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6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68화
검은 별의 성좌 (4)
“하하하! 설마 오진 동생이 성좌와 연인이 됐다니! 이거 상상도 못했구만!”
“…하아.”
쿵! 쿵!
등짝을 두드리는 손바닥.
오진은 썩은 고목 같은 표정으로 땅이 꺼지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던 사카키가 하은 쪽을 슬쩍 돌아보며 귓가에 속삭였다.
“자네 제수씨는 하은 양 아니었나?”
“아,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요.”
“허어. 설마 그럼 하은 양과 헤어진 건가?”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음?”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카키가 이내 알았다는 듯 손을 튕기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핫!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구만!”
“…이 얘기는 인제 그만하죠.”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베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끄흐윽… 오해… 오해이니라.]무릎 사이에 얼굴을 숨긴 채 흐느끼는 베가.
래굴루스와 알데바란 앞에서 시원하게 자폭한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다는 듯 데친 시금치처럼 풀이 죽어있었다.
[베, 베가 님에게 연인이라니.] [그것도 인간 연인….]레굴루스와 알데바란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리며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성좌들 사이에서 베가는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인간 연인이 생겼다는 소식은 꽤 충격적이었으리라.
‘일단 저 대로 둬야 하나.’
지금 가서 뭔 말을 한다고 해도 오히려 더 일만 커질 것이니라.
오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카키에게 다가갔다.
“슬슬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미안하네.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나.”
사카키의 안내를 받고 쿠로우시 조직의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전통 일본식 스타일로 만들어진 저택은 고급 료칸에 온 것처럼 어딘가 고상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럼 우선 식사부터 하지.”
“아뇨, 바로 검은 별의 성좌에 대한 얘기부터 하셔도….”
“무슨 일을 하든 배가 든든해야 할 것 아닌가.”
“으음. 알겠습니다.”
일단 사카키의 제안에 따라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자, 편한 자리에 앉게나!”
야쿠자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넓은 다다미방으로 안내받은 오진 일행은 각자 자리를 잡고 방석 위에 앉았다.
사카키는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봤으니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네만… 그건 일이 다 해결된 뒤에 마시도록 하세.”
“예.”
“흐흐. 대신 마력 순환에 도움이 되는 좋은 차를 얻었으니 그걸로 일단 목을 축이게나.”
사카키는 밖을 향해 차를 내오라 외쳤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며 기모노를 차려입은 한 여인이 들어왔다.
나이는 이제 갓 스무 살쯤 됐을까.
비단처럼 고운 흑발과 창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흰 피부를 지닌 청초한 분위기의 미녀였다.
‘사카키 씨의 아내인가?’
아니.
그렇다고 보기엔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다.
“차를 내왔습니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은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주전자로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렇게 한 명씩 돌며 오진의 차례가 왔을 때.
“권오진 씨 맞으신가요?”
기모노의 여인이 오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예. 맞습니다만.”
“전에는 제 못난 오라버니가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오라버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벌겋게 얼굴을 붉힌 코시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 요코! 이런 자리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오라버니는 가만히 있으세요.”
요코라 불린 여인은 차가운 눈으로 코시로를 노려봤다.
코시로는 움찔 어깨를 떨며 순식간에 쭈그리가 되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코시로 씨의 여동생이라면….”
“예. 전에 오진 씨가 해자마리의 집행관을 쓰러트려 주신 덕분에 독을 해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우아한 몸짓으로 오진을 향해 절을 했다
그냥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거라면 모를까, 절까지 할 줄은 생각 못 했던 오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했던 것뿐입니다.”
“오진 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자, 제 못난 오라버니가 더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아주신 은인입니다. 원래라면 따로 보답을 드려야 마땅하나… 죄송스럽게도 제가 지닌 것이라고는 이 볼품없는 몸뚱이뿐이네요.”
처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요코.
볼품없다고 하기에는 물기에 젖은 눈으로 슬며시 시선을 내리까는 그녀의 모습은 순간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필요하시다면 여기 계신 동안이라도 오진 씨의 뒷바라지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오진은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안 그래도 사카키가 영웅호색이니 뭐니 그렇고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마당에 냉큼 요코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뒷바라지가 필요한 처지도 아니고.
“그런….”
요코는 슬픈 눈으로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제 도움은… 필요 없으신 건가요?”
“감사 인사를 주신 것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하아. 네, 오진 씨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요코가 다시 한번 오진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음식이 부족한 게 있으시다면 편히 불러주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이런 극진한 대접이 영 익숙지 않은 오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찻잔을 모두 채운 후 밖으로 나가려던 요코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앉아 있는 코시로에게 다가갔다.
“셔츠가 구겨졌어요, 오라버니.”
“아, 응? 그, 그래?”
“정말… 칠칠치 못하다니까요.”
코시로의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은 요코가 코시로의 구겨진 셔츠를 손으로 펼쳤다.
코시로의 셔츠를 가다듬는 요코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고마워 요코.”
“후훗. 역시 오라버니는 제가 없으면 안 되네요.”
코시로의 뺨을 가볍게 꼬집은 요코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조심스러운 뒷걸음질로 밖으로 나간 요코가 미닫이문을 닫았다.
“으음. 뭔가 분위기가 남매치고는 전혀 딴판이네.”
하은은 가늘게 눈을 뜨며 옆에 앉은 오진을 돌아봤다.
오진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으며 날카롭게 물었다.
“쟤한테도 꼬리치면 안 된다?”
“아니 뭔 또 꼬리를 쳐.”
“흥.”
