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7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71화
검은 별의 성좌 (7)
타오르는 푸른 뇌전.
점멸하는 빛무리와 함께 가공할 위력의 뇌전이 늪 전체에 퍼졌다.
뻘 위로 기어 나오고 있던 해마들이 눈을 까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었고,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던 뻘이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쿠르르르륵.
온천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진흙.
진흙이 둥그렇게 융기하며 거대한 형체 하나가 서서히 솟구쳐 올라왔다.
주변에 눈을 까뒤집으며 나자빠진 해마들과 비슷한 생김새였지만, 흘러나오는 기운 자체는 격이 달랐다.
나타나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거대한 존재감.
심연처럼 깊게 가라앉아 있는 푸른 눈동자가 오진을 응시했다.
[과연, 그분의 말씀대로군.]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해마.
[…안셀라두스.]베가는 진흙 속에서 기어 나온 존재를 바라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안셀라두스는 베가를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신전 밖으로 나온 모습은 처음 보는군, 북극성의 성좌여.] […지구에는 무슨 목적으로 온 게냐?] [목적이라.]안셀라두스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낄낄 어깨를 들썩였다.
[저희가 여기에 온 이유야 하나뿐이지 않겠는가.]질척한 진흙과도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세계에서 네놈들의 역겨운 성흔을 모조리 지워버릴 것이다.] [지워버린다니 그게 무슨….] [전에 성좌들 사이에 이런 비유가 있었지. 성흔은 씨앗이며, 인간은 그 씨앗을 싹틔울 토양이라고.]그렇다면.
[모든 토양이 말라 비틀어 죽어버린다면… 씨앗이 싹틀 일도 없지 않겠는가?]즉.
모든 인간을 죽여 ‘각성자’라는 존재가 태어날 가능성을 지워버리겠다는 건가.
[이 노옴!]베가는 사납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일갈했다.
[아무리 흑천의 힘에 손을 댔다고 한들, 그대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게냐!]과거 성소에서 추방당했다고 해도, 그들의 본질은 엄연히 ‘성좌’였다.
[이 세계의 운명을 수호하고, 이 별 위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성좌의 본분이라는 것을 그대 또한 모르지 않을 터!] [성좌의 본분이라….]같잖은 말을 들었다는 듯 안셀라두스는 실소를 흘렸다.
[그런 우리를 추방한 건 네놈들의 짓 아닌가?] [그건….]베가의 말문이 순간 막혔다.
그들이 흑천의 힘을 손에 넣고 ‘흑성’이 되기 전, 성소에서 그들을 추방하여 ‘위성’으로 만든 건 지금 성좌들이었으니까.
물론 신전 안에만 줄곧 틀어박혀 있던 베가는 무슨 이유로 안셀라두스가 성소에서 추방당하게 됐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과거 성좌들이 그를 성소 밖으로 추방해 위성으로 만든 것만큼은 확실했다.
[헛소리!]그때,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레굴루스의 입에서 사나운 일갈이 터져나왔다.
[네놈이 왜 성소에서 추방당했는지 잊어버린 거냐?] [그건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 [하, 필요? 네 성흔을 이어받은 아이들의 몸을 녹여 성흔의 마력을 채우는 용액으로 만들어버린 놈이 무슨 궤변을 늘어놓는가!]분노한 사자의 포효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인간을 녹여 용액으로 만들었다, 라.’
오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과거 해마자리의 집행관이었던 소스케를 떠올렸다.
분명 소스케 또한 각성자의 육체를 녹여 자신의 힘을 채우는 용액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 원조가 설마 성좌였다니.
[작물을 기르는데 있어서 비옥한 토양을 만들기 위해 비료를 사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작물이라니…! 그대는 아이들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게냐!]베가의 몸 주위로 푸른 스파크가 타올랐다.
하지만 북극성의 성좌의 분노 앞에서도 안셀라두스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네 이노옴!]“그만.”
오진은 분노에 찬 채 안셀라두스에게 달려들려는 베가를 붙잡았다.
“어차피 저놈이랑 얘기한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어.”
놈의 목적을 안 이상,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오진은 창을 움켜쥔 채 안셀라두스를 향해 겨눴다.
“야, 말 대가리.”
[…성좌의 앞에서 건방지군.]“개소리 지껄이다가 추방당한 놈이 성좌는 무슨 성좌.”
피식 실소를 흘리며 성흔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푸른 뇌전이 오진의 몸을 뒤덮으며 사납게 타올랐다.
“괜히 피곤하게 입 털지 말고.”
전신을 뒤덮으며 타올랐던 푸른 뇌전이 창끝에 모여들었다.
창대를 움켜쥔 팔을 뒤로 젖히고.
“서로 할 일 하자고.”
투척.
촤아아아악!
질척한 뻘을 가르며 창이 쏘아졌다.
[흥, 북극성의 아이답게 시건방진 놈이로군.]불쾌하다는 듯 눈을 찌푸린 안셀라두스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쿠르르르르륵!
바닥의 진흙이 솟구쳐 오르며 벽처럼 그의 앞을 막았다.
창이 격돌하며 질척한 진흙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아직도 율법에 제약에 묶여 있는 비참한 별의 부산물들아!]쿠르르릉!
질척한 진흙이 소용돌이치며 안셀라두스를 향해 모여들었다.
안셀라두스는 공중에 떠올라 있는 세 명의 성좌들을 노려보며 포효하듯 외쳤다.
[제약에 묶인 채 그대들의 아이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모습을 구경하거라!]촤아아악!
안셀라두스가 질척한 진흙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오지나!”
하은이 손가락 사이에 낀 연초를 안셀라두스를 향해 겨눴다.
