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6화
가해자 없는 밤 (3)
“아… 으, 아.”
끊어질 듯한 숨소리.
더 이상 비명을 지를 기력도 없다는 듯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는 건 그게 전부야?”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진은 처참한 몰골이 된 채 쓰러져 있는 유진을 내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이 꼬라지로는 더 알고 있어도 말할 수가 없겠네.’
그의 부하가 무력하게 입을 열었던 것과 달리 유진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입을 열지 ‘못’했다.
“금제 같은 게 걸려 있는 건가.”
흑성회의 주요 정보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마치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펄떡이며 거품을 뿜었다.
이런 상태여서야 아무리 심문을 한다고 해도 핵심적인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건진 건.’
유진의 직책이 하급 정무관이라는 것과, ‘집행관’이라 불리는 존재를 섬긴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샤드 칸의 연락처.’
놈과 한날한시에 검은 별의 사도가 되었다는 동기 정무관의 연락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건 지금 당장은 쓸 일 없을 것 같고.”
아샤드 칸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유진처럼 자신을 뒤쫓는 게 아닌 이상 굳이 먼저 흑성회와 엮일 필요는 없었다.
“…아니, 잠깐만.”
잠시 생각을 이어가던 오진의 눈이 반짝였다.
검은 별의 성좌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 놈들.
음지에 암약하며 고요히 덩치를 불리고 있는 비밀 조직.
“이거, 이거.”
오진의 입가가 환하게 올라갔다.
‘이용할 수 있겠는데?’
그래.
이런 수상쩍은 집단에서 미래에 세상을 멸망시키는 ‘천마’가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
“푸흐흐흐!!”
오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자신이 흑천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들키지 않으려면.
흑천의 주인을 따로 만들어 죽이면 될 문제 아닌가?
“이거 흑성회 놈들이랑 엮여야 할 이유가 생겼네.”
무려 천마가 탄생하게 될 극악무도한 조직이다.
‘회귀자’인 자신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
세계의 종말을 막기 위해서라도━ 놈들을 처단해야만 한다.
“뭐, 그것도 지금 상태론 무리지만.”
오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 흑성회를 처단할 수는 없었다.
유진만 하더라도 이우혁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었을 테니까.
“…세력이 클 거라곤 생각했는데.”
이건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유진만 해도 절대 약한 게 아니었어.’
그 상대가 이우혁이었기에 일방적으로 밀린 것처럼 보였을 뿐, 어지간한 각성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하급 정무관인 유진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중급 정무관과 상급 정무관, 그리고 그 위에 있다는 집행관들은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일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오진은 가늘게 눈을 떴다.
실제 본적이 없었기에 정확한 전력을 측정하긴 어려웠지만.
‘집행관은… 칠성과 동급일 수도 있어.’
만약 그렇다면 흑성회는 표현 그대로 세계를 뒤집어엎기 충분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일곱 각성자와 동급인 각성자가 한 조직에 모여 있다는 의미니까.
“쯧.”
오진은 혀를 차며 서서히 숨이 멎어가고 있는 유진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어내고 싶었지만, 금제 때문에 더 이상 정보를 얻어내긴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볼까.
척.
오진은 바닥에 내려놓은 창을 들어 올렸다.
3일 전. 협회 근처 무기점에서 값싸게 구한 싸구려 창이었다.
‘이거 일 끝나면 장비부터 바꿔야겠네.’
콰득!
“커헉… 크륵.”
목덜미를 정확히 찌르자 유진이 피 가래를 쏟아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파지지지직!!
확실하게 숨통을 끊기 위해 전격까지 사용했다.
“어디 보자.”
그럼 인간 파밍을 시작해 볼까.
-부스럭, 부스럭.
유진의 품을 뒤져 돈이 될만한 걸 찾았다.
“오, 오오!!!”
오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성유물과 교환했을 때 받았던 고급 성유석 두 개가 검은 자루 안에 들어 있었다.
“심 봤다!!!”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제자리 점프로 10미터를 날아올랐다.
‘그때 그게 한 개에 5억이었으니까.’
10억.
무려 10억이라는 미친 거금을 한 번에 얻게 된 것이다.
“흐흐흐! 역시 인간 파밍만 한 게 없구만.”
오진은 은은한 푸른 빛이 흘러나오는 성유석 두 개를 슬링백에 챙겼다.
더 얻을 게 없나 싶어 팬티까지 벗겨 샅샅이 털어봤지만 돈이 될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쓰벌, 눈만 버렸네.”
벗겨둔 유진의 팬티를 다시 입혀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마지막으로.’
그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성흔에 새겨진 획(劃)은 여섯 개.
‘6성 각성자였나.’
어쩐지 강하다 했다.
-쿠륵, 쿠르륵.
성흔 위에 손을 올리고 정신을 집중하자 손끝에서 검은 먹구름이 흘러나왔다.
성흔을 완전히 뒤덮은 흑천의 구름이 게걸스럽게 그 안에 담긴 힘을 먹어치웠다.
-띠링!
[‘흑천’이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흡수합니다!] [‘흑천’의 세 번째 개화 조건이 모두 달성됐습니다!] [‘흑천’이 세 번째 개화를 시작합니다!]“……!”
푸른 메시지창을 읽은 오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세 번째 개화.
그것이 의미하는 건━
“크윽!”
쿠르르륵!!
검은 먹구름이 요동치며 전신을 휘감았다.
강렬한 두통이 머리를 울렸다.
