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5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56화
3등분의 휴가 (2)
“날… 나눈다고?”
질척한 공포에 떨리는 목소리.
오진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방긋 미소 짓고 있는 이사벨라를 돌아봤다.
어째서일까.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눈빛에서 섬뜩하게 빛나는 송곳니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휴가가 3일이니까 각자 하루씩 나눠가자는 거지.”
“아.”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그런 뜻이리라.
“아니 뭐 팔다리를 잘라서 나눈다는 줄 알았냐?”
헛웃음을 흘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하은.
오진 또한 그녀를 따라 실소를 흘리며 이사벨라 쪽을 돌아봤다.
괜히 오해를 해서 미안하다고 하려고 했는데.
“…어머?”
아니 왜 ‘그런 좋은 방법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이 아가씨는.
“흐음. 팔이랑 다리를 나눈다면 어느 쪽을 가져야 좋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마 제발.
“크흠! 그럼 휴가 동안 하루씩 따로 보면 되는 건가?”
“그렇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갑자기 열받네?”
하은이 사납게 인상을 찌푸리며 오진의 옆구리를 꾸욱 꼬집었다.
“지가 뭐 카사노바도 아니고 매일 여자를 바꿔가며 놀아?”
“아아아아. 아파, 아파, 아파.”
오진이라는 어장 속에서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가 된 듯한 기분에 괜히 열이 뻗쳐 올랐다.
[그럼 순서는 어떻게 되는 게냐?]“음… 여기선 공평하게 제비뽑기로 할까?”
어차피 똑같이 하루씩 오진과 휴가를 즐기는 거면 순서는 크게 의미 없었다.
[그게 좋겠구나!]“그러면 제가 제비를 준비할게요.”
오진의 의사는 반영될 틈도 없이 세 명의 여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나보고 쉬라고 했던 거 아니었어?’
눈을 빛내며 제비를 뽑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자니 어딜 어떻게 봐도 ‘휴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진은 헛웃음을 흘리며 연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뭐, 이게 다 내 업보려니 해야지.’
하은 한 명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여인들에게까지 손을 뻗은 건 자신이지 않은가.
그녀들이 다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의 의무이리라.
“오키! 그럼 이렇게 가는 거다?”
[알겠느니라.]“네, 저도 좋아요.”
아무래도 제비뽑기가 다 끝난 모양.
오진은 세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첫날을 벨라랑, 두 번째 날은 베가랑, 그담 마지막 날은 나랑 있으면 돼.”
“각자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오진은 세 여인을 쭉 둘러보며 물었다.
이사벨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일 말씀드릴게요.”
[본녀도 나중에 알려주겠느니라.]“그래?”
어딜 갈 생각이기에 이리 뜸을 들이는 걸까.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오진은 이내 생각을 접었다.
‘어디면 어때.’
자신의 역할은 그녀들에게 만족할 수 있는 하루를 선물하는 것뿐이다.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부터 시작인 걸로!”
“엉.”
그렇게 단란한 저녁 식사 이후 오진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일찍 잠에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으음.”
뺨을 간질이는 듯한 감촉에 오진은 눈을 떴다.
“일어나셨나요?”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잠든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이사벨라의 얼굴.
잠기운에 취해있던 머리에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며 어제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휴가 1일 차는 이사벨라와 보내는 거였지.
“응. 지금 몇 시야?”
“아침 7시예요.”
“엥? 벌써?”
평소 새벽 4시쯤 일어나 빠지지 않고 새벽 트레이닝을 가는 오진에게 있어서는 꽤나 늦은 기상이었다.
“오늘은 푹 주무시라고 알람이랑 다 꺼뒀어요.”
“끄응. 그래?”
아무리 그래도 7시라니.
애초에 휴가 중에 트레이닝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손해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피로가 많이 누적되셔서 그래요.”
“하긴. 그렇게 잤는데도 아직 몸이 좀 찌뿌둥하긴 하네.”
“좀 더 주무실래요?”
“아니, 괜찮아.”
오진은 기지개를 켜며 이사벨라 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제야 그녀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포근한 베이지색 에이프런 차림의 이사벨라.
에이프런 안쪽에 속옷만 입는다거나, 아무것도 입지 않는 다거나 하는 상식을 벗어난 노출은 없었지만.
“오진 씨?”
“…….”
새색시와 같은 그녀의 옷차림은 오진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와 결혼을 한 게 아닐까, 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꿀꺽.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마른침.
노골적인 노출은 전혀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분위기만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불순한 욕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여보?”
“커헉.”
역시 눈치가 빠른 이사벨라답게 마구니로 가득 찬 오진의 머릿속을 가볍게 꿰뚫어 봤다.
그녀는 우아하게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걸 좋아하셨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헤헤. 저도 좋아요 여보.”
방긋 미소 지으며 오진에게 몸을 기대오는 이사벨라.
펑퍼짐한 스웨터와 그 위에 입은 에이프런으로도 감출 수 없는 묵직한 중량감이 오진을 살며시 압박했다.
“스, 슬슬 일어나자.”
다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손발이 찌그러질 정도로 오글거리는 이 상황을 막상 본인이 겪게 되니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지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아, 잠시만요.”
이사벨라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요염하게 핥으며 오진의 몸을 타듯 더욱 몸을 밀착해왔다.
열기를 띤 그녀의 눈빛을 보니 이사벨라가 뭘 원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조, 조금만 마실게요.”
꿀꺽.
입맛을 다시며 오진의 목덜미를 혀로 할짝대는 이사벨라.
미끌거리는 혀의 감촉과 함께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전율이 퍼졌다.
‘이건 어째 익숙해지지 않냐.’
그녀가 피를 빨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아찔한 쾌감은 피를 빨린 횟수가 이미 세 자릿수에 가까워졌음에도 영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하음.”
