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5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53화
천주룡 (5)
“준비됐어, 누나?”
“어, 응….”
하은은 세상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수건을 들어 코를 틀어막으며 외쳤다.
“터트려!”
“으….”
하은은 질끈 눈을 감으며 손에 쥔 용옥을 맨홀 깊숙한 곳에 던졌다.
치이이이이익!
바닥을 녹이며 하수도 깊은 곳으로 파고든 붉은 용옥.
그 안에 응축되어 있던 화염이 고삐가 풀린 듯 사방에 퍼졌다.
콰르르르르르릉!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주변 일대 전체가 뒤흔들렸다.
“뭐, 뭐야?”
예상을 한참 웃도는 위력의 폭발.
하은은 다급히 손에 낀 검은 가죽 장갑을 내려다봤다.
장갑 때문에 위력이 증폭된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위력이 강했다.
“가스 때문이야.”
“가스?”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6년이란 기나긴 시간 동안 밀폐된 하수도에 고여 있던 오물.
거기서 뿜어져 나온 메탄가스는 하수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6년 동안 숙성된 천연 폭탄이 묻혀 있는 셈.
거기에 하은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중 위력 면에서는 가장 강력한 용옥을 내던졌으니 당연히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웁!”
“빨리 이걸로 코 막아.”
폭발에 휩쓸려 지면 밖으로 솟구쳐 오른 가스 또한 천지가 개벽할 듯한 끔찍한 악취를 풍겼지만.
[으으. 머, 머리가 어지럽구나.]베가가 휘청거리며 날아와 오진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녀는 거리 전체에 퍼진 끔찍한 악취에 코를 부여잡은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크르릉, 커헝!”
그래도 그나마 베가는 나은 편이다.
“애, 애송이! 이, 이 끔찍한 냄새 좀 어떻게 해봐라 제발!”
사람보다 수십 배는 뛰어난 후각을 지닌 리아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창백한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좀만 참으면 사라질 거야.”
“크윽! 이 끔찍한 냄새를 어떻게 참으란 말이냐?”
“전사는 근성이라며?”
“이건 근성 이전의 문제다!”
리아크가 끄윽끄윽 몸을 뒤틀며 고통을 호소했다.
리아크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사벨라와 베가, 하은 또한 코를 틀어막은 채 참기 어렵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진은 그들에게 한 마디 응원의 말을 해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울 땐 모두 떠올려 봐.”
집중된 시선.
“비록 내가 힘들지라도… 지금 나보다 더 X같을 놈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오진은 씨익 웃으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갈라진 지면 위로 솟구친 것은 어디까지나 숙성된 가스뿐.
남은 ‘건더기’가 어디로 쏟아졌을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새끼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버틸 수 있을 거야!”
“좋은 말 한다, 미친놈아.”
하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뭐, 정신 나간 말이긴 했지만.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 좀 버틸 만한데?”
온탕에서 열탕 본다고 온탕이 냉탕이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같은 상황에서 나보다 더 고생하는 놈을 보면 심리적인 만족감은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놈이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원수라면.
몸을 데우는 열기쯤은 되려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쿠르르릉!
아니나 다를까.
곧 폭음이 울려 퍼지며 다시 땅이 덜덜덜 흔들렸다.
용옥의 폭발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땅이 흔들리는 이유는, 땅 아래에서 무언가 필사적으로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기 때문.
“크아아아아아악!”
콰앙!
바닥이 쪼개지며 오물을 뒤집어쓴 한 사내가 두더지처럼 뛰쳐나왔다.
“뭐, 뭐냐! 이게 뭐냔 말이다 우욱!”
짙은 보랏빛 머리칼을 한 사내가 전신에 엉겨 붙은 오물들을 필사적으로 털어내며 몸부림쳤다.
“음?”
천주룡이 아닌 웬 처음 보는 사내의 등장에 오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이신혁의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떠올랐을 무렵.
[걱정 말거라. 저자는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마수에 불과 하느니라.]베가가 날카로운 눈으로 사내를 쏘아봤다.
[이마에 전에 봤던 검은색 뿔도 돋아있지 않으냐?]“아, 그러네.”
그녀의 말마따나.
짙은 보라색 머리칼을 지닌 사내의 이마에는 전에 사진으로 봤던 검은색 뿔이 돋아나와 있었다.
물론 그 크기는 용의 모습이었을 때보다 훨씬 작긴 했지만.
‘근데 저 뿔은 뭐지?’
이신혁의 기억 속에서도 천주룡의 이마에 검은 뿔이 돋아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크윽! 네놈들이 한 짓이냐?”
생각이 이어질 틈도 없이.
몸에 묻은 오물들을 대충 털어낸 천주룡이 오진 일행을 노려봤다.
“경단 맛은 좀 어땠어?”
“…경단?”
“아니, 아무것도 아냐.”
오진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천주룡을 위아래로 살폈다.
오물을 뒤집어쓴 꼴사나운 모습이었지만, 꽤나 훤칠하게 생긴 미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평소엔 인간 모습으로 다니나 보네? 그렇게 하찮은 생물이라느니 뭐니 생난리를 치더만.”
6년 전 당시 오진은 천주룡과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방송을 통해 그가 무슨 말을 하며 인간들을 학살했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천주룡은 날카롭게 찢어진 눈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오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황상 그가 자신의 레어의 오물을 쏟아버린 범인이라는 건 명약관화한 상황.
