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39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393화
역천의 별 (6)
밤하늘을 잘라 담아낸 듯 아름다운 별빛이 반짝이고 있는 은하수의 샘.
쿠륵, 쿠르르르륵!
샘물을 뒤덮으며 검은 먹구름이 밤하늘을 뒤덮었다.
요동치는 먹구름.
흑천을 통해 샘 안에 한가득 차올라 있던 막대한 성흔의 마력이 오진의 몸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크윽!”
한계까지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마력 회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 응축됐던 샘의 마력은 오진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많아도 너무 많잖아…!’
전신으로 밀려드는 마력의 격류 탓에 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오진은 입술을 짓씹으며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성흔의 마력 속에서 필사적으로 이성의 끈을 붙들었다.
쿠르륵! 쿠륵!
그런 오진의 상태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의 심장 안에 자리잡은 흑천은 무슨 고급 뷔페에라도 온 것처럼 게걸스럽게 폴라리스의 마력을 먹어 치웠다.
[나, 나의 아이야!]“오지 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베가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오면 베가까지 휩쓸린다.’
극상의 먹잇감을 발견한 흑천은 오진의 통제를 벗어나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검은 먹구름이 거대한 돔 형태로 주변에 펼쳐지며 닥치는 대로 성흔의 마력을 흡수했다.
아름다운 별빛으로 반짝이던 샘물이 검은 잉크를 쏟아버린 듯 탁한 어둠으로 뒤덮였다.
주변 공간 전체가 검은 먹구름에 집어 삼켜진 듯한 모습.
천마와 마주쳤던 무의식 세계가 실제 현실에 구현된 듯한 광경이었다.
‘이건….’
무의식의 세계가 현실에 구현되는 것.
한낱 심상에 불과한 사고의 편린이 물리 법칙을 뒤틀고, 현실을 조작하는 광경.
눈으로 본다고 한들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미지(未知)의 힘이었지만.
오진은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성역 전개.’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그가 가장 집중해서 수련하고 있는 것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힘이었으니까.
‘흑천이 주변 환경을 바꾸면서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고 있어.’
어느새 찬란하게 빛나던 은하수의 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음산한 먹구름만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
마치 빛 한점 없는 검은 하늘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 으.”
주변을 자신의 세계로 물들인 흑천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기나긴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는 폴라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흑천이 작은곰자리의 성흔을 흡수하게 된다면, 다시는 그의 통제 아래에 들어오지 않으리란 걸.
쿠르르륵! 쿠륵!
목줄에 묶인 맹수처럼 폴라리스의 앞에 멈춰선 채 몸부림치는 흑천.
오진은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흑천의 통제권을 가까스로 유지한 채 거친 숨을 토해냈다.
“멈추라고, 새끼야…!”
쿠르르르르륵!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폴라리스를 집어삼키려던 흑천의 구름이 타깃을 바꿔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윽! 커헉!”
전신이 날카로운 이빨에 물어뜯기는 듯한 고통.
정신이 흐릿해지는 감각과 함께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벼 이삭처럼 몸이 휘청거렸다.
“허억! 허억!”
사납게 몸을 난자하는 흑천의 구름 속에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들었다.
거대한 급류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듯한 감각.
거칠게 몰아치는 흑천의 구름이 마치 조롱하듯 그의 몸을 붙잡고 뒤흔들었다.
‘아파.’
날카로운 갈고리가 혈관 안을 돌아다니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육체가 갉아먹힌다.
정신이 뜯어먹힌다.
영혼이 씹어먹힌다.
‘미칠 것 같아.’
이 고통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아니, 애당초 끝나기는 하는 걸까?
시간의 흐름이 멈춘다.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검은 하늘.
자신을 둘러싼 먹구름이 조롱하듯 낄낄 웃음을 터트리는 환청이 들려온다.
-이대로 포기하면 어때?
-참을 만큼 참았잖아?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어.
-나를 받아들여.
아마 실제 흑천에 의지가 있어 떠드는 말은 아니리라.
지금 들려오는 환청을 누가 내뱉고 있는지는 오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내… 목소리야.’
귓가에 울려 퍼지는 환청은 흑천이 아닌, 자신이 자신에게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아… 으, 아.”
아프니까.
고통스러우니까.
견디기 힘드니까.
그저 모두 다 포기한 채 저 검은 먹구름 속에 몸을 던지자고 유혹하는 것이다.
마음속 한편에서 유혹을 받아들이자고 말하는 자신이 있다.
아무리 고통을 견디는 데 익숙하다고 하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뜨겁게 달군 철판 위에 손을 올려뒀다고 해보자.
손바닥의 살점이 타들어 가는 와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판 위에 손바닥을 문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정신력이 좋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통각 자체가 없는 인간이 아닌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라도 하은은 안전할 것이다.
천마의 정체가 자신과 같은 ‘오진’인 이상 그녀에게 해를 끼칠 리는 없으니까.
하은이 잘만 말해준다면 이사벨라나 다른 연인들의 목숨도 지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괜찮을 것이다.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난다면.
한 걸음만 멈추어 선다면.
이 지옥 같은 고통도 끝을….
여기서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문뜩.
