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5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51화
별빛 (3)
쿠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리아크의 신형이 벼락처럼 오진에게 쇄도했다.
그 속도는 오진이 마경에서 익히 봐왔던 리아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본능으로 팔을 엑스자로 교차해 얼굴을 막았지만, 그대로 교차한 팔 위에 리아크의 주먹이 격돌했다.
“크윽!”
뼈가 부러질 듯한 충격과 함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오진은 가까스로 낙법을 취해 최대한 충격을 줄이며 바닥에 착지했다.
카르르륵!
낙법으로 충격을 줄였음에도 발을 디딘 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리아크의 주먹에 담긴 힘은 가공스러웠다.
‘마경에 있을 때랑은 아예 달라.’
그때는 율법의 제약 때문에 ‘성령’으로서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지만, 이곳은 마경이 아닌 성소.
제약 없이 본신의 힘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크르르르릉!”
사나운 울음소리와 함께 리아크의 신형이 허공에 흩어지듯 사라졌다.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번뜩이더니 리아크의 거체가 순식간에 오진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휘둘러지는 주먹.
오진은 허리춤에서 꺼낸 단탈리안을 창의 형태로 만들어 비스듬히 몸을 막았다.
콰아아아앙!
창대를 타고 전해지는 강렬한 충격.
손바닥이 찢겨나가며 창대를 타고 붉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흐읍!”
나침반자리의 성흔이 활성화되며 창끝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푸른 뇌전이 타오르는 창이 리아크의 허벅지를 찔러 들어갔다.
“느리다, 애송이.”
리아크는 가볍게 점프해 음속을 넘는 속도로 찔러 들어오는 창대 위에 착지했다.
곡예에 가까운 그의 움직임에 오진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도 잠시.
창대 위에서 다시 한번 도약한 리아크가 백 텀블링을 하며 오진의 턱을 올려 찼다.
빠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진의 고개가 홱 젖혀졌다.
턱은 뇌에 직접 충격을 전달하는 급소 중의 급소.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듯한 감각과 함께 순간 의식이 하얗게 점멸했다.
‘물병자리의 성흔.’
치유에 특화된 성흔이 하얗게 점멸하는 의식을 보호했다.
“후우.”
낮은 숨을 토해내며 날카롭게 리아크를 쏘아봤다.
리아크는 순식간에 상처를 치료한 오진을 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그게 이제까지 흑천의 힘으로 먹어 치웠던 성흔의 힘이냐?”
“그래.”
이제까지 리아크가 율법의 제약 때문에 본신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면.
오진은 베가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이제까지 흡수해왔던 성흔들을 제대로 전투에 활용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파지지지지직!
오진의 몸 주변으로 뇌전으로 이뤄진 깃털이 만들어졌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깃털이 기관총처럼 리아크를 향해 쏘아졌다.
“잔재주를…!”
리아크는 Z자로 빠르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깃털을 가뿐하게 피했다.
파지지직!
뇌흔 밟기를 사용한 도약.
관성을 조롱하는 듯한 경이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며 리아크의 손톱이 오진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크르르르릉!”
정수리를 향해 손톱을 내리치던 리아크가 살짝 방향을 틀어 오진의 어깻죽지를 노렸다.
어깨를 파고든 손톱이 그대로 오진의 팔을 잘라내며 지나갔다.
“끝이다, 애송이.”
리아크는 피가 철철 쏟아지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쓰러지는 오진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더 이상 볼 일 없다는 듯 리아크가 몸을 돌리려 했을 때.
“음?”
리아크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은 손톱을 내려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분명 피륙을 가르는 감촉이 느껴졌는데도 피가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고?
쉬이이이익!
“크윽?!”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몸을 비틀었다.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창날.
뇌전을 머금고 있는 창날이 바닥에 꽂히며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팔이 잘린 채 쓰러져 있던 오진의 몸이 폭발에 휩쓸려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환영까지 다룰 수 있었나.”
리아크는 피가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창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봤다.
“이제까지 꽤 많은 성흔을 흡수해왔으니까.”
물론.
이것도 천마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었지만.
“흥, 베가 님의 눈을 피해 잘도 처먹고 다녔군.”
“…….”
오진은 리아크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자, 리아크.”
“그만하자고?”
“난 그냥 베가와 얘기가 하고 싶어서 여기 왔을 뿐이야.”
“베가님을 만나고 싶다면 날 먼저 꺾으라고 했을 텐데?”
리아크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듯 난폭한 살기를 뿜어냈다.
“…리아크.”
오진은 씁쓸한 눈빛으로 리아크를 바라봤다.
문득 칸 왕국에서의 일이 끝난 후, 호루스의 무덤 앞에서 리아크와 나눴던 대화가 머리를 스쳤다.
-고, 고맙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던 은빛 늑대의 모습.
“무기를 들어라, 애송이.”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오진을 노려보는 늑대의 눈빛은 타오를 듯한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
오진이 반복해 왔던 거짓말은 베가와의 관계만이 아닌, 리아크와의 관계까지 함께 망쳐버린 것이다.
“미안하다.”
“사과는 필요 없다.”
리아크는 코웃음을 친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전사라면 입보다는 주먹으로 말해라.”
