을 지닌 각성자에 대해.
‘흑성회에 대한 얘기도 들을 테고.’
자신이 물어뜯어야 할 적이 누군지,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뭐… 왜 굳이 납치범이 ‘유진’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밝혔는지 의심은 하겠지만.”
상관없다.
의심한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형의 목숨줄이 걸려 있는 문제다.
궁지에 몰린 사자는 지푸라기라도 물어뜯을 수밖에 없으리라.
‘나한테도 연락이 한 번 오겠고.’
유진이라는 각성자에 대한 정보를 협회에 전한 건 자신이다.
협회를 통해서 올지, 아니면 이우혁 본인이 직접 연락할지는 알 수 없지만.
연락이 오지 않을 리는 없다.
‘대략적인 인상착의나 외모들을 물어보겠지.’
그렇게 된다면 간단하다.
그때 게이트에서 직접 봤던 유진의 모습을 그대로 알려주면 끝.
그리고.
“만날 거야.”
25일 저녁.
이우혁과 유진은 백운산에서 첫 만남을 가지게 되리라.
그 어떠한 만남보다도 최악의 형태로.
‘그러고 난 다음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전쟁이 시작되겠구만.”
이우혁에게 ‘혼자 오라’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가 혼자 올 리는 없었다.
‘적이 깔아둔 덫에 생각 없이 걸어 들어갈 만큼 멍청하진 않겠지.’
길드원들을 모두 소집하고, 될 수 있는 한 전력을 끌어모을 것이다.
그게 자신의 형을 구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모를 일 없을 테니깐.
“어디 그럼 뒤처리나 좀 해볼까.”
-파직! 파지직!!
이신혁과 통화하는데 사용했던 스마트폰에 전류를 흘려 넣어 완전히 망가트렸다.
‘증거 인멸은 확실하게 해야지.’
우득! 우득!
바닥에 스마트폰을 내던진 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철저하게 짓밟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조각들을 여러 개의 하수구 구멍에 나눠버리면 끝.
죽은 잡스가 살아나도 이게 스마트폰이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남은 건 창이랑….”
슬쩍 고개를 돌려 들쳐 메고 온 흑성회원의 시체를 들어 올렸다.
“음… 일단 체형은 비슷하고.”
눈에 띄는 신체적 특징도 없다.
“좋아, 이것도 챙겨야지.”
이 시체는 쓸 곳이 있다.
시체와 창을 챙기고 몸을 돌렸다.
‘내일은 무기점에 가서 적당한 창 하나 사야겠네.’
조만간 창 말고도 여러 장비를 주문 제작할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주문 제작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자… 언제쯤 연락이 오려나?”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 * *
━늦은 저녁.
뚜르르르!
“으음.”
스마트폰이 울리는 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깨었다.
이불을 들추고 좁은 방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우응. 이 시간에 뭐야?”
비비적, 비비적.
침대에서 단잠을 자고 있던 송하은이 이불을 덮으며 몸을 꾸물거렸다.
“신경 쓰지 말고 좀 더 자.”
달칵.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이 시간에 죄송합니다, 오진 씨.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평소 이상으로 딱딱하게 굳은 한준만 팀장의 목소리.
“무슨 일인데요?”
[통화로는 말씀드리기 어려워서….]“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협회로 갈게요.”
전화를 끊고 집으로 들어가 옷을 챙겨 입었다.
“뭐야…? 이 시간에 어디가려고?”
하은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풀어놓은 사냥개가 잘 사냥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앙? 뭔 헛소리야?”
“나 좀 나갔다 올게.”
“아 뭔데.”
달칵.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하루도 안 걸렸나.’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사냥개를 구한 것 같네.”
낄낄낄.
어깨를 들썩이며 협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