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8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89화
역천의 별 (2)
“그럼 바로 트레이닝 시설로 가요.”
오진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쁜지 이사벨라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오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지금 바로?”
“예, 하루라도 빨리 그 성역이란 걸 수련하셔야 하는 거죠?”
“그렇긴 한데… 괜찮겠어?”
이사벨라는 지금 뫼비우스에게 납치됐다가 풀려난 직후였다.
상처는 없다고 해도 정신적인 충격은 꽤 입었을 터.
성역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는 게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이제 막 납치됐다가 풀려난 이사벨라를 끌고 트레이닝 시설로 향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전 괜찮아요. 어디 다친 것도 아니니까요.”
“저도 상관없어요.”
카시아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사벨라가 잡아끄는 반대편 팔을 끌어안았다.
“아니, 이사벨라야 그렇다 치고 카시아 너는 안 되지.”
조금 전만 해도 카시아는 치명상에 가까운 내상을 입은 상태였지 않은가.
오진이 물병자리의 성흔으로 그녀를 치료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내상이 모두 회복된 건 아니었다.
* * *
“어머, 괜찮아요. 오진 님의 치료 덕분에 어느 정도는 내상이 회복된걸요?”
“어느 정도지 완전히는 아니잖아.”
“후훗. 그래도 아까 오진 님과 싸웠을 때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답니다?”
카시아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흠….”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오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오늘은 대련 말고 다른 걸 하자.”
이번 수련의 목적은 성역을 다루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것.
굳이 대련이 아니라고 해도 아직 오진에게 있어 미지(未知)의 영역에 가까운 성역을 수련할 방법은 많았다.
“다른 거라뇨?”
“일단 거실로 와봐.”
미리 생각해 둔 수련 방법은 있었다.
“트레이닝 시설은 안 가시는 건가요?”
“응. 이건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 없는 방법이거든.”
“……?”
이사벨라와 카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진을 따라 거실로 이동했다.
넓은 거실 중앙에 선 오진은 양팔로 각각 이사벨라와 카시아의 손을 잡았다.
양손을 타고 서로 다른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건….”
“대체 뭘 하시려는 거죠?”
수련이라고 부르기엔 무슨 강강술래라도 돌아야 할 것 같은 자세가 아닌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자매를 향해 오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성역을 전개하면 둘의 마력을 흘려 넣어서 억지로 성역을 뚫어줘.”
성역이란 성흔의 힘을 극대화해서 펼쳐지는 일종의 고유 결계에 가까웠다.
무릇 결계라는 외부에서 내부로 오는 힘을 차단하는 것.
하지만 안셀라두스와의 일전에서 봤던 것처럼, 이 ‘성역’이라고 하는 결계는 완전무결한 결계가 아니었다.
‘일정 이상의 마력을 때려 박으면 뚫리지.’
사카키와 이신혁은 성역을 뚫을 정도의 마력을 쏟아내지 못했지만, 하은의 경우에는 성좌의 축복 없이도 안셀라두스의 성역을 순수한 마력만으로 뚫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하은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사벨라와 카시아가 못할 리는 없을 터.
특히 지금처럼 급박한 전투 상황이 아닌 손을 맞잡은 상태라면 성역을 파훼하는 건 훨씬 더 간단할 것이다.
‘일단 내가 버틸 수 있는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해.’
오진이 생각한 성역의 수련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철을 두드려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가 펼친 성역을 강력한 마력의 개입으로 인해 부수고 새로 만들고를 반복하며 단련시키는 것.
근력 운동으로 근육을 찢고 재생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근육을 키우는 것과 비슷했다.
‘솔직히 이런 무식한 방법이 통할지는 모르지만.’
부수고 다시 만든다고 성역이 강해질지는 오진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런 무식한 수련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은 아니었다.
‘성역이 성흔의 힘을 극대화하는 고유 결계라면.’
다른 별자리의 힘, 즉 성흔의 마력에 의해 ‘침식’당할수록 오히려 본연의 성질을 유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반응할 것이 분명했다.
