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2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28화
보물찾기 (7)
“그게… 무슨 말이야? 할부지가 죽였다니?”
하은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까 나쁜 사람이 죽였다고….”
“응. 나쁜 사람, 나야.”
백무강은 한 입 베어 문 만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슬프게 웃었다.
“나, 바보라서. 혼자 할 수 있는 거 없어.”
그래서.
“나 때문에 우리 할멈, 많이 힘들어했어.”
힘들어서, 괴로워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우리 할멈 나쁜 병에 걸렸어. 그래서… 죽었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죽였어.”
그렇게 말하며 백무강은 배시시 웃었다.
어째서일까.
하은은 그 미소 안에 담긴 아득한 감정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할부지.”
그녀도 그랬으니까.
눈이 멀어버린 채, 다리 한쪽이 잘려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
오진의 삶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덩이가 되었으니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자신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오진의 모습을.
주워다 입은 해진 옷에서 풍기는 쿱쿱한 냄새와 500원짜리 칼로리 바의 비닐을 벗기는 소리를.
그 처참한 삶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끝없는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지는 것과도 같은 절망이었다.
‘만약.’
만약 오진이 자신을 위해 돈을 벌다가 사고가 나서 죽기라도 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됐을까.
하은의 눈동자에 백무강의 모습이 비쳤다.
천권성이라 불리며 경외의 대상이 되어야 할 노인의 어깨는 한없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
침묵이 장막처럼 내리깔렸다.
하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내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할부지 잘못이 아니잖아.”
“내 잘못이야.”
단호하게 말을 잘라내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없었으면 우리 할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거야.”
해설집에 적힌 풀이를 늘어놓는 것처럼 담담하게 이어진 말에 하은은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렇지 않…!”
“그렇지 않습니다.”
하은보다 먼저, 오진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보살피건, 보살핌을 받건.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법이니까요.”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먹구름 너머에도 별은 빛나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무리 괴롭더라도.
하은이 없는 삶보다야 나으리라.
“헤헤. 나 바보라서, 그렇게 어려운 말 몰라.”
백무강은 해맑게 웃으며 다시 만두를 와구와구 집어먹기 시작했다.
오진은 씁쓸한 눈으로 백무강을 바라봤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 그녀에 대한 속죄만이.
슬픔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테니까.
“…찾고 계신 보물은 아내분과 연관된 겁니까?”
“우응?”
백무강은 입 안 가득 만두를 욱여넣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적우적 만두를 씹어 삼킨 그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보물은 보물이야.”
어째서일까.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부서져 흩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후우. 일단 데이모스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죠.”
보물의 정체가 뭐든.
백무강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보물이라는 걸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응! 나쁜 사람 찾을래!”
백무강은 뛰어오를 기세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본격적인 검은 바위 광산 탐사가 시작됐다.
자욱하게 깔린 유황 가스를 넘어 검은 화강암으로 뒤덮인 산맥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흐아. 뭐 주변에 보이는 게 없네.”
“그러게요.”
짧은 휴식 시간.
하은은 바위 위에 걸터앉으며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의 열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유황 가스에서 풍겨오는 구역질 나는 냄새는 그녀로서도 버티기 힘들었다.
“…나는 성소로 잠깐 돌아가겠다, 애송이.”
“엉, 수고했어.”
리아크는 하은보다도 더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행 중에서 가장 후각이 예민한 그는 자욱하게 깔린 유황 냄새에 유독 고통을 호소했다.
‘견디기 힘들긴 하겠지.’
오진만 해도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쓸 때마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끼는데.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사용한 오진보다도 더 민감한 후각을 지닌 리아크가 느낄 고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리라.
[리아크에게는 아주 최악의 장소로구나.]오진의 머리 위에 앉은 베가는 은빛 빛무리가 되어 사라지는 리아크를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베가는 같이 안 돌아가 봐도 괜찮아?”
[본녀는 아직 견딜 만하니라.]베가는 오진의 머리칼을 붙잡으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와아! 지네다! 지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바위틈에서 빠져나온 벌레를 붙잡아 들어 올리며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어오르고 있는 백무강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저자야말로 괜찮은 게냐?]유황 가스를 너무 마셔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백무강은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괜찮을 거야… 아마도.”
오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다시 움직이자.”
“끄응. 벌써?”
“여기서 쉰다고 유황 가스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하은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하은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이사벨라는 입고 있는 조끼를 매만지며 가볍게 혀를 찼다.
“설마 열기보다 유황 가스가 문제가 될지는 몰랐네요.”
