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8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85화
개와 늑대 (10)
“왕성이 왜…?”
하은은 찌푸린 눈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왕성을 바라봤다.
“잠시만.”
오진은 저택 지붕을 향해 와이어 슈터를 발사해 올라갔다.
지붕 위에 올라가니 정확히 어디쯤에서 폭발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직녀성의 사냥개.’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극한까지 감각을 끌어올렸다.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장소가 망원경을 사용한 듯 확대되어 보였다.
“저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왕성에서 보이는 건 은색 갈기를 지닌 수인족과 검은 갈기를 지닌 수인족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
은색 갈기 부족의 족장인 레오루가 선두에 선 채 왕성을 향해 맹렬하게 돌격하는 모습을 보자 지금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한 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반란.’
일주일 전.
호루스를 만나러 간다는 자신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던 레오루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그때 말하려고 했던 게 바로 이거였나.’
레오루는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지금 칸 왕국의 상태를 생각하면 충동적인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인들의 대거 이탈로 인한 친 마인족 파벌과 반 마인족 파벌의 대립.’
지난 백 년간 칸 왕국을 지배하고 있던 마인족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왕국에서 자취를 감췄다.
남아있는 마인족이라고 해봐야 고작해야 다섯.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는 전쟁 준비 소식으로 안 그래도 흉흉했던 민심이 극에 달했다.
‘반 마인족 파벌’은 지금이 마인족을 완전히 왕국에서 몰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반 마인족 파벌’의 중심에는.
‘레오루가 있었어.’
이제야 좀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호루스가 천마와 연관되어 있다면 죽이겠다고 말하는 자신을 보고 레오루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번 반란에 관한 얘기였으리라.
‘하지만 말할 수 없었겠지.’
상대적으로 전력이 모자란 반 마인족 파벌 입장에선 자신들과 같은 목적을 지닌 오진 일행의 전력이 절실했겠지만.
반란이라는 크나큰 계획을 준비하면서 처음 만난 외지인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왕성으로 가야 해.”
오진은 저택 지붕 위에 내려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왕성을 바라봤다.
지금 저택에 있어야 할 마인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들의 계획이 이미 마인족들의 귀에 들어갔다는 걸 의미했다.
불시에 기습해도 성공할지 말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미리 들키기까지 했다면 이 반란의 끝이 어떤 결말로 마무리될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멍청한 놈들이…!”
리아크 또한 대충 상황을 눈치챈 건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왕성 쪽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발을 박차고 왕성 쪽으로 달려가려고 할 때.
우우우웅!
품속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오진은 빛을 뿌리며 진동하고 있는 통신 구슬을 품속에서 꺼냈다.
[오, 오진 오빠!]숨을 헐떡이는 리루의 목소리.
[도, 도와주세요, 오빠! 마을에 마인족이랑 검은 갈기 부족이…!]“…제기랄.”
오진의 표정이 거칠게 구겨졌다.
반란이 시작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인족과 검은 갈기 부족이 마을을 습격했다는 것.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마을 사람들을 인질로 사용할 셈이야.’
이미 반란이 일어날 걸 마인족들이 알고 있었다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은색 갈기 부족의 전사들과 피 튀기는 혈전을 펼칠 이유가 굳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 집이니?”
[예, 예! 레오 오빠랑 창고에 숨어 있어요!]“금방 갈 테니까 절대 거기서 나오지 말고 있어.”
[아, 알겠어요!]연락을 끊은 오진은 이사벨라와 하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리루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둘은 마을 쪽으로 가줘.”
“뭐?”
“…혼자 왕성으로 가실 생각이신가요?”
“아니.”
오진은 리아크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리아크랑 같이 갈 거야.”
그리고 물론.
주머니 속에 몸을 숨긴 베가도 자신과 같이 왕성으로 갈 것이다.
“…너무 위험해요.”
이사벨라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마을은 제가 혼자 갈게요. 어차피 빈 마을을 습격하는 인원이야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
전사들이 나간 마을에 있는 건 리루, 레오와 같은 어린아이나 늙은 수인족뿐.
아무리 은색 갈기 부족이 사납다고 해도 힘없는 노약자와 어린이를 제압하기 위해 대군이 향했을 리는 없었다.
확실히 이사벨라 혼자만 해도 그들을 쓸어버리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붙잡힌 수인족들을 구하면서 동시에 놈들을 상대하려면 혼자로는 힘들 거야.”
“그건….”
“마을을 습격한 놈들을 싸그리 죽인다고 끝이 아니잖아?”
이사벨라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진의 말마따나, 마을을 습격한 무리를 쓸어버리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붙잡힌 수인족들을 지키는 동시에 그들을 쓸어버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
이사벨라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키는 것과 동시에 그들을 상대하긴 어려웠다.
물론 하은이 같이 간다고 해서 붙잡힌 은색 갈기 부족들을 모두 구출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사벨라 혼자 가는 것보다는 많은 은색 갈기 부족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오진은 하은과 이사벨라를 재촉했다.
“하아, 내가 못 산다 진짜.”
“…알겠어요.”
걱정스러운 눈으로 오진을 바라보던 둘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끝나고 바로 오진 씨를 도우러 올게요. 그때까지…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응, 나만 믿어.”
오진은 씩 웃으며 엄지를 추켜올렸다.
그런 오진을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던 하은과 이사벨라가 이내 은색 늑대 갈기 부족의 마을이 있는 쪽으로 발을 박찼다.
빠르게 멀어지는 두 여인의 뒷모습.
