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22화
보물찾기 (1)
드래고니안 왕국 재건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용신의 죽음으로 인해 영혼 잃은 망자처럼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던 용인족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왕국을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탰다.
용인족들은 기본적으로 강한 마력과 더불어 다채로운 마법들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종족.
현대적인 건축 장비는 없었지만, 마법을 이용한 재건 작업은 지구에서 사용하는 최신식 건축 장비를 사용한 것 이상으로 빨랐다.
“아오 씨… 내가 뭐 라푼젤이야? 집에 가둬두고 손끝 하나 못대게 하네 이 짜식들이.”
하은은 집 안에만 있는 게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그녀 성격상 이렇게 얌전히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땀이라도 흘리는 게 더 좋았지만, 용인족들의 과보호로 인해 재건 작업에는 손끝 하나 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용인족 입장에서 누나는 신이나 마찬가지니까.”
받들어 모시는 신에게 벽돌 나르기를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뭐 예수도 목수였다며.”
그렇게 따지면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렇게 답답해?”
“죽겠다 아주. 이 자식들 진짜 수련만 하려고 해도 입에 거품을 물고 뜯어말린다니깐?”
한 번 용신을 잃은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걸까.
오진이 봐도 용인족들의 행동은 좀 과한면이 있었다.
“뭐, 그거라면 걱정할 거 없어.”
“엥? 왜?”
“안 그래도 슬슬 움직일 생각이었거든.”
칸 왕국와 드래고니안 왕국에서의 일이 얼추 정리됐으니, 이제 남은 건 마인족들의 왕국인 니플헤임으로 향하는 일만 남았다.
“바로 ‘꼭지옥’으로 가는 거야?”
“꼭지옥은 또 뭐야?”
“‘니플’헤임이잖아.”
“아니.”
이 누나가 집에만 처박혀 있더니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오진의 입술 사이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이 씨… 이런 거 웃어주면 안 되는데.”
“히히. 누나 센스 어떠냐?”
솔직히 방금 건 좀 웃기긴 했다.
“…하여간 언니도 참. 무슨 그런 천박한 농담을 해요?”
이사벨라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 왜. 집에 처박혀 있는 것도 답답한데 농담도 못 해?”
하은이 소파에 늘어지듯 누우며 오진의 무릎 위에 날씬한 다리를 올렸다.
“그나저나 아직 재건 작업도 안 끝났는데 출발해도 괜찮은 거야?”
“바로 꼭ㅈ… 아니 누나 때문에 계속 생각나잖아.”
“히힛.”
뭔 히힛이야.
“끄응. 어쨌든, 바로 니플헤임으로 갈 건 아니야.”
마인족과 정면으로 붙기에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했다.
“근데 이번에 걔들이랑 싸워보니까 걍 붙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천마의 힘을 받았다느니 어쩌니 한 것치고는 막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던데.”
“이번에 상대한 놈들은 마인족 중에서도 급이 낮은 놈들이야.”
“엥? 진짜?”
영화의 결말을 보고 다시 보면 몰랐던 복선들이 보인다고 했던가.
드래고니안 왕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천마가 안배해둔 ‘사기극’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하나둘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단, 레어에 간부급 마인족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는 것.’
마인족들은 레어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용신이 잠에서 깨어나면 유리했던 전황이 한 번에 뒤집힐 것을 그들 또한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칼리케 같은 간부급 마인족들이 한 명도 오지 않았던 걸까?
‘간부급 이상은 알고 있던 거지.’
애초에 이 모든 것이 하은의 힘을 강하게 만들고, 그녀를 따르는 추종 세력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는 것을.
그 밖에도 성벽의 감시가 지나치게 허술했다던가, 하은이 용신의 힘을 흡수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퇴각하는 등.
되돌아서 생각하니 마인족의 움직임은 의문점투성이였다.
‘다 끝난 마당에 생각해서 뭘 하겠냐.’
오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어디로 가게?”
용인족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하고, 수인족 또한 바로 전력으로 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천권성 어르신을 만나러 갈 생각이야.”
“…그 이상한 할부지?”
“응.”
그가 데네브의 사도 중 서열 1위인 이유가 단순히 가장 먼저 데네브의 사도가 됐기 때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칠성’의 일원으로 꼽혔을 정도니 결코 경지가 낮지는 않을 것이다.
‘칠성급의 전력을 놔두고 니플헤임으로 갈 수는 없지.’
칸 왕국이나 드래고니안 왕국이야 그렇다치고.
마경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인족들의 왕국을 가는데 지금처럼 오진 일행만 달랑 모여 잠입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그 어떤 곳보다 천마의 손길이 많이 닿아 있는 곳일 테니까.
“근데 천권성 어르신은 보물이란 걸 찾고 있다 하시지 않았나요?”
아무리 지금 오진 일행에게 전력이 절실하다고 하지만.
천권성 자체가 말로 설득이 될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같이 찾아보려고. 그 보물이란 거.”
“아.”
“…하긴. 생각해보니 그런 방법이 있었네.”
천권성의 ‘보물’이라는 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수년 동안 그 하나를 찾아 마경을 떠돌아다녔다면 어느 정도 일의 진척은 있을 것이다.
그런 그를 도와 보물을 찾아준다면.
‘전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지.’
지난번에는 마경에 대한 정보도 너무 부족하고,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라 천권성의 보물찾기를 도와줄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차피 용인족과 수인족 모두에게 전력을 보강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동안 오진 일행이 같이 엉덩이 붙이고 있어봤자 따로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좋았쓰으! 그럼 바로 출발하자!”
