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4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40화
검은 하늘 (4)
검은 먹구름이 안개처럼 짙게 깔린 도시.
마인족들의 왕국, 니플헤임에는 높게 솟은 성벽도, 굳게 닫힌 성문도 없었다.
‘들어올 테면 들어와 보라 이건가.’
검은 먹구름 너머로 살짝씩 비치는 잿빛 건물들을 바라보며 오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어떤 마인이 니플헤임이 습격받을 거라 생각하겠는가.
‘아쉽지만.’
그런 오만한 생각은 오늘부로 끝날 것이다.
“가볼까.”
오진은 검은 먹구름에 뒤덮인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흑막을 사용해 기척을 감추고 유유히 니플헤임 안으로 진입했다.
‘여기가 니플헤임인가.’
칙칙한 잿빛으로 가득한 도시.
검은 먹구름에 휩싸인 모습이 마치 산업 시대 유럽 거리를 연상케 했다.
숨을 죽인 채 천천히 거리를 거닐었다.
근처를 돌아다니는 마인족이 있으면 붙잡아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에 대해 알아내려 했지만.
‘아무도 없네.’
텅 빈 거리에는 마인족은 물론 그들이 사역하는 마수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쯧.”
이렇게 된 이상 직접 찾을 수밖에 없었다.
오진은 건물 위로 가볍게 점프한 후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했다.
전산의 감각이 확장되는 느낌.
메케한 악취와 함께 검은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도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저건.”
니플헤임의 중앙.
검은 먹구름이 거대한 돔 형태로 뭉쳐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돔이라기보다.
‘심장.’
쿠르륵거리는 검은 먹구름은 마치 거인의 심장을 뽑아다 놓은 것처럼 두근, 두근 맥동하고 있었다.
‘도시를 뒤덮은 먹구름도 저기서 흘러나온 건가.’
어림잡아도 수 킬로미터에 달할 법한 거대한 먹구름 덩어리에서는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피가 흐르듯 검은 먹구름이 도시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저기네.”
본능적인 직감이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아마 지나가는 세 살짜리 애를 붙잡아 물어봐도 저기가 의식 장소라고 대답하리라.
‘애초에 숨길 생각 자체가 없었네.’
찾는 수고를 덜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천마의 봉인을 푸는 의식인데 이렇게 대놓고 치러도 되는지 의문을 품으며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는 검은 먹구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숨길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었네.”
검은 먹구름 근처에 다가가니 숨이 턱 막힐 듯 거대한 기운이 몰아치는 게 느껴졌다.
이건 뭐 숨기고 자시고 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주변에 결계를 친다고 해도 결계 채로 날아가 버릴 정도로 거센 마력의 폭풍.
오진은 검은 먹구름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쿠르륵, 쿠륵!
맥동하는 검은 먹구름에 손을 올렸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버릴 것처럼 사납게 휘몰아치던 마력이 오진이 손을 올리자 얌전한 양처럼 잠잠해졌다.
얌전히 손을 휘감는 검은 먹구름에서 마치 오래된 친구 같은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지금 그가 손을 휘감고 있는 기운은 다름 아닌 흑천의 기운이었으니까.
‘비슷하지만… 달라.’
자신이 지닌 흑천과 천마가 지닌 흑천.
겉으로 느껴지는 기운 자체는 비슷했지만, 눈을 감고 지그시 정신을 집중하면 두 흑천의 기운이 확연하게 차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위태롭다, 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마치 모래로 지어진 성을 만지는 것처럼 부실하게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천마가 지닌 흑천은 불완전하다고 했던가.’
처음 그 말을 카시아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뭐가 불완전하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됐지만.
이렇게 직접 천마의 흑천에 닿아보니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위태로운 상태로 어떻게 버틸 수 있었던 거지?’
이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의 흑천을 다루는 건 스펀지로 이뤄진 땅을 질주하는 거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그것도 한 번 삐끗해 넘어지는 순간 끝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땅을.
“…이렇게까지 해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
흔들리는 눈으로 검은 먹구름을 바라보던 오진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검은 먹구름 속으로 발을 디뎠다.
지금 천마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여긴….”
칠흑처럼 검을 거라 생각했던 검은 먹구름 내부는 생각 이상으로 밝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까지 흑천이 흡수한 성흔인가.’
오진의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별빛들.
어째서일까.
검은 먹구름 사이에 촘촘히 자리 잡고 빛나고 있는 별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뭔가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θυμηθείτε την ημέρα που υποσχεθήκαμε.”
“θυμηθείτε την ημέρα που υποσχεθήκαμε.”
안으로 들어가니 수백, 수천의 마인족들이 둥그렇게 모여 무언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사탄을 숭배하는 사교도들의 집회가 이러할까.
수천에 달하는 마인족이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중얼중얼 주문을 외는 모습은 기괴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게 그 의식이란 건가.’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바닥에 엎드린 마인들을 살폈다.
마인들이 엎드려 있는 자리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뜻을 알 수 없는 주문이 이어질수록 검붉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저 마법진을 파괴하면 되는 건가.’
의식이 치러지는 것을 살피던 오진의 입에서 짧은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의식을 막는 방법 자체는 꽤 간단해 보였다.
그렇다면.
‘슬슬 이쪽도 준비해 볼까.’
오진이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을 때.
“…인간?”
한 마인족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쯧.”
모든 마인족이 의식에 참여한 건 아닌 건가.
마법진에 집중하느라 미처 경계병이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 어떻게 인간이 여길…?!”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려는 마인족.
검이 검집 밖으로 완전히 뽑혀 나오기 전에, 오진이 발을 박차고 마인족을 향해 돌진했다.
