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47)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47화
축하 파티 (3)
칠성이 된 기념 파티라.
“좋지. 그럼 저녁에 배달이라도 시켜 먹을까?”
딱히 신경 쓰진 않았지만.
어차피 이사벨라와 몇 주 만에 재회한 기념으로 근사한 저녁 식사를 대접해 줄 생각이었다.
거기에 기념 파티라는 명목이 하나 더해진다 한들 별반 차이 없으리라.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오진 씨?”
“어? 왜? 아, 전에 배달 음식 안 좋아한다고 했던가?”
불량한 음식이라며 호통을 치던 이사벨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요!”
이사벨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에 척 손을 올렸다.
“우선 장소는 제주도에 있는 5성급 호텔을 알아놨어요. 거기를 하루 통째로 빌려서 유명 셰프들을 초청….”
“잠깐, 잠깐.”
미친 듯이 커지려는 파티 스케일에 오진은 질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5성급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파티를 하자니?
“아서라. 오지니는 그런 거창한 거 싫어해.”
하은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말투에 이사벨라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건 단순히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과거 오진이 극도로 궁핍한 삶을 살아왔다는 건 그녀 또한 알고 있는 사실.
하은에게 듣기로는 헌옷수거함에서 옷을 가져다 입고, 값싼 칼로리 바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도 있다고 들었다.
“전 오진 씨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삶을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오진도 이제 가난에서 벗어난 지 꽤 지났지만.
아니, 벗어난 걸 넘어 이제는 부유층에 속할 정도로 많은 돈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제까지 살아왔던 습관이 남아있는 탓일까, 막상 많은 돈이 있음에도 씀씀이는 과거에서 살짝 풍족해진 정도였다.
귀족 가문의 영애로 태어나 온갖 호화로운 사치를 누렸던 그녀에게 있어서 그런 오진의 모습이 뭔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음.”
오진은 자신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수 있다는 듯 의욕을 불태우는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누나 말대로 그런 거창한 건 나랑 잘 안 맞더라고.”
“하지만….”
“파티는 그냥 우리 집에서 간단하게 하자.”
일단 잘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이미지의 문제도 있다.
탐랑성이 죽은 후 한국 전체가 혼란에 빠진 상황인데 칠성이 되자마자 5성급 호텔을 통째로 빌려서 파티를 한다?
‘무슨 반응이 나올지는 뻔하지.’
부를 과시하는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아무리 그것이 정당하게 벌어들인 돈을 쓰는 거라 하더라도, 보란 듯이 자랑하는 걸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 마련이었으니까.
괜히 정치가들이 선거철만 되면 시장에 가서 음식을 주워 먹거나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아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술수라 해도 인간의 관념이라는 건 결국 눈에 보이는 행동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으음… 알겠어요.”
시무룩하게 어깨를 떨구는 이사벨라.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하은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사벨라는 분하다는 듯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지만, 이번에는 하은이 옳은 게 맞았다.
“그럼 적어도 요리는 제가 준비해도 괜찮을까요?”
“그래 주면 나야 좋기는 한데. 오자마자 괜찮겠어?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요.”
이사벨라는 씩씩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지난 몇 주간 밤낮없이 일한 터라 피로가 쌓이긴 했지만, 오진이 먹을 요리를 해준다고 생각하니 없던 기운들도 다시 샘솟는 기분이었다.
“그럼 나도 도울….”
“누나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너무해!”
하은이 서럽다는 듯 빼액 소리쳤다.
하지만 오진도 기왕 여는 파티에 석탄 고기찜이나 뒤틀린 황천의 오징어튀김 따위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초대할 손님은 몇 명 정도 되나요?”
“어디 보자.”
일단 베가와 리아크는 무조건이고.
“고릴라 아저씨도 부르자.”
“한 부장님?”
“엉. 이번에 그래도 가이드해 주느라 고생했잖어.”
“그러네.”
한 부장에겐 여러모로 신세를 진 게 많다.
‘이우혁은….’
얼마 전 이신혁의 기억 때문에 괜히 이우혁까지 꺼려졌지만.
‘그래도 불러야겠지.’
사적인 감정을 떠나서 이우혁과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뭐 연좌제도 아니고 이신혁이 꼽다고 해서 이우혁에게까지 그 책임을 떠넘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알렌이랑 그 건방진 꼬맹이도 부를까?”
“건방진 꼬맹이라뇨?”
“리베카라고 있어.”
“리베카라면… 설마 녹존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엉.”
“…….”
녹존성을 거침없이 꼬맹이라고 부르는 하은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하는 이사벨라.
“일단 그렇게 한 번 불러보자.”
“예. 그럼 9인분을 준비하면 될까요?”
“좀 더 필요할 거야.”
리아크와 한 부장의 식성을 생각하면 9인분으로 부족할 것이다.
“그럼 연락 좀 돌리고 올게.”
오진은 스마트폰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 * *
-죄송합니다. 오늘은 데네브와 선약이 있어서 참석하기 힘들 것 같네요.
“아, 그렇군요.”
-다음에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파군성의 이름을 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예. 그럼 다음에 뵙죠.”
쭉 연락을 돌려본 결과, 알렌은 따로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이 한창 바쁠 때긴 하지.’