하은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뜨거운 콧김을 흐응! 내뿜었다.
이 답답한 집구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모양.
오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바로 출발하는 건 아니고. 일단 장로님이랑 얘기 좀 해보려고.”
“할부지랑?”
“엉.”
켈리온은 백무강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했다.
혹시 그라면 천권성이 찾는 ‘보물’이란 게 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르리라.
“그럼 나도 같이 가자. 가기 전에 그래도 할부지 얼굴 한 번 보고 가야지.”
“아, 저도 같이 갈게요.”
원래는 혼자서 켈리온을 만날 생각이었지만.
두 여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베가랑 리아크가 성소에 있는 게 다행이네.’
둘은 최근 너무 오래 밖에 현신해 있던 탓에 율법의 제약이 걱정된다며 왕국을 나갈 때까지는 성소에 있기로 했다.
“알았어.”
오진은 하은과 이사벨라를 데리고 켈리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 무녀님!”
“밖으로 나오시면 위험합니다!”
하은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집 주변을 지키고 있던 용인족 전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하은은 자신을 둘러싼 용인족들을 쭉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할부지 만나러 가는 거야. 비켜.”
“저희가 장로님을 이리로 부르겠습니다!”
“앙?”
하은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맹수처럼 사나운 눈빛에 용인족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짜식들이 건방지게 어른한테 오라 가라 시킨다고?”
평소 예의나 예절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 행동하는 하은이었지만.
그래도 동방예의지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답게 나이 든 노인을 부르겠다는 말에 격한 반발감이 들었다.
“내 안에 유교 드래곤이 미쳐 날뛰기 전에 후딱 비켜.”
“유교 드래곤…?”
“용신님 말고 다른 용의 영혼도 깃들어 계신 겁니까?”
“아오! 답답해!”
벼락처럼 달려든 하은이 주위를 앞을 가로막은 용인족 전사에게 그림으로 그린 듯한 통한의 드롭킥을 먹였다.
“커헉!”
“빨리 안 꺼져 이것들아?!”
술 마신 폭군처럼 날뛰는 하은.
“여기서 시간 버리지 말고 나가서 일하라고 일!”
“저희는 무녀님의 신전을 지키라는 성스러운 업무를….”
“헛소리 말고 돌이나 날라 짜식들아!”
하은은 용인족 전사들의 엉덩이를 뻥뻥 걷어차며 호위를 뚫었다.
아무리 무녀라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도 되나 싶었지만.
“아아.”
“허억, 허억… 무, 무녀님이 내게 발길질을 해주셨어…!”
“미천한 저희들에게 이런 값진 포상을!”
어, 음.
“베가 님 같은 분들이네요.”
즐거워(?)하는 용인족들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이사벨라.
“…그 말 베가한테는 절대 하지 마.”
오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켈리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켈리온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커다란 설계 도면을 보며 재건 현장을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할부지~ 나왔어!”
“으음?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오지니가 뭐 좀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엄지로 오진을 가리키는 하은.
켈리온은 마법으로 만들어낸 설계 도면을 없애며 다가왔다.
“물어볼 거라니?”
“전에 천권성 어르신과 친분이 있다고 하셨죠?”
“천권성? 아… 백무강을 말하는 겐가?”
“예.”
켈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알고 지낸 지는 좀 됐네.”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보물이라는 걸 찾고 있다고 왕국에 온 적이 있었네. 조금 특이한 인간이긴 했지만 근처에 서식하는 마수들을 싹 정리해 준 적이 있어서 왕국에 초대했었네.”
왕국 주변 협곡에 마수가 거의 없다 싶더니.
백무강이 마수를 한 차례 정리한 덕분이었나.
“혹시 그분이 찾고 있다는 ‘보물’이 뭔지에 대해 들은 적 있으십니까?”
“보물이라….”
켈리온은 길게 자란 회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찾고 있는 보물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네.”
“그런가요?”
켈리온도 백무강이 애타게 찾는다는 ‘보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모양.
“아, 하지만 누가 그자의 보물을 훔쳐 갔는지는 알겠더군.”
“누구죠?”
“황금의 데이모스. 마인족 최고위 간부 중 하나라네.”
“최고위 간부라고 하면….”
칼리케보다도 서열이 높다는 건가.
“마인족 중에서 ‘대공’ 직위를 지닌 세 명 중 하나지.”
“…….”
백무강처럼 강력한 각성자가 왜 몇 년이 지나도록 빼앗긴 보물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놈은 니플헤임에 있는 겁니까?”
“아니, 대공급 마인족은 영지를 따로 하사받아 그곳을 다스리네. 그곳도 예전에는 다른 소수 종족이 살고 있던 터전이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빼앗기게 됐지.”
확실히 하늘 산맥 너머 먼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칸 왕국보다 니플헤임과 가까이에 있는 용인족들이 더 마인족에 대해 빠삭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곳이 어딥니까?”
“예전에 샐러멘더라는 종족이 살았던 ‘검은 바위 광산’이라는 곳이네. 다만… 그곳에 간다고 해도 백무강을 찾기는 힘들 걸세. 자네도 알고 있지만 그가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지 않나.”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나침반을 하나 꺼냈다.
“어르신을 찾을 방법이라면 저한테 있으니까요.”
마력을 흘려 넣자 빙글빙글 돌아가던 나침이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