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6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61화
3등분의 휴가 (7)
별의 교접.
언뜻 들으면 뭔가 천문학에 쓰일 법한 용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진의를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
오진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베가를 바라봤다.
“여, 여기서 하자고? 지금?”
그래도 다른 두 여인에 비해 훨씬 소극적이었던 베가가 이런 제안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오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베가를 바라봤다.
첫 경험부터 야외 플레이라니.
손을 잡는 것만으로 얼굴을 붉혔던 베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정말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우, 우으.]베가는 귀까지 붉게 물들인 채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였다.
[그, 그대와 두 아이는 이미 그… 겨, 경험이 있지 않으냐.]하은과 이사벨라가 서슴없이 오진에게 다가가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오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렇긴 한데.”
연인 사이에 몸을 섞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의 거리만큼 몸의 거리 또한 중요한 법이니까.
베가는 슬쩍 고개를 돌리며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본녀만 경험이 없는 건… 조금 외, 외롭구나.]“…….”
베가를 바라보는 오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세상에 이런 미친.
이제껏 하은이나 이사벨라에게 꽤나 많은 유혹을 당해봤었지만, 이 정도로 가슴을 뒤흔드는 유혹은 또 처음이었다.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강속구만 줄기차게 받아내다가 갑작스럽게 변화구가 날아온 듯한 느낌이랄까.
‘제길.’
거칠어진 호흡.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하며 머리에 열이 확 끓어올랐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본녀를 바라보는 게냐…?]붉게 충혈된 오진의 눈을 보며 베가가 움찔 몸을 떨었다.
오진은 천천히 심호흡하며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필사적으로 식혔다.
지금 당장에라도 베가를 품고 싶었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래도 다른 성좌들이 오면 어떻게? 여기 그 미신 같은 것도 있는 장소라며.”
‘크리스마스 때 겨우살이 아래서 키스를 하면 행복해진다’급의 아무런 근거도 인과도 없는 허무맹랑한 미신이었지만.
실제로 이런 미신은 지구에도 꽤나 많은 사람이 믿고 따르고 있었다.
특정 스팟 같은 곳은 아예 관광 명소가 되어 매년 사람들이 바글바글할 정도.
‘물론 여기서 하는 건 키스 이상이지만.’
어쨌든 베가가 말한 것처럼 유명한 장소라면 중간에 다른 성좌들이 난입할 위험이 있었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아까 별빛 광장에서 연인과 오붓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성좌들을 봤었으니까.
확신에 차서 외치는 베가.
무슨 근거로 그리 확신에 차 있는지 의문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니.
[어… 그, 그러니까.]데굴데굴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던 베가가 짧게 숨을 들이켜고는 양팔을 넓게 펼쳤다.
우우우우우웅!
베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찬란한 은빛이 별의 무덤을 환히 밝혔다.
성역.
성좌만이 지닌 권능이 주변에 넓게 퍼졌다.
“서, 성역까지 쓴다고?”
오진은 당황한 눈으로 베가를 바라봤다.
아무리 율법의 제약이 없는 성소라고는 하나, 고작 별의 교접(?)을 하기 위해 성역까지 펼친다니.
호텔 방을 구하지 못했다고 호텔을 통째로 사버리는 급의 정신 나간 짓이지 않은가.
[하아, 하아. 이, 이걸로 아무도 못 들어올 것이니라.]성역을 펼친 직후라 그런지 호흡이 거칠어진 베가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오진을 돌아봤다.
굳어 움켜쥔 두 주먹이 뭔가 ‘이제 문제없느니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기는 한데.”
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베가를 바라봤다.
다른 성좌가 중간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고 괜히 물어봤나 싶었지만, 이미 성역을 펼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슬슬 참는 것도 한계였다.
“이리 와, 베가.”
[…아.]조심스럽게 베가의 손을 잡아끌었다.
맞잡은 베가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이 떨림 안에 깃든 감정이 기대감일지, 두려움일지는 오진도 알 수 없었지만.
‘처음일 테니까.’
무섭지 않도록 최대한 상냥하게 해주는 게 그녀를 위한 배려이리라.
“잠시만.”
오진은 주변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르르르륵.
흑천의 잔재들이 그의 손 위에 모여들었다.
비록 안에 깃들어 있던 기운이 모조리 빠져나간 빈 껍데기에 불과한 잔재였지만.
‘그래서 그런지 꽤 부드럽단 말이지.’
손바닥 위에 모인 흑천의 잔재를 손으로 가볍게 움켜쥐었다.
뭉글뭉글.
마치 솜뭉치를 손에 쥔 것처럼 부드러운 감각이 퍼졌다.
“여기 누워.”
오진은 흑천의 잔재를 둥그렇게 뭉쳐 간이침대를 만들었다.
베가의 손을 잡아 최대한 상냥하게 침대에 눕히려고 했을 때.
