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4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49화
별빛 (1)
“우리 한국의 자랑스러운 영웅! 파군성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커다란 덩치에서 터져 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고릴라, 아니 한준만 부장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연신 박수를 치며 오진 일행의 귀환을 환영했다.
“이게 뭔….”
니플헤임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은 후, 최초의 균열을 통해 한국으로 귀환한 오진은 공항 입구에 쫙 깔린 인파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 플래카드는 언제 또 만든 거야.’
공항 출구에는 족히 백 미터는 넘을 법한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거기에는 ‘★경★ 한국의 자랑 권오진 각성자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축★’이라 적힌 글귀가 적혀 있었다.
딱히 이번 마경 행을 대중들에게 공표하고 간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성대한 환영이 당황스러웠다.
“이게 다 뭡니까?”
“하하! 오진 씨가 마경에서 귀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협회에서 직접 제작한 겁니다! 어떻습니까?!”
오진은 대형 플래카드를 올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이 세금 도둑 새끼들.
아니 무슨 세금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낭비할 수 있는지 연구라도 따로 하는 건가?
“그나저나 제가 마경에 갔다 온 걸 이렇게 사방팔방 알려도 되는 겁니까?”
딱히 뭐 숨길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형 플래카드까지 만들면서 광고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오진 씨가 모르셔서 하시는 소리입니다!”
“뭘 몰라요?”
“이번에 오진 씨가 마경으로 가고 난 이후 균열을 넘어오는 마수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아.”
하긴.
마경을 그렇게 들쑤시고 다녔는데 지구로 넘어오는 마수의 숫자가 줄어든 것도 당연하리라.
“물론 그동안 활동을 하지 않던 네임드 마수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혼란이 있었지만, 기존에 마경으로부터 넘어오는 마수들의 숫자가 확 줄어들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마경으로 간 덕분에 다시 활동을 시작한 네임드 마수들을 처리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건가.
‘그 정도면 광고할만하긴 하네.’
뭐, 이렇게 대형 플래카드까지 만든 걸 보니 감사의 뜻을 표한다기보다는 정치적인 목적이 더 크겠지만.
오진 입장에서야 어찌 됐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보다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필요하신 게 있으면 협회에서 싹 다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솥뚜껑만 한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치며 환하게 웃는 한 부장.
입에 걸린 미소를 보니 이번 마경 행으로 인해 한국이 득을 본 게 상당한 것 같았다.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싶네요.”
“아, 그럼 저희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입구 쪽에 의전차량을 준비해 뒀습니다!”
“아뇨, 굳이 그럴 필요까진….”
괜히 주변의 이목을 끌면 더 피곤한데.
그런 생각을 하며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을 때.
“오진 씨, 여기선 그냥 협회 차량을 타고 돌아가요.”
이사벨라가 오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끄응. 소란스러운 건 별로인데.”
“그래도 오진 씨를 위해서 준비한 거잖아요? 여기서 거절하면 협회 쪽도 입장이 난처해질 거예요.”
하긴.
국가의 영웅을 제대로 에스코트하지도 못했다고 또 난리가 나겠지.
“알았어.”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항 밖으로 나갔다.
출구에 깔린 레드카펫과 사방에서 터지는 무수한 셔터 소리.
‘아니 뭐 국제 영화제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레드카펫 위에 발을 올렸을 때.
“오진 씨, 잠깐.”
이사벨라가 재빠르게 다가와 살며시 오진의 팔짱을 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셔터 소리가 한층 거세졌다.
“후훗.”
눈을 반짝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이사벨라.
애초에 의전차량을 타자고 말했던 것부터 이걸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뭘 자연스럽게 오지니 옆에 서는 거야.”
하은이 눈을 찌푸리며 이사벨라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이사벨라가 눈을 흘기며 하은을 돌아봤다.
“언니는 지구에 오는 동안 내내 오진 씨랑 붙어 있었잖아요.”
“그거야 카시아인가? 걔랑 너랑 기 싸움하느라 그런 거잖아.”
“그래도요.”
니플헤임의 일이 마무리된 후 카시아도 오진 일행과 함께 지구로 귀환했다.
지구로 오는 동안 이사벨라와 카시아는 서로 칼에 베일 듯이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며 한껏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기껏 방해꾼이 사라졌는데 오늘은 좀 양보해줘요.”
카시아는 지구로 돌아온 후 할 일이 있다며 어딘가로 홱 사라져 버렸다.
오랜만에 카시아의 견제 없이 오진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이사벨라는 평소와 달리 다소 억지를 부려가며까지 그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끄응.”
하은도 그동안 이사벨라와 카시아의 살벌한 신경전을 본 터라 별말 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고마워요, 언니.”
배시시 웃으며 끌어안은 오진의 팔에 살짝 가슴을 가져다 대는 이사벨라.
만개한 웃음꽃 사이로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새어 나왔다.
“카시아랑 떨어져서 그렇게 좋아?”
“예. 그 고집불통 껌딱지 언니가 없으니 아~주 기분이 좋네요.”
“…….”
아직 둘 사이가 회복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것 말고도 오진 씨가 이렇게 환영받는 모습을 보니 좋아서요.”
뿌듯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이사벨라.
동경과 경외에 찬 눈으로 오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괜히 자기 일이라도 된 것처럼, 아니, 자기 일보다도 더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진 씨가 고위 각성자가 아닌데 칠성의 일원이 됐다고 되게 말이 많았잖아요.”
