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31화
작은 것들을 위한 영웅 (1)
“…뭐야?”
비명을 들은 오진은 눈을 찌푸렸다.
비명소리 자체가 들려왔다는데 눈을 찌푸린 것이 아니다.
‘어린애 목소린 거 같은데?’
오진은 뇌흔 밟기로 방향을 틀며 비명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와이어 슈터를 발사했다.
슈우우욱!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쏘아지는 오진.
비명이 들린 곳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십여 초에 불과했다.
“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켁켁. 아, 너무 소리를 지르니까 목 아프네.”
그곳에는 동굴 안에 쪼그려 앉은 채 켁켁 거리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나이는 이제 10살쯤 됐을까.
녹색 브리지가 들어간 독특한 머리칼을 지닌 소녀였다.
“크르르륵! 커헝!”
소녀의 10미터 앞쯤에 선 채 으르렁거리고 있는 괴수.
사납게 울부짖던 괴수가 흉악한 이를 드러내며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커허어헝!”
파지직!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괴수의 목에 걸린 초록색 목걸이가 빛을 뿜더니 괴수가 몸부림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헤헤. 약 오르지? 나 잡아봐라! 나 잡아봐라~!”
소녀는 다가오지 못하는 괴수를 향해 혀를 내밀며 약 올렸다.
“…….”
오진은 조잡한 콩트를 보는 듯한 느낌에 헛웃음을 흘렸다.
‘일반인들에게 안전장치를 했다는 게 이런 건가.’
괴수는 눈이 시뻘게진 채 소녀에게 계속해서 소녀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목걸이가 반응해서 괴수를 떨어트려 놓았다.
“어, 아죠씨! 여기예요, 여기! 무서운 괴수한테 위협 받고 있는 선량한 시민이 있어요오!”
오진을 발견한 소녀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팔랑팔랑 손을 흔들었다.
처음 일반인들을 구출하는 미션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감이 잘 안 잡혔는데,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크르르릉!”
괴수 또한 오진을 발견한 걸까.
사납게 빛나는 붉은 눈이 오진을 향했다.
표범처럼 생긴 다리로 땅을 박찬 괴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칠성을 뽑은 대회답게 흔히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 보이는 괴수였지만.
“창뢰.”
오진의 상대는 아니었다.
파지지지직!
부채꼴로 퍼져나간 푸른 뇌전이 괴수를 덮쳤다.
“커허엉!”
뇌전에 휩싸인 채 몸부림치는 괴수.
마구잡이 휘두르는 팔을 피해 몸을 낮추고, 허리춤에서 뽑은 폴딩 나이프를 빠르게 내질렀다.
차르르르륵, 착!
눈 깜짝할 사이에 창의 형태로 변한 나이프가 괴수의 목을 꿰뚫고 두개골을 파고 들었다.
-띠링!
[청 등급의 괴수를 처리했습니다.] [3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시스템 창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푸른색 메시지창이 떠오른 건 아니었다.
음성이 흘러나온 것은 손목에 차고 있는 은색 팔찌.
고개를 내려 팔찌를 바라보니 0이었던 숫자가 5로 바뀌어 있었다.
“와아! 이걸 한 방에 보내 버리시네!”
소녀가 꺄르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오진은 소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아! 아저씨 감점! 감정이에요!”
아니 왜.
“여기선 먼저 어디 다친 곳 없냐는 말부터 나오셨어야죠!”
“…….”
괴수 목에 채워진 목걸이 때문에 소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어디 다친 곳이 있을 리가.
‘이런 식으로 채점하는 거구만.’
확실히 소녀의 말마따나.
이게 준비된 배우가 아닌 진짜 일반인을 구출하는 일이었다면 먼저 안전부터 물어보는 게 옳았다.
“미안. 어디 다친 곳은 없어?”
“헤헤. 빠르게 사과하셨으니까 감점은 없던 걸로 할게요. 예! 보시다시피 다친 곳은 없어요!”
