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4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46화
막간–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
[그게… 무슨 소린 게냐?]시간이 얼어붙은 듯한 감각.
베가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오진을 돌아봤다.
회귀자가 아니라니?
그게 당최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무슨 말이냐고 묻지 않느냐!]베가는 초조한 표정으로 외쳤다.
처음 오진과 만났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당당하게 자신을 회귀자라 밝혔던 청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을 기억하고 있던 인간.
수천 년에 달하는 기나긴 그녀의 삶 속에서 오진과의 만남은 한 줌조차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보고 싶었어, 베가.
기억하고 있다.
애틋하게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을.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던 입술을.
어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모든 게 다 거짓말이었다고?
[거, 거짓말하지 말거라.]베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오진이 갑자기 왜 이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말을 하면 본녀가 성역을 거둘 거라 생각했던 게냐?]말도 안 되는 생각 말라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않았느냐. 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를 지킬….]“베가.”
이어지는 베가의 말을 끊으며, 오진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거짓말이 아냐.”
[또 그런 헛소리를…!]“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잖아.”
흑천에 휘감긴 오진의 모습.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흑천’으로 신체 일부가 바뀐 오진의 모습.
[처, 천마가 그대를….]“아니야.”
그녀가 천마가 지닌 흑천과 자신이 지닌 흑천은 구별하지 못할 리가 없다.
“베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조심스럽게 베가의 뺨 위에 손을 올렸다.
“나는 회귀자가 아니야.”
그동안 숨겨왔던 사실을, 애써 외면했던 진실을 다시 한번 입에 담는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도, 전생에 너와 특별한 관계였다는 것도 모두 널 속이기 위해 거짓말했던 거야.”
[그, 그만. 그만 말하거라!]오진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롭게 가슴을 헤집는다.
베가는 눈물이라도 흘린 것처럼 눈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그, 그대는 실제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고 있지 않았더냐?]“…….”
이신혁의 기억을 통해 본 미래.
실제 오진은 그 기억을 활용해 베가를 완벽하게 속여왔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거야말로 ‘회귀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미안해, 베가.”
구차하게 이신혁의 기억을 사용한 걸 설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지금 흑천과 뒤섞인 자신의 모습을 보면 그가 천마와 같은 ‘흑천의 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베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흔들리는 눈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탁!
뺨에 닿은 오진의 손을 사납게 쳐냈다.
[그대는….]말끝이 흐려진다.
날카로운 배신감이 마음을 도려낸다.
[그대는 정말… 회귀자가 아니었던 게냐?]이제까지 쭉.
[본녀를… 속이고 있던 게냐?]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누구보다 믿었던 남자.
수천 년에 달하는 기나긴 삶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인간.
부서진 신뢰는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그녀를 난자했다.
쿠르르르륵!
거대한 먹구름의 해일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오진은 베가의 곁은 지나쳐 걸어가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네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 속이고 있던 거야.”
그러니까.
“날 위해서 네가 희생할 이유는 없어.”
쌀쌀맞은 말투로 말하며 베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직, 파지직!
검은 뇌전이 베가를 향해 쏟아졌다.
[으읏!]검은 뇌전을 피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베가.
열 번째 개화를 하며 한층 강력해진 흑천은 성역을 사용한 베가를 어렵지 않게 밀어낼 수 있었다.
[나, 나의 아이야…!]다급히 오진에게 다가오려던 베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가늘게 떨리는 손끝.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는 배신감이 족쇄가 되어 그녀의 발을 묶었다.
“…….”
오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베가를 돌아봤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마음 한편에 묻어두며 검은 먹구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쿠르르르르륵!
검은 먹구름을 해일을 향해 양팔을 쭉 뻗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검은 먹구름을 응시했다.
“흐읍!”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흑천의 구름.
천마가 지닌 것과 비교하면 그 양은 보잘것없었지만.
‘질로 따지면 내가 지닌 흑천이 더 뛰어나지.’
쿠르르르릉!
흑천과 흑천이 격돌한다.
대지가 뒤틀리며 사납게 찢어발겨졌다.
“크윽!”
강렬한 충격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태풍이나 해일 따위의 자연재해를 맨몸으로 받아내면 이런 기분일까.
아득한 격차에 헛웃음이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미, 친.”
질적인 우위 따위는 가소롭게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양의 차이.
“대체… 얼마나, 처먹은 거야.”
이제껏 흑천으로 꽤 많은 것들을 먹어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천마가 지닌 흑천을 보니 자신의 것이 우스워질 정도였다.
“하아, 하아!”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의 심정이 이럴까.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개천을 사용하고도 이 모양이라니…!’
개천은 사실상 모든 물리적인 충격을 제로로 만들어 버리는 사기적인 힘이거늘.