비유하자면 뜨겁게 달군 기름에 물을 쏟았을 때와 비슷하달까.
굳이 ‘성역’이 아니라도 서로 다른 성흔의 힘이 반발하며 격렬한 충격을 일으키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물론 수력친화처럼 성흔과 성흔의 힘이 조화를 이뤄서 만들어지는 능력도 있지만.’
그런 어디까지나 ‘흑천’ 자체에 서로 다른 성흔의 마력을 융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한 각성자가 두 개의 성흔을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성흔의 마력끼리는 거센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성역의 경우엔 그 거부 반응이 더 거세겠지.’
성역이라는 건 그 성흔이 지닌 힘을 극대화하는 고유 결계이니 일반적인 성흔의 마력의 충돌보다 더욱 거센 반발이 이뤄질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그런 거센 반발은 오히려 성역의 힘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동물원에서 주는 먹이만 먹고 자란 맹수와 야생에서 치열한 경쟁 다툼을 하며 자란 맹수의 차이랄까.’
어쨌든.
머릿속에서 떠올린 추론이 올바른 방법인지는 직접 시험해 보면 될 터.
오진은 준비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두 여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흑천의 힘을 끌어올렸다.
‘성역 전개.’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것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어준 거문고자리의 성흔.
은은한 은빛 빛무리가 전신을 감싸며 거문고자리의 성역(星域)이 펼쳐졌다.
“후우.”
펼쳐졌다고 해도 피부를 기준으로 고작 5센티에 불과한 극히 적은 영역.
지금 이 영역이 오진이 펼칠 수 있는 최대였다.
‘이걸로는 안 돼.’
지금 그가 펼치는 옅은 성역은 단순히 성흔의 힘을 증폭시켜 주고 몸을 보호해 주는 기능 정도 말고는 없었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안셀라두스가 만들어냈던 ‘용궁’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쏟아지기 시작하는 해일.
바닷속에 솟아오르는 거대한 궁전과 수천의 군세.
진정한 성역은 주변 지형지물부터 환경까지 모조리 별자리의 힘으로 뒤바꿔 버린다.
그야말로 ‘성좌’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
물리 법칙을 조롱하는 듯한 그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성역을 더 넓은 영역으로 펼칠 필요가 있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 줘.”
“예.”
“그냥 마력을 흘려 넣기만 하면 되는 거죠?”
맞잡은 양손을 타고 카시아와 이사벨라의 마력이 흘러들어왔다.
우우우웅!
오진의 몸을 감싸고 있는 성역이 거세게 반발하며 두 여인의 마력을 밀어냈다.
“…놀랍네요.”
카시아는 마치 거대한 장벽에 막힌 듯 튕겨 나가는 자신의 마력을 보며 나지막한 탄성을 흘렸다.
인간의 몸으로 성역을 펼칠 수 있다니.
뫼비우스와 싸울 때 이미 한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가까이에서 보니 새삼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성역이라고 해서 무적인 건 아니랍니다?”
카시아가 섬뜩하게 눈을 빛내며 마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사벨라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한층 더 오진과 맞잡은 손을 통해 성흔의 마력을 밀어 넣었다.
“크윽!”
양손을 통해 전해지는 강력한 성흔의 마력.
한쪽에서는 거대한 뱀이, 다른 한쪽에서는 수백, 수천에 달하는 거머리들이 달려드는 듯한 이미지가 머리를 스쳤다.
“후욱, 후욱!”
해일처럼 쏟아지는 마력을 견디기 위해 성역을 유지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지만.
콰득, 콰자자자작!
전신을 뒤덮었던 은은한 은빛이 거세게 출렁이며 두 여인의 마력이 성역을 뚫고 밀려 들어왔다.
무너진 성벽 안으로 파고드는 적군처럼 난폭한 마력이 오진의 전신을 헤집었다.
“크으으으!”
아찔한 격통이 전신에 퍼졌다.
