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1화
폐관 수련 (2)
-한동안 연락을 못 받으실 것 같다고요?
한 팀장의 당혹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예. 한동안은 개인 수련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음… 수련 기간은 그럼…?
한준만 팀장은 난처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설마 지금 타이밍에 자신이 자리를 비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
‘하긴, 지금 한창 정신없겠지.’
북극성의 사도가 한국에서 나타났다는 소문에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었다.
한국의 길드뿐만 아니라 외국의 초대형 길드까지 오진이 소속된 협회를 주시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만도 할 노릇.
“일단 3개월 정도 생각 중입니다.”
-3개월이라… 타이밍이 좀 그렇긴 하네요. 이번에 오진 씨 앞으로 들어온 미팅 제의만 해도 벌써 수백 건이 넘어가거든요.
알고 있다.
다들 북극성의 사도와 어떻게든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는 것 정도는.
‘애초에 그걸 피하려고 잠적하는 거니까.’
물론 그들이 모두 순수한 선의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거라면 피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순수한 선의란 게 있을 리가 있나.
말만 우호적 관계지 뭐 이용해 먹을 구석 없나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게 뻔했다.
‘그나마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면 다행이지.’
내가 가지지 못하면 차라리 부숴주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접근하는 놈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해.’
최소한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하는 세력들에게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은 길러야 한다.
자신이 다른 각성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아직 3성에 불과한 각성자였으니까.
“어쨌든 한동안 개인 수련에 집중할 생각이니 미팅 제의는 전부 거절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은 오진 씨 말대로 몸을 사리는 게 현명할 것 같네요.
역시.
우리 팀장님은 말이 잘 통해서 좋다니깐.
“아 참.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이걸 까먹을 뻔했네.
“별빛 호수 길드에 연락 한 번 넣어주실 수 있습니까?”
-별빛 호수 길드에요?
“예. 제가 최종철이란 각성자에게 큰 모욕을 당했다고요.”
그때는 부탁을 들어주면 넘어가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당연히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욕을 당하신 거죠?
“저한테 협회의 개가 함부로 나댄다고 시비를 걸더라고요.”
하은에 대한 일은 쏙 빼놓고 말했다.
-…그딴 말을 했습니까?
한 팀장 또한 불쾌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자신이 소속된 곳을 싸잡아 깎아내리는 말을 들었는데 기분이 좋을 수가 있나.
-그 일은 제게 맡겨주시죠. 안 그래도 이번에 별빛 호수 길드에서도 미팅 제의가 왔었는데 그걸 빌미로 거절하면 되겠네요.
“하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찬 한 팀장의 목소리에 절로 입가가 올라갔다.
-아 참, 근데 수련 장소는 어디로 생각 중이시죠?
“아, 그건.”
오진은 씩 웃었다.
폐관 수련을 할 곳은 이미 정해졌다.
들끓는 관심 속에서도 안심하고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바로.
“성소(星所)입니다.”
-…예?
수백의 성좌들이 거주하고 있는 신들의 대지.
그곳이 폐관 수련을 위해 선택한 장소였다.
* * *
[━24시간 함께 있고 싶단 말이 이런 뜻이었느냐.]성소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세 개의 신전.
‘북극성’이라는 칭호를 지닌 성좌들만이 기거할 수 있는 거대한 신전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직녀성의 신전 내부는 여전히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뜻인 줄 알았는데?”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흥! 시끄럽느니라!]베가는 팔짱을 낀 채 성난 콧바람을 내뿜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하하. 미안해.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보다 제격인 곳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지구에서 베가가 현신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 몇 시간 정도.
그것만으론 그녀에게서 거문고자리 성흔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긴 어려웠다.
‘하지만 성소라면 얘기가 다르지.’
성소 안에선 성좌들의 족쇄라 할 수 있는 ‘율법의 제약’이 많이 약해진다.
하루 24시간 현신해 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단 의미.
[하은은 혼자 둬도 괜찮은 게냐?]“우리 누나가 애도 아닌데 뭐.”
어차피 하은도 당분간은 재활 훈련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아 보이긴 했지만.’
3개월간 성소에 틀어박혀 있을 거라는 말에 사납게 일그러졌던 그녀의 표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뭐, 그렇다고 해서 3개월 내내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직녀성의 신전이라고 해서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지녀야만 들어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원한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후훗. 그럼 한동안은 본녀와 쭉 같이 있을 수 있겠구나.]베가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푸흐흐! 잘 부탁드립니다 여신님.”
[흐흥! 본녀만 믿거라!]베가는 팔짱을 낀 채 거센 콧바람을 내뿜었다.
