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9화
낙원(樂園) (6)
“…….”
순간.
경매장 안이 얼어붙은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짧은 침묵을 깨며.
“어… 100억! 100억 나왔습니다!! 즉시 낙찰가를 부르셨기 때문에 ‘용마안’ 경매는 이것으로 종료됩니다!”
사회자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물건은 바로 받아가겠습니다.”
뚜벅, 뚜벅.
오진은 무대 위에 올려진 용마안을 향해 걸어갔다.
푸른 수정을 탁구공만한 크기로 깎아낸 듯한 형태의 성유물.
용마안을 손에 쥔 채 몸을 돌렸다.
“왜, 왜 네가 여기에….”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송하은의 모습이 보였다.
고장 난 기계처럼 반복되는 의문.
한 걸음, 한 걸음.
무대를 내려갔다.
잿빛 시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넌 또 뭐야?”
하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도끼눈으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
그의 손이 하은의 허벅지 위에 올려진 것이 보였다.
“뭔데 경매 중간에 끼어들….”
“치워.”
“뭐?”
“손, 치우라고.”
차갑게 식은 눈을 사내에게 향했다.
순간적으로.
오진의 검은 눈동자에 푸른 귀화(鬼火)가 번뜩였다.
“……!”
흠칫!
최종철은 자기도 모르게 하은의 허벅지 위에 올리고 있던 손을 다급히 빼냈다.
‘뭐, 뭐야?’
아주 잠깐이었지만.
정전이 일어난 듯 경매장 안이 시커먼 암흑으로 뒤덮였다.
섬뜩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원래대로 밝아진 경매장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최종철은 의자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사납게 붉힌 얼굴로 오진을 노려봤다.
“뭐 하는 새낀데 감히 나한테 명령 질….”
“아까 못 들었냐?”
협회 특무관 자격증을 가볍게 흔들었다.
최종철은 특무관 자격증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하! 고작 협회의 개 주제에 별빛 호수 길드에게 시비를 거는 거냐?”
비릿하게 웃으며 오진을 노려보았다.
협회 특무관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10대 길드에 속하는 별빛 호수 길드를 건드릴 수는 없다.
‘근데 특무관 중에 이런 놈이 있었던가?’
협회 특무관의 경우 권한이 막강한 만큼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었다.
‘분명 리스트에 없던━ 아.’
그때.
며칠 전에 봤던 신문 기사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서울역에서 일어난 소동.
지하에서 나타난 괴수를 협회 소속 각성자 하나가 인명 피해 없이 물리쳤다는 소식.
분명 눈앞의 청년은 사진에서 본 그 얼굴이었다.
“자, 잠깐. 설마… 뇌랑?”
더듬더듬.
최종철은 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사실 그가 단순히 서울역에서 괴수를 처치한 각성자였다면 이 정도까지 놀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뇌랑의 성흔은 분명.’
거문고자리의 성흔.
황도 12궁의 성좌조차 머리를 조아린다는 북극성의 성좌의 성흔을 지니고 있었다.
‘미, 미친!’
최종철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지금 직녀성, 베가의 사도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각성자였다.
앞에 ‘초(超)’자가 수십 개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은 루키 중에 루키.
그것이 눈앞에 서 있는 뇌랑의 정체였다.
“뭐, 그렇게 불리는 것 같더라고.”
싸늘하게 식은 눈빛이 최종철을 향했다.
“별빛 호수 길드라고 했던가?”
“어, 그, 그게. 저….”
최종철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한국에서 북극성의 사도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퍼진 직후.
대부분의 대형 길드가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10대 길드에 속하는 별빛 호수 길드 또한 마찬가지.
긴 회의 끝에 내려온 공문은 이러했다.
-북극성의 사도와는 무조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는 공문이었다.
다른 각성자도 아닌, 무려 ‘북극성의 사도’와 척을 져서 좋은 일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뭐, 뭔가 오해가….”
“아, 그게 오해였다고?”
피식.
오진은 차갑게 웃었다.
“별빛 호수 길드장님도 그렇게 생각할지 한번 물어보자고.”
“……!!”
최종철의 눈이 부릅뜨였다.
-쿵!
그는 다급히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였다.
“이, 일행분인지도 모르고 무, 무례를 끼쳐 죄송합니다!! 부디, 부디 길드장님에겐 아무 말도…!”
“알았어.”
“…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가 줄게.”
“아…!”
최총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뭐든 말씀하시면….”
“꺼져.”
“예?”
“지금 당장 여기서 꺼지라고.”
“…….”
최종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움켜쥔 주먹에 굵은 힘줄이 돋아난 것이 보였다.
굴욕감에 점철된 모습.
‘그래서 어쩌려고?’
오진은 같잖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당장은 최종철이 더 경력도 많고, 높은 성(星)을 지녔겠지만.
그뿐이다.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면 북극성의 사도인 자신에 비해 최종철의 가치는 벌레나 다름없다.
“헤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은지, 최종철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켜 경매장 밖으로 나갔다.
“쯧.”
그렇게 소란이 일단락된 후.
“가자.”
오진이 하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 오진아 네가 왜….”
그녀는 아직도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더듬더듬 의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따라와.”
“자, 잠깐!”
어깨를 잡아끌었다.
하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네가 여기에 왔는지부터… 아니, 야! 권오진!”
무시했다.
“어, 어디 가는 거야! 야!”
굳게 팔을 잡은 채 그녀를 이끌었다.
향하는 곳은 용산 경매장 옥상에 위치한 공중 정원.
