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52화
천주룡 (4)
“짜잔! 완성했어!”
일주일 후.
김시후의 연락을 받고 모인 하은과 오진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은색 케이스를 받았다.
하은은 꿀꺽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 담긴 것은 심플한 디자인의 검은색 가죽 장갑.
장갑의 주먹 부근에는 손톱만 한 크기의 붉은 성유석이 징처럼 박혀 있었다.
-화르르르륵!
장갑을 낀 하은이 가볍게 마력을 일으키자 장갑에 박힌 붉은 성유석들이 서로 공명을 하듯 웅웅 진동하며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와아.”
절로 흘러나오는 탄성.
평소 맨손으로 화염을 만들었을 때보다 한층 열기가 강해진 게 확 체감됐다.
“이게… 오지니의 몸을 팔아 얻은 성유물….”
“뭔가 표현이 굉장히 불쾌한데.”
뒤에 선 채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오진이 눈을 찌푸렸다.
김시후는 탄성을 내지르는 하은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누나의 특성을 고려해서 성흔의 마력 중에서도 ‘양(陽)’의 기운만을 증폭시켜 주는 성유물로 만들었어! 다른 사람이 쓰면 효과가 대폭 떨어지겠지만, 용자리 각성자인 누나한텐 이만한 성유물이 없을 거야!”
“이걸 일주일 만에 만든 거야?”
“제작 자체가 까다로운 성유물은 아니니까. 마력 증폭 효과가 있는 성유물이 비싼 이유는 그냥 들어가는 성유석이 너무 터무니없어서 그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의 성유물을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만들 수 있는 건 김시후가 천재적인 실력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고마워. 잘 쓸게.”
“형처럼 심심하면 망가트려서 오지 말구. 이건 한 번 망가지면 진짜 수리비만 최소 수십억씩 깨지거든?”
“장식장 안에 넣어두고 손도 안 댈게!”
그러면 300억 들여서 성유물을 만든 의미가 없잖아.
“그럼 담에 또 일 있으면 찾아와! 아, 없어도 찾아와도 좋구!”
“히히. 담에 누나가 맛난 거 사줄게.”
“응!”
하은은 김시후가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시후가 기분 좋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그럼 누나 간다~!”
그렇게 연구소를 뒤로하고 나온 오진과 하은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성유물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동안 일주일이나 시간이 흘러버렸으니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투두두두두!
아파트 옥상에 만들어둔 헬기 착륙장에는 이미 콜그란데 가문에서 준비한 헬기가 도착해 있었다.
“성유물은 받으셨나요?”
평소 즐겨 입는 원피스류가 아닌 움직이기 편한 복장을 한 이사벨라가 오진과 하은을 향해 다가왔다.
“엉. 한 번 테스트해 봤는데 성능 하난 죽여주더라.”
하은이 씩 웃으며 손에 착용한 검은 가죽 장갑을 들어 올렸다.
“다행이네요. 아, 참. 모두 이걸 하나씩 가져가 주세요.”
이사벨라가 하은과 오진을 향해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복주머니를 내밀었다.
주머니 안을 보니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부적들이 여러 장 겹쳐 있었다.
“이게 저주에 효과 있다는 성유물이야?”
“네, 맞아요.”
지난 일주일 동안 하은의 장비가 완성되기만 손 빨고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다.
천주룡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저주.
저주에 효과가 좋은 성유물들을 구하기 위해 이사벨라는 바쁘게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일단 리아크 씨와 베가 님 것도 준비해 뒀어요.”
“나중에 도착하면 전해줘.”
베가와 리아크는 율법의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 레어 근처에 도착하면 부를 생각이었다.
오진은 복주머니를 품속에 넣으며 이사벨라를 바라봤다.
“무리한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하은의 장비부터 저주에 효과가 좋다는 부적들까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아마 천문학적인 금액이 깨졌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콜그란데 가문의 재산이 많다고 해도 수백억이 가볍게 지출할 수 있는 돈 일리가 없었다.
“후훗. 오진 씨를 위해서라면 얼마든 더 쓸 수 있는데요?”