그런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죽지는 않겠지.’
흑천에 의해 의식이 잠식당할 뿐,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의식을 집어삼킨 흑천은 독처럼 퍼져 점차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리라.
기억은 흐릿해지고, 추억은 빛바래진 채.
소중했던 과거들을 하나하나 검은 먹구름에게 집어삼켜지겠지.
종래에는 끝없는 갈증과 허기에 시달리며 세상에 모든 별들을 먹어 치우겠다는 원초적인 욕망만이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
마치.
‘그놈처럼.’
오진은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랄… 하지 마.”
나약해지는 마음을 잘라낸다.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짓씹으며 주변을 뒤덮은 흑천의 구름을 사납게 노려봤다.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할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버티지도 않았다.
‘다르다고 했어.’
나는 너와는 다르다고.
나는 너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그것이 설령 철없는 욕심일지라도, 얄팍한 정의감일지라도.
손에 쥔 모든 이를 구원해 보이겠다고.
당당하게 그의 앞에서 선언했다.
“그러니까.”
오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을 올려다봤다.
흑천의 구름이 그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처럼 사납게 요동쳤다.
“꿇어, 새끼야.”
쿠르르르르르륵!
하늘을 뒤덮고 있던 검은 먹구름이 반으로 갈라지며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머리를 조아리듯 납작하게 펼쳐진 흑천의 구름을 짓밟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후후… 역시.]지그시 눈을 감은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폴라리스가 어느새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 아니, 혹은 그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역천의 별이여… 부디 이 비루한 별빛이 당신의 앞길을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기를.]그 말을 마지막으로 폴라리스는 바닥에 넓게 펼쳐진 흑천의 구름을 향해 스스로 몸을 던졌다.
폴라리스의 몸이 흑천의 구름 너머로 사라졌다.
그리고.
-띠링!
쿠르르르륵!
바닥에 펼쳐져 있던 흑천의 구름이 요동치며 오진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크윽…!”
오진은 다시금 격렬해지는 흑천의 격류 속에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유지했다.
끝없이 밀려오던 흑천의 구름이 마치 방지턱에라도 걸린 듯 틱틱, 멈춰 섰다.
흑천의 힘이 제한된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뒤를 이어 떠오른 메시지는 거문고자리의 성흔이 11성이 됐다는 메시지.
오진은 앞서 떠오른 메시지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거문고자리 성흔이 11성이 됐는데도 흑천의 힘이 제한된다는 건가.’
단순히 숫자만 놓고 봤을 때 흑천은 이번이 열두 번째 개화였으니 아직 11성에 불과한 거문고자리 성흔의 힘으로 제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이제까진 잘만 제어했는데 말이지.’
흑천이 열한 번째 개화를 했을 때도 거머리자리의 성흔은 한 단계 낮은 10성이었지만 부분적으로 힘이 제한된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만큼 열두 번째 개화를 통해 얻은 힘이 막대하다는 건가.’
마치 성흔의 힘이 8성에서 9성으로 올라설 때 크게 달라지는 것처럼 흑천도 이전에 개화한 것 이상의 힘을 얻게 된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힘 때문에 아까 내 제어를 벗어나서 날뛰었던 거고.’
그렇게 생각하면 얼추 앞뒤가 맞았다.
[나, 나의 아이야! 괜찮느냐?!]폴라리스의 흡수가 끝나자 베가가 다급한 표정으로 오진에게 날아왔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오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본녀의 눈에는 흑천의 기운이 마치 그대를 잡아먹는 것처럼 보였느니라.]“어느 정도는 맞아.”
흑천의 힘이 갑작스럽게 불어난 것 때문에 순간적으로 의식을 통째로 잡아먹힐 뻔한 건 사실이었다.
[그, 그런!]“그래도 이젠 괜찮아. 일단 흑천을 진정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사실 진정시켰다기보다는 억지로 짓밟아서 얌전하게 만든 거긴 하지만.
어쨌든 흑천에게 의식을 잠식당하는 최악의 사태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날뛰는 흑천을 어떻게든 진정시켰기 때문에 ‘부분적인 힘의 제약’ 정도로 끝나게 된 거지 제어에 실패했다면 그대로 흑천에 집어삼켜졌을 것이다.
‘목줄을 더 단단하게 채워야 해.’
부분적인 힘의 제약을 없애고 온전히 흑천을 다루기 위해서는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힘을 키울 방법은….
“베가, 지금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긴 한데… 하나 들어줬으면 하는 부탁이 있어.”
[그대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테니 편히 말해보거라!]베가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쿵쿵 쳤다.
“그럼….”
뜨겁게 타오르는 시선이 베가를 향했다.
[으음?]베가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본녀를 바라보는 게냐?]베가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표정으로 자기도 모르게 오진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작은곰자리의 성좌를 성공적으로 흡수하였습니다!] [신규 특성 ‘미래시(未來視)’를 습득하였습니다!] [흑천의 열두 번째 개화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경고.] [흑천을 온전히 제어하기 위해 필요한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힘이 부족합니다.] [흑천의 힘이 부분적으로 제한됩니다.] [막대한 성흔의 마력으로 인해 거문고자리 성흔이 11성으로 격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