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7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73화
검은 별의 성좌 (9)
콰드드득!
검은 뇌전에 휩싸인 주먹이 안셀라두스의 가슴에 닿자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성역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움켜쥔 주먹이 심장을 꿰뚫으며 안셀라두스의 몸을 관통했다.
[이, 게… 무슨…?]안셀라두스는 경악에 부릅뜬 눈으로 오진을 내려다봤다.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오진의 모습이 보였다.
[마, 말도 안….]쿨럭.
안셀라두스의 입에서 마치 밀가루 포대가 찢어진 것처럼 검은 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성좌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피와 살이 아닌 성흔의 마력.
그 성흔의 마력이 지금 검은 뇌전에 처참히 찢어발겨져 밖으로 토해지고 있었다.
오진이 뭘 했는지 정확히 본 사람은 없었다.
검은 뇌전이 번뜩였던 건 초를 쪼갠 찰나, 그의 주먹이 안셀라두스의 가슴에 닿기 직전이었으니까.
이우혁과 사카키, 코시로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도.
그나마 가장 가까이에 있던 베가 정도가 볼 수 있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우연 따위가 아니었다.
1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거짓말.
결정적인 순간, 치명적인 한 방을 위해 짜여진 사기극.
오진이 성좌의 축복 없이는 자신의 ‘성역’을 뚫을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던 안셀라두스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믿게 된’ 안셀라두스의 입장에서 검은 뇌전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쿨럭!]안셀라두스의 입술 사이로 검은 가루가 계속해서 쏟아져나왔다.
10분여의 치열한 혈전 속에서도 굳게 대지를 딛고 있던 다리가 휘청거리며 꺾였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쓰러진 안셀라두스의 손에서 삼지창이 떨어졌다.
“하아, 하아.”
심장이 꿰뚫린 안셀라두스 정도는 아니라도, 오진의 상태 또한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배를 파고든 삼지창에 내부 장기들이 엉망진창으로 짓이겨졌으니까.
각성자의 초인적인 육체가 아니었다면 배를 꿰뚫린 순간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상처였다.
사실 마지막 공격도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으나.
‘안셀라두스를 속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 했으니까.’
안셀라두스는 오만하고, 거만하지만 전투에 있어서는 꽤나 치밀한 면모를 보여줬다.
아니, 정확히는 치졸하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 덫을 놓아 오진 일행을 끌어들인 것도, 부하들을 미끼 삼아 늪에 빠트리려고 한 것도 그런 치졸함의 일환이었다.
10분의 제한 시간이 걸린 전투에서도 입으로는 진정한 초월자의 힘을 보여주니 어쩌니 떠들면서도 성좌의 축복이 꺼질 때까지 최대한 방어에 집중하며 시간을 끄는 모습을 보여줬다.
거짓말이란 원래 진실 사이에 숨어 있을 때가 가장 날카로운 법.
안셀라두스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서는 오진의 입장에서도 치명상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창에 꿰뚫린 오진의 배를 바라보며 베가가 울상을 지었다.
“…괜찮아.”
상처가 심하긴 했지만 수력 친화 스킬이 있는 이상 회복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정도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톤 단위의 물이 필요하겠지만 근처에 바다가 있으니 물이 부족할 리는 없었으니까.
‘문제는 바다까지 거리가 꽤 떨어져 버렸다는 건데.’
최대한 늪을 피해 움직이느라 어쩔 수 없이 내륙 쪽으로 깊게 들어와 버렸다.
그래도 안셀라두스만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면 가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지만.
[크으으, 네, 노옴…!]부릅뜬 눈으로 오진을 노려보는 안셀라두스.
심장이 꿰뚫린 자리를 손으로 압박하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네놈이 어, 어떻게 그분의 힘을…!]“…….”
자신이 흑천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천마가 알려주지 않았던 건가.
‘하긴.’
자신 또한 천마와 같은, 아니 오히려 더욱 완성된 형태의 흑천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들킨다면 이제껏 흑천의 힘으로 검은 별의 성좌를 다스리고 있던 천마 입장이 꽤 난처해지리라.
[크윽… 빌어, 먹을…!]안셀라두스는 가슴을 움켜쥔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성흔의 마력을 집중해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도 마음처럼 회복이 되지 않았다.
“쉽게 치료하긴 힘들 거야.”
흑뢰에는 성흔의 마력을 와해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피륙이 아닌 성흔의 마력으로 육체가 이뤄진 성좌에게는 그보다 더 치명적인 공격은 찾기 어려우리라.
[건방… 떨지, 마라!]안셀라두스는 사납게 이를 갈며 살기 어린 눈빛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이, 분노가 심장이 꿰뚫린 격통을 억누르며 타올랐다.
비단 자신에게 이토록 큰 상처를 입힌 존재가 ‘인간’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 오만한 별의 찌꺼기가…!]과거를 떠올린다.
차갑고 경멸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성좌들.
그는 성좌들을 향해 호소했다.
간절하게 울부짖었다.