소녀는 힘차게 일어나더니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이제 이 소녀를 무사히 세이프티 존까지 데려가면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
‘계획이 좀 틀어지게 됐네.’
원래라면 수중 지형으로 가서 괴수를 독식하면서 포인트를 쌓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세이프티 존을 찾으면서 이동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아저씨 뇌랑 맞죠?”
“뇌랑은 맞는데 아저씨는 아니야.”
“저 완전 아저씨 팬이에요 팬!”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이름이 뭐니?”
“아, 제 이름은 ‘일반인 2호’에요!”
너무 비인간적인 이름인데 그건.
“헤헤. 이름은 규정상 알려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음… 그렇다고 일반인 2호라고 부르긴 좀 그러니까 ‘이오’이라고 불러 주세요!”
이오는 환하게 웃으며 번쩍 손을 들었다.
오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동하자.”
세이프티 존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고 한 순간.
“앗! 아저씨 감점! 또 감점이에요!”
아니 왜 또.
“이렇게 가녀린 소녀가 있는데 손을 잡아주시면서 가셔야죠! 혼자 가면 어떻게 해요?”
“손을 잡으면 비상시에 괴수가 습격했을 때 움직이기가 어려워. 차라리 가까이에 붙어서 움직이는 게 더 안전해.”
적절한 반론을 내뱉자.
“…어?”
동그랗게 눈을 뜨며 머리를 긁적이는 이오.
“드,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흠흠. 감점은 없던 일로 할게요!”
“우리 시험관님 기준이 아주 엄격하네.”
“헤헤. 규정에 채점 잘해야 한다고 나와 있거든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이오.
‘칭찬한 게 아니라 비꼰 건데 말이지.’
오진은 피식 웃으며 이오와 함께 산길을 내려갔다.
“세이프티 존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
“그건 저희도 몰라요! 그래도 가까이 가면 그 맵? 그런 거에 표시된다고 들었어요!”
오진은 손목에 찬 은색 팔찌를 내려다봤다.
일단 아직까지 맵에 떠오르는 표시는 오진 자신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무작정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때.
스스스슥!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조용.”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사냥개자리를 활성화했다.
코를 통해 느껴지는 맹수의 냄새.
‘숫자는 한 마리.’
위치는.
‘아래!’
콰아앙!
흙더미가 솟구치며 땅속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상어와 비슷했지만, 지느러미 대신 흉악한 발톱이 달린 네 개의 팔다리가 달려있었다.
‘파란색.’
상어 괴수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확인한 오진은 창을 움켜쥐었다.
“크르르륵!”
상어 괴수는 사나운 울음을 흘리며 두 다리로 땅을 쿵 찍었다.
땅이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날카로운 돌조각이 솟구쳤다.
산탄처럼 쏘아지는 돌조각 끝에는 푸르스름한 마력이 맺혀 있었다.
‘마력을 다루는 괴수까지 있는 건가.’
마력 자체는 대부분의 괴수들이 지니고 있었지만, 저렇게 각성자가 성흔을 사용하는 것처럼 공격에 마력을 섞는 타입의 괴수는 흔히 볼 수 없었다.
“아주 빡시게 준비해 뒀구만.”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넓게 펼쳐지며 쏟아지는 돌조각들을 튕겨냈다.
“뇌염(雷炎).”
창날을 타고 사납게 타오르는 푸른 불꽃.
오진은 달려드는 상어 괴수의 머리를 거칠게 내려찍었다.
카앙!
굵직한 쇳소리와 함께 튕겨 나오는 창.
창대를 타고 짜르르 충격이 전해졌다.
“드럽게 단단하네.”
오진은 눈을 찌푸리며 상어 괴수를 살폈다.
창을 튕겨냈다고 해도 충격이 없는 건 아닌지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피부가 단단하다면.’
괴수를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충전.”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창끝에 모여들었다.
