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7)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27화
보물찾기 (6)
“여긴 어쩐 일이야?”
백무강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손에 쥔 녹슨 철검이 꼬리처럼 살랑살랑 흔들렸다.
오진은 동요를 감춘 채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르신을 찾으러 왔습니다.”
“우응? 날?”
동그랗게 눈을 뜨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무강.
“나, 어떻게 찾아온 거야?”
“저번에 주신 나침반을 썼습니다.”
“나침반…? 아! 나, 그거 줬었구나!”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듯 손뼉을 치는 백무강.
자지러지듯 손뼉을 치고 있던 백무강이 오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어, 그러니까… 착한 사람 이름, 뭐였지?”
이름까지 까먹은 거냐.
“오진입니다.”
“아, 맞다! 오진! 헤헤. 나, 기억했어!”
칭찬해달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백무강.
순간 백무강을 도와 보물을 찾은 후 그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게 과연 좋은 생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크윽….”
무릎을 꿇은 채 눈치를 살피고 있던 자칼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반으로 부러진 창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킨 자칼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진이 눈을 찌푸리며 자칼의 뒤를 쫓으려고 했을 때.
“잠깐만 기다려봐.”
백무강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촤르르르르륵!
그의 발끝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빙판이 만들어졌다.
백무강의 몸이 스케이트를 타듯 앞으로 미끄러졌다.
“도망치면, 안 돼.”
순식간에 도망치는 자칼을 따라잡은 백무강이 그의 정강이를 검으로 베어냈다.
다리가 잘린 자칼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쓰러진 자칼에게 다가간 백무강이 그의 목에 검을 겨눴다.
“내 보물, 어디에 숨겼어?”
“대, 대체 그 보물이 뭔데 그러는 거냐?!”
“보물은 보물이야.”
“이, 이 미친놈이!”
자칼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백무강을 올려다봤다.
“나쁜 사람이 내 보물, 훔쳤어. 보물, 소중해.”
검을 움켜쥔 백무강의 손에 가는 힘줄이 돋아났다.
백무강은 타오를 것처럼 뜨거운 눈으로 자칼을 노려봤다.
“나쁜 사람, 지금 어디 있어?”
“…데이모스 님을 말하는 거냐?”
노귀가 찾는 보물이 뭔지는 몰랐지만.
그가 말하는 ‘나쁜 사람’이 데이모스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만큼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값진 보물에 대한 데이모스의 탐욕은 유명했으니까.
“이름, 잘 몰라. 하지만 내 보물, 훔쳐 갔어. 되찾아야 해.”
“하. 지금 나한테 데이모스 님이 어디 계시는지 물어본 거냐?”
자칼은 코웃음을 치며 부러진 창을 움켜쥐었다.
다른 마인도 아닌 데이모스의 기사인 자신에게 그가 있는 곳을 물어보다니.
“황금에 영광 있으라.”
자칼은 부러진 창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쿨럭.
피를 토한 자칼의 몸이 스르륵 무너졌다.
“아앗!”
백무강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자칼에게 다가갔지만, 이미 자칼의 숨은 끊어져 있었다.
“또, 또 못 들었어!”
분하다는 듯 발을 구르는 백무강.
‘마인이 자결이라니.’
오진 또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설마 마인에게 섬기는 주인을 위해 자결할 정도의 충성심이 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마인이라고 해도 다 똑같은 건 아니라는 건가.’
복잡한 표정으로 자칼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오진이 백무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서 마인들을 잡으면서 보물을 찾고 계셨던 겁니까?”
“응. 여기에 나쁜 사람, 있어. 근데 어디 있는지 말해주지 않아.”
그래서 막무가내로 마인족들을 잡아 족치면서 데이모스를 찾고 있던 건가.
이제야 왜 데이모스의 기사들이 인간을 보고 겁에 질렸는지 알 것 같았다.
“제가 보물을 찾는 걸 도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백무강에게 협력을 요청할까 말까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자칼을 순식간에 쫓아 다리를 벤 백무강의 실력을 보니 역시 그를 도와 보물을 찾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보, 보물 찾는 걸 도와준다고?”
“예. 다만 보물을 찾으시면 저랑 같이….”
“와아! 역시 착한 사람! 오진은 착한 사람이야!”
뒷말을 듣지도 않고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백무강.
오진은 끄응 침음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우선 돌아가서 계획을 짜죠.”
“응! 알았어!”
헤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백무강.
“아,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실 수 있습니까?”
“우응? 왜?”
“할 일이 좀 있어서요. 10분이면 됩니다.”
지금 하은과 이사벨라는 타올 하나만 딸랑 몸에 걸친 상태였다.
갑자기 백무강을 데려간다면 꽤나 난처한 상황이 펼쳐지리라.
“우음… 알았어! 나 여기서 기다릴게!”
털썩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백무강.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은과 이사벨라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도망치던 놈은 잡았어?”
“여긴 다 정리했어요.”
돌아가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하은과 이사벨라가 다가왔다.
“리아크랑 베가는?”
“리아크 씨는 상처 때문에 성소로 돌아가셨고 베가님도 리아크 씨를 돌봐드리겠다고 같이 가셨어요.”
“그래?”
하긴.
싸움 자체는 리아크가 우세했다고 하지만, 뺨에 난 화상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그보다 잠깐 할 얘기가 있어.”
“응? 무슨 얘기?”
오진은 두 여인에게 백무강과 만난 일을 전했다.
“그 이상한 할부지랑 만났다고?”
“응. 그래서 일단 불러서 같이 앞으로의 계획을 좀 짤 생각인데….”
