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7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75화
막간 – 뱀의 주인(1)
안셀라두스가 쓰러진 후.
널브러져 있던 오진 일행은 멀리 떨어져서 대기 중이던 쿠로우시 조직원들에 의해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다.
성좌의 축복을 받아들인 후유증과 상처로 인해 이우혁과 사카키 료는 집중 치료실에 들어갔고, 오진 또한 수력 친화 스킬로 미처 회복하지 못한 내상으로 인해 한동안 병원에서 요양 생활을 하게 됐다.
하은과 코시로는 성흔의 마력이 바닥날 때까지 쥐어 짜낸 터라 일시적인 탈진 상태에 빠졌을 뿐 굳이 입원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각각 오진과 사카키의 간병을 위해 병원에 남았다.
참고로 이우혁은 소식을 듣고 바로 한국에서 날아온 발할라 길드 부길드장, 김선영이 간병을 맡았다.
그렇게 3일.
수력 친화 스킬 덕분에 다른 두 사람보다 먼저 몸을 회복한 오진은 집중 치료실에서 나와 안셀라두스와 격전을 치렀던 바닷가로 나왔다.
“아니 뭐 예수도 아니고 3일 만에 이렇게 빨빨 돌아 댕겨도 되는 거야?”
하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오진에게 다가왔다.
일단 나간다고 하기에 따라오긴 했지만, 고작 3일 만에 치료실을 박차고 나온 오진이 영 마땅찮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있었다.
“괜찮다니까 계속 그러네. 오히려 전보다 더 몸이 좋아졌다니깐?”
흑천의 열한 번째 개화하며 더욱 힘이 강해졌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염병하네. 아까 잘 때 좀 만져봤더니 제대로 서지도 않더구만.”
“뭐가.”
대체 뭐가 안 선다는 거야.
오진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하은을 바라보자, 그녀는 찡긋 윙크를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알면서~”
“아니 씹.”
사람 자는데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 누나는.
“뭐, 그건 그렇고. 여긴 또 왜 온 거야?”
“어떻게 됐나 좀 궁금해서.”
오진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안셀라두스와 격전을 치렀던 바닷가를 돌아봤다.
“…원래 여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이 안 들 정도네.”
격전이 치러졌던 바닷가는 처음 봤던 모습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무슨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수십 미터의 구덩이가 곳곳에 나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녹아서 눌어붙어 있었고, 또 어떤 곳은 거대한 해안 동굴이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봐도 좀 어이없긴 해.”
하은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성좌가 진짜 더럽게 세긴 하더라.”
“뭐, 성좌니깐.”
“그런 성좌를 이번에 네가 후루룩짭짭 했다는 거지?”
표현 한번 참 고상하시네요 누님.
“하아.”
하은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궜다.
이번에도 자신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자책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누나랑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애초에 놈이 성역을 전개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우혁과 사카키 료, 코시로 등 다른 사람들이 안셀라두스를 몰아붙이지 못했다면 이토록 쉽게 성좌와 싸워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리라.
“뭐야, 누나 위로해 주는 거야?”
“그게 아니라….”
“이거 우리 오지니 안 되겠네.”
하은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바짝 몸을 붙였다.
손을 뻗어 오진의 탄탄한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마음 착한 오지니한테는 누나가 잔뜩 상을 줘야겠는걸~?”
“아니 어디서 또 그런 저질스러운 대사를 주워들은 거야?”
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하은을 바라봤다.
그래도 방금 그 말로 좀 기분이 풀린 걸까, 하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옅어진 게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 그 성좌 놈을 먹고 흑천이 또 강해졌다고?”
“엉.”
“…막 힘이 주체가 안 되고 그런 건 아니지?”
“딱히 그런 건 없던데. 뭐, 전에 비해서는 다루기 좀 까다로운 건 있지만.”
그건 앞으로 차차 거문고자리의 성흔이 강해진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다.
거문고자리의 성흔에는 흑천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잠깐, 근데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힘을 키우려면….’
생각을 이어가던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왜? 머리 아파?”
“…아냐.”
“거봐 새끼야. 그냥 얌전히 병원에 처박혀 있으라고 내가 했지?”
“…….”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베가와 ‘별의 교접’을 해야 한다는 걸.
차라리 그냥 아직 내상의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둘러대는 것이 마음 편하리라.
“일단 새로 얻은 특성만 시험해 보고 돌아갈게.”
“그… 성역 전개인가 뭔가 그거?”
“응.”
성역 전개.
이번에 십일성 개화를 하며 새롭게 얻은 특성이었다.
처음 얻었을 당시에는 이신혁의 기억이 바로 전승되느라 자세히 설명을 읽을 여유가 없었지만, 나중에 집중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특성의 설명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흡수한 성흔의 성역을 전개할 수 있다, 라.’
설명은 간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성역(星易)’이라는 것은 성좌만이 지닐 수 있는 권능이자, 성좌를 초월자로 만들어주는 근간과도 같은 능력이었으니까.
즉, 성역을 전개할 수 있다는 말은.
‘성좌 그 자체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몸이 성좌처럼 성흔의 마력으로 이뤄지게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성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성역을 전개할 수 있다는 건 오진으로서도 희소식이었다.