콰앙!
다시금 시작된 격돌.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이 뻗어나갔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며 오진의 몸에 차곡차곡 상처가 늘어났다.
오진은 사납게 몰아치는 리아크의 공격을 받아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 리아크랑 붙었을 때는 3초 컷이었는데 말이지.’
지금 이렇게 본신의 힘을 모두 끌어올린 리아크와 치열한 공방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후욱, 후, 크르르!”
리아크의 입에서 거친 숨을 흘러나왔다.
상태가 좋지 않은 건 오진 또한 마찬가지.
전신이 피범벅이 된 둘은 거리를 벌린 채 서로를 노려봤다.
“…하나만 물어보자, 애송이.”
리아크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쓰윽 닦으며 입을 열었다.
“말해봐.”
“베가님의 성역 안에서 싸웠을 때,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던 것도 흑천의 힘이었나?”
“그건… 아니야.”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던 오진이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죽음’의 공포를 딛고 일어날 수 있던 건 흑천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흑천에는 무슨 각성제처럼 공포를 지워주는 기능은 없었으니까.
“…그런가?”
잠시 침묵을 이어가던 리아크가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쉴 만큼 쉬었으면 다시 시작하지.”
“아니 방금 이게 쉰 거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리아크를 바라보는 오진.
리아크는 대답 대신 발을 박차며 오진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피 튀기는 공방이 이어지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후욱, 후욱!”
리아크와의 공방을 이어나가며 침착하게 그의 움직임을 살폈다.
예전에는 리아크가 보여주는 경이롭기까지 한 움직임과 마력의 운용들을 감히 따라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역전됐다.
‘기교 자체는 내가 우위야.’
리아크의 맹수 같은 움직임과 그가 지닌 성흔의 마력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피하기가 어려워.’
기교에서는 오진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힘과 스피드는 리아크 쪽이 월등했다.
‘조금만 더.’
흑천의 힘을 끌어올린다면, 어렵지 않게 리아크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리라.
“흐으.”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
쿠르륵, 쿠륵!
심장 안에 자리 잡은 검은 하늘이 자신을 풀어달라는 듯 거칠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또냐.’
지난번 천마와의 전투에서 개천을 사용한 이후, 종종 이렇게 흑천이 날뛰는 경우가 생겼다.
마치 자신을 풀어달라는 듯.
이 답답한 우리 속에서 꺼내달라는 듯.
난폭하게 요동치는 검은 하늘.
“…….”
오진은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굳이 개천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다.
열 번째 개화를 마친 흑천의 힘을 조금만 끌어 사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리아크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건방진 새끼가.”
“뭐라고?”
“아, 네 얘기 아냐.”
오진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했다.
검은 먹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직녀성의 별.
사납게 날뛰던 흑천의 기운이 마취총을 맞은 맹수처럼 얌전해졌다.
파츠츠츠츠!
오진의 몸에서 튀어 오른 푸른 스파크가 안개처럼 짙게 주변에 퍼졌다.
“…….”
리아크는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오진의 몸을 휘감은 뇌전을 바라봤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오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문고자리의 힘은 그가 ‘흑천’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는 무관한 힘이라는 것을.
권오진이라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해 낸 경지라는 것을.
‘네놈은….’
사실 물어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오진이라는 인간을 처음으로 그에게 각인시켜 줬던 성역에서의 전투.
수십 번의 죽음 속에서도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던 것은 흑천의 힘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참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아, 그래.
알고 있었다.
깨닫고 있었다.
속아왔다는 배신감에 그저 진실에서 눈을 돌린 채 외면했을 뿐이다.
“…애송이.”
역천의 별이기에 앞서.
흑천의 주인이기에 앞서.
그는 ‘오진’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까지 그가 지켜봐 왔던 그의 신념만큼은 거짓말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음 한 방으로 끝내지.”
푸른 뇌전의 격류가 휘몰아친다.
오진과 리아크의 몸이 한 줄기 벼락이 되어 뒤엉켰다.
쿠르르르릉!
굉음과 함께 가공할 힘이 주변을 휩쓸었다.
블랙홀이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처참히 일그러진 별빛의 대지.
“쿨럭! 크으….”
자욱하게 깔린 연기 사이로 걸어 나온 것은 오진이었다.
넝마가 된 오진은 의식을 잃은 듯 쓰러져 있는 리아크를 내려다봤다.
‘이겼다.’
본신의 힘을 끌어낸 성령을, 그것도 ‘북극성’의 성좌의 성령과 싸워 승리한 것이다.
“크으, 제길. 더럽게 아프네.”
물론 오진 또한 멀쩡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여기서 주저앉아 멈출 수는 없었다.
“베가….”
오진은 쓰러진 리아크를 지나쳐 베가의 신전으로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애송이.”
“……!”
오진은 리아크가 쓰러진 쪽으로 다급히 몸을 돌렸다.
바닥에 누워 등을 돌리고 있는 리아크의 뒷모습이 보였다.
리아크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베가 님을 부탁한다.”
오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너….”
무언가 말하려던 오진은 이내 피식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려 살짝 벌어진 신전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베가.”
공허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텅 비어 있는 신전 안.
뒤돌아선 채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은발의 여신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