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4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49화
천주룡(1)
오진의 축하 파티가 시작된 지 3시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파티 분위기가 살짝 식어가고, 소란 가득했던 거실 안에 켜둔 TV에서 흘러나온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슬슬 돌아갈 타이밍임을 직감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파티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잘가~ 고릴라 부장님!”
“고, 고릴라라뇨!”
울상을 짓는 한 부장.
“누나도 잘 있어! 혹시 나중에 장비 필요한 거 있으면 연구소에 들러주고!”
“오, 공짜로 맞춰주는 거야?”
“재미있으면?”
“농담이야. 담에 성유석 그득그득 싸 들고 갈게 그때 부탁해.”
하은이 씨익 웃으며 김시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럼 저희는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응~ 조심히 들어가!”
한 부장이 김시후를 데리고 나갔다.
“근데 아저씨는 왜 저런 거야? 술이라도 많이 마셨나?”
짙은 녹색 머리칼을 지닌 여인, 리베카는 남은 술을 후루룩 입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식탁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오진의 모습이 보였다.
“엥? 아까 보니 술도 거의 안 마시더만?”
하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엎드린 오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오지나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들어 올린 오진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이사벨라를 찌릿 노려봤다.
이사벨라는 든든한 보양식을 먹기라도 한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그럼 뒷정리부터 할게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접시를 치우는 이사벨라.
하은은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응.”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리베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거 경쟁자가 하나가 아니었네?”
리베카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살짝 오진 쪽으로 몸을 기댔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은 리베카가 오진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너무 대담한 거 아냐?”
“……!”
흠칫.
오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경악에 찬 눈으로 리베카를 돌아보자 리베카가 배를 잡고 꺄르르 폭소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뭔데? 왜 갑자기 웃는 거야?”
하은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
“아하하하! 아무것도 아냐.”
실컷 웃어 재낀 리베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이만 가볼게~ 다음에 또 초대해 줘 파군성 아저씨?”
찡긋 윙크를 하며 현관으로 걸어가는 리베카.
“…하아.”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슬슬 다들 돌아가는 게냐?]배가 빵빵하게 불어난 베가가 뽀르르 날아올라 오진에게 다가왔다.
[어엇?]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일까.
날아오던 베가가 중심을 잃고 기우뚱 떨어져 내렸다.
리아크가 잽싸게 달려들어 떨어지는 베가를 등에 태웠다.
“괜찮으십니까 베가 님?”
[크, 크흠! 자, 잠깐 술에 취해 중심을 잃었느니라!]“에이, 딱 봐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구만 웬 술 탓이야?”
[시끄럽구나!]“아악!”
베가가 얼굴을 붉히며 하은에게 날아올라 그녀의 귓불을 쭈욱 잡아당겼다.
거실 분위기가 다시 소란스러워지려고 할 때.
“오진 씨.”
아직 가지 않고 남아 있던 이우혁이 오진에게 다가왔다.
“우혁 씨도 슬슬 돌아가실 건가요?”
“예. 그 전에 오진 씨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요. 아, 정확히는… 하은 씨한테요.”
“예?”
“엉? 나?”
베가와 투닥거리고 있던 하은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이우혁이 난처한 표정으로 하은 쪽을 힐끗 바라봤다.
“음… 파티에 와서 드릴 말씀은 아니긴 한데, 제가 내일이면 해외에 출장을 가게 됐거든요.”
빙빙 말을 돌리던 이우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혹시, 최근에 네임드 몬스터들이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 들으신 적 있으십니까?”
“아, 예. 들은 적 있습니다.”
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흑성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한동안 활동하지 않았던 네임드 몬스터들이 최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다른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네임드 몬스터 때문에 큰 재앙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죠.”
“…….”
오진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재앙을 일으켰던 네임드 몬스터의 이름은.
“천주룡, 바르바토스.”
오진의 눈빛에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다.
이우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최근 북한 쪽에서 천주룡이 활동을 재개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하은이 이제 막 4년 차 각성자가 되었을 때.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있던 네임드 몬스터가 괴수 무리를 이끌고 남하한 적이 있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고, 수천 명이 학살당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서로 이권을 두고 대립하던 길드들이 손을 잡았고, 혼자서 묵묵히 게이트를 드나들던 각성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천주룡이… 다시 나타났다고?”
하은도 있었다.
과거 지금보다 각성자들의 수준과 숫자가 한창 떨어졌을 무렵.
각성자들 중에서 상위권의 실력을 지니고 있던 하은은 천주룡과 직접 맞붙는 조에 속하게 되었다.
수십 명의 각성자의 목숨을 대가로 가까스로 천주룡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끝끝내 죽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천주룡은 물러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저주를 내렸다.
