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5화
낙원(樂園) (2)
“아으.”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송하은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뒤지게 춥네.’
초인의 육체를 지니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 사경을 헤맬 수도 있는 온도였다.
‘보일러는… 켜지 말고.’
너무 추우면 켜도 괜찮다고 오진이 말했지만, 매번 관리비 청구서를 받을 때 침음을 흘리는 그를 떠올리면 함부로 켜기 어려웠다.
“에휴. 일단 전기장판으로 버텨야지.”
이렇게 사는 것도 몇 년째가 되니 나름 익숙해졌다.
탁.
그녀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전기장판의 스위치를 켰다.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찾았다.
화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상태로 스마트폰을 다루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터라 어렵지 않게 최신 뉴스가 정리된 영상을 틀 수 있었다.
[어제 오후 4시경에 일어난 서울역 사태로 인해 협회 소속 각성자 권오진 씨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해당 기사를 본 네티즌들은 각성자 권오진 씨에게 ‘뇌랑(雷狼)’이라는 칭호를 붙이며 새로운 영웅의 탄생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뉴스에서는 온통 오진에 관한 이야기뿐.
“와…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이렇게 되네.”
처음 그가 북극성의 사도가 되었다고 말했을 때부터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지만 막상 뉴스를 통해 그의 이름을 들으니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게 유명해졌으면… 돈도 금방 모으겠네.’
송하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그와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어디 그럼.”
이번에는 다른 영상을 검색해 틀었다.
[이틀 뒤에 있을 12월 용산 경매장의 출품 성유물 목록이 모두 확정되었습니다.] [주목할 출품 성유물은 7성급 성유물 ‘여명의 검’과 ‘황혼의 매듭’이 있으며, 6성 성유물 ‘용마안’ 또한 1년 3개월 만에 다시 모습을 비추게 됩니다. 그 밖에도….]삑.
영상을 껐다.
“용마안….”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꾸욱.
움켜쥔 주먹에 힘줄이 돋았다.
그때.
[이제 일어난 게냐?]“꺄아아아악!!”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하은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오, 오진이랑 같이 나간 거 아니었어?”
한 시간 정도 전에 오진은 협회에 볼일이 있다며 나갔다.
당연히 베가와 함께 갔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펜던트를 두고 나갔더구나.]아무래도 굳이 베가를 데려갈 필요 없는 용무였던 모양.
“…그, 그래?”
어색한 기류가 방 안에 맴돌았다.
이렇게 베가와 단둘이 얘기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근데 성좌가 이렇게 지구에 현신해 있으면 율법의 제약인가 뭔가 받는 거 아니었어?”
[하루 몇 시간 정도는 괜찮느니라.]“으음.”
[이 기회에 그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물어보고 싶은 거?”
하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의 아이는 꽤나 돈에 집착하는 것 같더구나.]“아… 뭐, 그렇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느냐?]“…….”
하은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씁쓸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지어졌다.
오진이 필사적으로 돈을 모으는 이유.
당연히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으니까.
“낙원에… 가기 위해서야.”
독한 술을 삼키듯 말했다.
[낙원?]너무나 추상적인 단어에 베가는 눈을 깜빡였다.
“아, 낙원이라는 건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고. 정식 명칭은 강화도 특별 자치 구역.”
[으음. 그렇게 들어도 뭔지 잘 모르겠구나.]“음… 그러니까.”
하은은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강화도 특별 자치 구역.
속칭 ‘낙원’이라 불리는 장소.
괴수가 들끓는 이 미친 세상에서 몇 없는 ‘안전 구역’이었다.
그 흔한 게이트도 없고, 괴수도 없다.
여러 흉악 범죄자들과 불법 조직도 그곳엔 발을 디딜 수 없다.
그리고.
“한 번 그곳에 입주하면 하루 삼시 세끼 식사도 든든하게 나온다고 들었어.”
의식주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게이트가 열리기 전━ 평화롭고 안락했던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
“━오진이는 거기 입주권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어.”
‘낙원’ 입주권의 가격은 100억.
100억을 내고 그곳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었다.
