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4)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24화
보물찾기 (3)
“진짜 온천이네.”
하은을 따라가니 널찍한 바위 뒤편에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럼 누나가 구라라도 쳤겠냐?”
“아니, 마경에 이런 멀쩡한 온천이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좀 의외여서.”
물론 마경에도 숲도 있고 냇물도 있으니 온천이 없을 이유가 없긴 하지만.
왠지 마경의 온천이라고 하면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늪 같은 걸 상상했지만.
겉으로 봐서는 지구의 온천과 뭐가 다른지 차이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멀쩡한 온천이었다.
“온도도 딱 적당하고.”
화산 근처에 있는 온천이라 그런지 물 온도가 좀 뜨겁긴 했지만.
초인의 육체를 지닌 오진 일행에게는 딱히 문제가 없는 온도였다.
오히려 이 정도로 뜨겁지 않으면 자극이 오지 않는달까.
“그리고 자세히 보면 뭔가 막 빛나지 않냐?”
“그러게.”
아직 해가 떨어진 건 아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은의 말처럼 온천물에서 옅은 빛무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진은 손을 온천물 안에 담그며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했다.
“안에 성흔의 마력이 녹아들어 있네.”
검은 바위 광산에서 나오는 금에는 유독 많은 별의 마력이 깃들어 있다고 하더니.
설마 그 근처에 있는 온천물에까지 마력이 깃들어 있을 줄이야.
‘이 주변에 용맥이라도 있는 건가?’
이 정도로 마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걸 보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
“오, 뭐야? 그럼 무협지에서 나오는 것처럼 여기 몸 담그면 마력이 늘어나고 그러는 거야?”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피로 회복 효과 정도만 기대할 수 있으리라.
“흐음. 피로 회복이라.”
하은은 가늘게 눈을 뜨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오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하은.
“어쩌긴 뭘 어째.”
“새끼, 알면서 또 모르는 척하는 거 봐.”
그녀의 말마따나.
노골적인 것을 넘어 눈으로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뜨거운 눈빛을 보고 그녀의 의도가 뭔지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놀러 온 거 아니라니깐.”
“놀긴 누가 놀아? 가볍게 피로나 풀고 가자~ 뭐 이런 의미지. 낼이면 그 데이모스인지 뭐시기가 있는 곳으로 가잖아?”
누굴 닮았는지 말은 잘해요.
“알았다, 알았어. 그럼 텐트 치고 있을 테니까 벨라랑 베가 데리고 먼저 온천 들어가 있어.”
“에이, 들어갈 거면 같이 들어가야지.”
아니 이 누나가?
“수영복 챙겨온 것도 없잖아.”
“대충 수건 두르고 가면 되지. 왜, 아니면 빨가벗고 같이 들어가 줄까?”
입꼬리를 히죽 비틀어 올리며 팔을 끌어당기는 하은.
오진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버텨봤자 하은의 고집이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 같이 들어가자, 들어가.”
서로 남남인 것도 아니었고.
연인 사이에 같이 온천에 들어가는 것 정도는 딱히 불미스러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베가랑은 아직 연인 사이가 아니긴 하지만.’
뭐, 어쨌든.
“하다못해 속옷이라도 입어 줘.”
진짜 알몸에 수건 한 장 달랑 두르고 들어가면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엑. 속옷 젖는 거 싫은데.”
“나중에 말리면 되잖아.”
하은의 능력이라면 젖은 속옷을 말리는 데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두 찝찝한데.”
“입고 같이 들어갈래 아니면 안 입고 따로 들어갈래?”
“검은색으로 입어 줄까?”
괜히 억지를 부릴 생각은 없는지 금방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쓰! 그러면 텐트부터 후딱 치고 오자!”
하은이 주먹을 불끈 쥐며 오진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던 곳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텐트 설치를 끝낸 후.
오진 일행은 각자 옷을 갈아입고 온천 앞에 모였다.
“…진짜 속옷 입은 거 맞지?”
수건으로 몸을 두른 하은과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분명 속옷을 입고 오라고 했는데 어째 하얀 어깨 위를 지나고 있는 속옷 끈이 보이질 않았다.
이사벨라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오진에게 다가왔다.
“안에는 속옷 대신 수련할 때 쓰려고 챙겨둔 스포츠웨어를 조금 잘라서 입었어요.”
[자르고 남은 천으로는 본녀의 수영복을 만들었느니라!]수영복 차림의 베가가 뽀르르 날아올랐다.
스포츠웨어에 쓰이는 스판덱스 소재의 옷감을 잘라 만들어 급조한 티가 났지만, 워낙 옷걸이가 출중한 덕분일까 딱히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리아크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같이 들어오고 싶지 않으시다고 뽀삐랑 같이 주변 순찰에 나가셨어요.”
“물을 싫어하나?”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이사벨라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어차피 여기 계셔봤자 속만 메스꺼워지신다고….”
“…….”
하긴.
하은과 이사벨라는 애초에 그와 연인 사이였고, 베가 또한 그에게 노골적인 호감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제삼자가 같이 온천욕을 즐기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커플 데이트에 억지로 끌려간 친구 1이 느낄 비참한 감정이야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크흠. 그럼 우리끼리 일단 들어갈까.”
의도치 않게 리아크를 엿 먹이게 된 오진은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며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온천으로 몸을 돌렸다.
“어흐.”
