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3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31화
보물찾기 (10)
계획 자체는 단순했다.
우선 아크투르에게 경비대 부대장, 오르칼에 대한 정보를 듣고 일행과 함께 그를 습격했다.
부대장답게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괴물 같은 강자들만 모여 있는 오진의 파티를, 그것도 일방적으로 기습까지 당한 상태에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르칼을 제압한 뒤로는 일사천리.
오진은 변형을 사용해 오르칼을 연기하며 유유히 황금의 보고 안으로 잠입했다.
내부에 찬 습기?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시설 관리자?
이건 굳이 손쓸 필요조차 없었다.
‘애초에 내부에 습기가 찬 걸 발견한 것도, 시설 관리자와 연락한 것도 나였으니까.’
습기는 해마자리의 성흔을 사용해 만들어냈고, 시설 관리자에게는 애초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 변수가 있다면 아크투르를 부르는 거였는데, 이 경우에는 운이 좋았다.
그가 성유물 조정에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마인이었던 덕분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다른 이유를 붙여서 데려오면 됐지만.’
어쨌든.
오르칼을 연기하며 내부에 진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베가에게 변형을 숨기는 게 더 어려웠지.’
베가에게 변형의 정체에 대해 들키면 안 됐기 때문에 이번 계획의 대부분을 어쩔 수 없이 오진 혼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오진의 입에서 진 빠진 한숨이 흘러나왔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짊어지고 있는 게 많아질수록 흑천의 존재를 숨기는 게 힘들어졌다.
흑천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천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으니까.
‘언젠간.’
자신의 정체에 대해 그녀에 대해 말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단 지금은 아니지.’
오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품속에서 통신용 성유물을 꺼냈다.
주먹만 한 수정구에 마력을 흘려 넣자 은은한 빛무리와 함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와아! 보물 창고! 보물 창고다!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백무강의 모습이 보였다.
-지, 진짜 성공하셨군요.
-대체 어떻게 경비를 뚫고 안에 진입한 것이냐?
수정구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는 백무강 너머로 이사벨라와 베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구체적인 대답을 피하며 오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중에서 어르신이 찾는 보물이 있습니까?”
오진은 산더미처럼 쌓인 보물을 향해 수정구를 내밀었다.
보물의 종류는 수백 가지.
번쩍이는 황금과 보석부터 시작해서 창과 검과 같은 도검류까지 온갖 보화들이 모여 있었다.
-우응… 잠깐만.
유심히 보물의 산을 살펴보는 백무강.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뚫어지라 바라보던 그가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엔 없어.
“그렇습니까?”
황금의 보고가 워낙 넓은 탓에 아직 돌아볼 곳은 많았다.
오진은 수정구를 든 채 황금의 보고 내부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여긴 어떻습니까?”
목걸이, 반지 등 장신구들이 가득 들어있는 칸.
장신구 하나하나가 수억 원은 가볍게 호가할 것처럼 번쩍이는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흐으음… 아냐. 내 보물, 여기 없어.
골똘히 보물을 바라보던 백무강이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장신구도 아니라면.’
오진은 이번엔 보석이 가득 진열된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아니야.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젓는 백무강.
오진은 한숨을 내쉬며 검과, 창 같은 도검이 진열된 장소로 이동했다.
-우음… 아니야.
역시 이번에도 꽝인가.
깊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찾으시는 보물에 대해 조금 설명해 주시면 안 됩니까?”
답답한 마음에 이제까지 몇 번이나 물어봤던 질문을 입에 담았다.
어차피 또 ‘보물은 보물이야’ 따위의 쓸데없는 대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내 보물, 좀 더 네모나고 가벼워.
네모나고 가볍다?
‘보석을 채워두는 함 같은 건가?’
아니, 보석함이 가볍지는 않을 텐데.
‘대체 찾고 있는 보물이 뭐야?’
오진은 백무강이 말한 조건의 보물을 찾기 위해 황금의 보고 내부를 한 바퀴 빙 돌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고 내부를 돌아다녀도 백무강이 말한 조건의 보물은 찾을 수 없었다.
‘제길.’
이쯤 되니 진짜 데이모스가 백무강의 보물을 훔쳐 가긴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혹시 이 안에 있는데 깜빡 놓치신 거 아닙니까?”
-아니야. 보물 보면, 나 알 수 있어.
단호하게 대답하는 백무강.
“하아.”
설마 백무강이 찾고 있다는 보물이 창고 안에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가 아니라면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설마 데이모스가 따로 보관하고 있는 물건 중 하나라는 건가.
‘그렇다면 몰래 빼돌릴 방법이 없는데.’
황금의 보고처럼 삼엄한 경비가 서 있는 곳이라면 그나마 보물을 빼돌릴 수 있지만.
자신만 아는 개인 금고 같은 곳에 몰래 보관하고 있다면 빼돌릴 방법이 없었다.
“일단 한 바퀴만 더 돌아보겠습니다.”
아직 경비대장이 공장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오진은 다시 한번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황금의 보고 입구 쪽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그그그긍!
갑작스럽게 열리기 시작하는 문.
서서히 벌어지는 문 너머로 장신의 마인이 천천히 걸어들어 왔다.
“누가 허락도 없이 문을 열었나 했더니… 쥐새끼가 한 마리 숨어 들어왔었군.”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몸.
