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3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32화
작은 것들을 위한 영웅 (2)
“쉬윅, 쉬이이익!”
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불쾌한 쇳소리.
낫처럼 ㄱ자로 꺾인 앞다리를 지니고 있는 괴수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앗! 아저씨! 위, 위에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이오.
허둥지둥거리는 이오와 달리, 오진은 차분한 눈빛으로 높게 날아오른 괴수를 올려다보며 창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
“쉬이이이익!”
30여 미터 높이로 날아오른 괴수가 낫처럼 생긴 앞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새하얀 검기가 괴수의 앞다리에 맺히더니 사납게 쏘아졌다.
두꺼운 철판도 단번에 갈라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절삭력을 지닌 검기.
“아니 이제 뭔 괴수가 검기까지 쓰네.”
대체 이런 괴수들을 어디서 구해왔단 말인가.
오진은 실소를 흘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쏟아지는 하얀 검기 세례를 올려다보았다.
‘모래시계자리의 성흔.’
슬로우 모션 비디오처럼 느려진 세계.
빗발치는 하얀 검기를 느긋한 동작으로 피한다.
옷깃을 스쳐 지나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동작을 최소화하고, 움직임을 극단적으로 줄여 불필요한 에너지의 소모를 막는다.
“쉬이이익?!”
파리 눈동자처럼 생긴 흉측한 눈동자에 경악의 빛이 서렸다.
세찬 빗물이 쏟아지는 거리를 느긋하게 걸어가는 사람이 옷깃 하나 젖어 있지 않은 걸 발견하면 저런 반응을 보일까.
동물적인 직감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낀 괴수가 거칠게 날개를 펄럭이며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쉬익! 쉬이이익!”
날개가 없는 인간이라면 이 높이까지 따라 올 수는 없을 터.
안전을 확보한 괴수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내렸다.
“검기를 쓸 수 있어도 멍청한 건 마찬가지네.”
오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린 채 공중에 떠오른 괴수를 향해 와이어 슈터를 겨눴다.
타앙!
화살처럼 쏘아진 여섯 줄의 와이어가 괴수의 몸을 휘감았다.
“쉬이이익!”
괴수가 다급히 몸을 뒤틀며 낫처럼 생긴 앞발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완력에 오진의 몸이 줄 끝에 매달린 추처럼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아, 아저씨! 위험해요!”
괴수의 완력에 밀려 공중으로 높게 솟아오른 오진을 올려다보며 이오가 창백하게 표정으로 외쳤다.
“위험하긴 하지.”
뇌흔 밟기로 도움닫기를 하며 오히려 공중에 날아오른 괴수보다 더 높게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등 뒤를 점한 오진.
“내가 아니라, 저 사마귀 새끼가.”
씨이이이잉!
모터가 돌아가는 굉음과 함께 괴수와 이어져 있던 와이어가 빠른 속도로 수축했다.
오진은 창을 아래로 겨눈 채 중력과 와이어의 가속력을 받아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낙뢰.’
파지지지지직!
한 줄기의 푸른 번개가 괴수의 몸을 꿰뚫었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즉사한 괴수의 몸이 산산이 쪼개져 후두둑 쏟아졌다.
“후우.”
녹 등급 세 마리에 청 등급 하나.
오진은 어느새 300점 가까이 쌓인 포인트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가는 길에 보이는 놈들마다 잡고 가니까 은근히 포인트가 쌓이네.’
물론 이오 없이 괴수 사냥에만 집중했다면 더욱 많은 포인트를 쌓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저씨 짱! 방금 진짜 왕 멋졌어요!”
호들갑을 떨며 눈을 빛내는 이오의 모습을 보니 아쉽다는 생각도 쏙 들어갔다.
“그나저나 배는 안 고파?”
이오와 함께 움직인 지도 어언 2시간.
언제부터 숲속에 대기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슬슬 배가 출출해질 시기였다.
“배고파요!”
입에서 침이라도 질질 흘릴 기세로 흥분한 이오가 오진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럼 이거라도 좀 먹고 있어.”
“이게 뭐예요?”
“칼로리 바.”
