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9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92화
막간 – 연회 (2)
기본적으로 각성자는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
성흔을 받아들이며 신체 능력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날 정도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육체의 재구성이 이뤄진 9성급 이상의 고위 각성자들은 술에 취하려면 표현 그대로 알코올을 통으로 들이켜야만 했다.
일부러 취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게 고위 각성자인데 이렇게 취했다는 건.
“대체 술을 얼마나 퍼마신… 아.”
술에 취한 두 여인을 바라보던 오진은 자신에 손에 들린 빈 술병을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이게 수인족의 전통주라고 했던가.
“헤헤. 마을 사람들이 주는 술을 한 잔씩 받아마시다 보니~ 기분이 막 좋아지더라고요.”
“눈앞이 핑핑 도는 기분이야~ 히히.”
해롱해롱하는 두 여인의 모습에 오진은 대강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여인이 마신 것은 일반적인 술이 아닌 수인족들의 전통주였다.
그리고 당연히 수인족들의 전통주는 ‘신체 능력’이라는 카테고리에 있어서는 고위 각성자 뺨을 후려갈길 정도로 강인한 육체를 지닌 수인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술이었다.
그걸 모르고 냉큼 받아 마셨다면 그녀들이 지금 상태가 된 것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오진 씨이~”
뭉클.
이사벨라가 그의 팔을 껴안으며 녹아내리는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드러움이 오진의 팔을 감쌌다.
“어떠셨나요? 수인족 왕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써봤는데.”
이제는 굳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감출 이유도 없건만.
이사벨라는 강아지 꼬리를 양옆으로 흔들며 배시시 웃었다.
술에 취한 상태로도 저렇게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하다니.
오진의 목구멍을 타고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렇게 된 마당에 무엇을 숨기랴.
강아지 귀와 꼬리를 착용한 이사벨라의 모습은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너무 파괴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머?”
동그랗게 눈을 뜬 채 환하게 미소 짓는 이사벨라.
“물론 오진 씨가 원하신다면 계속 끼고 있어도 괜찮은걸요?”
“…계속 끼고 다니는 건 좀 그렇고.”
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후후후. 오진 씨도 참.”
이사벨라가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여 오진을 간질였다.
“오늘 밤엔… 이걸 낀 채로 어떠신가요?”
달콤한 목소리로 유혹하는 이사벨라.
꽁냥거리는 둘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은이 오진과 이사벨라 사이에 팍 몸을 들이밀었다.
“이 씨… 처, 첫 번째는 나거든?”
삐죽 튀어나온 입술로 오진을 끌어당기는 하은의 모습은 진짜 고양이가 주인에게 앙탈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 어쩌냐.’
술에 취해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일단 시원한 물이라도 좀 마시고 정신 차려.”
오진은 근처에 있는 수통을 하은과 이사벨라에게 내밀었다.
둘은 알딸딸한 표정으로 오진이 건네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에헤헤. 오지나아~ 뭔가 세상이 핑핑 돈다?”
“물맛이 많이 쓰네요오.”
물을 마시자 한층 혀가 꼬인 말투로 비틀거리는 두 여인.
‘뭐야, 이거.’
오진은 수통에 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에 확 퍼지는 알코올의 향기.
“아니, 미친. 누가 수통에다가 술을 따라둔 거야?”
대학생 MT도 아니고 이게 뭔 짓이란 말인가.
“으하하하하!”
“물을 마시고 싶은가? 응?”
“크윽… 이, 이 미친 은색 갈기 부족 놈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붉은 갈기를 지닌 수인족 하나가 바닥에 성대하게 토사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니 대충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하여간 리아크 새끼랑 같은 부족 아니랄까 봐.’
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낄낄 웃고 있는 은색 갈기 부족원들을 바라봤다.
“히끅! 오지나… 나 어지러워어.”
수통에 든 술이 결정타였던 건가.
하은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으로 오진에게 몸을 기댔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오진은 하은을 공주님 앉기 자세로 들어 올렸다.
“아앗. 오진 씨 저도 갑자기 머리가….”
하은에 비해 꽤나 멀쩡한 모습을 보이던 이사벨라가 갑자기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눈을 감은 채 쓰러진 그녀의 입꼬리가 기대감에 삐쭉삐쭉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아가씨가.’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저 멀리서 마을 어른들에게 열심히 술을 나르고 있는 소년을 불렀다.
“레오야! 여기 와서 누나 좀 업어줘라!”
“엉? 누구?”
레오가 쫑긋 귀를 세우며 쪼르르 달려왔다.
쓰러진 이사벨라를 본 레오가 헉 경악성을 터뜨렸다.
“이, 이사벨라 누나를 업어달라고?”
덜덜덜 몸을 떨며 꿀꺽 침을 삼키는 소년.
이사벨라의 품에 안겼을 때의 기억이 레오의 머릿속에서 무한 재생됐다.
“아, 이제 좀 괜찮아졌네요.”
레오가 우물쭈물하며 이사벨라에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쓰러져 있던 이사벨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오진에게 안긴 하은을 바라보며 칫, 혀를 찼다.
“그, 그래? 다행이네. 은색 갈기 부족이 담근 술은 엄청 독하니까 많이 마시지 마.”
레오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이사벨라는 귀엽다는 듯 레오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더니 오진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가요 오진 씨.”
“…진짜 취한 거 맞지?”
“글쎄요?”