파지직!
염소자리의 성흔을 사용해 발소리를 없앤 후 검집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검의 검자루를 강하게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빠르고, 조용하게.’
폭뢰나 창뢰처럼 요란한 기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목덜미를 움켜쥔 후 머리에 직접 뇌전을 흘려 넣었다.
“커헉, 컥! 크륵!”
새하얗게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한 마인족.
다행히 소란이 커지기 전에 제압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쿠르르륵! 쿠륵!
마인족의 이마에 돋아 있는 검은 뿔이 부르르 떨리며 검은 먹구름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허공에 유유히 떠오른 검은 먹구름이 마인족들이 엎드려 있는 마법진으로 빨려 들어갔다.
“침입자, 침입자다!”
“어, 어떻게 흑천의 구름을 뚫고 인간이?!”
“감히 의식을 방해하다니!”
검은 먹구름이 마법진에 스며드는 걸 본 몇몇 마인족들이 오진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흑막은 어디까지나 ‘기척’을 숨기는 능력.
직접 눈으로 봐버리면 기척을 숨기고 나발이고 들통나 버리고 만다.
“쯧.”
오진은 혀를 차며 허리춤에서 단탈리안을 뽑아 들었다.
손바닥만 한 폴딩 나이프가 순식간에 창의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조금 더 의식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어딜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계획을 짤 생각이었지만 들켜 버린 이상 느긋하게 마법진을 살피고 있을 여유는 사라졌다.
“거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마저 하지그래? 중요한 의식이잖아?”
“어떻게 인간이 의식에 대한 정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리는 마인들.
극비리에 준비하고 있던 의식을 당연하다는 듯 알고 있는 인간의 등장에 동요가 퍼졌다.
“애초에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냐?”
마인 한 명이 오진에게 다가오며 눈을 찌푸렸다.
의식이 치러지는 장소 주변은 흑천의 구름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공’의 칭호를 받은 마인이라고 할지라도 흑천의 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건 불가능할 텐데.
인간이, 그것도 혼자서 흑천의 구름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이 주변에 숨어 있었던 거 아냐?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의식에 대해 알고 있었잖아.”
“아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
설마 오진이 이 주변을 뒤덮은 흑천의 구름을 직접 조종해서 뚫고 들어왔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인들은 서로 알아서 그럴듯한 추론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쥐새끼처럼 숨어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인간?”
가까이 다가온 마인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오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히 의식을 방해하려고 왔지.”
“…뭐?”
태평하기까지 한 대답에 마인들 사이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인간 놈이 정신이 나갔나…!”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린 마인 하나가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르르륵!
마인의 이마에 돋은 뿔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오며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사납게 타오르는 흑염이 오진을 노리고 쏘아졌다.
“아니 새끼들이 대답을 해줘도 지랄이야.”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창을 휘둘러 쏘아지는 흑염을 반으로 갈랐다.
쿠구구궁!
두 개로 쪼개진 흑염이 바닥에 닿자 묵직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 자식이!”
“저 건방진 인간 놈을 죽엿!”
간단하게 흑염을 갈라버리는 모습에서 오진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걸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마인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오진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파지직, 파직!
푸른 뇌전이 타오른다.
창이 휘둘러질 때마다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뇌전의 격류가 달려드는 마인들의 몸을 불태웠다.
“역시 조용히 처리하는 것보단 이게 손에 맞네.”
흑천의 열 번째 개화를 통해 한층 짙어진 성흔의 마력.
고도로 응축된 마력에서 내뿜어지는 강력한 뇌격에 마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크윽…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마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강한 오진의 무위를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의식을 방해한다는 건방진 소리를 지껄일 실력은 있다는 거냐.”
오진의 살벌한 공격에 밀려 튕겨 나갔던 한 마인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쓱 닦으며 다가왔다.
“그래도 실력에 비해서 머리는 좀 모자란 놈이군.”
갑작스럽게 의식을 방해하겠다며 나타난 인간의 무위는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그뿐이었다.
마인족들은 오진을 둘러싸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아무리 네놈이 강하다 한들, 혼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수천에 달하는 마인족의 시선이 오진에게 집중됐다.
“혼자라.”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마따나, 아무리 오진이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수천에 달하는 마인들을 홀로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혼자가 아니면 된다는 거지?”
“뭐?”
주변에 지원군이 있나 다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마인들.
하지만 어딜 둘러봐도 오진 외에 다른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헛소리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데이모스란 놈이랑 한판 붙었거든.”
오진은 씨익 웃으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니플헤임 왕국 내부에 진입할 수 있으면서도, 훈련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지극히 단순한 전술.
뜨거운 얼음을 만들라는 급의 어처구니없는 주문이었지만.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데이모스 님이라면… 설마?”
“걔가 아주 좋은 물건을 하나 가지고 있더라고.”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악마의 문양이 새겨진 황금패를 꺼내 들었다.
우우우우웅!
황금패에 빛을 불어넣자 찬란한 황금빛이 사방으로 넓게 뻗어 나갔다.
황금빛 속에서 중무장을 마친 수인족과 용인족이 걸어 나왔다.
“수고하셨어요, 오진 씨.”
“새끼 왤케 부르는 게 늦어?”
중무장한 수인족과 용인족의 군대 앞에 서 있던 이사벨라와 하은이 오진에게 다가왔다.
“아, 맞다. 이 말 해야 했는데 깜빡했다.”
오진의 어깨에 팔을 걸친 하은이 엄지를 척 들어 올리며 찡끗 윙크했다.
“On Your Left.”
뭔 소리야 그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