-왜, 왜 이해를 못 하는 거냐! 이 방법만이 멸망을 막을 수 있단 말이다!
모든 인간이 성흔을 받아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성흔을 받아들 수 있는 인간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서로 차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재능 있는 아이에게 힘을 몰아줘야 한다고, 그 방법만이 예언된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희생 없이는 세계를 구할 방법은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해마자리의 성좌, 안셀라두스.
그런 그의 신념은 다른 성좌들에 의해 처참히 짓밟혔다.
그 어떤 희생조차 감수하지 않고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머저리들에게.
-그대를 성소에서 추방한다.
그렇게 그는 별들의 세계에서 추방됐다.
‘위성’이라는 모욕적인 칭호와 함께.
그렇기에.
[네놈에게만은…!]그를 추방했던 오만한 별들의 정점.
가장 찬란히 빛나는 별이라 불리는 북극성의 아이에게만은.
패배할 수 없었다.
우우우우웅!
검은 빛무리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크아아아, 아아!]안셀라두스의 고통에 찬 절규가 울려 퍼졌다.
쩌적, 쩌저적!
그의 몸 곳곳이 유리 조각처럼 갈라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저건….”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안셀라두스의 몸 주변으로 넓게 펼쳐지는 검은 빛무리.
그건 오진도 몇 번 본 기억이 있는 장면이었다.
[서, 성역을 펼치고 있느니라!]성역 전개.
몸 주변에 둘린 극히 미량의 성역이 아닌, 성좌가 지닌 권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역(星域)’.
일전에 천마를 막기 위해 베가가 펼쳤던 것과 같은 영역이었다.
[도, 도망치거라 나의 아이야!]베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성좌에게 있어 ‘성역’을 펼치는 일은 율법의 제약이 없는 성소 안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쉽지 않은 만큼, 그 고유의 영역 안에서 성좌의 힘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강대했다.
[흐, 흐흐. 이미 도망치긴 늦었다!]안셀라두스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양팔을 넓게 펼쳤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무리가 오진 주변을 크게 둘러쌌다.
[허억, 허억, 허억!]상대적으로 율법의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안셀라두스에게도 성역을 전개하는 건 벅찬 일이었는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 경외하라 인간이여.]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성역 안에 오진을 가두는 데 성공했다.
쿠구구구궁!
대지가 진동하며 검은 빛무리 속에서 폭발하듯 물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해마자리의 성역, ‘용궁’이니라.]발목까지 차올랐던 물이 순식간에 허리, 가슴을 지나 오진의 몸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육지였던 장소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속으로 뒤바뀌었다.
물리 법칙을 아득하게 초월한 기적.
성좌가 펼친 성역 안에 갇히게 된 오진의 표정은.
[…뭐냐?]안셀라두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명 ‘용궁’ 안에 갇혀 숨도 쉬지 못한 채 고통에 몸부림쳐야 마땅하건만.
물속에 갇힌 오진의 표정은 아주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태연하기만 할까.
비릿한 조소마저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성역 안에 갇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의 태평한 모습에 안셀라두스는 눈을 찌푸렸다.
[아아, 이제 들리냐?]물속에서 몇 번 입을 뻐끔거리던 오진이 이내 요령을 알았다는 듯 성흔의 마력을 이용해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이야… 이것까지 예상했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오진은 느긋하게 ‘용궁’ 안을 둘러봤다.
용궁이라는 이름답게 주변에는 성흔의 마력으로 이뤄진 거대한 신전이 솟아 있었고, 신전에서 나온 셀 수 없는 숫자의 해마 무리들이 무기를 쥔 채 오진을 둘러싸고 있었다.
물속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움직임은 육지에서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도로 날렵해 보였지만.
[하필이면 골라도 물속을 고르냐.] [그게 무슨 말이냐?] [너 소스케라고 기억해?] […알고 있다.]비록 지금은 죽었지만, 그의 성흔을 이어받은 아이들 중 나름 괜찮은 재능을 지니고 있던 아이였다.
[걔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 [모른다.]집행관이라 불리며 다른 아이들을 이끌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제약’이 약해지기 전이었기에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직 자신의 배를 관통하고 있는 안셀라두스의 창을 잡아 거칠게 비틀어 뽑았다.
창과 함께 짓이겨진 그의 장기들이 뽑혀 나와 물속에 흩어졌다.
[지금 무슨 짓이냐?]안셀라두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오진을 바라봤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창을 뽑아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마당에 무슨 나무에 박힌 못을 빼내듯 거칠게 창을 잡아뽑다니.
[싸우기도 전에 죽고 싶은 거… 어?]오진을 바라보던 안셀라두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배에 뚫려 있던 주먹만 한 크기의 구멍이 순식간에 메꿔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배에 난 상처만이 아니라 그의 몸을 뒤덮고 있던 큰 상처부터 자잘한 생채기까지 모조리 사라지고 있었다.
[뭐, 몰라도 괜찮아.]오진은 낄낄 어깨를 들썩이며 사납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제부터 알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