“그러게.”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화염 내성 마법이 걸린 조끼 말고 산소 호흡기를 챙기는 게 나았으리라.
물론, 드래고니안 왕국에 산소 호흡기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겠지만.
“근데 여기 데이모슨가? 그 자식 영토라고 하지 않았어?”
하은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보이는 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유황 가스와 검은색 화강암뿐.
어디에도 ‘영토’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정비된 도로나 건물 같은 문명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어르신이 데이모스의 위치를 못 찾고 이 주변을 계속 떠돌아다녔던 건가.’
차라리 저번처럼 주변을 순찰하는 마인족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번에는 그 마인족조차 보이지 않았다.
“값진 보화에 눈이 돌아간 놈이라면 이렇게 영토를 허허벌판으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보화라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탐욕스러운 놈이 자신의 영토를 이렇게 내버려 뒀다고?
‘앞뒤가 안 맞아.’
기본적으로 보화라는 건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과시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오진이 눈을 찌푸리며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어쩌면 이 산 아래에 영토가 있을지도 몰라요.”
차분히 주변을 살피던 이사벨라가 입을 열었다.
“산 아래에?”
“정확히는 산의 안이죠.”
“산 내부를 깎아 만들었다는 거야?”
이사벨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보화에는 과시의 목적이 있다지만, 그걸 대놓고 밖에 두지는 않잖아요?”
“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금괴 같은 건 보통 금고 안에 보관하지.”
“물론 오진 씨 말대로 과시욕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예요. 애초에 보화라는 건 모순적인 존재니까요.”
그녀의 말마따나.
‘보화’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과 남들에게 빼앗기기 싫은 욕망.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화를 드러내야 하지만, 그만큼 빼앗길 위험이 커지게 된다.
과시욕과 보호욕 사이의 줄타기.
보화라는 건 존재 자체만으로 모순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뭐 비싼 걸 가져봤어야 알지.’
오진의 경우 보화라고 불릴만한 물건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럼 땅을 파면 되는 거야?!”
백무강이 눈을 반짝이며 녹슨 철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철검을 단단한 화강암에 박아 넣은 그는 마치 무른 흙을 파는 것처럼 푹푹 화강암을 파냈다.
“나 땅파기 잘해!”
“아, 아뇨. 그렇다고 땅을 파시는 건 안 돼요.”
이사벨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백무강을 말렸다.
백무강은 손가락을 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 아래에 있다며?”
“산 아래에 있다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고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가면 아래에 뭐가 있는지도 알 수 없어요.”
최악의 경우 데이모스와 그의 기사들이 모인 한복판에 그대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광산 입구를 찾아야 해.’
산의 내부를 깎아 지하 도시를 만들었다면.
그 입구가 반드시 밖에 존재하리라.
“그럼 어디로 가야 해?”
“정말 산 아래 영지가 존재한다면, 광산 입구를 통해 드나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문제는 그 광산 입구조차 찾기 어렵다는 건데.
‘직녀성의 사냥개를 써야 하나.’
주변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머릿속으로 받아들이는 기술.
마치 CT촬영을 하는 것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부까지 스캔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건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사용해도 머리가 깨질듯한 격통이 밀려오는데.
리아크조차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정도로 지독한 유황 가스가 가득 차 있는 이곳에서 직녀성의 사냥개를 사용했다간 솔직히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토하는 걸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인데.’
왠지 그보다 후유증이 훨씬 심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아.”
그렇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때.
“나, 광산 입구라면 어딨는지 알고 있어.”
백무강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튀어나왔다.
“…예?”
알고 있다고?
“응! 전에 들어가 본 적도 있어! 아무것도 없어서 다시 나왔지만!”
“그 말을 대체 왜 지금 하는 겁니까?”
아니 그러면 이제까지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우응?”
백무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물어봤잖아?”
“…아, 예.”
안 물어보긴 했지.
‘진짜 뒤통수 한 대 씨게 때리고 싶네.’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뭘 잘 못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백무강의 표정을 보자 끓어오르던 화가 팍 식어버렸다.
“광산 입구로 가시죠.”
“응! 나 입구 기억하고 있어! 잘했지?”
배시시 웃으며 마치 칭찬해 달라는 듯 활짝 미소 짓는 백무강.
“…하아.”
과연 그의 협력을 얻으려는 게 좋은 생각이었을까.
몇 번이고 되짚었던 고민을 떠올리며 오진은 백무강의 뒤를 따라 광산 입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