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6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69화
검은 별의 성좌 (5)
“으음? 으하하하핫! 다들 당황하지 말게나! 코시로와 요코는 친남매 사이가 아니라네!”
“예?”
그건 또 뭔 소리란 말인가?
의문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니 사카키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사연이 좀 있어서 말일세.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어렸을 적부터 남매로 지내게 됐네.”
“그런가요.”
굳이 그 사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캐묻지는 않았다.
알아봤자 쓸모도 없을뿐더러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상황도 아니었다.
지금 오진이 해야 할 일리라고는 단 하나.
“…뭐? 꼬리를 쳐?”
“읏.”
움찔 떨리는 하은의 어깨.
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크흠, 헛기침을 흘렸다.
“이, 이럴 줄은 몰랐지~”
“하아. 하여간….”
“아니, 가진 건 제 몸뚱어리밖에 없다느니 그런 말을 하는데 어떻게 착각을 안 하라고!”
뭐.
솔직히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표현이기는 했다.
“가자.”
“끄응. 알았어.”
오진 일행은 쿠로우시 조직에서 준비한 차량에 탑승한 후 처음 해마자리의 성좌가 모습을 드러낸 해안가로 향했다.
포장도로를 벗어나고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펼쳐진 논밭과 벌레 소리만이 가득한 길을 따라 한적한 어촌에 도착했다.
“으.”
차에서 내리기 전, 하은은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200가구가 채 되지 않은 마을에 나타난 마수 무리.
심지어 그들을 이끄는 것은 천마의 힘을 이어받은 검은 별의 성좌였다.
국가 단위의 전력이 움직여도 싸울 수 있을까 말까 한 적인데 각성자조차 없는 일반인들이 어떤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됐을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가야지.”
하은은 깊게 호흡을 들이켜며 차 문을 열었다.
어차피 여기 남아 있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눈을 감아도 세상이 사라지지 않듯, 보기 싫다는 이유로 고개를 돌린다고 한들 이미 일어난 일이 바뀌지는 않는다.
“…….”
“…….”
다들 마을에 있어 났을 참사를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인가.
차에서 내려 작은 어촌 마을로 향하는 오진 일행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았다.
평소 왁자지껄 떠들기를 좋아하는 사카키와 코시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에는.
“어유, 어디서 오신 분들이유? 외지인들은 오랜만에 보는구먼.”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노인 한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진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든 바구니와 팔딱거리는 물고기들.
까무잡잡하게 탄 피부와 노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탄탄한 몸.
어딜 어떻게 봐도 시골에 사는 평범한 어민이었다.
“…엥? 뭐야?”
하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작은 어촌 마을.
오랜만에 마을을 방문한 외지인들이 신기하다는 듯 낡고 허름한 집들 사이로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카키 또한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어민에게 다가갔다.
“크흠! 쿠로우시에서 나왔소만….”
“쿠로우시? 허허, 재밌는 이름이구만유.”
“…설마 쿠로우시를 모르십니까?”
사카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어민을 바라봤다.
쿠로우시가 어딘가?
태생은 한낱 야쿠자 조직이었다고 해도 사카키와 코시로가 고위 각성자에 올라서면서 사실상 지금 일본을 통치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한 권력과 무력을 두루 갖춘 조직이 아닌가?
“으응? 어디 유명한 사람들이유? 허허. 우린 시골 사람이라 그런 거 잘 모르는디….”
만사태평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가로젓는 노인.
오진 일행은 서로를 돌아보며 실소를 내뱉었다.
“생각했던 거랑… 상황이 좀 다르네요.”
“아무래도 해마 놈들이 이 마을을 습격한 건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연락이 두절 됐다는 운반 차량은 뭐란 말인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만.”
“어유. 뭐, 내가 무식혀서 대답해 줄 수 있을랑가 모르겄네.”
“여기 일주일마다 오는 차량이 있지 않소?”
“으음? 아아! 어디서 왔나 했더니 그짝 회사에서 나온 거였슈?”
노인은 짧은 탄성을 내뱉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다소 사나운 눈빛으로 사카키를 노려봤다.
“아니 말도 없이 이틀이나 안 오면 우리들은 우짜라고 그랴? 응? 덕분에 잡아 놓은 생선들이 얼마나 죽은 줄 아슈?”
“…….”
“어쨌든 말도 없이 늦은 건 그짝 회사 책임이니께, 약속한 돈은 꼭 받아야겠슈!”
노인의 말을 보면 연락이 두절됐다는 차량에 대해서 마을 사람도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카키는 흥분한 노인을 진정시키며 차분히 말을 나눴다.
짧은 대화 끝에 얻은 정보는 이랬다.
1. 매주 정기적으로 와서 마을에 필요한 식자재와 물품을 전달하고 생선을 받아 가는 차량이 이번 주에 갑자기 오지 않았다는 것.
2. 담당자에게 전화해도 연락을 받지 않고, 회사에 물어봐도 알아본다고만 하고 아직까지 답변이 없었다는 것.
3. 지난 이틀 동안 마수는커녕 짐승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는 것.
“흐음… 그럼 그 말 대가리 놈들은 대체 어디 숨어 있는 거야?”