이사벨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돈 많고 상냥하고 요리도 잘하는 데다가 헌신적이기까지 하다니.
‘전생에 세계를 멸망시킨 거 아니었나.’
오진은 이사벨라가 보내주는 감당하기 힘든 호의에 실소를 흘렸다.
“이번에 천주룡을 잡게 되면 성유석이랑 사체는 모두 콜그란데 가문 쪽에 맡길게.”
천주룡 정도 되는 괴수라면 성유석과 사체를 모두 처분했을 때 최소 백억 이상의 수익은 가뿐히 나올 것이다.
물론 그걸 다 합친다고 해도 이사벨라가 쓴 돈에 반도 채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받기만 할 순 없지 않은가.
“흐응. 전 그것보단 오진 씨랑 데이트가 하고 싶은데요?”
이사벨라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연분홍빛 혀를 내밀어 입술을 쓱 핥았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만찬을 눈앞에 둔 듯한 표정.
“그건 뭐….”
오진은 끄응 침음을 삼키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여친 옆에 두고 둘이서 꽁냥거리지 말고.”
뚱한 표정으로 연초를 태우고 있던 하은이 헬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출발하자고.”
“엉.”
“네, 언니.”
오진과 하은, 이사벨라는 헬기에 몸을 실었다.
“자, 그럼.”
휴대용 재떨이에 연초를 비벼끈 하은이 북쪽으로 힘차게 손을 뻗었다.
“가자!”
노스랜드로!
* * *
“이 근처에 내려줘.”
헬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평양.
천주룡 바르바토스의 모습이 찍힌 도시였다.
“어우… 여긴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헬기에서 내린 하은은 혀를 차며 폐허가 된 도시의 전경을 바라봤다.
과거 북한의 수도였던 평양은 6년 전 천주룡과 그가 이끄는 괴수 무리에 멸망 당한 후 이제 사람 하나 살지 않는 유령 도시가 되어버렸다.
아마 그때 하은을 비롯한 여러 각성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서울도 이곳과 비슷한 꼴이었겠지.
“베가.”
목적지에 도착한 우선 오진은 목에 건 펜던트에 마력을 흘려 넣으며 베가를 불렀다.
은빛 펜던트가 빛을 뿜으며 베가와 리아크가 소환됐다.
[여기가 그 천주룡이란 마수의 둥지가 있는 곳이냐?]“응.”
“크르릉. 일단 냄새는 나지 않는데… 둥지가 어디에 있다는 거냐?”
리아크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구멍이 숭숭 뚫린 폐건물만이 가득한 거리에는 용이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 아래.”
오진은 마치 포탄이 떨어진 듯 이곳저곳이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을 가리켰다.
“땅 아래라면… 지하철?”
“맞아.”
이신혁의 기억에 따르면 천주룡의 레어가 위치한 장소는 평양 아래 깊은 곳에 깔린 지하철도였다.
“평양의 지하철도는 전시에 방공호로 사용할 목적으로 100미터 깊이까지 깔려 있거든.”
거대한 덩치를 숨기기에도 적당한 크기였고, 방공호 목적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굉장히 튼튼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레어를 만들기에 이곳보다 더 최적의 장소는 찾기 힘드리라.
“레어로 쓰기는 좋긴 한데… 이렇게 뻔한 곳에 있는데 발할라 길드가 못 찾았던 거야?”
천주룡을 토벌하기 위해 레어의 위치를 찾고 있던 발할라 길드가 설마 지하철을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을 리는 없었다.
흔히 동굴이나 가파른 협곡에 둥지를 짓기를 좋아하는 용족 괴수의 특성상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곳은 지하철도였으니까.
“지하철까지는 생각했어도 역을 맞추기는 어려웠을 거야.”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천주룡의 레어가 있는 곳은 ‘노선에 없는 역’이었으니까.”
과거 북한은 기나긴 독재정권 탓에 일반인들은 접근조차 없는 역이 존재했다.
천주룡이 자리를 잡은 것은 바로 그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은밀하게 숨겨진 역.