“근데 그럼 성역까지 전개할 수 있으면 우리 오지니가 성좌님이 되는 건가?”
“성좌까지는 아니라도 그와 비슷한 존재까지는 되겠지.”
“흐응. 그렇단 말이지?”
하은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오진의 팔을 끌어안았다.
“오진 성좌니임~ 제 성좌님이 맨날 처자느라 절 내팽개치고 있는데 성좌님이 대신 절 보살펴 주시면 안 될까요오~?”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은근슬쩍 가슴을 밀착시키는 하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애교에 오진이 보내줄 수 있는 반응은 하나뿐이리라.
“…우욱.”
“뭐, 이 새끼야, 뭐.”
“아니 어떻게 이 정도로 파멸적으로 안 어울릴 수가 있지?”
“이, 이 새끼가! 벨라가 했으면 좋다고 헤벌쭉거렸을 거면서!”
“그건 이사벨라니까 그런 거고.”
하은과 애교라니.
민트와 초코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 않은가.
“씨이. 그래, 나는 안 어울린다 새끼야.”
하은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괜히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걷어찼다.
다시는 하나 봐라,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에 오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 웃지 말고 짜식아!”
“아, 이거 우리 누나 귀여워서 어쩌냐.”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하은의 손을 잡고 바닷가라도 거닐고 싶었지만.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럼 한번 사용해 볼게.”
오진은 정신을 집중하고 ‘성역 전개’를 사용했다.
‘성흔은… 거문고자리의 성흔으로.’
파직, 파지직!
은은한 은빛이 오진의 몸을 휘감으며 푸른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몸 주변에 성역을 두르자마자 무슨 둑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베가처럼 주변에 넓게 펼치지는 못하는 건가.’
성역을 전개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몸 주변 5㎝ 정도.
이 정도면 성좌라면 패시브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두르고 있는 성역에 불과했다.
“성역 전개… 라고 하기엔 아직 민망할 정도네.”
안셀라두스가 사용했던 ‘용궁’처럼 주변 일대의 지형을 뒤바꾸며 자신의 권능을 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건 아직 오진에게는 까마득한 일이었다.
‘뭐, 그것도 결국 할 수 있게 되겠지.’
예전에는 잘 체감 못 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안다.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는지.
‘성역 전개’ 특성을 꾸준히 갈고 닦으면 베가처럼 주변에 넓게 성역을 펼치는 것도 가능해지리라.
“누나 나한테 불 한번 쏴봐.”
“엥? 지금?”
“응.”
오진은 아무런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섰다.
몸 주변에 둘린 성역은 그 자체로 단단한 갑주나 다름없었다.
고위 각성자 사이에서도 꽤나 강력한 편인 이우혁과 사카키 료만 해도 성좌의 축복을 받기 전까지는 안셀라두스에게 생채기 하나 입히지 못하지 않았는가.
“알았어.”
“힘 조절하지 말고 쏴.”
“…진심이야?”
“그럼 이 상황에서 농담을 할까?”
하은의 공격은 성역을 뚫을 정도로 강력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역을 몸에 두르지 않은 상태로 맞는 것보다야 훨씬 충격이 덜하리라.
“끄응.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하은은 쯧 혀를 차며 품속에서 연초 한 대를 꺼냈다.
화르르르륵!
연초 끝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그럼, 간다!”
거대한 화룡이 오진을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크윽!”
성역을 뚫고 들어오는 열기.
피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이 오진의 전신에 퍼졌다.
“야, 야! 괜찮아?!”
하은이 다급하게 불을 거둬들였다.
오진이 몸이 바짝 구워진 게 아닐까 걱정에 찬 표정으로 달려갔지만.
“어? 뭐야?”
피부에 화상을 좀 입긴 했지만, 오진의 상태는 멀쩡했다.
“후우… 성능은 확실하네.”
오진은 만족스럽다는 듯 몸에 두른 성역을 거둬들였다.
하은의 불길을 완벽하게 막지는 못했지만, 그건 안셀라두스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방어 성능은 확실해.’
아직 제대로 시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공격용으로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베가가 있었으면 성역에 대해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베가를 비롯한 성좌들은 축복을 사용한 대가로 인해 성소로 역소환 됐다.
일본에는 성소로 통할 수 있는 게이트도 없으니 일단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나 그녀를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럼 슬슬 돌아갈까?”
“응? 벌써 할 일 끝났어?”
“애초에 성역 전개를 시험해 보려고 겸사겸사 온 거니깐.”
어차피 아직 내상이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니 굳이 더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흐으음. 그렇단 말이지.”
하은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또 왜.”
“근데 오지나… 여기 조용하니 사람 아무도 없다. 그치?”
“누나 같으면 여길 오고 싶겠어?”
성좌와의 전투로 인해 이 일대 전체가 자연재해에 휩쓸린 것처럼 뒤죽박죽이 된 상태니 사람이 올 턱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쿠로우시 조직원들이 진입을 통제하고 있기도 했고.
“그러면 말야….”
하은이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오진의 허벅지를 슬금슬금 더듬었다.
“아까 누나가 상 준다고 했지?”
“…….”
아니 아까 안 선다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