훤히 드러난 두 여인의 어깨와 다리를 힐끗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옷부터 제대로 입자.”
“아, 맞다.”
“그, 그렇네요.”
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후다닥 텐트로 돌아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두 여인과 함께 백무강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왔구나! 나 약속 지켰어!”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얌전히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백무강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이야 할부지.”
“그간 무탈하셨나요?”
“무타리? 무타리가 뭐야?”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쪽쪽 빨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무강을 보며 이사벨라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사고 없이 잘 지내셨냐는 뜻이에요.”
“응! 나 잘 지냈어!”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는 백무강.
“다행이네요.”
“헤헤.”
등은 꼽추처럼 굽어졌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한 못생긴 외모였지만.
주름진 입가에 걸린 천진난만한 미소만큼은 어딘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저쪽에 텐트가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응!”
오진은 백무강을 데리고 텐트를 설치해둔 곳으로 돌아갔다.
텐트를 본 백무강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집! 집이다! 오진은 여기 사는 거야?”
“아뇨, 이건 집이 아니라 텐트입니다.”
“텐트?”
“…….”
오진은 살짝 피곤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동식 집 같은 겁니다.”
“와아, 그런 것도 있구나.”
“어르신은 평소에 어떻게 주무십니까?”
“나? 나는 누워서 자. 요렇게.”
맨바닥에 벌러덩 드러눕는 백무강.
어렴풋이 예상하긴 했지만, 백무강은 제대로 된 장비도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마경을 돌아다니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찾아야 할 만큼 소중한 보물인가.’
아무리 고위 각성자가 인간을 벗어난 초인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인간’이다.
맨바닥에서 별빛을 이불 삼아 잠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며칠만 지나도 극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노숙이라는 것 자체가 문명사회에서 살아온 인간에게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행동이었으니까.
치매에 걸렸다고는 하나 백무강 또한 인간일 텐데.
그는 맨바닥에서 잠을 자가면서까지 머나먼 마경 땅을 헤매고 있던 것이다.
몇 년이 넘도록.
잃어버린 ‘보물’을 찾기 위해서.
“어르신. 찾고 계신 보물이 무엇입니까?”
“응? 보물은 보물이야.”
또 이 대답이다.
“그러니까 그 보물이 뭔지 간단한 생김새라도….”
“보물은 소중한 거야.”
오진의 말을 자르며 백무강은 배시시 웃었다.
“꼭, 찾아야 해.”
“…….”
아무래도 당장 그가 찾고 있는 보물이 뭔지 알아내는 건 힘들 것 같았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이 종잡을 수 없는 노인네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꼬르르르륵.
백무강의 뱃속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고프십니까?”
“응, 나 배고파. 여기, 먹을 거 없어.”
“대체 언제부터 굶으신 겁니까?”
“마지막으로 먹은 지… 열 밤! 열 밤 지났어!”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열흘을 굶는 건 아무리 고위 각성자라고 해도 쉽게 버티기 힘들었다.
“오진 씨. 그… 아까 바로 온천에 가느라 밑 준비를 하나도 못 해서요….”
이사벨라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럼 간단하게 인스턴트라도 먹자.”
“그래도 괜찮을까요?”
“열흘을 굶었다잖아.”
철근이라도 씹어먹을 정도로 배고프리라.
“어디 보자 그럼… 아, 냉동 만두 가져온 거 있네. 이거 먹을까?”
배낭을 뒤지던 하은이 큰 팩에 들어있는 냉동 만두를 꺼냈다.
김시후가 준 배낭에는 보온 기능도 있었기에 냉동 만두는 처음 넣을 당시 그대로 꽝꽝 얼어 있는 상태였다.
“괜찮네.”
“오키, 그럼 바로 물 끓일게.”
하은은 냉동 만두의 입구를 살짝 뜯어 부글부글 끓는 물에 담갔다.
5분 정도 기다리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먹음직스러운 만두가 만들어졌다.
“만두? 이거 만두야?”
“예. 많이 있으니 더 드시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이사벨라가 접시 위에 만두를 올려 백무강에게 내밀었다.
“여기 젓가락….”
“와아! 만두! 나 만두 좋아!”
백무강은 젓가락을 받기도 전에 뜨거운 만두를 맨손으로 집어 와구와구 입 안에 욱여넣었다.
“헤헤.”
행복에 가득 찬 미소가 주름진 입가에 번졌다.
이사벨라는 냉동 만두 한 팩을 더 꺼내 냄비에 넣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두를 좋아하셨나요?”
“응! 예전에 할멈이 자주 만들어줬어!”
볼이 빵빵해질 때까지 만두를 머금은 백무강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분이 잘 챙겨주셨나 보네요.”
“응. 우리 할멈 좋은 사람이야.”
“그럼 지금 아내분은 어디…?”
“죽었어.”
흠칫. 이사벨라의 어깨가 떨렸다.
“나쁜 사람이 우리 할멈 죽였어.”
“아….”
낮은 탄성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죄송해요.”
“응? 뭐가?”
왜 사과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무강.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하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나쁜 사람이라면… 데이모스가 죽인 거야?”
보물을 훔쳐 가기만 한 게 아니라.
백무강의 아내까지 죽였던 건가.
“우리 할멈?”
“…응.”
“아니야.”
백무강은 고개를 붕붕 저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죽였어.”
“…뭐?”
“우리 할멈.”
이제까지와는 다른,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슬픔이 담긴 미소를.
“내가, 죽였어.”
먹구름에 가려진 별을 찾기라도 하듯.
노인의 눈이 쓸쓸히 밤하늘을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