세 번의 중첩을 끝낸 오진은 상어 괴수가 정신 차리길 가만히 기다렸다.
괴수의 일반적인 패턴을 생각하면 저렇게 한 번 머리통을 후려 맞은 후에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충격에서 정신을 차린 상어 괴수가 사납게 오진을 노려봤다.
그리고.
“크아아아아아아!!”
“그래, 아가리 활짝 벌리고.”
그로기 후에 포효.
괴수들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가장 자주 나오는 패턴을 놓치지 않은 오진이 손에 쥔 창을 괴수의 입속으로 집어 던졌다.
“방전.”
“크웨에에에에!”
상어 괴수는 몸 내부에서 폭발하는 뇌전에 입 안에서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쓰러졌다.
-띠링!
[녹 등급의 괴수를 처리했습니다.] [5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녹 등급이랑은 다섯 배 차인가.”
확실히 녹 등급과는 격이 다른 힘을 지닌 괴수였다.
“와아! 아저씨 고위 각성자 아니지 않아요? 파란색 위로는 고위 각성자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괴수라고 했었는데!”
저 멀리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이오가 짝짝짝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눈먼 돌조각에 맞으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 없어 보였다.
“잠시만.”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주변에 다른 괴수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오진은 이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거 너처럼 어린애가 하기에 너무 위험한 일이지 않아 이거?”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최소한’에 불과했다.
만약 오진이 돌조각들을 모조리 튕겨내지 못했으면 혹여나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맞아요. 그래서 그 규정에 서약? 이런 거 쓸 때 혹시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죽는다고 해도 의회 측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말도 쓰여 있더라고요.”
“…뭐?”
오진은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10살 남짓한 어린아이에게 그딴 서약서를 쓰게 하다니.
‘의회가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무리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헤헤. 그래도 걱정 마세요! 제가 만약 위험에 처해도 아저씨가 구해주실 거잖아요?”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셨어?”
“없어요.”
이오는 방긋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엄마 아빠는 아주 예~ 전에 절 두고 멀리 여행을 떠나셨다고 들었어요.”
“…….”
오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오를 바라봤다.
그녀는 굳어있는 오진을 보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히히! 아저씨 얼굴 웃기다!”
이오는 장난스럽게 오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표정 하지 마세요. 그래도 보육원에 있는 선생님이랑 아이들 모두 다 제게 엄~청 잘해주거든요!”
“…그래?”
보육원에 대해서는 안 좋은 기억만 있는 오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오를 바라봤다.
“그럼 이 일은 네가 직접 지원한 거야?”
“예! 공고 나온 거 보고 직접 찾아갔어요!”
“왜 굳이 이렇게 위험한 일을….”
“돈을 엄청 많이 주니까요!”
“…….”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지만.
그 어떤 이유보다도 납득가는 이유기도 했다.
“6시간만 얌전히 숨어 있으면 우리 보육원에 있는 애들이랑 선생님이랑 다 맛있는 거 실컷 먹을 수 있다고요!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눈을 빛내며 말하는 이오의 모습에 입 안에 쓴맛이 느껴졌다.
“…무섭지는 않았어?”
멍청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진은 환하게 웃고 있는 이오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으음. 처음엔 무서웠는데. 이젠 괜찮아요.”
환한 미소와 함께 이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것보다 매일 무~진장 맛없는 오트밀만 먹어야 하는 게 훨씬 더 무섭다고요!”
괴수가 날뛰는 미친 세계 속에서 보육원의 재정이 어떨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들 제 살길 바쁜 와중에 누가 보육원에 기부하겠는가.
아마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험난한 삶을 살아왔겠지.
“…….”
오진은 가슴을 저미는 듯한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환하게 웃는 이오를 내려다봤다.
어째서일까.
환하게 웃고 있는 이오의 모습에 어릴 적 하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가자.”
“예!”
쓸데없는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오진은 세이프티 존을 찾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