“우리도 왕성 쪽으로 가자.”
“…괜찮겠나 애송이?”
아마 왕성에는 마인족들은 물론 친 마인족 파벌의 핵심 전력이 모두 모여 있으리라.
왕국에 남아있는 마인족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고 해도, 그들 하나하나가 천마의 힘을 이어받은 강력한 존재들.
한 명씩 떨어져 있을 때 공격하는 거라면 몰라도 정면에서 치고받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괜찮지 않겠지.”
오진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왕성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리아크의 말마따나 이사벨라와 하은이 없는 지금 상황에 왕성으로 향하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리아크와 베가가 같이 간다고 해도 둘은 율법의 제약에 묶여 본신의 힘을 낼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전에 말했잖아.”
리아크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됐던 날.
이와 비슷한 얘기를 이미 나눈 적 있었다.
“참아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건 참아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더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네.”
파지직!
오진의 다리에 푸른 뇌전이 맺혔다.
“어떻게 할래?”
리아크를 돌아보는 오진.
그때 듣지 못했던 대답을 들어야 할 때였다.
“…….”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왕성을 바라보는 리아크.
[리아크여.]리아크에게 날아간 베가가 상냥하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그대와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구나.]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며 흐느껴 울던 은색 늑대 한 마리.
[오랜 시간 그대가 과거의 일을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느니라.]따스하게 스며드는 여신의 목소리.
[그대의 마음이 향하는 길로 가거라. 이번에는… 후회하지 않도록.]“…베가 님.”
으득.
리아크는 사납게 이를 갈았다.
멈춰있던 그의 발걸음이 한 걸음 앞으로 향했다.
“가자, 애송이.”
“그래.”
파지지직!
두 줄기의 푸른 뇌전이 왕성을 향해 쏘아졌다.
* * *
“허억, 허억!”
레오루는 턱까지 찬 숨을 헐떡였다.
피 묻은 은색 털이 불쾌하게 엉겨 붙었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앞에는 수백이 넘는 검은 갈기 부족의 전사들과 마인족 둘이 피떡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과거 ‘칸’이 속해 있던 부족이라는 걸 증명하듯 왕성을 습격한 은색 갈기 부족들은 무지막지한 위용을 보여줬지만.
“조, 족장님!”
“이대로는…!”
다급함에 찬 부족들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아무리 은색 갈기 부족 전사의 힘이 대단하다고 해도 압도적인 수적 열세를 뒤집을 순 없었다.
선두에 서 그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웠던 레오루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이제… 그만해라.”
숨을 헐떡이는 레오루의 앞에 선 흑발의 사내.
그는 씁쓸한 눈으로 쓰러진 레오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 루스…!”
레오루는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호루스를 노려봤다.
호루스는 이글거리는 레오루의 눈을 피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십니까~?”
그곳에는 얼굴에 불쾌할 정도로 짙은 화장을 한 남자, 칼리케가 얼굴에 분을 칠하며 낄낄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호루스는 주먹을 움켜쥔 채 그를 노려봤다.
“…네가 한 짓인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능글맞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는 칼리케.
호루스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칼리케를 노려봤다.
“성문이 열려 있더군.”
왕성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두 개의 관문을 넘을 필요가 있었다.
수도 밖에 있는 외성과 왕성을 둘러싸고 있는 내성.
외성은 경비가 허술하다고 해도 내성은 검은 갈기 부족의 전사들이 24시간 철저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곳.
내부에 협력자가 없고서야 이 정도의 대규모 병력이 들키지 않고 왕성에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즉, 누군가 은색 늑대 갈기 부족의 등을 떠민 것이다.
‘반란’을 일으키도록.
“호호호! 그러게요. 이거 나중에 경비병들에게 따끔한 벌을 내릴 필요가 있겠는데요?”
간드러진 웃음을 터트리며 붉은 입술을 비틀어 올리는 칼리케.
호루스의 움켜쥔 주먹 위에 굵은 힘줄이 떠올랐다.
“칼리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파르르 주먹을 떠는 호루스.
그런 호루스를 바라보며 칼리케는 코웃음을 쳤다.
“그나저나 빨리 저놈들을 붙잡으셔야죠? 그래야 나중에 장막 너머의 세계로 갔을 때 용맹하게 최선봉에서 싸울 전사들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 저들이 굴복할 것 같나?”
호루스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상처를 입고 쓰러진 레오루의 눈에는 아직 강렬한 투지가 번뜩이고 있었다.
“우리는 네놈처럼 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호루스!”
레오루는 피 묻은 입가를 닦으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호호호호호!”
칼리케는 이 상황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즐겁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글쎄요. 과연 당신 자식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도 그럴 수 있을까요?”
“뭐, 라고…?”
두 눈을 부릅뜨는 레오루.
“네, 네놈 마을에 무슨 짓을…?”
“호호. 그을~쎄요오~?”
“아, 아, 으.”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는 레오루.
칼리케는 레오루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길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잔말 말고 꿇어 이 똥개새끼들아.”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딜 감히 개새끼들이 주인을 못 알아보고 이빨을 드러….”
칼리케의 말이 이어지고 있던 도중.
타앙!
난데없는 총성과 함께 사방에서 쏘아져 온 여섯 줄의 와이어가 칼리케의 몸을 휘감았다.
칼리케는 몸을 휘감은 와이어를 내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뭔…?”
“뭐겠어 새끼야.”
파지지지지직!
“으갸갸갸갸갸갹!”
와이어를 타고 흘러들어온 푸른 뇌전의 격류가 칼리케의 몸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