하하호호 웃으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면 될 뿐.
[…그런 곳이 있단 말이냐?]베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가늘게 눈을 떴다.
[이해가 잘 안 가는구나. 어찌 그곳을 ‘안전 구역’이라 부르는….]“거기엔 탐랑성(貪狼星) 천상길과 그의 길드원들이 살고 있으니까.”
탐랑성 천상길.
한국인 중 유일한 칠성의 일원.
강화도는 특별 자치 구역은 천상길과 그의 길드, ‘천혜(天惠)’가 직접 관리하는 장소였다.
그곳을 안전 구역이라 하지 않으면 어딜 또 안전 구역이라 부르겠는가.
“돈 많은 기업가들이나 연예인들 그리고 각성자들이 앞다투어 가려는 곳이 바로 ‘낙원’이야.”
[나의 아이가 거길 들어가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단 말이냐?]“응.”
[으음.]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베가는 침음을 흘렸다.
송하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뭐였는지 알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공허한 시선이 흐리한 안개가 내려앉은 기억의 숲을 헤맨다.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검은 머리에 살짝 쳐진 눈매.
피멍 가득한 뺨을 매만지며 몸을 웅크린 소년.
[뭐였느냐?]“아프지 않고,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곳에서 사는 거.”
[……?]“캬하하! 되게 단순하지?”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는 웃었다.
“근데….”
씹어뱉듯 말을 이었다.
“그 단순한 행복이 우리한텐 참 멀게 느껴지더라.”
[…….]베가는 침묵했다.
감정이.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감정의 격류가 느껴졌다.
[나의 아이를 핍박한 자가 있었더냐?]“응. 우리 보육원 원장.”
송하은은 어렸을 적의 추억을 떠올리며 꾸욱 입술을 짓씹었다.
“진짜 매일 두들겨 맞았어. 다른 애들도 가끔 맞긴 했는데… 유독 오진이만 지독하게 맞았지.”
[이유가 있었느냐?]“…응.”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원래… 나였어. 오진이가 아니라, 내가 원장의 주 타겟이었어.”
“히히! 내가 어렸을 적부터 한 성깔 했거든.”
자조 섞인 웃음.
“근데… 나도 막 맨날 맞고 그러다 보니까 되게 힘들더라고. 그래서 그냥 콱 목이라도 메서 원장 엿 먹일까도 생각했었어.”
[다른 아해에게 도움을 청할 순 없었던 게냐?]“고작 10살짜리 애새끼들이 무슨 도움? 그리고 원장 그 자식이 인맥 하나는 좋아서 어디 도와달라 해도 싹 다 무시당했어.”
[…힘들었겠구나.]“응. 진짜… 진짜 힘들었어.”
악몽을 떠올리며 하은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원장 팔을 엄청 세게 깨물었거든? 진짜 하루 죙일 얻어터지고 있는데… 푸흡! 그때 오진이 그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베가는 고개를 저었다.
보일 리 없겠지만, 하은의 말은 이어졌다.
“갑자기 주방에서 불이 났다면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원장이 막 꽥꽥 비명을 지르면서 밖으로 도망쳤지.”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어떻게 되긴. 원장만 개망신당했지.”
[……?]“히히히! 구라였거든. 불났다는 거.”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는 듯 하은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오진이 그 자식 진짜 밥 먹듯이 원장을 속였어. 아무리 처맞아도, 다음 날이면 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원장을 골렸지.”
[그래서… 그대에게서 오진으로 타겟이 바뀐 게냐?]“…응.”
송하은은 무릎을 세워 머리를 기댔다.
“솔직히 나… 안심했어. 이제 맞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청, 엄청 기뻤어.”
뚝.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무릎을 끌어안은 팔이 가늘게 떨렸다.
“걔가 날 위해서 그런 짓을 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근데… 근데도 그걸 좋다고…!”
[그대의 잘못이 아니니라.]“…….”
짧은 침묵.
“그래. 오진이 그 녀석도 똑같이 말하더라고.”
[…….]“뭐 어쨌든. 걔가 바라는 건… 어렸을 때부터 하나였어.”
