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26화
보물찾기 (5)
리아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으로 발을 박찬다.
몸을 적신 물방울들이 후두둑 흩어진다.
옷을 제대로 챙길 여유도 없이, 온천에 들어갈 때 입은 반바지 위에 수건을 두른 차림으로 질주했다.
저 멀리 일단의 무리와 대치하고 있는 리아크와 뽀삐의 모습이 보였다.
“저 새끼들은 뭐야?”
기껏 오진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걸 방해받은 탓일까.
하은이 사나운 눈초리로 리아크와 대치하고 있는 무리를 노려봤다.
“잠깐만 누나.”
“엉? 왜?”
“이리 와봐. 이사벨라랑 베가도.”
오진은 끼어들기에 앞서, 근처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리아크와 대치하고 있는 무리를 살폈다.
‘마인족?’
일반적인 마인과 달리 검붉은 뿔과 가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마인족 무리가 리아크와 뽀삐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격전을 벌인 듯, 바닥에는 목덜미가 물어뜯긴 마인족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수인족이 왜 여기까지…?”
“마수는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 거야?”
리아크와 대치하고 있는 마인족 무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조심해라. 저 늑대 자식, 보통이 아니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희색 머리칼의 마인이 침착하게 창을 들어 올렸다.
쿠르르륵.
이마에 돋아 있는 검붉은 뿔에서 용암이 뚝뚝 떨어져 내리듯 검붉은 기운이 흘러내리더니 움켜쥔 창끝에 맺혔다.
강렬한 열기가 주변에 몰아쳤다.
“쓰으읍.”
주변을 집어삼킬 듯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과 달리, 회색 머리칼의 마인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리아크를 응시했다.
“내 이름은 자칼. 위대하신 천마의 종이자, 데이모스 님을 섬기는 기사다.”
자신의 이름을 자칼, 이라고 밝힌 마인이 고개를 까딱이며 턱 끝으로 리아크를 가리켰다.
소개를 마쳤으니 이제 네 소개를 해보라는 듯한 몸짓.
리아크는 피식 조소를 흘리며 같잖다는 듯 자칼을 바라봤다.
“싸우는 데 이름을 알 필요가 있나?”
“…이름을 밝히는 건 기사의 예의다.”
“나는 기사가 아니라 전사다, 애송이.”
우드득!
리아크의 몸이 늑대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네놈이 누군지, 누구를 섬기는지 관심 없다.”
중요한 건 하나.
“너는, 내 적이냐?”
은빛 늑대의 눈이 자칼을 향했다.
자칼은 등골을 타고 쫙 퍼지는 흉포한 살기를 느끼며 움켜쥔 창에 힘을 더했다.
“데이모스 님의 기사로서 그분의 영토에 허락 없이 침범한 놈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런가?”
리아크의 입꼬리가 사납게 비틀어 올라갔다.
“그거면 됐다.”
쿠웅!
은빛 늑대가 거칠게 발을 박찼다.
검은 바위 위를 가로 짓는 은빛의 빛줄기.
전신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크르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제로로 만들어 버린 리아크.
창의 범위 안까지 파고든 그는 쇳덩이 같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푸른 뇌전이 타오른 주먹.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그의 주먹이 자칼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짐승 같은 놈이군.”
자칼은 동요하지 않은 채 침착하게 창을 돌려 주먹을 막았다.
창대를 강타하는 주먹.
고작 주먹과 격돌했을 뿐인데도 공성 무기에 맞은 듯한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자칼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창대를 타고 흘러든 뇌전에 순간 손이 마비됐지만, 재빠르게 마력을 퍼트려 마비를 풀었다.
“흐읍!”
용암이 뚝뚝 떨어지는 창이 송곳처럼 쇄도한다.
사방을 불태우는 난폭한 열기와 달리 극도로 정제된 동작.
창술 교본에 실릴 법한 깔끔한 창격이 리아크를 노렸다.
리아크의 손톱이 길게 자라나며 창날을 쳐냈다.
카앙! 캉! 카가가각!
격돌하는 창과 손톱.