같은 흑천을 상대로는 그 사기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다.
‘감각 차단도 아무짝에 쓸모없고.’
개천의 또 다른 힘, 대상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드는 능력도 검은 먹구름을 상대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윽! 조금만, 더…!”
하은과 리아크가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오진은 필사적으로 검은 먹구름의 해일을 막으며 입술을 짓씹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개를 뒤로 돌려 하은과 리아크가 얼마나 멀리 도망갔는지, 베가는 성소로 돌아갔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커헉! 크으으! 제길, 제길, 제길!”
검은 해일을 막는 것만으로도 온 정신을 쏟아야 해서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그그그그그긍!
거대한 충격이 대지를 뒤흔든다.
주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지가 뒤집히고, 갈라진다.
높게 치솟은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집어삼킨다.
어둠에 물든 하늘.
별빛조차 비치지 않는 칠흑의 하늘 아래, 오진은 우뚝 선 채 검은 먹구름의 해일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다.
“아, 으.”
아프다.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짓뭉개지는 고통이 전신을 난도질한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
하지만.
“하아, 하아!”
견뎌야 한다. 버텨야 한다.
‘내가 집어삼켜지면.’
다음은 다른 사람들이 흑천에게 집어삼켜질 것이다.
“크으으!”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체감상 몇 시간, 아니 며칠은 훌쩍 흘러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체감상일 뿐.
실제 시간은 얼마 흐르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더.’
이 고통 속에서 발버둥 쳐야 한단 말인가.
꾸르르륵.
검은 먹구름의 해일이 점차 자신의 몸을 집어삼키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완전히 천마의 흑천에 먹혀버린다면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불쑥 솟은 의문을 이어갈 새도 없이 또 다른 격통이 오진을 덮쳤다.
“크헉, 컥, 아, 으.”
한계점을 넘어서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검게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쿠르르르륵.
먹구름이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마?’
아니다.
소리의 발원지는 왼쪽 가슴.
천마가 아닌, 자신의 흑천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쿠르르륵, 쿠륵!
심장 안에 자리 잡은 흑천이 우리 안에 갇힌 맹수처럼 으르렁거린다.
당장에라도 여기서 자기를 풀어달라고 하는 것처럼 격렬하게 몸부림친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풀어달라는 거야.’
이미 개천을 사용해서 흑천을 해방한 상태가 아닌가.
오진은 눈을 찌푸리며 왼쪽 가슴을 노려봤다.
쿠르르륵.
심장 안에 갇힌 흑천이 사납게 먹구름을 뿜어냈다.
마치 아직 부족하다는 듯이.
마치 아직 더 열 수 있다는 듯이.
‘더… 열 수 있다고?’
설마 개천이 끝이 아니라는 건가?
그 위에 더 뭔가 있다는 건가?
오진은 입술을 짓씹으며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만약 여기서 더 흑천을 해방할 수 있다고 해도.’
대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얼마나 많은 기억이 사라지게 되는 거지?
“…….”
짓씹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여기서 더 흑천을 해방해 버리면 더 많은 기억이 흑천에 집어 삼켜질 것이다.
어쩌면.
하은에 대한 모든 기억이….
[드높이 떠오른 직녀성의 별이여.]불길한 상상을 이어가고 있을 때.
뒤에서 베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 가?”
성소로 돌아간 게 아니었단 말인가?
[본녀의 아이에게 축복을 내려다오.]찬란한 은빛이 오진의 몸에 깃들었다.
쿠르르르륵!
흑천이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비트는 것이 느껴졌다.
‘보인다.’
검게 점멸하는 의식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한 줄기 별빛이 보였다.
“크으으으!”
오진은 검은 하늘 속에서 빛나는 별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쿠르르르르르르릉!
거대한 굉음과 함께 주변 모든 것이 검은 먹구름에 뒤덮였다.
“뭐가… 어떻게 된….”
오진은 눈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다.
빛 한점 비치지 않은 검은 공간.
이미 전에 한 번 와본 적 있는 장소였다.
‘무의식의 공간.’
오진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의자와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내 무의식이다.’
자신의 무의식에 개입할 수 있던 천마와 달리, 오진은 그의 무의식에 개입하지 못했다.
의지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이곳이 천마가 아닌 자신의 무의식 안이라는 뜻일 터.
“하아.”
어쩌다 또 이런 공간에 오게 된 건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
쿠륵, 쿠르르륵.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검은 먹구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뒤죽박죽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먹구름.
곧 먹구름이 한곳에 모여 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너….”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메마르고 마모된 한 청년의 모습을.
“너, 이 개새끼야아아아!!!”
천마는 악귀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