한 입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르다고.
“…아저씨는 이런 거 항상 가지고 다녀요?”
“이거 두 개면 하루는 버티니깐.”
저번에 리아크에게 혼쭐난 이후로는 자주 먹지 않지만, 예전에는 칼로리 바가 주식이었을 정도로 가격 대비 고효율의 식품이었다.
“헤에. 되게 의외네요.”
“의외라니?”
이오가 칼로리 바를 냠, 베어 물어 말을 이었다.
“뇌랑이라고 하면 뭔가 타고난 천재, 라는 이미지였거든요. 그래서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엘리트인 줄 알았어요.”
“남궁휘처럼?”
“아, 예! 맞아여!”
똘망똘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오를 바라보며 실소를 흘렸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자신에 대해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도 보육원 출신이야.”
“헐, 진짜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동그랗게 눈을 뜨는 이오.
“왜, 이미지랑 달라서 실망했어?”
“아뇨!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이오는 배시시 웃으며 작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도 그럼 나중에 각성하면 아저씨처럼 멋진 영웅이 될 수 있는 거죠?!”
자신이 ‘멋진 영웅’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진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이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될 수 있을 거야.”
“헤헤. 여기서 아저씨를 만난 건 운명이었네요!”
밝게 웃는 이오를 뒤로한 채 오진은 몸을 돌렸다.
“슬슬 이동하자.”
“네!”
이오가 오진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를 이동했을까.
쏴아아아아아!
청량한 폭포 소리와 함께 물기가 섞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수중 지형으로 넘어온 건가.’
처음 오진이 목표로 삼았던 지형.
수중 지형이라는 말답게 거대한 폭포 아래로 세찬 강물이 흘러가는 중이었다.
“와아! 아저씨! 폭포 봐요 폭포!”
이오가 물 만난 물개처럼 손뼉을 치며 방방 뛰어올랐다.
“발 조심해.”
무슨 인공 장치를 한 건지는 몰라도 엄청난 급류가 흐르고 있었다.
자칫 각성자라고 해도 균형을 잃은 자세에서 빠지면 강물에 휩쓸려 버릴 정도로 거센 급류인데 힘없는 일반이 빠지기라도 한다면 그 뒤는 생각할 것도 없으리라.
‘이쪽에 온 김에 괴수라도 좀 잡아볼까.’
예상했던 대로 주변에 다른 각성자는 없어 보였━
“음?”
“어? 아저씨 저기 사람이 날아오고 있는 거 맞죠?”
세찬 강물 위로 불어닥치는 거센 바람.
그 바람을 탄 채 고고한 신선처럼 날아오고 있는 잘생긴 청년이 보였다.
오진도 익히 본 적이 있는 각성자, 남궁휘였다.
“흐음. 여기서 뇌랑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남궁휘는 오진을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오진의 뒤에 서 있는 이오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세이프티 존을 찾고 계신 것 같군요.”
남궁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조롱하듯 말했다.
“대회가 시작한 지 얼마가 지났는데 아직도 세이프티 존을 못 찾으셨다니, 실망이네요.”
“그쪽은 찾았나 보지?”
“후후. 물론입니다. 방금 막 한 분을 세이프티 존에 안전하게 안내해 드리고 온 참이죠.”
남궁휘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오에게 다가오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귀여운 꼬마 아가씨. 저 아저씨 말고 날 따라오지 않을래? 그러면 바로 세이프티 존까지 안내해줄게.”
사탕으로 어린아이를 꼬시려는 위험한 아저씨와 같은 말투.
“세이프티 존에만 들어가면 이제 위험할 일도 없잖니? 나라면 바로 세이프티 존까지 데려다줄 수 있단다.”
남궁휘는 방긋 미소 지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이오의 입장에서 보면 위험하게 오진을 따라다닐 필요 없이 바로 세이프티 존으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싫어요!”
이오는 오진의 팔을 꼭 끌어안은 채 당돌한 표정으로 외쳤다.
“전 아저씨보단 우리 오빠가 더 좋아요!”
“그, 그러니?”
방긋 미소 짓고 있던 남궁휘의 표정에 금이 갔다.