따듯한 온천에 몸을 담그니 야근에 찌든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과 함께 꼬리꼬리한 유황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오오, 이것이 온천이라는 것이구나.]베가는 눈을 반짝이며 온천에 몸을 담갔다.
하으으.
온천물에 몸을 담근 베가는 바들바들 몸을 떨며 나른한 신음이 내뱉었다.
[그냥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을 때랑은 뭔가 다른 기분이로구나!]“그치?”
하은의 힘을 사용하면, 아니 굳이 하은이 아니라 해도 뜨거운 물을 만드는 것 자체는 간단했지만.
이 온천 특유의 꼬리꼬리한 유황 냄새와 미묘하 다른 수질을 재현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의 아이야! 손을 잠깐 들어 올려 주거라!]“이렇게?”
[조금 더 낮게.]베가가 오진의 손바닥 위로 첨벙첨벙 헤엄쳐 오더니, 튜브 위에 눕듯이 온천물이 반쯤 차오른 손바닥 위에 드러누웠다.
[후후. 딱 좋구나.]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는 여신님.
오진은 피식 웃으며 손바닥 위에 베가를 올려놓은 채 등을 기댔다.
까슬까슬한 화강암의 감촉과 몸 전체 퍼지는 온기.
나른하게 풀리는 근육들이 기분 좋은 쾌감을 선사했다.
“이렇게 온천에 몸을 담가 보는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네요.”
“이탈리아에는 온천이 없었어?”
“있긴 하지만 따로 찾아가 본 적은 없었어요.”
이사벨라는 허리 정도까지 차오른 온천물을 손으로 떠서 몸에 끼얹으며 노곤한 미소를 지었다.
고급 향유와 입욕제가 들어간 욕탕에는 수도 없이 들어가 봤지만, 이처럼 자연 그 자체를 담아낸 듯한 온천에 들어가 본 건 처음이었다.
“…좋네요.”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즐기는 그림 같은 온천욕.
거기에 바로 옆에는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이 함께 있으니 어찌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겠는가.
“진짜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인데?”
하은은 찰박찰박 발장구를 치며 은은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는 온천물을 바라봤다.
마력이 깃든 온천물이라 그런가, 아니면 단순히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왠지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오지나, 누나 어깨 좀 시원하게 주물러 봐라.”
찰박찰박 헤엄쳐 오진에게 다가온 하은이 등을 내밀었다.
안에 속옷을 입고 있다고 하지만 겉으로는 수건 한 장만 달랑 두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하은의 새하얀 어깨가 오진의 눈을 훔쳤다.
“아니 내가 뭐 목욕탕 때밀이야?”
“비슷한 거지.”
“…….”
왜 이런 여자를 사랑하게 된 걸까.
“수고비라도 주던가.”
“나중에 뽀뽀 백 번 해줄게.”
“크흠.”
그런 거라면 뭐.
[…왜 리아크가 같이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는지 알겠구나.]베가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오진을 사랑하는 여인 중 하나지만, 도저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오그라드는 광경이었다.
“딱 5분만 해준다.”
그 이상은 솔직히 이성이 버틸 자신이 없었다.
오진은 새하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적절한 힘으로 꾸욱꾸욱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읏.”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엄지 끝에 힘을 실어 근육이 뭉친 곳을 문질렀다.
오진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하은이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베베 꼬았다.
“오, 오지나 너무 거칠… 흐읏!”
“아니 누나 제발.”
자꾸 엄한 상상이 머리를 스쳤다.
“끝. 5분 지났다.”
더 이상 이성이 버틸 자신이 사라진 오진이 황급히 손을 뗐다.
“흐으으음. 뭔가 좀 아쉬운데.”
“원래 아쉬울 때 끝내는 게 딱 좋은 거야.”
하은의 등을 탁탁 치며 그녀를 밀어냈다.
이제야 좀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나 싶었지만.
하은이 떠나간 빈자리에 잽싸게 이사벨라가 몸을 들이밀었다.
“오진 씨 저도….”
[보, 본녀도! 본녀도 해주거라!]“…….”
결국 이사벨라와 베가의 어깨(마사지를 받을 땐 본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까지 스트레이트로 마사지해준 오진은 완전히 탈진한 채 쓰러져 버렸다.
‘…죽겠네.’
몸이 아니라 이성이 온천물 안에 녹아 흩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 마사지는 처음 받아봤는데 그… 시, 실력이 좋으시네요.”
[테. 테크니션이로구나.]오진의 테크니션(?)한 손놀림을 경험한 이사벨라와 베가는 뜨거운 물에 풀어 놓은 날달걀처럼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나는 먼저 나가볼게.”
한계를 느낀 오진이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했을 때.
“어딜 가려고?”
하은이 오진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를 다시 온천 안으로 끌어들였다.
“아니 피곤해서 이만 나가 보겠다는데 왜.”
“어차피 지금 일어나면 너도 안 좋잖아?”
안 좋다니?
여기 있는 것보다 더 안 좋아질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아니 왜 그, 수건걸이가 밖에 드러날 거 아냐?”
하은이 슬쩍 뺨을 붉히며 오진의 시선을 피했다.
오진의 눈이 찌푸려졌다.
“수건걸이? 뭔 헛소… 아.”
오진의 시선이 무심코 아래쪽으로 향했다.
하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한 세 개는 걸어둘 수 있겠다?”
“…….”
살려줘.
나 정신 나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