리아크는 어떻게든 창의 범위 안으로 파고들려고 했고, 반대로 자칼은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기 위해 미끄러지듯 뒤로 이동했다.
“창의 가장 이상적인 거리를 아나?”
격렬한 전투를 이어가는 도중, 자칼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다섯 걸음. 그게 창을 쥔 자의 가장 이상적인 거리다.”
지금 그와 리아크의 거리는 대략 5미터.
자칼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거리를 좁혔다.
“한 걸음에는 발을 보고.”
리아크의 움직임을 살피며 다시 한 걸음.
“두 걸음에는 눈을 본다.”
그리고.
쉬익!
세 걸음의 거리를 격하며 쏘아지는 창날.
용암의 창날이 리아크의 미간을 노렸다.
“크윽!”
뺨을 스쳐 지나가는 창날.
창날이 지나간 자리에 흩뿌려지는 용암이 살을 태웠다.
리아크의 얼굴 반쪽에 흉측한 화상 자국이 아로새겨졌다.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리아크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은 창이 아니라 주둥아리로 싸우나?”
가장 이상적인 거리라느니 발을 보고 눈을 본다느니 전투 중에 뭐 그리 혓바닥이 길단 말인가.
“말하지 마라.”
쿠웅!
땅이 울리며 은빛 늑대가 질주했다.
자칼은 반사적으로 창을 들어 전면을 방어했다.
“귀 기울이지 마라.”
질주하던 도중 높게 점프한 리아크.
그는 곡예를 펼치듯 공중에서 몸을 뒤집었다.
파지직!
뇌흔 밟기 사용한 리아크가 공중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틀며 자칼의 등을 점했다.
“생각하지 마라.”
“크윽…!”
순식간에 뒤를 잡힌 자칼이 다급히 몸을 돌렸다.
“싸움이란 건 본능이다, 애송이.”
쿠우우우웅!
주변 공기를 찢어발기며 묵직한 주먹이 내질러졌다.
몸을 돌리느라 제대로 된 자세를 취하지 못한 자칼의 창대에 리아크의 주먹이 격돌했다.
“커헉!”
충격에 떠밀려 날아가는 자칼.
물수제비처럼 바닥에 튕긴 그의 몸이 근처 암벽에 부딪혔다.
수십 톤에 달하는 화강암이 무너지며 우르르 쏟아졌다.
“자칼님!”
둘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마인들이 뒤늦게 움직였다.
“그르릉!”
뽀삐가 재빠르게 마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어딜 감히 마수 따위가 황금의 기사들을 막아서는가!”
이제까지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인 마인족과 달리 스스로를 ‘황금의 기사’라고 밝힌 마인들은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기사들처럼 정교한 합공으로 뽀삐를 압박했다.
뽀삐가 마인들을 향해 사납게 앞발을 휘둘렀지만, 혼자서 마인들의 합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뽀삐를 몰아내고 리아크를 포위한 마인들.
“크윽….”
리아크의 공격을 받고 암벽에 처박혔던 자칼도 침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몸 이곳저곳 상처가 많았지만, 치명상은 피했는지 리아크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강렬한 투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과연… 짐승치고는 훌륭한 실력이구나.”
자칼은 입가에서 흐르는 핏물을 닦아내며 창을 쥐었다.
리아크의 주먹과 격돌한 그의 창은 ㄱ자로 접혀 버렸지만, 마력을 흘려 넣자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일신의 힘이 강하다 할지라도 조직된 군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리아크를 둘러싼 마인들이 무기를 겨눴다.
빠져나갈 틈을 찾기 어려운 완벽한 포위.
리아크는 주변을 둘러싼 마인들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아까 기사의 예의가 어쩌고 하지 않았나?”
혼자서 상대하기 벅찰 것 같으니 바로 부하들의 손을 빌리려 하다니.
“적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기사의 예의지.”
자칼은 옅은 조소를 흘리며 리아크를 향해 창을 겨눴다.
숫자의 우위라는 강력한 이점을 포기하고 일 대 일 전투를 고집할 만큼 그는 미련하지 않았다.
“그런가?”
