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8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81화
자매 (5)
스르륵, 스륵.
그림자에 뒤덮인 폐건물 안.
뱀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 한쪽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앞, 뒤, 위, 아래, 양옆까지.
마치 뱀으로 이뤄진 거대한 우리 안에 갇힌 것처럼 사방에서 소리가 메아리쳤다.
“후우.”
오진은 긴장에 찬 표정으로 창을 움켜쥔 손에 힘을 더했다.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전신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스르륵, 스륵, 스륵━
섬뜩하게 울려 퍼지던 소리가 일순 잠잠해졌을 때.
‘온다!’
사방에서 폭발하듯 검은 뱀 무리가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오른쪽.’
가장 먼저 도달한 건 곰팡이 핀 벽면에서 솟구쳐 오른 뱀.
풍차처럼 창을 돌리며 창 안에 응축되어 있던 뇌전을 폭발시켰다.
콰르르르릉!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백에 달하는 뱀들이 뇌전에 쓸려나갔다.
샤아아아앗!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뱀을 방어하는 사이 오진에게 접근한 뱀 한 마리가 왼팔에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왼팔을 휘감은 뱀이 거대한 아가리를 쫙 벌리며 오진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콰득.
송곳처럼 뾰족한 이빨이 살을 파고들자 저릿한 감각이 팔을 타고 전해졌다.
‘독인가.’
독이라고 해도 신경독 따위의 미적지근한 독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신경독이 일반인에게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맹독이라고 해도 초인적인 육체를 지닌 각성자에게는 잠깐 저릿하고 말 정도로 가벼운 독에 불과했으니까.
“크으.”
예상했던 대로, 내부에 침투한 뱀의 독은 오진의 마력 회로를 난잡하게 찢어발기며 날뛰기 시작했다.
독니가 파고든 자리를 따라 피부가 거멓게 괴사하는 게 보였다.
마력 회로는 성흔의 마력이 이동하는 길인만큼 가벼운 손상도 치명적인 내상으로 이어지지만.
‘이 정도라면.’
파지지지직!
뇌전이 섞인 성흔의 마력이 회로 안에 침투한 독을 불태우며 팔뚝을 물어뜯은 뱀을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충전.’
오진은 상대적으로 뱀의 숫자가 적은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왼팔에 뇌전을 응축했다.
“터져라.”
콰르르르릉!
왼팔에 응축되어 있던 뇌전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달려드는 뱀들을 쓸어버렸다.
다섯 번 정도의 ‘충전’을 중첩한 뇌전에 불과하지만, 뱀들의 내구도가 그리 단단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한 번에 쓸어버리는 데는 문제 없었다.
‘문제는.’
스르륵, 스륵.
아무리 쓸어버려도 새로운 뱀이 계속해서 그림자 속에서 솟구쳐 나온다는 것.
‘이대로는 끝이 안나.’
소모전으로 이끌고 가는 방법도 있으나, 안 그래도 내상을 입어 장기전을 할 수 없는 카시아가 이사벨라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오진은 달려드는 뱀들을 무시하고 카시아를 향해 발을 박찼다.
“어머, 드디어 제 쪽을 봐주시는군요.”
카시아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방긋 미소 지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팔이 솟구쳐 나와 오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진은 무서운 기세로 휘둘러지는 거대한 팔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뚫고 들어가느냐.
피해서 돌아가느냐.
고민은 길지 않았다.
‘뚫는다.’
성흔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막대한 양의 뇌전이 응축되며 움켜쥔 주먹이 푸른 뇌전으로 변했다.
뇌신체로 변한 부분은 손끝에서부터 손목까지.
약식으로 만들어낸 만큼 파괴력도, 지속력도 원래의 뇌신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내상 때문에 제대로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카시아의 그림자 정도는 어렵지 않게 뚫어낼 수 있으리라.
콰자자자자작!
그림자로 이뤄져 있던 거대한 팔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흩어지는 그림자 사이로 몸을 던져 카시아가 서 있던 자리를 향해 창대를 휘둘렀지만.
‘뭐야.’
그림자 팔을 터트리기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카시아의 모습이 허깨비처럼 사라져 있었다.
“혹시 절 찾으시나요?”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녀의 목소리가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설마 다른 사람의 그림자까지 이용할 수 있을 줄이야.
오진은 재빠르게 앞으로 구르며 뒤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후웅!
앞으로 구르며 휘두른 창 치고는 꽤나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지만, 이번에도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거칠기도 하셔라~”
이번에 카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머리 위.
오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폐건물 천장에 거꾸로 서 있는 카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이냐.’
솔직히 말하면 귀신 따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긴 했다.
오진은 천장에 거꾸로 서 있는 카시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다가 팬티 보인다.”
“어머?”
카시아가 입고 있는 검은 드레스는 무슨 접착제라도 발라놨는지 거꾸로 서 있음에도 전혀 뒤집히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중력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자칫 격렬하게 움직이면 그대로 드레스가 뒤집혀 버릴 것이다.
“팬티 보고 싶으세요?”
