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6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66화
검은 별의 성좌 (2)
[마, 말도 안 되느니라!]베가가 기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검은 별의 성좌가 어찌 지구에 현신할 수 있단 말이냐?!]그것도 베가나 레굴루스처럼 의체 상태로 현신한 게 아닌, 본신의 모습으로 현신해 있었다.
물론 베가도 짧은 시간이나마 지구에서 본신의 모습으로 현신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북극성의 성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 성소에서 추방된 위성에 불과한 그들이 마경도 아닌 지구에서 본신의 모습으로 현신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정확히는.
불가능해야 했다.
“…저 모습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오진은 영상 너머로 보이는 해마자리 성좌의 모습을 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직접 마주한 것이 아님에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강렬한 위압감.
의체 상태로 현신해 있는 성좌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진정한 초월자만이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이었다.
“저희를 불러 모은 이유가 그럼 일본에 나타난 검은 별의 성좌 때문입니까?”
“정확히는 쿠로우시 조직에서 정식으로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그쪽에서 말한 건 오진 씨 한 명이었지만… 아무래도 오진 씨 혼자서는 힘든 일인 것 같아 우혁 씨와 하은 씨에게도 연락을 돌린 겁니다.”
한 부장의 말마따나, 오진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일단 알렌 씨나 리베카 씨 등 다른 칠성분들에게도 연락을 드렸지만… 다들 지금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셨다고 해서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한 게 이우혁과 하은이라는 건가.
오진은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의 힘으로 모을 수 있는 각성자는 이 정도가 한계겠지.’
오진의 활약으로 인해 한국 내에서 협회의 입지가 커졌다고는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에 국한된 얘기였다.
여러 이해가 얽힌 가운데 서로 다른 국가와 파벌에 묶여 있는 ‘칠성’을 불러 모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들을 긁어모아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을 테고.’
그냥 일반적인 마수 사태가 아닌, 검은 별의 성좌가 나타난 이상 최소 고위 각성자 이상의 전력이 투입되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하여 본녀의 아이에게 홀로 검은 별의 성좌의 일을 떠넘기다니! 무책임하기 짝이 없구나!]베가가 사납게 눈을 뜨며 한 부장을 노려봤다.
한 부장은 덩치에 맞지 않게 움찔 어깨를 떨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무, 물론 오진 씨에게만 이 일을 떠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협회와 오진 씨와의 계약 조건에 따르면 어떤 명령이나 지시도 내릴 수 없고요.”
베가의 눈치를 살피며 재빠르게 말을 잇는 한 부장.
“다만 일본 쪽에서 이런 영상과 함께 지원 요청이 왔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선택은 오진 자신의 몫이라는 건가.
“하아.”
오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본으로 가보죠.”
검은 별의 성좌가 지구에 현신했다는데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가만히 손을 빨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 하지만 나의 아이야!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니라!]“알고 있어.”
성좌는 그 근간 자체가 인간과는 다른 초월자였다.
거기에 더해 검은 별의 성좌는 ‘천마’의 힘까지 받은 존재.
이제까지 싸워왔던 적과는 말 그대로 격이 다른 존재였다.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놈이 무슨 짓을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해.”
무고한 희생을 줄이겠다는 영웅적인 각오 따위는 아니었다.
검은 별의 성좌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작스럽게 지구로 넘어왔을 리는 없다.
움직이기 시작한 건 검은 별의 성좌가 아니다.
‘놈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천마.
전생의 자신을 떠올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왜 그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검은 별의 성좌를 지구에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검은 별의 성좌의 현신에 그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허, 허나….]베가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무언가 반론을 펼치려다 말고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느니라.]어렵게 고개를 끄덕인 베가는 한 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영상을 틀어줄 수 있겠느냐?]“아, 예! 물론입니다!”
한 부장은 벌떡 일어나 빔 프로젝터의 리모콘을 손에 쥐었다.
곧 다시 재생되기 시작하는 영상.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딱히 다른 뭔가가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바닷가에 검은 균열이 열리고, 그 안에서 말머리를 한 기괴한 마수 무리와 함께 해마자리의 성좌가 걸어나 오는 모습만 찍혀 있을 뿐.
-흐음?
치지지지직!
영상의 마지막은 해마자리의 성좌, 안셀라두스가 카메라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끝났다.
“영상이 찍힌 건 언제입니까?”
영상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오진은 한 부장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3일 전 오후 2시경입니다. 이상한 마력 파동을 보고 받고 나간 쿠로우시의 조직원이 촬영했다더군요.”
“그 조직원은…?”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
안셀라두스가 고개를 돌린 직후 화면이 지직거리며 흔들린다 싶었더니 몰래 숨어서 촬영하던 도중 발각된 모양이었다.
“지난 3일 동안 다른 움직임은 없었습니까?”
“예. 일단 해안가 쪽 밖으로 벗어난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정확히 어디에 숨어 있는지 위치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더군요.”
영상에서 얼핏 보인 말머리 마수의 숫자만 해도 천 단위에 가까웠는데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라.
‘골치 아프게 됐네.’
차라리 본능에 따라 막무가내로 날뛴다면 모를까,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마수들은 상대하기 더 까다로웠다.
[잠깐 영상을 다시 뒤로 돌려보거라.]“아, 예.”