하은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일단 마을 주민들에게는 대피하라고 말해두겠네.”
사카키가 대표로 나서서 마을 주민들에게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처음에는 집을 두고 어딜 가냐고 따지던 마을 사람들은 차에서 우르르 내리는 쿠로우시 조직원들을 보고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평생 어업만 하며 살아온 촌민들인데 검은 양복을 쫙 빼입은 야쿠자들이 우르르 마을에 들이닥치니 얌전히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오야붕! 이 마을과 계약한 운송 회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래, 연락 두절된 차량 위치는 파악됐다냐?”
“아뇨. 그쪽 회사에서도 이틀간 찾아보고는 있는데 도통 연락이 닿지 않아서 실종신고를 한 거라고 합니다.”
그럼 회사에서 한 실종신고가 쿠로우시 조직까지 흘러들어 온 건가.
“끄응.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건지 모르겠군.”
사카키가 짧게 깎은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찌푸렸다.
오진은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베가에게 고갤 돌리며 물었다.
“베가, 검은 별의 기운 같은 건 안 느껴져?”
[흐음. 아까부터 본녀도 찾아보려고는 있지만… 딱히 불쾌한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는 않는구나.]“레굴루스 님은…?”
[끄응. 나도 모르겠군.]이우혁의 어깨 위에 꼿꼿이 선 채 날카롭게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레굴루스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으으으! 이 건방진 해마자식!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나와서 이 알데바란과 한판 붙어보란 말이다!]알데바란이 사카키의 어깨를 박차고 날아오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연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리 의체라고 해도 성좌가 셋이나 있는 데도 검은 별의 성좌의 기척도 못 느끼고 있다는 건.’
놈들이 아예 이 주변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흑막을 썼다거나.’
흑천의 힘을 이용해 기운을 숨겼다면 성좌들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쯧.”
오진은 가볍게 혀를 차며 사카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단 영상을 처음 찍은 해안가 쪽으로 가보죠.”
“알겠네.”
놈들이 마을을 습격한 게 아니라는 걸 안 이상, 계속 여기 죽치고 있어도 얻어낼 수 있는 건 없었다.
오진 일행은 다시 차에 탑승해서 지금은 처음 영상이 찍힌 해안가로 향했다.
거리는 대충 차로 15분 정도.
이쪽이 차량이 다니기 힘든 비포장도로라는 걸 생각하면 마을과 멀리 떨어진 장소는 아니었다.
“여기일세.”
“예.”
찰칵.
오진은 차에서 내린 후 사냥개자리를 활성화해 주변을 살폈다.
마치 한국 서해안에 온 것처럼 질척한 갯벌 위에 마치 오리발을 신고 땅을 내디딘 것처럼 넓직한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게 보였다.
철퍽.
“으아, 시불 뻘이 무슨 무릎까지 오네.”
오진을 따라 갯벌에 한 발 내디딘 하은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뻘에 잠긴 다리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뻘이 깊을 줄 알았다면 장화라도 챙겨왔겠거늘, 설마 갯벌까지 들어오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한 탓에 미처 챙길 겨를이 없었다.
“이상하네요.”
오진의 옆에서 함께 발자국을 살피고 있던 이우혁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상하다뇨?”
“여기 찍혀 있는 발자국들 있지 않습니까. 감추려고 한다거나 숨기려는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우혁은 선명하게 찍혀 있는 발자국을 가리켰다.
그의 말마따나, 전혀 숨길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당당한 발자국이었다.
가만히 이우혁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하은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이상할 것까지야 있나? 그냥 숫자가 드릅게 많아서 숨기길 포기한 거 아냐?”
“아뇨, 그랬다면 지금처럼 몸을 숨기고 있진 않겠죠.”
애초에 발자국을 숨길 생각 자체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쥐 죽은 채 숨어 있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곳과 고작 몇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마을조차 습격하지 않았으니까.
“…….”
등골을 타고 흐르는 질척한 불쾌감.
오진은 무릎까지 잠긴 뻘을 내려다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그때.
‘잠깐.’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사카키 씨. 전에 촬영했다는 영상 한 번 다시 볼 수 있습니까?”
요란스럽게 찍힌 마수들의 발자국을 가만히 지켜보던 오진이 사카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물론이네.”
“감사합니다.”
사카키에게서 태블릿을 받아낸 오진은 천천히 영상을 다시 살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해안가.
검은 균열이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말머리 마수들.
그리고 해마자리의 성좌, 안셀라두스까지.
마수와 성좌만 없을 뿐 지금 오진이 서 있는 위치와 똑같은 구도로 찍힌 영상이었지만.
딱 한 가지.
영상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빌어먹을.”
오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거친 욕설.
“왜 그러나?”
“없습니다.”
“없다니 뭐가….”
“갯벌이요.”
무릎까지 발이 푹푹 빠지는 질척한 갯벌.
하지만 영상에서 보이는 것은 갯벌이 아닌 새하얀 모래사장이었다.
조수간만의 차라고 하기에는 지금 시간은 영상이 촬영된 시간과 고작해야 30분도 차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쿠르르르르르륵!
질척이던 뻘이 마치 파도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