그래도 알렌을 제외하고는 다들 흔쾌히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 장부터 보러 갈까?”
“아. 괜찮아요. 이미 로베르토에게 식재료를 준비해 달라고 연락했거든요.”
띵동.
말하기 무섭게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관 밖에는 박스 가득 재료를 들고 온 로베르토와 멜리사가 있었다.
“최상급 재료로 구해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로베르토.”
“저분이 파군성 님인가요?”
멜리사가 큼지막한 박스를 거실에 내려놓으며 눈을 반짝였다.
처음 보는 얼굴에 오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사벨라가 나섰다.
“저희 가문에서 고용인으로 일하고 있는 멜리사라고 해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사벨라 님의 전속 메이드 멜리사라고 합니다!”
멜리사는 허리를 깊게 숙이며 기운차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헤헤. 말 편하게 해주세요!”
“아. 음… 알았어.”
멜리사의 명랑한 미소에 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이제 고등학생 정도 됐을까.
민들레처럼 싱그러움이 물씬 흘러나오는 소녀였다.
“저도 밑 준비를 도와드릴게요, 이사벨라 님!”
“어머, 그래 주겠어요?”
이사벨라와 멜리사가 식재료가 든 박스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로베르토는 환하게 웃고 있는 이사벨라를 돌아보며 잔잔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한동안 이사벨라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는 오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콜그란데 가문의 집사장 로베르토라고 합니다.”
“아, 예.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군요.”
로베르토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아! 전에 쿠바산 시가 보내준 할부지 아냐?”
“하하. 맞습니다.”
로베르토의 주름진 이마에 옅은 힘줄이 돋아났다.
“제가 수년간 모아둔 컬렉션들을… 보내드린 적 있죠.”
“…앗.”
노신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음울한 기운에 하은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거, 걱정 마! 얼마 안 폈으니까! 다시 돌려줄게 할부지!”
“괜찮습니다. 컬렉션이야 나중에 다시 모으면 되니까요.”
로베르토는 세상에 초탈한 도인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노신사의 시선이 오진에게 향한다.
“…감사합니다.”
그는 다시금 오진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지극히 정중한 태도에 오히려 당황한 건 오진 쪽.
“감사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은….”
“몇 년간 이사벨라 님을 모시면서도 한 번도 진심으로 웃으시는 걸 본 적 없었습니다.”
노신사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오진 님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
“오진 님 덕분입니다. 아가씨가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건.”
“저도 이사벨라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로베르토는 마치 손녀딸을 바라보는 듯한 포근한 눈빛으로 주방에서 식재료를 정리하는 이사벨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부디, 앞으로도 아가씨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아 참,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면.”
로베르토가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 아가씨… 최근에도 ‘성장’하고 계십니다.”
“…….”
뭐가요.
“허허허! 조만간 아가씨 옷들을 새로 주문해야겠군요!”
흐뭇한 표정으로 콧수염을 쓰다듬는 로베르토.
“아, 그리고 그거 아십니까?”
“…또 뭐요.”
“이탈리아의 귀족 중에서는 아직도 두 명 이상의 부인을 갖는 경우가 흔하답니다.”
로베르토는 오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찡긋 윙크했다.
“…….”
산산이 박살 난 점잖은 노신사의 이미지에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재료 밑 준비를 모두 끝낸 멜리사와 이사벨라가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응? 그러지 말고 같이 먹지.”
30분간 로베르토와 담배 얘기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하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허허. 저희가 낄 만한 자리는 아니라서요.”
“그래두….”
“그럼 가시기 전에 커피라도 한잔하시죠.”
“뭐, 그 정도라면.”
로베르토와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오진은 찬장에서 맥심 커피 스틱을 꺼냈다.
‘귀족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맛에 이게 맞을진 모르겠지만.’
뜨거운 물을 넣고 뜯고 남은 스틱 봉지로 휘휘 커피를 저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커피 5잔 완성.
“어? 이거 맛있어요!”
달짝지근한 커피를 맛본 멜리사가 눈을 반짝였다.
“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발명품이지.”
“헤에. 커피를 이렇게 쉽게 탈 수 있다니….”
“선물로 몇 박스 줄 테니까 가져가.”
“정말요?”
멜리사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찬장에 쌓아둔 맥심 커피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헤헤. 파군성 님은 친절하신 분이시네요.”
“뭘 이 정도 가지고.”
오진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멜리사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데?”
“두 분이 어떻게 사귀게 되신 거예요?”
“음?”
하은과 오진의 시선이 겹쳤다.
하은이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오지니랑 나랑은 뭐 예전부터….”
“응? 무슨 얘기하시는 거예요?”
멜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은을 바라봤다.
마치 네가 왜 대답을 하냐는 듯한 어리둥절한 표정.
“…헉.”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이사벨라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메, 멜리사!”
다급히 멜리사를 말리려고 했지만.
“오진 님은 이사벨라 님이랑 사귀고 계시잖아요?”
멜리사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두 분이 어떻게 사귀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엥?”
“…….”
거실 안에 내려앉은 적막.
오진과 하은의 시선이 이사벨라에게 향했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죠!”
이사벨라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안절부절못하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오진을 가리켰다.
“오, 오진 씨! 오진 씨가 먼저 고백했어요!”
“…예?”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