콧방귀를 뀌며 젓가락으로 감자조림을 집어 먹는 하은.
“와, 뭐야? 개맛있는데?”
“흐흐. 전부 요코가 만든 거라네. 코시로 놈이 복귀하고 나서 우리 조직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지.”
“으음.”
뭔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리는 하은.
그림으로 그린 듯한 전통 일본 미인상을 지닌 요코의 얼굴이 괜히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설마… 아니겠지?’
붕붕 고개를 저으며 애써 등골을 타로 퍼지는 불안감을 지워냈다.
“자, 후딱후딱 먹고 그 말 대가리 새끼 얘기나 합시다!”
하은은 하루빨리 일을 처리하고 일본을 떠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걱우걱 밥을 입 안에 넣었다.
* * *
그렇게 식사가 끝난 후.
사카키가 준비해준 마력 순환에 좋다는 차를 마시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들 영상은 봤나?”
“예, 봤습니다.”
“알데바란 님의 말씀에 따르면… 아무래도 검은 별의 성좌가 일본에 나타난 모양일세.”
검은 별의 성좌의 현신.
물론 완전한 상태의 현신은 아니라고는 하나, 어쨌든 인간과는 그 근본부터 격이 다른 초월자가 지구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것도 그의 부하로 보이는 마수 군단을 이끌고.
“해마 놈들이 어디 있는지는 지금 파악된 겁니까?”
“정확히 파악된 건 아니네만… 일단 놈들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장소가 있네.”
사카키가 품속에서 태블릿을 꺼내 지도 어플을 켰다.
“음? 표정이 왜 그러나?”
“…아뇨. 뭔가 사카키 씨라면 아날로그 지도를 쓸 것 같은 이미지였어서요.”
“하하. 요즘 시대에 그런 구닥다리 지도를 쓰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아직도 팩스가 현역으로 뛰고 있는 나라 사람이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여기 해안가에 있는 작은 마을 보이나?”
위성 사진으로 찍은 마을을 가리켰다.
다 합쳐서 200가구가 넘을까 싶은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놈들이 나타난 해안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네.”
“여기에 놈들이 숨어 있는 겁니까?”
“그건 아직 알 수 없네만… 이틀 전부터 이 마을에 식자재를 운반하는 차량이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됐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그렇다면.
“…이미 마을 전체가 당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우리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네.”
사카키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 마을부터 조사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예, 그렇게 하죠.”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된 이상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자마자 제대로 된 대접도 하지 못하고 미안하네만… 지금 바로 출발할 수 있겠나?”
“물론이죠.”
조금 더 천천히 정보를 모으며 조사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이상 어물쩍거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오진이라고 해도 성흔조차 가지지 못한 일반인들이 마수의 손에 학살당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지켜볼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었다.
“하하핫! 자네라면 그렇게 말해줄 거라 생각했네!”
사카키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일으켰다.
“밖에 차량은 이미 준비해 뒀네! 바로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오진 일행은 사카키의 뒤를 따라 저택 밖으로 향했다.
“버, 벌써 떠나시는 건가요?”
요코가 뒤따라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예, 여기서 죽치고 있어봤자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오시자마자 바로….”
“든든한 식사까지 대접받았으니 충분합니다.”
“후우.”
요코는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하은이 앞으로 나서며 낚아채듯 오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우리 오지니는 내가 챙길 테니깐 신경 끄시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요코를 노려보는 하은.
요코는 자신을 향하는 경계 어린 눈빛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예. 오진 씨의 아내분이시죠? 은인분을 잘 부탁드립니다.”
“엉? 으, 응. 근데 아직 결혼은 안 했는데?”
“후훗. 두 분의 모습을 보면 이미 금실 좋은 부부처럼 보이는데요, 뭘.”
요코는 방긋 미소 지으며 오진과 하은을 돌아봤다.
“그, 그래?”
요코가 오진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하은은 예상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뭐 잘 못 생각한 건가?’
그런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때.
“오라버니도 조심하세요.”
“응! 걱정하지 마!”
코시로에게 다가간 요코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옷깃을 잡았다.
“또 다쳐서 돌아오시면 안 돼요, 오라버니.”
“하하. 내가 어떤 성흔을 지니고 있는지 잊었어?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올 테니까 울지 마.”
코시로는 환하게 웃으며 요코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아….”
요코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코시로를 껴안았다.
“여, 역시 안 되겠어요! 가지 마세요, 오라버니!”
“가, 갑자기 왜 그래?”
“저도 그 영상을 봤는걸요! 그런 끔찍한 괴물들과 오라버니가 싸운다고 생각하면….”
“하하. 요코도 참.”
코시로는 못 말리겠다는 듯 요코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람을 지키는 일이잖아.”
“…오라버니.”
“오야붕이 다시 받아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 싸워야지. 안 그래 요코?”
“흐윽. 알겠어요.”
요코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코시로의 양 뺨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조심히 다가와요, 내 사랑.”
코시로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어?”
“뭐, 뭐야?”
사카키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진과 하은은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오, 오지나 쟤, 쟤들 남매 아니었어?”
“어…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찐하게 입술을 맞추는 모습은 어딜 어떻게 봐도 남녀 사이가 아닌 사랑하는 연인 사이처럼 보였다.
하은은 경악에 부릅뜬 눈으로 오진의 팔을 마구 잡아당겼다.
“오, 오지나! 이게 그 뭐, 뭐냐! 성진국의 문화라는 건가?!”
아니야.
“이걸 그래… 현관 합체! 현관 합체라고 부르는 거 맞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