서울에서도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휘이잉.
공중 정원에 도착하니 차가운 밤바람이 뺨을 스쳤다.
“하아, 하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기 때문일까.
하은의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오, 오진이 너….”
잿빛 눈동자가 허공을 헤맸다.
“낙원의 입주권은 어떻게 하고 그걸 산 거야!!”
질책하듯 외쳤다.
그가 용마안을 사기 위해 지불했던 100억은 원래라면 다른 곳에 쓰여야 할 돈이었다.
“낙원?”
피식.
오진은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낙원.
그걸 위해 지난 5년간 필사적으로 돈을 모아왔다.
정확히는.
그녀가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다.
‘안 그랬으면 또 난리를 쳤을 테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디서 가서 빚지고는 절대 못사는 피곤한 성격의 여자였다.
‘그게 우리 누나 매력이긴 하지만.’
손에 쥔 용마안을 찬찬히 들어 올렸다.
탁구공만한 크기의 푸른 수정
반투명한 수정 안에는 마치 파충류의 눈을 연상시키는 노란 눈동자가 들어 있었다.
“그래! 낙원은 어쩌고 왜 그걸….”
“잠깐만 가만히 있어.”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잡았다.
흠칫.
손을 타고 그녀의 떨림이 느껴졌다.
“오, 오지나.”
무언가를 직감한 듯.
평소 즐겨 부르는 애칭으로 돌아왔다.
잿빛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우우웅.
용마안을 그녀의 왼쪽 눈에 가져다 대자, 반투명한 푸른 수정이 은은한 빛을 뿜었다.
얼음이 녹아내리듯.
용마안이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치이이익!!
기름을 튀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두 눈동자에서 보랏빛 연기가 빠져나왔다.
“아윽!”
찌릿한 격통이 느껴졌다.
눈동자를 뜨거운 무언가로 지지는 듯한 통증.
━하지만.
“아, 아아.”
그딴 통증 따위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이 터질 듯 맥동했다.
“괜찮아. 조금만 더 참아.”
빛 한점 없는 아득한 어둠 속에 따스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터질 듯 뛰던 가슴이 조금 진정됐다.
눈을 태우고 있던 격통이 점차 가라앉았다.
그와 함께.
우르르!
무너진다.
그녀를 가두고 있었던 견고한 어둠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기나긴 밤이.
모래성이 쓸려나가듯 점차 허물어졌다.
“━아.”
눈 앞에 펼쳐진 찬란한 야경.
밤하늘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 등불로 이뤄진 은하수가 도시를 수 놓았다.
“아, 아으.”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가를 매만졌다.
보인다.
공원을 밝히는 섬세한 전등이, 정돈된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무엇보다.
“어때?”
5년 만에 보는.
조금은 수척해진 그의 얼굴이.
“낙원의 모습은?”
“너, 너….”
하은은 비틀비틀 뒷걸음질 쳤다.
너무나 많은 감정이 뒤섞여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참. 하나 더 있어.”
“뭐?”
오진이 고급스러운 검은 케이스를 꺼냈다.
“뭐, 뭔데 또 그건.”
하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알 거야.”
딸깍.
오진은 씨익 미소 지으며 검은 케이스를 열었다.
케이스 안에는 진짜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만들어진 최상품 의족이 들어 있었다.
“이건.”
“잠깐 오른발 내밀어 봐.”
“…….”
하은은 얼굴을 슬며시 붉히며 오른발을 내밀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오진이 그녀가 쓰고 있던 싸구려 의족을 빼내고, 케이스에 든 의족을 끼웠다.
“와아.”
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
부드러운 피부에 살결이 닿은 것처럼 포근한 감각이 느껴졌다.
너무 부드러워 빠지는 게 아닐까 싶어 이리저리 다리를 움직여 봤지만 마치 진짜 다리가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발이 움직였다.
“어때? 지금 쓰던 것보다 훨씬 편하지?”
“…….”
하은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오진의 얼굴이 보였다.
━그 미소가 보인다는 사실이.
어째서인지 더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왜.”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왜, 왜, 왜!”
너무도 많은 감정이 뒤섞여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가장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참기 힘든 ‘분노’였다.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울부짖듯 소리쳤다.
“소중한 돈이었잖아!! 필사적으로 모은 돈이었잖아!!”
그가 지난 5년 동안, 아니 한평생을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왔는지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만 알고 있다.
각성자가 되기 전 그의 모습을.
처참했던 그의 삶을.
쭉 지켜봐 왔다.
더위에 숨 막히며, 추위에 벌벌 떨며.
값싼 칼로리 바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낡아빠진 헌 옷을 주워 입으며.
참고, 참고, 참아서.
아득바득 발버둥 쳐서 돈을 모으던 모습을.
“나, 나한테 낙원의 입주권을 사겠다고 했잖아! 한 번이라도 편하게 살아 보고 싶다 했잖아!”
5년 전.
자신이 모든 것을 잃은 그날.
오진이 다가와 말했다.
낙원으로 가겠다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돈을 모아 떠나겠다고.
“돈을 모을 때까지만 같이 있기로 나랑 약속했잖아!!!”
“아, 그거?”
오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아.”
하은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15년도 더 지난.
케케묵은 기억의 편린이 떠올랐다.
-오지나!! 너, 너도 빨리 피해!! 주방에 불났다며!!
-아, 그거?
그때와 같이.
그때와 변함없이.
그때와 다를 것 없이.
그는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거짓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