카시아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검은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려 훌러덩 뒤집었다.
설원처럼 새하얀 다리와 가녀린 체형에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레이스 팬티가 훤히 드러났다.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보셔도 되는데.”
“…….”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후훗, 장난이에요.”
카시아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들어 올렸던 드레스 자락을 놨다.
검은 드레스가 중력을 거스르듯 서서히 위로 올라가더니, 먹물이 퍼지듯 천장에 넓게 펼쳤다.
그리고.
후웅!
기다란 검은 채찍이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며 오진을 향해 휘둘러졌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채찍’은 아니었다.
‘뱀의 꼬리.’
수십 개에 달하는 뱀의 꼬리가 섬뜩한 파공성을 터트리며 오진을 노렸다.
“크윽!”
옆에서 날아든 뱀의 꼬리 하나가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갈고리처럼 휘어진 날카로운 비늘에 걸린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 나가며 핏물이 쏟아졌다.
오진은 모래시계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해서 사고를 가속한 후 사방에서 날아드는 뱀의 꼬리 사이로 빠져나왔다.
‘이게 내상을 입은 상태로 낼 수 있는 힘이라니.’
헛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아찔한 공격의 향연에 오진은 혀를 내둘렀다.
이쯤 되니 진짜 카시아가 내상을 입은 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읏….”
천장에 거꾸로 서 있던 카시아가 순간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상태도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진은 창을 고쳐잡으며 숨을 헐떡이는 카시아를 바라봤다.
“슬슬 지치나 보지?”
“하아, 하아. 어머? 이래 보여도 체력에는 꽤 자신 있답니다?”
가냘픈 몸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태연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카시아였지만,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는지 아름다운 백금발 머리칼이 땀에 축축이 젖어 있었다.
“하아.”
카시아가 깊은숨을 내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스르륵, 스륵!
그녀가 입고 있는 검은 드레스가 바닥에 흡수되듯 넓게 펼쳐지며 폐건물 안을 검은 그림자로 뒤덮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뱀 소리.
이번에는 아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빠르게 결판을 내려는 건가.’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움켜쥔 창에 힘을 더했다.
‘건물 안에서는 막기 힘들어.’
시간은 늦은 밤.
전등 하나 없는 폐건물 안은 어두컴컴한 그림자에 뒤덮여 있었다.
그림자를 다루는 카시아에게 있어 이곳만큼 최적의 전장도 없을 터.
‘애초에 그랬기 때문에 이곳으로 부른 거겠지.’
어떻게 피해 보려고 해도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그림자에 뒤덮여 있으니 피할 공간이 없었다.
‘여기서 그림자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없어.’
그렇다면.
“쓰읍.”
오진은 양팔을 펼치며 벽을 향해 와이어를 발사했다.
타앙!
와이어 슈터에서 쏘아진 와이어가 녹슨 벽면을 파고들어 틀어박혔다.
그와 동시에.
샤아아아앗!
그림자 속에서 검은 뱀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나오는 뱀들을 피해 오진이 발을 박찼다.
마치 유명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벽을 타고 질주하는 오진을 쫓아 수백 마리의 뱀들이 쇄도했다.
“하아, 하아. 도망치셔도 소용없답니다?”
카시아는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럽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그런 상태로도 사방에서 달려드는 뱀들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파지지직! 파직!
사납게 달려드는 뱀들을 창으로 베어내며 오진은 넓은 폐건물 안을 계속해서 질주했다.
“흐응. 빠르긴 하시네요.”
좀처럼 오진을 붙잡지 못하는 뱀들을 보며 카시아가 가늘게 눈을 떴다.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요?”
카시아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이 빛을 뿜으며 음산한 마력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촤아아아아악!
채찍처럼 기다란 뱀의 꼬리가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바닥도, 천장도,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아닌.
달려드는 뱀들을 피해 질주하고 있는 오진의 그림자에서.
“아무리 빨라도 자기 그림자보다 빠를 순 없답니다?”
그녀의 말마따나.
아무리 재빠르게 움직인다고 한들 자신의 그림자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렇겠지.”
오진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더 이상 도망칠 공간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사방이 검은 뱀들로 가득했다.
‘도망치는 게 불가능하다면.’
오진은 손을 뻗어 눈앞의 와이어를 붙잡았다.
그가 벽면을 타고 폐건물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이,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와이어가 폐건물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 태워버리면 그만이지.”
성흔의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붙잡은 와이어를 통해 뇌전을 흘려 넣었다.
파자자자자자작!
폐건물 내부에 펼쳐져 있는 와이어를 타고 푸른 뇌전이 달린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펼쳐진 와이어에 닿은 뱀들이 산산이 터져나가며 어둠이 내려앉았던 폐건물 안이 순간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읏….”
눈을 찡그린 채 뒷걸음질 치는 카시아.
내상의 영향인지 뒷걸음질 치는 몸이 위태롭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쿠웅!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든 오진이 카시아의 가녀린 목을 움켜쥐었다.
“커흑!”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딴 개짓거리는 이제 그만하자, 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