이제는 오진도 9성이 되어 고위 각성자의 반열이 되었지만 마경으로 떠나기 전에는 그걸로 한국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비유하자면 대학도 안 나온 고졸 정치인이 교육부 장관 자리에 앉은 느낌이랄까.
고위 각성자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 보니 자질 관련으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렇게 환영하는 걸 보면 감히 오진 씨를 폄하하려는 소리도 싹 들어간 것 같아서요.”
“뭐, 원래 실적이 있으면 자질 논란은 쏙 들어가기 마련이지.”
“어쨌든 오진 씨가 인정받는 모습을 보니 되게 기분이 좋네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사벨라를 보며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저, 저 권오진 각성자님! 인터뷰 요청 가능합니까?”
“마경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로마의 성녀와는 어떤 관계시죠?!”
레드카펫의 중간을 넘어가니 사방에서 벌떼처럼 기자들이 몰려왔다.
“어허!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분명 인터뷰 요청은 금지라고 했을 텐데요.”
“히익…!”
“호, 혹성탈출?”
한 부장이 험상궂게 인상을 찌푸리며 나서자 우르르 몰려들던 기자들이 흠칫 발걸음을 멈췄다.
“혹성탈출이라고 한 거 누굽니까?”
한 부장이 사납게 눈을 뜨며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시끄럽게 질문을 쏟아내던 기자들이 합죽이가 되어 입을 꾹 다물었다.
“후우. 차에 타시죠 오진 씨.”
“아, 예. 감사합니다.”
오진 일행은 한 부장에 에스코트에 따라 고급스러운 리무진에 탑승했다.
예전에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리무진이었지만, 이사벨라와 다니면서 몇 번 타봐서 그런지 꽤 익숙해졌다.
“디, 딥따 큰 차다!”
리무진에 익숙해진 오진 일행과 달리 백무강에게는 낯선 풍경인지 크게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리무진은 처음이십니까 어르신?”
“우응. 아니 전에 알렌이 태워준 적 있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놀랐어.”
하긴.
몇 년을 마경에서 보냈으니 까먹을만 하리라.
“아, 그러고 보니 무곡성님한테도 연락이 왔었습니다.”
“무곡성? 무곡성이 뭐야? 먹는 거야?”
손가락을 쪽쪽 빨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무강.
한 부장는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각성자 알렌 오스칼 님이십니다.”
“알렌! 우리 알렌한테 연락 온 거야?!”
“예. 천권성 어르신을 모시고 성소 쪽으로 와달라고 했습니다.”
“갈래! 갈래! 알렌이랑 데네브 님이랑 그… 샤프란이랑 샤프린도 보고 싶어!”
“…샤오란이랑 샤오린입니다.”
“아, 마, 맞다. 헤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백무강.
오진은 운전석에 앉은 한 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집에 가기 전에 성소로 먼저 가죠.”
“예, 알겠습니다.”
한 부장은 곧바로 리무진을 몰아 성소로 향했다.
성소의 입구가 위치한 홍대까지 걸린 시간은 한 시간 정도.
홍대에 도착하니 성소 앞으로 마중 나온 알렌 오스칼의 모습이 보였다.
“알렌! 오랜만이야!”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그간 무탈히 지내셨나요?”
“응, 응!”
환하게 웃으며 알렌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백무강.
그는 품속에 고이 간직해둔 편지 봉투를 꺼내며 알렌에게 내밀었다.
“나 보물 찾았어! 오진이가 찾아줬어!”
“얘기는 들었습니다.”
얼음처럼 무표정했던 알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백무강과 잠깐 얘기를 나누던 알렌이 오진에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권오진 각성자.”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는 알렌.
만화나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미청년이 절도 있는 자세로 허리를 숙이니 묘한 압박감까지 느껴졌다.
“정말… 이 일을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할지….”
차가운 얼음 같았던 알렌의 얼굴에 처음 보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래도 어르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네.’
하긴.
그러지 않았다면 단신으로 마경으로 가서 필요한 물자들을 백무강에게 전달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상이라면 이미 어르신에게 충분히 받았습니다.”
비록 천마의 함정이었을지언정, 백무강은 오진을 돕기 위해 니플헤임까지 직접 쳐들어갔다.
애초에 오진 입장에서도 전쟁에 필요한 전력을 얻기 위해 백무강을 도와줬으니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헤헤! 착한 사람이 불러 주면 언제든 또 도와줄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번쩍 손을 들어 올리는 백무강.
알렌은 자상한 눈빛으로 백무강을 바라보더니 오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곤란한 일이 있으시다면 저희도 오진 씨를 돕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백무강에 이어 데네브의 다른 사도들까지.
천마와의 일전을 준비해야 하는 오진의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반길 만한 소식이었다.
“그나저나….”
살며시 눈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리는 알렌.
“왜 그러십니까?”
“으음.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지만, 혹시 베가 님과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
베가, 라는 말에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그건 왜.”
“이번에 데네브 님에게 들었는데, 베가 님의 신전이 완전히 폐쇄됐다고 합니다.”
“폐쇄요?”
“예.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출입할 수 없도록 막아놨다고….”
“…….”
오진은 씁쓸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역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아뇨, 아무 일도 없….”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던 오진의 말이 뚝 멈췄다.
“오진 씨?”
“…….”
오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있었습니다. 무슨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