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0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03화
소집령 (3)
러‧중 동맹군 총사령관.
태을성 알리나 블라디미르.
칠성에 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오진조차도 스쳐 지나가며 몇 번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각성자였다.
“그럼 그 알리나를 포섭하는 데만 성공한다면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거지?”
“예, 맞아요. 러중 연합의 군권은 그녀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흐음.”
군대라.
오진은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대충 병력이 어느 정도야?”
꼴랑 각성자 몇백 명 모아 놓고 거창하게 ‘군대’라는 이름을 붙여두지는 않았을 테니 최소 천 명 이상은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잘만하면 2천이 넘을 수도 있고.’
만약 2천 명이 넘는 각성자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전력이었다.
2천 명에 달하는 각성자 군대.
얼핏 들으면 ‘군대’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많이 부족한 인원수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각성자’로 인원을 한정했기 때문이었다.
나라마다 다르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일반인과 각성자의 비율은 1,000대 1.
천 명 중 한 명꼴로 각성자가 되는 셈이니 2천 명만 모여도 엄청난 인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성자가 워낙 모으기 어려워야지.’
기본적으로 각성자들은 ‘성(星)’의 수준과 관계없이 자신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기 마련이다.
괜히 세간에서 각성자들은 모두 오만하고 건방지다는 편견이 나도는 게 아니었다.
‘뭐… 그건 어쩔 수 없긴 하지.’
성좌에게 부여받은 성흔으로 일반인들은 꿈에도 꿀 수 없는 기적을 행할 수 있으니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이 생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선민의식이 기저에 깔린 각성자들을 모아 군대를 만든다?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하네.’
솔직히 자신에게 그 역할을 맡으라고 하면 화병으로 쓰러질지도 몰랐다.
“으음. 잠시만요. 저도 정확한 인원까지는 모르지만.”
잠시 머릿속으로 셈을 하던 카시아가 말을 이었다.
“최소 만 명은 넘을 거예요.”
“뭐?”
만 명?
천 명도 아니라 만 명?
그게 말이 돼?
“아니 뭐 각성자를 강제 징집이라도 하는 거야? 어떻게 그 인원이 모여?”
“정확하시네요.”
“뭐가 정확하다는… 아.”
설마.
“맞아요. 러‧중 동맹은 성인 이상의 각성자를 ‘성’의 수준과 관계없이 강제로 징용해요.”
“…….”
이야 씨.
이게 되네.
“물론 일반적인 군대처럼 한 장소에 몰아넣고 단체 생활을 시키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군 소속으로 되어 있죠. 길드 같은 걸 만드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요. 뭐, 사실 군인이라기보단 공무원에 가깝겠네요.”
“허.”
진짜 각성자들을 강제 징용하는 나라가 있을 줄이야.
물론 오진도 징병제가 있는 나라에서 나고 자라긴 했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시행하는 것과 각성자를 대상으로 징병제를 시행하는 건 엄연히 달랐다.
오진은 헛웃음을 흘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유야 어쨌든.
당장 군대가 필요한 오진의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고 보니 알리나 블라디미르가 가진 성흔은 뭐야?”
“백조자리의 성흔이에요.”
“백조자리?”
백조자리라면 데네브의 성흔 아니던가.
‘알리나가 데네브의 12사도 중 한 명이었어?’
그런 것 치고는 전에 대리전 때도 그렇고 그 이후로도 데네브 근처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뭐, 어쨌든 그녀가 데네브의 12사도 중 하나라면.
“잘됐네. 그럼 알렌한테 부탁해서 포섭에 도움을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냐?”
데네브의 12사도를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인 무곡성 알렌 오스칼에게 부탁하면 어렵지 않게 그녀를 포섭할 수 있으리라.
안 그래도 알렌에게는 백무강에 대한 일로 빚을 지워둔 게 있었으니까.
[그건… 힘들 것이니라.]베가가 나지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힘들다니?”
[전에 데네브가 자신의 사도 중에 신전에 한 번도 안 찾아온 괘씸한 사도가 있다며 툴툴거리는 걸 들은 적 있느니라.]“…그게 알리나라는 거야?”
[이름을 들어보니 맞는 것 같구나. 데네브가 자존심을 굽히고 몇 번 먼저 신전으로 초대했음에도 자신은 성좌와 연관되고 싶지 않다며 거절당했다고 들었느니라.]“흐음.”
성흔만 데네브에게 받았을 뿐 그를 따르지는 않는다는 건가.
‘드문 일은 아니지.’
사실 각성자 중에 무슨 종교 사제처럼 성좌를 받들어 모시는 각성자는 흔치 않았다.
‘성좌를 신처럼 받들어 모신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게 없으니까.’
성흔이라는 것을 표현 그대로 ‘씨앗.’
인간에게 성흔이 한 번 뿌리 내린 후로는 성좌가 각성자의 성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도, 영향을 줄 수도 없으니 성좌에게 간이고 쓸개고 바쳐가며 헌신한다고 해서 딱히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축복이 있기는 하지만.’
베가처럼 사도가 한 명이라면 모를까.
기본 수백에서 수천에 달하는 사도를 거느린 성좌 입장에선 함부로 축복을 내려줄 수도 없었다.
“그럼 알렌의 협조를 바라기도 힘들다는 건가.”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성흔을 지닌 각성자라면 도움을 줄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런 얄팍한 인연에 기대기에는 사안이 커도 너무 컸다.
‘각성자 입장에선 같은 성흔을 지녔다는 건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 정도의 느낌밖에 없으니까.’