[흑천을 통해 거문고자리 성흔에 담긴 ‘기록’을 읽어냅니다.] [흑천의 개화 단계가 낮습니다. 읽을 수 있는 기록이 제한됩니다.]처음 보는 광경이, 겪어본 적 없는 기억의 편린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제길!!
메케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대지.
사납게 날뛰는 수백, 수천 마리의 괴수 무리를 바라보며 이우혁이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서울역 건물은 이미 괴수들에게 짓밟혀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왜… 왜 이런 일이.
이우혁은 주먹을 움켜쥐며 가늘게 어깨를 떨고 있었다.
-우혁아.
-…형?
그때, 이신혁이 이우혁의 어깨를 잡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가 시간을 벌게. 넌 선영 씨 있는 곳으로 가.
-지금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형이 여기 왜 남아?
이우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하. 나도 좀 강해졌잖냐?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
-좋아하지?
-뭐?
-선영 씨 말이야.
-…….
이우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탁.
이신혁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손에 쥔 창을 들어 올렸다.
-빨리 가, 이 자식아. 나도 싸우다 안 될 것 같으면 튈 테니까.
-하지만.
이신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백 마리의 괴수들이 들끓고 있는 서울역을 향해 걸어갔다.
-어서 가봐.
나침반자리의 성흔이 강렬한 빛을 뿜으며 타올랐다.
이우혁은 두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몸을 돌려 어딘가로 향했다.
-자, 그럼.
이신혁은 깊게 호흡을 들이쉬며 그를 향해 달려드는 괴수 무리를 향해 창을 내밀었다.
-KarAAAAAAAAAAAA!!!!
그때, 지축을 뒤흔드는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궁!
무너진 서울역의 잔해 속에서 흉측한 살덩어리로 이뤄진 괴수가 몸을 일으켰다.
그 크기만 해도 20미터에 달하는 괴수.
재앙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살덩어리 괴수가 여덟 개의 팔을 휘저으며 주변을 파괴하고 있었다.
살덩어리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마에 박힌 농구공만한 크기의 검은 성유석이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제길.
이신혁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창을 쥔 손을 가늘게 떨었다.
-서울역 아래 저런 끔찍한 게 봉인돼 있을 줄 미리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 가득한 이신혁의 목소리와 함께,
“크윽!”
머릿속으로 밀려들던 기억이 끊어졌다.
“하아, 하아!”
오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띠링!
밀려 들어온 이신혁의 기억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려고 했을 때, 또 한 번 맑은 방울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번엔 또 뭐야?”
오진은 눈앞에 떠오른 푸른 메시지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각성자 이신혁의 일부 기록을 성공적으로 계승했습니다.] [《나침반자리의 창술 Lv5》이 《나침반자리의 창술 Lv6》로 상승합니다.] [‘흑천’이 ‘삼성개화(三星改化)’에 도달했습니다.] [‘흑천’의 신규 특성 ‘만류귀종(萬流歸宗)’을 습득하였습니다.]“…만류귀종?”
고개를 갸웃거리며 ‘만류귀종’이라 적힌 부분을 클릭했다.
곧 특성에 대한 설명이 적힌 창 하나가 추가로 떠올랐다.
[만류귀종(萬流歸宗) : 대표 성흔의 숙련도가 다른 성흔에도 영향을 줍니다.]“오.”
짧고 간결했지만, 탄성이 절로 흘러나오는 효과였다.
‘그러면 거문고자리 성흔의 숙련도를 올리면 다른 성흔도 같이 오른다는 건가?’
바로 확인해 보기 위해 이번에 얻은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사용해봤다.
-슈슈슈슉!!
“이야, 성능 쥑이네.”
처음 성흔을 발현하는데도 불구하고 열댓 개의 검은 깃털을 자유롭게 만들어내 쏘아낼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문고자리 성흔만큼 익숙하진 않지만.’
앞으로 몇 개의 성흔을 더 얻게 될지 모르는데 이렇게 아무런 조건 없이 숙련도 일부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효과였다.
“이러면 다른 성흔을 수련할 필요 없이 거문고자리 성흔에만 집중해도 되겠어.”
다른 성흔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쓰면 될 것이다.
오진은 마지막으로 유진의 시체를 한 번 더 살핀 후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제.’
연극의 막을 내릴 시간.
“후우.”
긴장에 찬 숨을 짧게 들이쉬며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이용해 검은 깃털을 만들었다.
‘굳이 이렇게 하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있나.
보상금을 최대한 달달하게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생했다는 어필을 할 필요가 있다.
돈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슈슈슈슈슉!!!
“크으으윽!!”
검은 깃털이 날아와 몸을 난자했다.
까딱하면 목숨이 위태로운 급소까지도 검은 깃털이 틀어박혔다.
핏물이 솟구치며 전신에 끔찍한 격통이 달렸다.
“씨이벌 드럽게 아프네!”
거친 욕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포위망을 구축하기 전, 협회에서 지급해줬던 무전기를 꺼냈다.
-치익!
[오진 씨? 지금 어디십니까 오진 씨?!]무전기에서 한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발할라 길드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범인 중 한 명이 도망쳤다고….]“잡았, 습니다.”
[예?]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망치던 범인을… 쿨럭! 잡았… 쿨럭! 쿨럭!”
[오, 오진 씨? 괜찮으십니까?]“아, 으.”
[오진 씨!!!]한준만 팀장의 다급한 외침.
“팀장님….”
[거, 거기 어딥니까!! 제길! 빨리 발할라 길드! 발할라 길드 쪽에 연락해!!]“저… 속이 안 좋아요.”
무전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