전신의 마력 회로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코피가 터져 나왔다.
“오진 씨!”
“괘, 괜찮으신가요?”
두 여인이 다급하게 마력을 거둬들였다.
“허억, 허억!”
오진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성역이 강제로 뚫렸을 때의 반동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격렬했다.
‘하긴.’
비유하자면 지금 오진은 자신이 직접 만든 집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고, 이사벨라와 카시아는 오진이 만들어낸 집을 향해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집이 무너지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오진 또한 충격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자, 잠시만요! 지금 바로 물을 가져올게요!”
오진이 수력 친화라는 회복 스킬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사벨라가 다급히 욕실로 뛰어가려고 했다.
“아니, 됐어.”
“됐다뇨?! 지금도 계속 피가…!”
“어차피 수력 친화로 내상은 치료 못 해.”
물론 대량의 물을 쏟아부으면 어느 정도 내상에도 효과가 있긴 했지만, 트레이닝 시설도 아니고 일반 가정집에서 그 정도 물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후우.”
오진은 들끓는 마력을 진정시키며 다시 성역 전개를 사용했다.
우우우우웅!
은빛 빛무리가 그의 몸을 뒤덮으며 아름답게 빛을 뿜었다.
‘효과가 있어.’
처음 펼쳤을 때보다 성역이 한층 견고해진 게 느껴졌다.
‘범위도… 조금이지만 늘어났고.’
오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음에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한 번 더 부탁해.”
“…제정신인가요?”
카시아가 눈을 찌푸리며 오진을 노려봤다.
방금 전에 코피를 쏟으며 쓰러진 걸 봤는데 그걸 한 번 더 하라고?
“명령이야, 카시아.”
“…….”
명령, 이라는 말에 카시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녀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도움을 요청하듯 이사벨라를 돌아봤다.
이사벨라는 포기하라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오진 씨가 한 번 고집을 부리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뭐니 그게?”
“언니도 익숙해질 거야.”
한숨을 내쉬며 오진에게 다가간 이사벨라가 다시 그의 손을 잡았다.
카시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반대편 손을 잡았다.
“…마력 양이라도 좀 줄이면 안 될까요?”
“그러면 수련 효과가 없어.”
성역을 뚫을 정도의 마력을 밀어 넣지 않으면 안 된다.
“부탁할게.”
“…하아.”
“고집불통이란 말은 사실이었나 보네요.”
두 여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 조금 더 몸을 밀착해 줄 수 있어?”
“이렇게요?”
“조금만 더.”
“그… 가, 가슴이 닿는데요?”
“이러는 편이 마력을 전달하기 쉬우니까.”
기본적으로 성흔의 마력이 보관된 장소가 왼쪽 가슴 위에 새겨진 성흔이다 보니 이렇게 몸을 밀착한 상태로 마력을 흘려 넣으면 더욱 적은 양의 마력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카시아와 이사벨라는 오진의 양팔을 끌어안으며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그럼… 시작할게요.”
“버티기 힘들면 말씀해 주세요 오진 님.”
그렇게 다시 성역 전개를 위한 수련이 시작됐다.
“끄응. 똥강아지 자식 때문에 너무 많이 마셨네.”
하은은 몸에 진득하게 배어든 술 냄새에 눈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베가와 가볍게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심심함을 달래러 갔던 것이 중간에 리아크까지 합류하게 되면서 판이 커져 버렸다.
‘그나저나 카시아는 왜 우리 집에 있던 거야?’
하은은 왠지 모르게 차오르는 불길함을 뒤로한 채 현관 앞에 섰다.
달칵.
현관문을 열자 짙은 혈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오, 오지나!”
혈향을 맡자마자 하은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카시아가 무슨 짓이라도 벌인 건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거실로 향했을 때.
“허억, 허억!”
햄버거 속 패티처럼 양팔에 찰싹 달라붙은 두 자매 사이에 끼어 있는 오진.
자매 사이에 낀 오진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연신 코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얼씨구?”
하은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