리아크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큼지막한 바위를 바라보던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나도 그 예의라는 걸 한 번 배워보도록 하지.”
“…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을 때.
“지금이다, 애송이!!”
쿠르르르릉!
리아크가 거칠게 발을 구르며 포효를 내질렀다.
주변 대지가 쩌적 갈라지며 순간 그를 포위하고 있던 마인들이 균형을 잃었다.
마인들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을 때.
파지지지지직!
바위 뒤편에서 솟구쳐 오른 한 줄기 벼락이 마인들을 향해 내리쳤다.
“크윽!”
“아아아아아악!”
마인 사이를 파고든 오진이 난폭하게 창을 휘둘렀다.
“똥강아지 주제에 폼잡기는!”
오진의 뒤를 이어 하은이 숨어 있던 바위 위에 올라서며 화염 세례를 퍼부었다.
“이, 인간?”
“인간이 왜 여길…!”
“비, 빌어먹을! 설마 노귀(老鬼)의 부하들인가?”
“크윽! 이 악마 같은 인간 놈들!”
오진 일행을 보자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하는 마인족들.
그들은 마치 호러 영화에서 튀어나온 좀비를 보는 것처럼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오진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엥? 이 자식들 이거 반응 왜 이래?”
마인들의 격렬한 반응에 하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마인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게요. 뭔가 좀 이상한데요?”
인간을 보고 공포에 떠는 마인이라니.
쉽게 상상하기 힘든 광경에 이사벨라는 눈을 찌푸렸다.
“반응은 나중에 생각하고.”
오진은 창을 한 바퀴 빙글 돌리며 뒤에서 그를 덮치려 하는 마인의 머리를 창대로 후려쳤다.
“우선 이놈들부터 정리하자고.”
“알아쓰!”
“예, 오진 씨.”
하은과 이사벨라가 본격적으로 참전하자 순식간에 전황이 뒤집혔다.
데이모스의 기사들은 저번 드래고니안 왕국에서 상대했던 하급 마인족들에 비해서는 강했지만, 고작 10명 정도에 불과한 숫자로 오진 일행 전원을 상대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으, 으으!”
“괴, 괴물 같은 인간 놈들!”
거기에 더해 상대적인 전력이 밀리는 와중에 겁에 질려 있기까지 했으니.
변변찮은 반항조차 못 한 채 데이모스의 기사들이 하나, 둘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압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황에서 유일한 흠이라면 하나뿐이었다.
‘복장이 좀….’
안에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다지만 타올 하나 딸랑 걸치고 싸우는 하은과 이사벨라의 모습을 보니 얼굴이 절로 화끈거렸다.
‘아니 뭐, 유료 아바타도 아니고.’
두 여인이 움직일 때마다 훤히 드러나는 살결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무렵.
“아, 오지나! 저 새끼 튄다!”
저 멀리 등을 돌려 도망치는 자칼이 보였다.
“내가 쫓을게. 누나는 여기 마저 정리해 줘.”
“아, 응! 알았어!”
차라리 하은과 이사벨라에게서 떨어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오진은 재빠르게 자칼의 뒤를 쫓았다.
‘빠르네.’
리아크와의 일전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저 자칼이라는 마인족은 확실히 간부급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진과 자칼의 거리가 점차 벌어졌다.
자칼의 모습이 육안으로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까지 멀어졌을 때.
“익시드.”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며 오진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한 줄기 벼락이 되어 자칼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촤악!
“커헉! 컥!”
커다란 바위 너머에서 고통에 찬 자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역시 노귀… 네놈, 짓, 이었구나.”
쥐어짜내는 듯한 목소리.
자칼은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누군가를 노려보며 풀썩 무릎을 꿇었다.
“노귀…?”
오진은 무릎 꿇은 자칼 앞에 서 있는 한 노인을 바라봤다.
“우응?”
한 손에 낡은 철검을 쥔 노인이 오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꽃이 만개하듯 환한 웃음이 주름진 입가에 걸렸다.
“와아!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이다!”
데이모스의 기사들의 ‘노귀’라 부르며 공포에 떨었던 존재.
천권성 백무강이 오진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