이사벨라는 상큼한 윙크를 보내며 오진의 팔을 끌어안았다.
오진은 아까 이사벨라가 마시고 바닥에 내려놓은 수통을 살짝 발로 툭 건드렸다.
수통이 쏟아지며 안에 든 술이 콸콸 흘러내렸다.
“…….”
“어머, 언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네요. 빨리 오두막으로 가요.”
이사벨라가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저, 혀, 형!”
“응?”
레오는 하은을 안아 든 채 이사벨라와 찰싹 달라붙어 있는 오진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나도 형처럼 위대한 전사가 될래! 꼭!”
두 눈을 빛내며 각오를 다지는 소년.
뜨거운 열망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긴.
혈기 왕성한 소년에게 지금 자신의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리라.
“힘내라.”
오진은 레오를 뒤로하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으으으. 오지나아.”
침대에 하은을 눕히자 마치 어미새를 찾는 아기새처럼 두 팔을 벌렸다.
“옷 벗겨줘.”
“예?”
잘 못 들었습니다?
“답답해! 옷 벗겨줘어!”
아니.
이 누나 술버릇이 왜 이 지랄인 거야.
“이사벨라….”
“전 잠깐 개울에서 세수 좀 하고 올게요~”
재빠르게 밖으로 도망치는 이사벨라.
“옷!!!”
장난감 가게에서 3단 변신 합체 로봇을 사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5살짜리 어린아이처럼 바동거리는 하은.
오진은 일단 하은이 신고 있는 부츠와 양말을 벗겼다.
“이히히. 시원하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애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는 하은.
오진은 내일 하은이 술에 깨면 오늘 있었던 일을 낱낱이 밝혀주리라 결심하며 그녀의 재킷을 벗겼다.
“이 정도면 됐지?”
지금 하은은 흰 티 한 장과 쫙 달라붙는 검은색 가죽 치마만 입은 상태.
평소 배가 드러나는 탱크톱과 돌핀 팬츠를 입고 자는 그녀에겐 좀 답답할 수 있는 차림이었지만 여기서 더 옷을 벗길 수는 없었다.
“더.”
“뭐?”
“더 벗겨줘.”
아예 씻겨도 달라 하지?
“그리고 씻겨줘.”
“돌겠네.”
이걸 어쩌냐.
연인 사이에 고작 이 정도로 뭘 그러냐 싶겠지만.
여긴 진짜 집이 아니라 은색 갈기 부족의 오두막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고 있는 도중.
술에 꼴은 은색 갈기 부족이 오진을 찾아 오두막에 벌컥 들이닥칠 위험도 있었다.
‘그 새끼들 아까 마시는 거 보면 진짜 그럴 수도 있어.’
괜한 걱정이 아닌 게 수인족들의 입장에서 오진은 칸 왕국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던 칼리케를 죽인 영웅이었다.
전사를 숭배하는 사상을 지닌 수인족들에게 있어서 오진에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이돌의 집에 극성팬이 들이닥치듯 술에 취한 수인족들이 밀어닥칠 수도 있었다.
하다못해 노크라도 한다면 모르지만.
고위 각성자가 취할 정도로 독한 술을 물처럼 퍼마시는 놈들에게 그럴 정신이 남아있겠는가.
“오지나아~ 빨리이!”
하은이 오진의 몸을 끌어당겼다.
진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하은을 바라보며 오진은 결심을 굳혔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진짜 문을 박차고 들어오기야 하겠는가?
“벗긴다 그럼?”
“응!”
“자, 만세.”
“만세에~!”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하은의 티를 잡고 들어 올렸을 때.
벌컥!
거칠게 문이 열리며 술에 잔뜩 취한 레오루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 여기 계셨습니까 오진 씨! 안 그래도 저희 부족 전사들이 오진 씨와 꼭 한 번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
“어?”
레오루는 크흠, 헛기침을 흘리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시, 실례했습니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죄.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하아.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오, 오지나.”
“괜찮아, 누나. 그래도 몸으로 가리고 있었으니까 뭐 보인 건 없을 거야.”
“그게 아니라….”
“응? 그게 아니면?”
“나, 나… 너한테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중요한… 말이야.”
물기에 젖은 눈으로 오진을 와락 끌어안는 하은.
부드러운 온기가 전신에 퍼진다.
하은은 오진을 끌어안은 채 흐느껴 울 듯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나….”
가장 먼저 오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사벨라에 대한 일.
그녀는 이사벨라와 자신의 관계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긍정해 줬다.
그 뒤로 이사벨라와도 꽤 잘 지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면?’
그녀의 마음속에 아직 풀지 못한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있다면?
술기운에 힘입어 응어리진 감정을 고백하려 한다면?
“오지나… 나.”
“괜찮아. 숨기지 말고 말해줘.”
오진은 몸을 떨고 있는 하은을 달래듯 그녀를 끌어안았다.
“누나가 내 마음을 이해해 줬듯, 나도 누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테니까.”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여자가 아니던가.
그녀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감정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모든 걸 받아주고 싶었다.
“오지나, 나…!”
눈물을 글썽이는 하은.
오진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한 그녀는 사랑을 고백하듯 뜨거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토할 것 같아.”
뭐요?
“우웁, 웁!”
자, 잠깐만 씨발!
“야, 야야야야야!!!”
멈춰!!!
“우웨에에에에엑!”
으어어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