허리까지 차오른 진흙이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했지만.
“타올라라.”
어차피 그녀의 가장 큰 힘은 원거리에서 쏟아내는 무지막지한 위력의 화력.
허리까지 차오른 진흙이 불편하다고 한들, 그녀의 힘이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화르르르르륵!
허공에 만들어진 것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룡.
벗어 던진 안대 안으로 용의 눈동자가 화룡을 응시했다.
용신의 영혼 깃들어 있는 불꽃은 그녀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건지 사납게 몸을 뒤틀고 있었다.
처음 이 힘을 각성했을 때만 해도 날뛰는 화룡의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지만.
“쓰읍. 가만히 있어 새끼야.”
하은이 위협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자 화룡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으며 오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안셀라두스를 연초 끝으로 가리켰다.
“저 말 대가리 새끼 보이지?”
화르르륵!
“통째로 바짝 태워버려.”
나지막한 명령과 함께 수십 미터에 달하는 화룡이 거대한 입을 벌리며 날아갔다.
가공할 열기와 함께 주변의 진흙들이 말라붙었다.
[크읏.]하은이 만들어낸 불꽃은 규격 외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성좌’조차 발걸음을 멈춘 채 다급히 방어 자세를 취할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히이이이잉!]기괴한 괴성과 함께 안셀라두스의 몸에서 검은빛 아우라가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바닷물이 요동치더니 떠오르더니 안셀라두스의 몸을 휘감았다.
치이이이이익!
바닷물과 화룡이 격돌하면 만들어진 자욱한 안개가 순식간에 수백 미터의 대지를 뒤덮었다.
[가거라, 사자의 아이여!]“예!”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소용돌이치며 한 자루의 검 끝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자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검기로 이뤄진 거센 돌풍이 안셀라두스를 향해 몰아쳤다.
[히이잉!]사납게 몰아치는 돌풍에 안셀라두스가 주춤, 주춤 뒷걸음질 쳤다.
“코시로! 엄호를 부탁한다!”
“예, 오야붕!”
사카키의 피부가 붉은빛으로 물들며 전신의 근육이 팽창했다.
“후욱, 후욱, 후욱!”
성난 황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던 사카키가 허리까지 차오른 질척한 진흙을 가르며 돌진했다.
쿠구구구구궁!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뒤흔들리는 대지.
“부서져라!”
사카키는 거칠게 움켜쥔 주먹을 안셀라두스를 향해 휘둘렀다.
쿠우우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안셀라두스의 몸이 뒤로 쭈욱 밀려났다.
[이놈들이…!]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린 안셀라두스가 팔을 휘둘렀지만, 곧 반투명한 방패가 날아와 그의 팔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충전.”
오진은 뒤로 밀려나는 안셀라두스를 향해 달려가며 앞으로 팔을 뻗었다.
진흙에 처박혀 있던 단탈리안이 공중으로 떠올라 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충전, 충전, 충전.”
파직, 파지지직!
푸른 뇌전을 응축하고, 또 응축한다.
예전에는 다섯 번의 충전만으로도 마력 회로가 타버릴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지만.
‘열 번, 열 한 번, 열두 번.’
거문고자리의 성흔이 10성에 올라선 지금.
무려 열두 번에 걸쳐 뇌전을 응축했음에도 마력 회로는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다.
지금 같아서는 스무 번 이상의 충전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이상하면 단탈리안이 못 버티겠는데.’
손에 쥔 창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마치 ‘적당히 해라 제발!’이라고 절규하는 것 같달까.
“쯧.”
오진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안셀라두스를 향해 발을 박찼다.
뇌흔 밟기를 통해 허공을 질주하며 안셀라두스의 가슴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안셀라두스가 반사적으로 팔을 교차했다.
사방에서 솟구쳐 오른 바닷물이 뒤엉키며 안셀라두스의 가슴을 보호했다.
‘모래시계자리의 성흔.’
순간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흘러가는 세계.
안셀라두스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물의 벽.
급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인지 벽의 두께는 어떤 곳은 두껍고, 또 어떤 곳은 얇게 만들어져 있었다.
“쓰읍.”
모래시계자리의 성흔와 동시에 나침반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했다.
창끝이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스르륵 움직이며 가장 얇은 벽을 노렸다.
“보였다, 빈틈의 실.”
파지지직!
물의 벽을 꿰뚫으며 파고든 창이 안셀라두스의 심장을 찔렀다.
응축되어 있던 뇌전이 한 번에 풀려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안셀라두스가 수십 미터 뒤로 튕겨 나며 바닥을 굴렀다.
“나이스, 우리 오지니!”
하은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오진을 향해 엄지를 추켜올렸다.
“…….”
하지만 환호성을 내지르는 하은과 달리, 오진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심장을 꿰뚫은 감각이 없어.’
물의 벽을 뚫고 심장을 찌르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손에 남은 감촉은 단단한 암석을 창으로 찌른 것 같은 뭉툭한 감촉뿐이었다.
[과연… 건방을 떨 만큼의 실력은 있군.]뒤로 튕겨 나가며 쓰러졌던 안셀라두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려 열두 번의 응축을 거듭한 뇌전을 한 번에 해방했음에도.
안셀라두스의 가슴을 보호하고 있는 비늘이 살짝 쪼개졌을 뿐 별다른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허나, 그래봤자 하찮은 필멸자의 발버둥일 뿐.]안셀라두스가 사납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팔을 뻗었다.
쿠르르르륵!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며 그 안에서 기다란 삼지창이 솟구쳐 올랐다.
[성좌가 초월자라 불리는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