발할라 길드원들이 과거 국정원에서 일했던 것도 아니고 노선에조차 나오지 않은 역을 찾아내기란 지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신혁 이놈도 나중에 온갖 철도를 다 직접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찾아낸 거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천주룡의 레어가 위치한 장소였다.
“그럼 일단 역 아래로 내려가야 할까요?”
“아니.”
오진은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놈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울 이유는 없지.”
천주룡은 그 이름대로 천 개에 달하는 저주를 다루는 놈이었다.
아마 레어 주변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저주가 한가득 깔려 있겠지.
과거 이신혁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천주룡의 레어를 뚫는데 엄청난 고생을 했던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으로 적을 유인한다, 라… 과연, 애송이치고는 좋은 생각이구나.”
[하나 어떻게 천주룡을 끌어낼 생각이느냐?]베가는 뽀르르 하늘을 날아 오진의 머리 위에 앉으며 물었다.
방공호로 쓰일 만큼 깊은 지하에 꼭꼭 몸을 숨기고 있는 놈을 밖으로 끌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건….”
“아! 알았다!”
오진이 대답하기 전에 하은이 손뼉을 치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그냥 내가 불 지르면 끝 아냐?”
성안에 콕 박힌 채 농성을 펼치는 적군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화공(火攻)만 한 게 없지 않은가.
“그걸로는 부족할 거야.”
“부족하다고?”
“불의 특성상 아래보단 위로 향할 테니까.”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놈을 기어나오게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그건 내가 직접 내려가서 불을 지르면….”
“역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바로 천주룡에게 감지될 거야.”
놈은 원초적인 본능만 지닌 채 움직이는 마수가 아니었다.
‘이름’이 붙여진 마수답게 천주룡은 인간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지성을 지니고 있었다.
지하에 레어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 정도 대비는 해뒀으리라.
“그럼 어떻게 하게?”
“불이 안 되면, 물을 쓰면 되지.”
“물?”
하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아래엔 지하철도 말고 하수도도 깔려 있거든.”
이신혁은 천주룡의 레어를 찾기 위해 평양 전체를 빠삭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기시감’을 통해 오진의 머릿속에 남김없이 전달된 상태.
지금 오진은 평양 지하철도의 구조는 물론 하수도가 어딜 어떻게 흐르는지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하수도를 터트려서 지하철도 전체에 물을 흘려보내면 기어 나올 수밖에 없을 거야.”
“…그게 가능해?”
하은은 눈살을 좁히며 물었다.
확실히 하수도를 터트려서 레어를 물에 잠기게 만든다는 작전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작전이었다.
“으음. 저도 좀 회의적이네요.”
이사벨라도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수도를 터트린다고 해도 역 전체가 물에 잠기게 만들 수는 없을 거예요.”
기껏해야 발목 정도까지 물이 차오를까.
지하철도 전체를 침수시키려면 강이 범람할 정도로 비가 쏟아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응? 역을 물에 잠기게 한다고는 말한 적 없는데?”
“예?”
“말했잖아. 레어 쪽으로 물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면… 굳이 나올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이사벨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어가 잠길 정도로 물이 쏟아지는 것도 아닌데 천주룡이 레어 밖으로 뛰쳐나올 이유는 없었다.
사람한테야 발목까지 잠기는 물이 불편할지 몰라도 용의 덩치를 생각하면 그 정도 물은 마룻바닥에 실수로 물을 엎지른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아니, 나올 거야.”
오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천주룡이 인간과 같은 ‘지성’을 지녔다면.
레어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여기 하수처리 시설이 언제부터 망가졌다고 생각해?”
“예?”
“천주룡이 이 도시를 멸망시킨 게… 어디 보자, 대충 6년 전이네.”
지금 하수도에 고여 있는 건 단순한 ‘물’이 아니다.
“6년 동안 고여 있는 오물이 섞인 물이지.”
“…….”
하은과 이사벨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니까….”
하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6년 묵은 똥물을 그 새끼 레어에 쏟아붓자고?”
무녀님이 주신 경단… 아니, 이게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