아프지 않게, 춥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거짓말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삶.”
그것이 그의 바람이었다.
갈망이고, 열망이었다.
“오진이는 낙원에 갈 거야.”
그리고.
자신과는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그대와 같이 가는 게 아니더냐?]“…나는 못 가.”
송하은이 고개를 저었다.
[돈 때문에 그러느냐?]“그것도 있지만… 돈이 있어도 시험에 통과 못 할 거야.”
“응. ‘낙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검사도 받고, 시험도 통과해야 하거든.”
그녀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잿빛의 눈동자로 쓸쓸히 허공을 응시했다.
“앞도 보이지 않는 병신이 낙원에 들어갈 순 없겠지.”
자조 섞인 웃음소리.
베가는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대는 어찌 되는 게냐?]“뭐, 혼자 알아서 살아야지.”
[하지만.]“캬하하! 어이구, 설마 걱정하시는 거예요 여신님?”
[…….]“나 그래도 5년 전까지만 해도 7성 각성자였어. 혼자서 살려면 어떻게든 살 수 있어.”
비록 지금은 모든 걸 잃었지만.
과거 그녀는 ‘강자’의 반열에 들었던 각성자였다.
[…어쩌다 그리된 거냐?]“이거?”
송하은은 무릎 아래로 휑하니 빈 자신의 오른 다리와 눈을 가리켰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5년인가 6년 전쯤인가. 드럽게 센 괴수 하나랑 싸우느라 이렇게 됐어.”
천주룡(千呪龍) 바르바토스.
무려 9성급에 달했던 용족 괴수.
그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그녀는 ‘저주’를 받았다.
시력을 앗아가고 마력을 봉인하는, 지독한 용의 저주를.
“어쨌든.”
풀썩.
송하은은 침대에 누웠다.
뜨끈하게 데워진 전기장판이 추위를 몰아냈다.
“오진이랑은 약속했어. 5년 전에.”
[무슨 약속 말이냐?]“정확히는 약속이라기보다… 일방적인 강요를 했지.”
하은은 씁쓸히 웃었다.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좁고 어두운.
곰팡이 가득한 방에서 나눴던 짧은 거래가.
-낙원의 입주권을 살 거라고?
-그래.
-…그럼 그때까진 나랑 같이 있어 줘.
-같이 있어 달라고?
-지난 3년간 나한테 빚진 게 있잖아? 그동안 내가 널 구해주고, 보살펴줬잖아?
-…….
-100억을 다 모으면. 그땐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괜찮아.
-…알았어.
낮게 가라앉아 있었던 오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래.
자신은 그날 그에게 저주를 건 것이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저주와 똑같은 저주를.
‘송하은’이라는 이름의 주박을.
“하하하! 이야,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쌍년이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그녀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각성자도 아닌 놈이 100억을 어떻게 모은다고 그딴 부탁을 해?”
약속은 그저 핑계였을 뿐이다.
홀로 남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컴컴한 어둠 속에━ 그를 함께 가둬두기 위해.
“…벌 받은 거지.”
설마 오진이 각성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북극성의 사도가 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다.
적어도.
적어도 몇 년은 더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거문고자리의 각성자가 되었고, 온갖 뉴스에서 앞다투어 떠들 정도로 유명해졌다.
100억이란 돈을 모으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천벌.
그래.
자신의 아집을 위해 그를 이용하려고 한 천벌을 받은 셈이다.
“히히. 그러니까━”
송하은은 목발을 짚고 어설프게 몸을 일으켰다.
꾸벅.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 오진이…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애원하듯, 애걸하듯.
말했다.
[…….]베가는 팔짱을 낀 채 깊게 허리를 숙이고 있는 송하은을 내려다보았다.
‘나의 아이의 바람이 이 아해와 헤어지고 낙원이란 곳으로 가는 거라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다면━ 그때 왜 그런 표정을 지었단 말이냐?’
처음 송하은을 만났을 때.
그녀의 눈에 대한 물음을 들은 직후 지었던 오진의 표정이 떠올랐다.
끝없는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는 듯한.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던 그때의 표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