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4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45화
축하 파티 (1)
뒤틀렸던 시야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교차하는 과거와 현재.
아니, 이 경우에는 미래와 현재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오진은 텅 빈 거실에 앉은 채 불에 쬔 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아, 으.”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
시큼한 위액이 목구멍을 따끔따끔 자극한다.
“빌어, 먹을….”
알고 있었다.
예상하고 있었다.
하은이 1회차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을.
그로 인해 자신이 지금과는 ‘달라’졌을 거라는 것을.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천마가 되는 미래가 쉽게 상상되지 않았으니까.
“하아, 하아!”
하지만 알고 있었다고 해서.
예상하고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신혁.’
까드득.
오진은 사납게 이를 갈며 눈을 부릅떴다.
단순히 기억을 전승받은 자신조차 당장에라도 이신혁을 찢어 죽이고 싶은 살의가 끓어올랐는데 전생의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 자리에 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뒤늦게라도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하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순간 어떻게 됐을까.
얼마나 뒤틀리고, 일그러졌을까.
“윽…!”
오진은 머리를 움켜쥐며 몸을 웅크렸다.
두꺼운 철판으로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은 끔찍한 통증이 그를 압박했다.
-띠링!
[각성자 이신혁의 기억이 성공적으로 전승되었습니다.] [흑천의 여덟 번째 개화로 인해 ‘전승(傳承)’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신규 특성 ‘기시감(旣視感)’을 획득하였습니다.]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기시감?”
오진은 새로 얻은 특성이 적힌 푸른 창을 손으로 눌렀다.
[기시감(旣視感)-특정한 상황과 조건이 갖춰졌을 때, 흡수한 각성자의 기억 일부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즉, 굳이 흑천의 개화를 통해서만 전승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 다른 행동으로 인해 전승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뜻.
하지만.
“특정한 상황과 조건이라는 게 뭐야?”
상당히 두루뭉술한 설명이었다.
잠시 메시지창을 바라보고 있던 오진은 허리춤에 꽂아 넣은 폴딩 나이프를 잡았다.
‘기시감이 이름 그대로 데자뷰를 뜻하는 거라면.’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촤르르르륵, 착!
손에 쥔 폴딩 나이프에 마력을 흘려 넣자 기다란 창이 만들어졌다.
오진은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창대를 쥐었다.
그 순간.
-나 때문이야…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이름 모를 숲속에서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고 있는 이신혁의 모습이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겨 있던 수도꼭지를 돌린 것처럼 ‘창술’에 대한 기억들이 밀려 들어왔다.
[‘나침반자리의 창술’에 대한 이해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나침반자리의 창술’이 10레벨로 상승합니다.]“크윽!”
욱신거리는 통증.
뜨거운 인두를 뇌에 쑤셔 넣은 듯 머리가 뜨거웠다.
밀려오는 통증을 억누르며 오진은 가늘게 눈을 떴다.
‘역시 특정한 상황과 조건이라는 게 이걸 말하는 거였나.’
즉, 기시감이라는 이름 그대로 전생의 이신혁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 흘러든다는 의미.
‘쉽게 쓸 수 있는 특성은 아니겠네.’
창이야 이신혁의 주무기였으니 창을 움켜쥐는 것만으로 기시감이 발동했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신혁의 기억들을 비슷하게 재현하기란 힘들었다.
“진짜 데자뷰처럼 우연히 그 상황이 겹치기를 바라는 게 낫겠네.”
한동안 거실에 서서 이신혁의 기억을 재현해보던 오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창을 다시 나이프의 형태로 만들었다.
“…….”
몸을 움직이는 걸 멈추자 지독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째깍째깍.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시계 초침 소리.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적막이 지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두렵게 느껴졌다.
‘정신 차려.’
하은이 죽은 건 전생의 일이다.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 구겨져 버려진 운명의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초조해야 할 이유 따윈━
“하아, 하아.”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희미하게 떨리는 손을 억누른다.
선택받지 못했던 왼쪽 길.
그곳에 쓸쓸히 죽어갔을 하은의 모습이 지독한 악몽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누나.”
하은이 보고 싶다.
아니, 적어도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오진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하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신호음.
하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빌어먹을!”
오진은 난폭하게 스마트폰을 던져버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혹시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천도윤에게 납치됐을 때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붙잡혀간 게 아닐까?
“제길…!”
일단 협회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히 뛰쳐나가려고 했을 때.
달칵.
현관문이 열리며 땀에 젖은 하은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목에 건 스포츠 타올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오진을 향해 고갤 돌렸다.
“어, 벌써 세례 끝나고 온 거야?”
무채색으로 물들었던 세상에 색이 가득 채워진 듯한 감각.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오는 하은을 보자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지독한 두려움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누나.”
오진은 하은에게 다가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 어어? 나, 나 방금 수련하고 와서 땀 흘렸는디.”
상관없었다.
오진은 전신을 통해 느껴지는 포근한 온기에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세례받을 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
하은은 갑자기 말을 멈추며 오진을 지그시 올려다봤다.