빛을 앗아가는, 잔혹한 용의 저주를.
“예. 아직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건 아니지만, 다시 나타난 건 확실합니다.”
이우혁이 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괴수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평양 시내를 걸어 다니는 보랏빛 용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
사진을 본 하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주와 독을 상징하는 보랏빛의 비늘을 지닌 용.
그녀의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천주룡의 모습이었다.
“…응?”
아니, 다른 부분이 하나 있었다.
“이 검은 뿔은 뭐야?”
천주룡의 머리 부분에 돋아 있는 두 개의 뿔.
그녀의 기억 속 어디에도 저런 뿔은 없었다.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뿔을 제외하고는 과거 천주룡과 똑같습니다.”
“…그렇네.”
하은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우혁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는 하은 씨가 당시 천주룡 토벌 작전에 참여하셨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응, 맞아.”
“혹시 천주룡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천주룡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당시 천주룡과 직접 싸웠던 하은만큼 적임자는 없었다.
“천주룡을 토벌할 생각이야?”
“예. 그렇습니다. 놈이 언제 다시 괴수 무리를 이끌고 내려올지 알 수 없으니까요.”
만약 천주룡을 토벌해야 한다면 이제 막 활동을 재개해 제대로 된 세력이 만들어지기 전에 직접 둥지에 쳐들어가는 게 가장 현명했다.
“…….”
하은은 기억하기 싫은 악몽을 떠올리듯 눈을 찌푸렸다.
“일단, 저주 공격이 많이 까다로워. 이름에 맞게 다채로운 저주를 사용하거든.”
기본적인 쇠약부터 두통과 구토를 유발하는 저주, 발을 느리게 하는 저주와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 저주까지.
천주룡이라는 이름 그대로 셀 수 없는 저주를 사용했다.
“걔 비늘이 빛나고 있을 때가 저주를 사용했을 때야. 그때 비늘 몇 개가 빛나냐에 따라서 저주의 강도도 달라지고.”
“그렇군요.”
“잠시만요 하은 씨.”
재빠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그녀의 말을 녹음하는 김선영.
“예. 다시 말씀해 주세요.”
“덩치에 비해 근접전은 확실히 약해. 움직임도 느린 편이고.”
“비행 능력은 어떻습니까?”
“못 날아 그 자식. 날개는 있는데 나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하은은 당시의 끔찍한 기억을 되짚으며 최대한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줬다.
“그럼 혹시… 놈의 둥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둥지? 둥지가 어딨는지는 모르겠는데.”
“예. 모르신다면 적어도 짐작 가는 곳이라도….”
“글쎄. 짐작 가는 곳이라고 해도 잘 모르겠는데.”
하은이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우혁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역시 둥지 위치까진 하은 씨도 모르시는군요.”
천주룡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그가 세력을 모으기 전에 직접 둥지에 쳐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중요한 둥지의 위치를 알 방법이 없었다.
“둥지 위치만 알아낼 수 있다면….”
이우혁이 씁쓸하게 말끝을 흐리는 순간.
-둥지 위치만 알아낼 수 있다면….
파싯.
순간적으로 오진의 시야가 뒤틀리며 방금 전과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이우혁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건.’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얼마 전에 얻었던 흑천의 새로운 특성, 기시감이 발동했을 때의 느낌.
-우혁아! 저, 저기! 저기가 놈의 둥지야!
소란을 떠는 이신혁의 목소리와 함께 머릿속에 천주룡의 둥지의 위치가 흘러 들어왔다.
“후우. 기분 좋은 날에 괜히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아냐. 내일 출장 간다고?”
“예. 해외 쪽에서도 네임드 몬스터가 활동을 재개했다고 해서 참고할만한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러 갑니다.”
“고생이네.”
“하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이우혁이 코트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했습니다.”
“예. 들어가세요.”
오진은 아무 말 없이 이우혁을 배웅했다.
달칵.
문이 닫히며 왁자지껄했던 파티가 완전히 끝났다.
“그럼 슬슬 뒷정리할까?”
[본녀도 도와주겠느니라!]하은과 베가가 어수선한 집 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
오진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오래전 기억들을 떠올렸다.
약 냄새가 가득한 병실.
병실 침대에 누워 익숙하지 않은 어둠에 벌벌 떠는 하은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빛을 앗아간 존재를.
천천히 뜨인 두 눈에 푸른 귀화가 은은히 타올랐다.
“다들 할 말이 있어.”
“엉?”
[무슨 말이느냐?]하은과 이사벨라, 베가의 시선이 오진에게로 향했다.
“방금 들었던 천주룡 얘기 있지?”
“아, 응.”
발할라 길드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놈, 우리가 잡자.”
이 일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건 이우혁이 아닌 자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