한 부장이 영상을 뒤로 돌렸다.
가늘게 눈을 뜬 채 영상을 바라보던 베가가 입을 열었다.
[다시.]“옙.”
[멈추거라.]“여, 여기서 말씀입니까?”
영상이 정지한 장면은 검은 균열 속에서 안셀라두스가 걸어 나온 직후.
모래사장에 말을 딛자 주변 바닷물들이 요동치는 장면이었다.
[이건….]뚫어지라 영상을 바라보고 있던 베가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성역(星域)이 없구나.]“성역이 없다니?”
[주변 바닷물들이 요동치는 것 말이니라. 성역의 영향이 아닌, 단순히 안셀라두스의 마력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니라.]“…그게 뭐 다른 거야?”
오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얘기를 듣고 있던 하은과 이우혁, 한 부장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여기 모인 이들 중에서 이해한 것은 베가를 제외하고 단 한 명.
[흐음. 그렇게 된 거군.]같은 성좌인 레굴루스뿐이었다.
[성좌가 완전히 본신의 힘으로 현신할 때는 의도적으로 없애지 않는 한 주변에 자연적으로 성역이 만들어지니라.]성역이란 성좌의 권능을 자유로이 펼칠 수 있는 영역.
일종의 아우라와 비슷한 존재였다.
물론 성역의 권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에 베가가 보여줬듯 몸에 두른 성역을 ‘펼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 베가가 지적하는 건 기본적으로 몸 주변에 둘려 있는 성역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그럼 성역이 없다는 건….”
[검은 별의 성좌 또한 완전히 본신의 힘으로 현신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라.]즉.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검은 별의 성좌 또한 율법의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라는 뜻인가.
“그럼 성좌라고 해도 맘만 먹으면 줘 팰 수 있다는 말이네?”
하은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물었다.
베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역이 없다고 해도 강력한 건 변함이 없지만… 성좌의 진짜 힘은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니라.]도저히 답도 없는 상대까지는 아니라는 건가.
“뭐… 어찌 됐든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겠네.”
오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검은 별의 성좌가 현신했다는 걸 안 이상, 여기서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일본에는 성소로 통하는 게이트가 없으니 바로 가는 건 힘들겠고.’
한 부장에게 비행기를 잡아달라고 부탁하려던 찰나.
“비행기를 따로 잡는 것보다, 발할라 길드 소유 전용기를 타고 가시는 게 빠를 겁니다.”
이우혁이 슬며시 손을 들어 올리며 제안했다.
“우혁 씨도 같이 가시는 겁니까?”
혈혈단신인 오진과 달리 이우혁은 한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길드장이었다.
딱 봐도 리턴은 없고 리스크만 있는 일에 묵묵히 참여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전 발할라 길드의 길드장이기에 앞서 성좌의 힘을 이어받은 각성자니까요.”
각성자.
최초의 균열이 열리고 마수가 전 세계를 뒤덮었을 당시 인류를 위해 무기를 쥔 선택받은 영웅들.
지금에 와서는 개인의 이해관계와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각성자가 대다수기에 반쯤은 기억 속에서 지워진 사실이었지만.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인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영웅이었다.
“대신, 발할라 길드의 전력까지 모두 투입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길드 전체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는 뜻인가.
‘혈육이라고 해서 다 같은 성격은 아닌가 보네.’
전승을 통해 엿볼 수 있던 이신혁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 쿠로우시 조직 쪽에도 곧 오진 씨가 도착할 거라고 얘기 전해두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혹시 필요한 장비나 물품이 있으면 협회에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필요한 물건이라.
‘딱히 없는데.’
김시후의 장비 정도라면 탐이 나긴 하지만.
지금 바로 요청한다고 해도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맞춤 제작이 아닌 기성품은 써도 큰 효과를 보긴 힘들 테고.
“누난 뭐 필요한 거 있어?”
“엉? 나?”
하은이 팔짱을 낀 채 고민에 잠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며, 면세점 담배?”
“…….”
오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하은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일단 집으로 가서 옷만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아니 왜! 면세점 담배가 뭐 어때서!”
“시끄러워.”
오진은 하은을 질질 끌며 집으로 향했다.
* * *
발할라 길드의 전용기를 타고 도착한 간사이 국제 공항.
전에 해마자리의 집행관, 쿠사나기 소스케와 싸운 이후 오랜만에 다시 온 오사카였다.
“오지나, 저긴가 봐.”
“어… 딱 봐도 그래 보이네.”
공항 밖으로 나가니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들이 양쪽으로 쫙 도열해 있었다.
가운데 바닥에 깔린 것은 레드카펫이 아닌 정체불명의 한자들이 휘갈겨 쓰여 있는 거대한 종이.
언뜻 보기로는 ‘충의’니 ‘의리’니 하는 한자들이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아, 제발.’
오진은 보기만 해도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수치스러운 광경에 흠칫 발걸음을 멈췄다.
“어? 오, 오셨다!”
쿠로우시 조직원 중 한 명이 오진을 발견했는지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그러자.
““오야붕을 뵙습니다!””
수백에 달하는 야쿠자들이 오진을 향해 깍듯이 머리를 숙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공항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오진을 향해 집중됐다.
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쿠로우시 조직원들을 바라봤다.
“…내가 너네 오야붕이라고?”
언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