현직 군사령관에게 누가 와서 우리 같은 학교 출신이니 군대를 파견해 도와달라 말했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도 도시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정도로 강력한 마수 무리가 들끓고 있는 위험 지역에.
‘그 자리에서 총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어쨌든.
알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은 쓸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직접 알리나를 포섭해야 한다는 건데….”
그러기에는 그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부실했다.
“그거라면 제게 맡겨주세요.”
카시아가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섰다.
“알리나 블라디미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은 이미 모두 파악해 뒀으니까요.”
“허, 언제 그런 정보들을 모은 거야?”
“후훗. 지난 3개월 동안 저라고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며 오진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는 카시아.
그 모습이 마치 칭찬해 달라고 조르는 강아지처럼 느껴져 오진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쓰다듬어 버리고 말았다.
“아, 미안.”
뒤늦게 여자들은 함부로 머리를 만지는 걸 가장 싫어한다는 얘기를 떠올린 오진은 짧은 사과와 함께 손을 내렸다.
탁.
내려가는 손을 카시아가 다급히 낚아챘다.
“조, 조금 더 쓰다듬어 주세요.”
“…….”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하는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오진은 그녀의 바람대로 카시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헤헤.”
카시아의 입가가 느슨하게 풀어지며 애교를 부리듯 몸을 밀착했다.
매끈하면서도 부드러운 머릿결의 감촉에 잠시 넋을 놓고 머리를 쓰다듬던 오진은 주변에서 느껴지는 여인들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질 무렵 손을 떼었다.
“크흠. 그래서 알리나에 대한 정보는 뭐야?”
뭔가 아쉽다는 듯 오진의 손을 바라보던 카시아가 그림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림자가 꾸물꾸물 움직이며 그 안에서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에 찍힌 것은 어깨까지 오는 짧은 은발의 여인.
굳게 다문 입술과 짙은 눈매에서는 강인한 전사의 기세가 느껴졌다.
“알리나 블라디미르. 러시아 군인 가정 출신으로 ‘최초의 균열’이 열리기 전부터 군인으로서 활동했다고 해요.”
“천생 군인이라는 거네.”
“예. 백조자리의 성흔을 각성한 후에는 각성자로 이뤄진 군부대를 이끌고 마수들을 사냥하고 다니며 빠르게 성장했어요. 칠성의 일원으로 들어간 건 6년 전쯤이고요.”
6년 전이라면 ‘칠성’이 만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거의 원년 멤버라는 거군.’
그렇다면 그만큼 각성자로서의 경지 또한 높다는 증거일 터.
“지금은 그럼 몇 성이야?”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아마 저희와 같은 11성으로 추정돼요.”
“11성이라.”
확실히 동맹군의 총사령관 자리를 차지할 만큼 높은 경지였다.
“어디 사진 나도 한번 보자.”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하은이 불쑥 손을 내밀어 사진을 낚아챘다.
“흐음. 얘가 그 태을성이란 말이지.”
유심히 사진을 바라보던 하은이 휘파람을 불었다.
“예쁘네?”
훤칠한 키와 다부진 어깨, 강한 눈매 때문에 예쁘다는 말보다는 늠름하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지만.
외모 자체만 놓고 보면 알리나 블라디미르는 꽤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얘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이지? 오지니가 직접 나서서.”
“그렇지.”
“흐음.”
사진을 빤히 바라보던 하은이 침음을 삼키며 가늘게 눈을 떴다.
“왜?”
“…설마 얘랑도 뭐 엮이는 거 아니지?”
“뭔 헛소릴 하는 거야.”
여기서 갑자기 엮이니 뭐니 하는 말이 왜 나온단 말인가?
“그런 말을 하기엔 아저씨 전과가 좀 화려하시거든요?”
하은이 팔짱을 끼며 이사벨라, 베가, 카시아 순으로 쭉 훑어봤다.
정곡을 찔린 오진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거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카시아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하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사진 한 장이 더 올라왔다.
사진에 찍힌 것은 어느 중년 여인의 모습.
젊었을 적 고생을 많이 한 건지 피부는 사막처럼 거칠었고, 얼굴에는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이 아줌마는 또 누구야?”
“10년 전 알리나 블라디미르의 사진이에요.”
“뭐, 뭐라고?”
하은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사진만 봐서는 도저히 둘이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외모였다.
카시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고위 각성자가 되면서 육체의 재구성을 통해 젊어졌지만, 그녀는 이미 50대가 넘은 아줌마예요.”
“흐음. 하지만 그런 걸로 치면 베가가 나이가 더 많….”
[그, 그 입 다물지 못할까!]베가가 황급히 날아가 하은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본녀의 나이를 입에 담지 말라 그리 말했거늘!]“아아아, 미안. 미안하다니깐.”
간신히 베가의 손에서 벗어난 하은이 카시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나이가 많다고 방심하긴 일러.”
“하은 씨. 하나 잊고 계신 게 있지 않으신가요?”
“엉? 뭔데?”
“성좌라면 몰라도, 보통 50대쯤 되는 나이라면 대부분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답니다?”
“아.”
하은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알리나 블라디미르에겐 이미 성인이 된 아들도 있어요.”
“아하. 그랬구나.”
하은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정확히는 안도에 찬 한숨을 내쉬려고 했었다.
이어지는 카시아의 말을 듣기 전까진.
“아, 물론 남편과는 예전에 사별한 것 같지만요.”
“…….”
하은의 시선이 오진에게 향했다.
애 딸린 50대 미인 과부라.
말로 표현 못 할 불길함이 스멀스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아니지?”
누난 우리 오지니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