아사 직전의 사람처럼 퀭한 눈두덩 안에서는 섬뜩한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파지지지직!
보고 안으로 들어오는 장신의 마인을 보자마자, 오진은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서 단탈리안을 뽑아 집어던졌다.
순식간에 창의 형태로 모습을 바꾼 단탈리안이 파공성을 터트리며 쏘아졌다.
탁.
장신의 마인은 푸른 뇌전이 타오르고 있는 창을 가볍게 맨손으로 낚아챘다.
손을 타고 흘러드는 푸른 뇌전에 마인의 눈썹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거문고자리의 성흔이라… 베가의 사도가 왜 여길?”
달그락!
손에 쥔 창을 바닥에 집어 던진 마인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노려보기만 했음에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압박감이 오진을 짓눌렀다.
이제껏 상대해 왔던 마인 따위와는 격이 다른 존재감.
눈앞에 서 있는 장신의 마인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데이모스.”
황금의 데이모스.
세 명뿐이 없다는 ‘대공’의 직위를 지닌 마인.
검은 바위 광산 아래에 자리 잡은 지하 도시의 지배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요즘 마경에서 설치고 다닌다는 인간이로군.”
오진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지 데이모스는 차가운 조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입으로는 정의를 부르짖던 인간도 결국 보물을 보니 탐욕에 눈이 멀었나 보지?”
오진이 보고 안에 숨어든 목적이 그의 보물에 눈이 멀어서라고 착각한 걸까.
데이모스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냘픈 팔을 움직여 근처에 있는 황금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하긴… 이렇게 아름다운 것에 욕심을 품지 않을 존재는 없겠지.”
약에 취한 듯 몽롱한 눈으로 손에 쥔 황금을 바라보는 데이모스.
“…….”
오진은 말없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탈리안이 공중에 떠올라 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데이모스와 직접 마주친 이상, 더 이상 교전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계획 변경이야.”
되도록 정면 승부는 피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데이모스를 때려눕히고 보물을 찾는다.’
오진은 낮은 숨을 내쉬며 움켜쥔 창에 힘을 더했다.
-지,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오지나!
수정구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쥐새끼들을 불러 모을 생각인가?”
“혼자 상대하긴 좀 벅차 보이는 양반 같아서 말이지.”
“남의 보물에 손을 대려는 도둑놈답게 치졸하기 짝이 없군.”
“남은 보물 같은 소리 하네.”
이곳에 있는 보물 대부분은 데이모스가 약탈하거나 훔친 물건들이었다.
“훔친 보물이 왜 네 거야, 이 새끼야.”
영국이냐?
“보물을 지키지 못한 건 그들이 나약했기 때문 아닌가? 나는 보물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서 정당하게 보물을 양도받은 것뿐이다.”
영국이네.
“어디 그럼, 너한테는 그 자격이 있는지 보자고.”
푸른 뇌전의 격류가 데이모스를 향해 쇄도했다.
데이모스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뇌전의 격류를 피했다.
‘빨라.’
보물에 광적으로 집착한다는 얘기를 듣고 약간 뒤룩뒤룩 살찐 탐욕스러운 마인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데이모스는 깡마른 체형에 재빠른 몸놀림을 지닌 암살자 스타일의 마인이었다.
‘그렇다면!’
쿠웅!
거칠게 진각을 밟으며 팔을 젖혔다.
전신에서 타오르는 뇌전이 창 안에 응축됐다.
몸놀림이 빠른 적을 잡기 위해서는 넓은 범위의 공격이 제일 효과적이었다.
한계까지 뒤로 젖혔던 팔을 앞으로 뻗으며 다시 한번 데이모스를 향해 창을 투척했다.
그리고.
‘방전!’
창 안에 응축되어 있던 푸른 뇌전이 우리에서 풀려난 맹수처럼 사방에 퍼져나갔다.
한 대라도 맞아라, 라는 생각으로 날린 범위 공격이었지만.
“안 돼!”
데이모스는 자기 몸을 던져 사방으로 뻗어나가려는 푸른 뇌전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마치 자식을 감싸는 부모처럼 스스로 몸을 던져 뇌전을 받아낸 데이모스의 입에서 고통에 찬 침음이 흘러나왔다.
“감히…! 내 보물에 흠을 낼 생각이냐!”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오진을 노려보는 데이모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오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보물이 소중하다면, 어디 한 번 지켜봐 이 자식아.”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을 향해 공격을 퍼부으려는 순간.
화르르르르륵!
순식간에 타오른 백염(白炎)이 오진을 향해 쏘아졌다.
“크읏!”
오진은 다급히 몸을 피했지만, 백염에 살짝 팔이 스쳤다.
백염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으며 피부가 괴사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차가운 불,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에 오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보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에게 그걸 가질 자격 따윈 없다.”
데이모스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손으로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눈꽃을 응축해 만든 것처럼 새하얀 검신.
검집에서 검을 꺼낸 것만으로 주변이 얼어붙을 듯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저 검의 힘과 조합해서 백염을 만들어내는 건가.’
오진은 동상에 걸려 괴사한 팔 피부에 포션을 들이부으며 눈을 찌푸렸다.
그때.
-내 보물!
아직 연결이 끊기지 않은 수정구에서 백무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내 보물이야!
백무강은 호들갑을 떨며 데이모스의 검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검이 어르신이 찾던 보물이라고?’
드디어 알아낸 백무강의 보물은.
오진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