오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부르르 주먹을 떨고 있는 남궁휘를 바라보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두 번이나 차였네?”
“다, 닥치세요!”
남궁휘가 벌게진 얼굴로 외쳤다.
중국 최고의 가문에서 태어나 표현 그대로 왕자처럼 살아온 그에게 이런 단호한 거절은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던 미지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누가 세이프티 존의 위치를 모른대?”
“…세이프티 존을 찾고 계셨던 거 아니었나요?”
“그래, 찾고 있었지.”
네가 오기 전까진 말이야.
‘직녀성의 사냥개.’
파직, 파지직.
희미한 전류가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극도로 민감해진 후각이 남궁휘의 냄새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남궁휘의 이동 경로.
“남동쪽으로 3km라… 그리 멀지도 않네.”
“……!”
남궁휘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대, 대체 그걸 어떻게?”
“어떻게 찾았긴? 네가 알려줬잖아.”
오진은 남궁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제가 언제…!”
따져 물으려던 남궁휘의 머릿속에 방금 전 사방으로 뻗어나갔던 전류들이 떠올랐다.
“추적 스킬을 가지고 있었군요.”
남궁휘는 입술을 짓씹으며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얄밉게 몸을 돌렸다.
“그럼 알려줘서 땡큐~ 안 그래도 찾는 데 고생을 좀 하고 있었거든.”
강가에 울려 퍼지는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
남궁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희미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허튼짓하려거든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후보들끼리 공격하면 안 되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오진은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남궁휘를 돌아보며 말했다.
“물론 잘 알고 있죠.”
남궁휘의 입꼬리가 비틀어 올라갔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사고라는 게 일어나기 마련 아닙니까?”
품속에서 부채를 꺼낸 남궁휘가 사나운 눈빛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그래…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돌풍에 발을 헛디뎌서 급류에 휩쓸렸다던가.”
휘이이잉!
순식간에 몰아닥치는 돌풍.
돌풍에 휩쓸린 오진의 몸이 부웅 떠오르더니 거세게 흐르는 강물 속에 풍덩 빠졌다.
“아, 아저씨!”
이오가 다급한 목소리로 오진을 불렀다.
“갑자기 몰아친 소용돌이에 폭포가 무너져 버린다거나.”
촤악!
넓게 부채를 펼친 남궁휘가 폭포가 있는 방향으로 부채를 크게 휘둘렀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며 폭포가 있는 암벽을 후려쳤다.
쿠그그그긍!
암벽이 붕괴하며 댐이 무너진 것처럼 거대한 물이 쏟아져 내렸다.
“후후. 아까 위에서 보니 폭포 위에 수중 괴수들이 아주 많더군요.”
쏟아지는 물에 섞여 수십에 달하는 괴수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급류에 떨어진 괴수들은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오진을 향해 헤엄쳤다.
“이거 참, 세상에 별일이 다 일어나는군요.”
뻔뻔한 태도로 바람을 일으켜 날아오르는 남궁휘.
“이런 위급 상황에 제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건 한 명뿐이니…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꺄악! 이, 이거 놔요!”
남궁휘가 일으킨 바람이 이오의 몸을 휘감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는 암벽이 붕괴하며 불어난 강물에 휩쓸린 오진을 내려다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바람에 떠밀려 급류에 휩쓸리게 된 오진은 남궁휘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나 여유롭게 급류를 헤엄치고 있었다.
마치 잔잔한 온수 풀에 몸을 담고 있는 것 같은 느긋함.
-띠링!
[주변에 물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수력친화(水力親和) Lv MAX》 스킬의 효율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해마자리의 성흔’의 힘이 대폭 증가하며 수중에서 자유로운 이동 및 호흡이 가능해집니다!]오진은 눈앞에 떠오른 푸른 메시지창을 치우며 공중에 날아오른 남궁휘를 느긋하게 올려다봤다.
“정말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그치?”
세이프티 존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도 모자라 주변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어주고 포인트를 파밍할 괴수들까지 몰아주다니.
“이렇게 퍼주면 대체 뭐가 남는 거야?”
오진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괴수들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