[저… 그, 나, 나의 아이야.]“응?”
베가가 사과처럼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되느니라.]“뭐라고?”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베가는 우물쭈물 말을 더듬으며 개미가 기어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 조금 더 거칠게… 해도 괘, 괜찮으니라.]“…….”
음.
이제 못 참겠다.
[꺄악!]오진은 거칠게 베가를 밀어 넘어트렸다.
* * *
별의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곳.
흑천의 잔재에 뒤덮인 공간에서 ‘별의 교접’이 끝난 후.
[…….]베가는 흑천의 잔재를 모아 만들어 놓은 간이침대에 기절하듯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새액, 새액.
나지막한 콧소리가 기분 좋게 오진의 귓가를 간질였다.
오진은 방금 전 있었던 뜨거운 별의 교접을 떠올리며 크흠, 침음을 흘렸다.
‘베가한테 그쪽 취향(?)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첫 경험에서까지 이 정도로 격렬하게 사랑을 요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정도면 별의 교접이 아니라 별의 충돌인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잠들어 있는 베가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을 때.
[우음. 나, 나의 아이야… 본녀가 잘못했느니라… 요, 용서해 주거라.]꿈속에서 아까 전에 있었던 별의 충동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베가는 달뜬 숨을 내쉬며 꼬물꼬물 몸을 뒤척였다.
“…누나가 이 일을 알면 난리를 피우겠네.”
아마 베가가 다시 신전의 문을 걸어 잠그고 틀어박힐 때까지 놀리지 않을까.
한참 놀림을 받고 울먹이는 베가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둘 사이에 있는 은밀한 밤일을 하은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베가가 일어날 때까지 좀 기다려 볼까.’
그 사이 별의 무덤을 좀 더 둘러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을 때.
“크윽!”
치이이익!
왼쪽 가슴에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퍼졌다.
뜨겁게 달군 인두로 살갗을 지지는 듯한 고통.
오진에게 있어서 낯선 고통은 아니었다.
이미 아홉 번이나 경험해본 고통이었으니까.
‘잠깐 이거 설마…?’
오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풀어 왼쪽 가슴을 내려다봤다.
“이런 미친.”
거문고자리의 성흔 옆에 선명하게 새겨진 열 번째 획.
열 번째 획이 새겨짐과 동시에 성흔의 마력이 전신에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지, 지금 나 10성이 된 거야?’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상황.
각성자 중에서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10성에 도달했다는 기쁨보다, 지금 이 상황 자체에 대해 황당함이 먼저 들었다.
방금 전에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베가와의 뜨거운 애정행각뿐.
‘아니,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아무리 베가가 거문고자리의 성좌라고 해도 그녀와 몸을 섞었다는 이유로 10성에 도달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오진은 혹시 이 ‘별의 무덤’이라는 공간에 뭔가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봤다.
‘사냥개자리의 성흔.’
전신의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린 채 스캔을 하듯 주변 공간을 살폈다.
쿠르르르륵.
거기에 더해 흑천의 구름까지 퍼트려 닥치는 대로 주변에 있는 것들을 흡수해 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니야.”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흑천의 잔재도, 어둠을 밝히고 있는 별들의 사체도.
모두 다 속이 훤히 비어있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이런 먹고 남은 새우 껍질 같은 기운으로 10성에 도달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지, 진짜… 베가랑 해서 10성에 도달한 거야?”
아니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오진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봐도, 솔직히 이것 말고는 10성에 도달할 수 있는 껀덕지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베가랑 연인이 되고 난 이후 갑작스럽게 거문고자리 성흔의 힘이 강해졌었지.”
전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베가와 연인이 된 이후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힘이 부쩍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원인이 진짜 베가와 연인이 됐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 베가가 말한 것처럼 성좌는 각성자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으니까.
‘흑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흑천이 열 번째 개화를 하며 풀려난 거문고자리의 기운 때문에 급격히 강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추측이 보기 좋게 빗나간 모양이었다.
“하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깊은 한숨.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여기까지 명확한 인과 관계가 성립된 마당에 계속해서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베가랑 가까워질 때마다… 거문고리자리 성흔의 힘이 강해지는 거야.’
그게 흑천의 영향인지 아니면 거문고자리의 성흔이 지닌 특수성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해봐야 하는데 자신 외에 흑천을 지니고 있는 건 천마밖에 없는 상황에 뭘 어떻게 확인한단 말인가.
‘심지어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지닌 각성자는 나 말고 없지.’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표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선 눈앞의 진실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럼 나는 베가랑 할 때마다 강해지는 거고….”
이사벨라의 경우는 오진의 피를 빨고 마음껏 그를 쥐어짤(?) 때마다 강해지게 된다는 것.
“아니 무슨 야설 설정이냐고 이게….”
오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