오진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아 넣은 채 입술을 오물거리는 이사벨라.
불법적인 약물을 흡입한 것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아. 정말… 오진 씨 피는 최고예요.”
다섯 모금 정도를 마신 이사벨라가 입을 떼며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덮었다.
종이컵 하나가 다 차지 않을 정도로 적은 양의 피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천국에 다녀온 것 같은 지고의 쾌감과 환희가 느껴졌다.
“그렇게 맛있어?”
“후훗. 그 어떤 극상의 요리도 오진 씨의 피에 비하면 음식물 쓰레기나 다름없어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뽀송뽀송한 손수건을 들어 목덜미에 묻은 침과 피를 닦아주는 이사벨라.
날카로운 송곳니에 뚫렸던 상처는 그녀가 입을 뗀 순간 바로 아물었다.
“그리고 맛도 맛이지만… 이거 보세요 오진 씨.”
갑자기 훌러덩 옷을 벗기 시작하는 이사벨라.
“자, 잠깐!”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두 봉우리와 그 첨단에 핀 연꽃에 오진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아무리 둘이 이미 몸을 섞은 사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 지나치게 과감한 게 아닌가?
“여기요, 여기.”
봉우리 위에 핀 연꽃을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오진의 뺨을 붙잡으며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을 가리키는 이사벨라.
그녀의 성흔을 보는 순간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거머리자리 성흔 옆에 새겨진 열 개의 획.
그리고.
그 옆에 반쯤 새겨진 열한 번째의 획이 눈에 들어왔다.
“서, 설마 11성에 도달한 거야?”
11성이라면 지금 현존하는 각성자를 모두 통틀어 다섯 명도 올라서지 못한 경지였다.
이사벨라는 나긋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11성이 된 건 아니에요.”
“그럼….”
“다만 이대로 계속 오진 씨의 피를 마시기만 한다면… 머지않아서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미 반 정도 새겨진 성흔을 보니 그녀의 말마따나 이사벨라가 11성에 도달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허.”
단순히 자신의 피를 마시는 것만으로 11성에 도달할 수 있다니.
오진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럼 빠는 피의 양을 좀 더 늘리는 게 좋지 않아?”
그녀가 한 번에 피를 빠는 양은 종이컵 한 잔이 살짝 안 될 정도.
그것도 매일 빠는 게 아니라 3~4일에 한 번 정도만 피를 빨았다.
횟수를 늘리건 한 번에 빠는 양을 늘리건 피를 제공하는 오진 입장에서는 그리 큰 부담이 되는 건 아니었다.
하루에 이사벨라가 흡혈해 가는 피보다 개인 트레이닝을 하면서 흘리는 피가 훨씬 더 많았으니까.
“그, 그건….”
말끝을 흐리며 슬며시 고개를 돌리는 이사벨라.
귓불까지 붉어진 뺨을 감추며 기어들어 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럴 순 있지만… 그러면 좀… 곤란해요.”
“난 괜찮아.”
“아, 아뇨. 오진 씨가 아니라… 제가요.”
그냥 피를 빨면 될 뿐인데 대체 뭐가 곤란할 게 있단 말인가?
“그… 오진 씨의 피를 빨면 흡혈 충동은 사라지지만… 그만큼 다른 충동이 커지거든요.”
“다른 충동? …아.”
얼굴을 붉힌 채 몸을 배배 꼬는 이사벨라의 모습에 그녀가 말한 ‘충동’이 어떤 충동인지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피를 더 빨 수는 있는데, 그러려면 성적 욕구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건가?’
확실히 그녀에게 피를 빨릴 때 느껴지는 쾌락을 생각하면 성적 욕구가 자극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걸로 11성에 빨리 도달할 수 있다면 흡혈량을 늘려봐도 좋을 것 같은데.”
그녀와 연인 사이가 아닌 것도 아니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몸을 섞는 것 정도로 막대한 힘을 거머쥘 수 있다면 하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저, 정말요? 그래도 괜찮은 거죠?”
이사벨라가 눈을 반짝이며 바짝 다가왔다.
오진은 이게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해야 할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 밖을 나가더니 입고 있는 에이프런과 스웨터를 벗고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들어온 이사벨라.
아니 뭐 굳이 옷까지 갈아입을 필요가 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찢어져도 괜찮은 옷으로 가져왔어요.”
“…옷이 찢어져?”
…왜?
“그럼 시작할게요.”
다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피를 빠는 이사벨라.
짜릿한 쾌감과 함께 피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하아.”
평소보다 3배는 되는 양의 피를 들이킨 이사벨라의 입술 사이로 달뜬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진 씨.”
사파이어처럼 파란색을 띠던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새빨간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
이사벨라는 입가에 묻은 핏물을 혀로 핥으며 가볍게 손을 튕겼다.
촤르르르르륵!
허공에 만들어진 핏빛 사슬이 오진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잠깐, 갑자기 왜 묶는….”
“묶는 게 아니에요.”
“엉?”
어딜 어떻게 봐도 사슬로 몸을 결박하는 게 아닌가.
오진이 뭔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이사벨라를 바라보자 그의 몸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몸 전체를 감싸듯 부드럽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몸을 구속하기보단, 몸을 보호하는 용도로 쓰인 듯한 사슬.
마치 사슬로 이뤄진 갑주를 입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사벨라는 핏빛으로 물든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자칫하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요.”
“…예?”
망가지다뇨?
뭐가 망가져요?
“잘 버텨주세요… 오진 씨.”
짙은 피비린내가 풍기는 미소와 함께 이사벨라가 몸을 겹쳐왔다.
그리고.
“커헉! 자, 잠깐! 잠깐만 멈춰봐!”
그녀가 말한 ‘망가질 수도’ 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