세로로 찢어진 호박색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맺혔다.
“감히 이 바르바토스 님의 레어를 오물로 더럽히다니…!”
“이야,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거야?”
도내 최고의 미소녀 같은 말투네.
“닥쳐라!”
콰앙!
바르바토스가 거칠게 발을 구르며 일갈했다.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 진정됐는지 그는 오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음?”
베가와 리아크, 이사벨라를 적의 어린 시선으로 살피던 그의 시선이 하은에게 멈췄다.
“네년은….”
가늘게 눈을 뜨는 바르바토스.
이내 그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그때 앙칼지게 덤벼들던 년이로군.”
마치 뱀이 핥는 듯한 음흉한 시선.
하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흐음. 어떻게 맹시의 저주를 해제한 거지?”
바르바토스는 하은을 천천히 위아래로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그가 그녀에게 걸었던 용의 저주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해주되는 얄팍한 저주가 아니었다.
“내가 다시 찾아갈 때까지 빛을 빼앗긴 채 어둠 속에서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길 바랐건만.”
“…….”
바르바토스는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며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6년 전.
자신의 군세를 이끌고 인간들의 도시를 침공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성좌에게 성흔을 부여받은 인간들에게 밀려 굴욕적인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수십, 수백의 인간 무리와 싸웠지만.
그중에서도 저 붉은 머리 여자에 대한 기억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뒤져 이 도마뱀 새끼야!
아무리 저주를 몰아쳐도 굴하지 않고 달려들었던 여인.
불처럼 타오르는 투지로 반짝였던 그녀의 눈빛을 기억한다.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을 떠올린다.
“크흐흐. 내가 두려운가?”
바르바토스는 딱딱하게 굳은 하은을 바라보며 길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전과 같은 투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더 없는 증거.
그리고 그 공포가 어디서 기원했는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빛을 잃은 시간 동안 꽤나 괴로웠나 보군.”
“…닥쳐.”
하은은 사납게 바르바토스를 노려봤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그녀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그날의 악몽을.
빛 한점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혔을 때의 절망을.
“하하하! 그때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
바르바토스는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질게 찢어진 호박색 눈동자에 섬뜩한 빛이 스쳤다.
“그 당돌함은 인정하나… 상대를 잘못 골랐군.”
우우우우웅!
그의 몸 주위가 보랏빛으로 반짝이며 짙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이 바르바토스가 네년을━ 다시 끝없는 어둠 속에 가둬주겠다.”
사악하게 울려 퍼지는 음산한 웃음소리.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칼이 바람이 불어닥친 것처럼 휘날렸다.
오진은 사납게 마력을 뿜어내고 있는 바르바토스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야 너 입에서 똥냄새 난다.”
“…….”
빠직.
바르바토스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그는 감히 용을 마주하고도 조금도 공포에 질린 기색이 없는 오진을 노려보며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건방진 인간 놈이…!”
천주룡.
천 개의 저주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마경 내에서도 ‘왕’의 신임을 받는 높은 위치에 올라 있던 그의 드높은 자존심이 쩌적 금이 갔다.
뭐가 어찌 됐건 오물을 뒤집어쓰고 다급히 레어 밖으로 도망쳐 나온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리 누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워.”
오진은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하은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기며, 그녀를 지키듯 앞에 섰다.
“잊어버렸으면… 복수조차 되지 않으니까.”
깊게 가라앉은 눈빛.
가늘게 뜬 두 눈에 푸른 귀화가 타올랐다.
“흥. 꼴랑 인간 셋과 짐승 한 마리, 날파리 한 마리를 데려와 무슨 복수를 하겠다는 거냐?”
[…지금 본녀를 보고 날파리라 한 게냐?]베가가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그녀의 몸 주변에 푸른 뇌전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디 천한 도마뱀이 본녀에게…!]“잠깐 기다려봐 베가.”
오진은 당장에라도 달려들려는 베가를 말리며 바르바토스를 살폈다.
우선 바르바토스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체크해둘 필요가 있었다.
‘근접전이 약하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의 약점인 근접전으로 전투를 이끌어가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근접전에 능한 건 오진과 또 한 명.
오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리아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짐승 한 마리, 준비됐지?”
“아아. 언제든 저 건방진 도마뱀 새끼의 주둥이를 찢어버릴 수 있다.”
리아크가 늑대인간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며 사납게 눈을 빛냈다.
“자, 그럼 셋을 세고 동시에 들어간다.”
오진이 낮게 자세를 취했다.
리아크의 다리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은색 갈기 사이로 푸른 뇌전이 번뜩였다.
“크흐흐! 올 테면 얼마든지 와봐라!”
바르바토스는 오만한 미소와 함께 양팔을 넓게 펼쳤다.
보랏빛이 타오르며 강력한 저주가 담긴 빛무리가 그의 몸 주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진은 주먹을 움켜쥐며 외쳤다.
“간다 리아크!”
“준비는 끝났다 애송이!”
리아크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콰앙!
익시드를 사용한 오진의 몸이 한 줄기 푸른 뇌전이 되어 질주했다.
빠아아아악!
저주를 만들어내고 있던 바르바토스의 인중에 뇌전에 휩싸인 주먹이 거칠게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