“너… 울어?”
하은을 끌어안은 오진의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하은은 천천히 손을 뻗어 오진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줬다.
왜 갑자기 오진이 눈물을 흘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괜찮아 인마. 누나 여기 있잖아.”
하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오진의 등을 토닥였다.
자신을 끌어안은 그의 팔에 힘이 더해지는 게 느껴졌다.
“에구에구 내 새끼. 왜 그러는 거야?”
하은이 우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장난스럽게 물었다.
“…….”
오진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겐 이미 흑천의 존재에 대해 말해뒀기에 사실대로 말해도 상관없었지만.
“아무것도 아냐.”
말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전생의 일이라고는 해도, 그녀가 이신혁에게 버림받아 죽게 됐다는 얘기는.
“…그래?”
하은은 덜덜 떨고 있는 오진의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가 왜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는지 알고 싶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말하기 싫은 걸 억지로 캐묻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냥….’
떨고 있는 그를 위로해주고 싶다.
다시 환하게 미소 짓게 해주고 싶다.
‘근데 뭘 해줘야 하지?’
위로라고는 해도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땀에 젖은 몸으로 그를 끌어안아 주는 것뿐.
오진과 오랜 시간 함께 있었지만, 아니 오히려 너무나 오랜 시간 함께 있었기에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하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전에 커뮤니티에서 봤는데!’
분명 ‘남편 삐진 걸 한 번에 풀 수 있는 방법’ 뭐 이런 제목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오진과는 아직 결혼한 것도, 지금 그가 삐져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 효과는 있을 거야.’
하은은 진지한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입을 맞추듯 얼굴을 가까이했다.
“오지나.”
“응?”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
등을 쓰다듬던 손을 살며시 내려 그의 팔 위에 살포시 올렸다.
“가슴 만질래?”
“……예?”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는 오진의 모습.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그의 팔에서 느껴지던 떨림이 사라진 게 느껴졌다.
‘역시 효과 직빵이네!’
하은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오진을 공들여 위로(?)해준 후.
하은은 침대에 누운 채 잠들어 있는 오진의 뺨을 장난스럽게 콕콕 찔렀다.
“헤헤. 이 귀여운 짜식.”
평소엔 오진보다 자신이 누나라는 체감이 잘 들지 않았지만.
오늘은 그래도 뭔가 그를 리드해준 느낌이 들어 풍족한 만족감이 차올랐다.
“…누나.”
“응?”
잠들어 있던 오진이 옆으로 돌아누우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새 깨운 건가 싶어 다급히 손을 뗐지만, 다행히 잠꼬대에 불과했는지 눈을 뜨진 않았다.
“휴우.”
하은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옆으로 돌아누운 오진을 찬찬히 내려다봤다.
“으, 으….”
무슨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오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
하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오진에게 다가갔다.
“…누, 나.”
“그래, 그래. 누나 옆에 있어요.”
잠든 오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고 있을 때.
“…지, 마.”
“엉?”
“죽지, 마….”
“…….”
하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그를 불안하게 만든 걸까.
‘전에… 이신혁인가 그놈의 기억이 흘러들어온다고 했나.’
혹시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안 좋은 일이라도 당하기라도 했던 걸까.
“하여간 짜식. 별것도 아닌 걸로 오바라니깐.”
하은은 피식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오진의 등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전생의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든 알게 뭐란 말인가.
지금 그녀는 멀쩡히 살아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앞으로도 쭉.’
하은은 오진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예전에 그가 ‘낙원’에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줄 알고 있을 때는 서로 떨어져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누난 이제 너 안 놔줄 거야.’
그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것이다.
뭐든지 해줄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모두 들어줄 것이다.
“오지나….”
하은은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오진의 등을 끌어안았다.
등을 타고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
간질거리는 듯한 행복감이 퍼지며 다른 욕망이 불쑥 솟아올랐다.
“크흠.”
참을 수 없는 충동.
하은은 갑작스럽게 끓어오르는 욕망에 헛기침을 흘렸다.
“자고… 있지?”
잠든 오진의 뺨을 콕콕 찌르는 하은.
오진은 이 상태라면 어지간해서는 깨지 않는다.
“흐흐.”
하은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잠든 오진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으려고 했을 때.
“…누나?”
오진이 부스스 눈을 뜨며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 어어? 이, 이, 일어났어?”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하은.
“왜 그렇게 당황하는 건데.”
오진은 묘한 위치에 내려가 있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그, 그게 말이지!”
하은은 다급히 손을 빼내며 말을 더듬었다.
“나 자는 사이에 뭐 이상한 짓이라도 하려 했어?”
“그런 거 아냐!”
벌떡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크, 크흠! 그러니까 나, 나도 만지게 해줬으니까!”
“뭐?”
갑자기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누나.
“어, 어차피 너나 나나 똑같이 두 개 달린 건데 만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똑같이 두 개… 뭐?
“살살 만질게!”
“닥쳐.”
“안 터트릴 테니까!”
“닥치라고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