빙글.
춤을 추듯 한 바퀴 몸을 돌렸다.
우우우웅!
은빛 빛무리가 일렁이더니 30cm에 불과했던 그녀의 몸집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
오랜만에 보는 베가의 본모습은 여전히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 어떤 기술부터 알려주는 게 좋겠느냐?]베가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오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말로만 알려주는 건 큰 의미 없더라고.”
성소에 오기 전.
집 옥상에서 수련할 때도 그녀에게 몇 번 거문고자리 성흔의 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베가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서투른 건지 아니면 자신의 이해력이 달리는 건지 설명만 들었을 때는 당최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은하수의 별빛이 구름을 타고 흐르듯 마력을 운용하라는 게 뭔 말인데.’
대체 어떻게 마력을 움직이라고 하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음? 그럼 어떻게 기술을 배울 생각인 게냐?]“베가. 너와 직접 대련을 하고 싶어.”
이제까지의 경험을 되짚어보면 자신은 항상 실전을 통해 성장했다.
복잡한 이론보다는 극한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본능에 걸어보는 게 더 성장 가능성이 높단 의미.
비록 실전이 아닌 대련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로 설명만 듣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불가하느니라.]베가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왜? 제약 때문에?”
성소에 있다고 해도 제약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뿐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고 듣긴 했다.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니라.]“그럼?”
베가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대가 죽을 수도 있다.]“…아.”
확실히.
그녀와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생각하면 개미와 인간이 대련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을 조절해도 안 돼?”
[아무리 낮게 조절해도 안 되느니라.]그 정도 차이란 말인가.
‘너무 오만했나.’
지난 몇 개월간 다른 각성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에 너무 자신에 차 있었던 것일까.
막상 그녀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들으니 감히 성좌와 대련을 할 생각을 품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긴.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지.’
그녀는 인간과는 본질부터가 다른 초월자.
심지어 그 초월자들 중에서도 격이 다르다고 평가받는 북극성의 성좌였다.
‘이건 내가 너무 건방졌던 게 맞네.’
그동안 베가와 너무 편하게 지내다 보니 잠깐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자신은 그녀에게 있어 손가락 하나만으로 가볍게 눌러 죽일 수 있는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럼 어쩔 수 없네. 평소 하던 대로 하자 그럼.”
효율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베가의 경고를 무시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대련을 하고 싶진 않았다.
[으음. 잠시 기다려 보거라.]베가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이내 딱!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본녀는 힘들더라도, 본녀의 성령(星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성령?
‘성좌의 화신이라 불리는 그건가.’
기본적으로 성좌들은 제약에 묶여 지구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없다.
그래도 베가는 북극성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어느 정도 간섭이 가능했지만, 다른 성좌들은 성소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조차 불가했다.
거기서 나온 것이 성령.
성좌의 영혼 일부가 깃들어 있는 일종의 소환체였다.
‘물론 성령이라고 해서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좌가 직접 지구에 간섭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한 제약을 받는다고 한다.
‘그나저나 베가의 성령이라.’
이거 또 혓바닥에 기름칠 좀 해야겠구만.
[오너라.]베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직녀성의 종, 리아크여.]우우우웅!
찬란한 은빛 빛무리와 함께 허공에 균열이 생겼다.
-저벅, 저벅.
균열 속에서 나타난 것은 아름다운 은빛 털을 지닌 늑대.
“부르셨습니까, 베가 님.”
늑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유창한 말과 함께 리아크가 낮게 고개를 숙였다.
“으음?”
주변을 살피던 리아크의 시선이 오진에게 향했다.
움찔.
은빛 털이 곤두섰다.
“인간? 인간이 왜 이곳에…?”
경계심에 가득 찬 눈빛.
그를 향해,
“오랜만이야, 리아크.”
오진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은빛 늑대는 눈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냐 네놈은.”
“하하! 리아크 네가 나한테 반말을 하는 건 또 오랜만이네. 간만에 들으니 신선한데?”
“……?”
리아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베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베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오진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당황하지 말거라, 리아크여.]“무슨…?”
[이 아이는 미래의 시간에서 거슬러 올라온 회귀자이니라.]“여, 역천의 별!”
리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초월자인 성좌들 사이에서조차 신화처럼 전해지는 존재.
종말이 지어진 세계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유일무이한 희망.
“어찌 역천의 별이… 그, 그렇다면!”
역천의 별이 떠올랐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미래’의 세계가 이미 한 번 멸망했다는 것.
즉━
“결국, 베가 님은 예언대로….”
그가 받들어 모시는 주인이 흑천의 어둠에 집어 삼켜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쿠웅!
리아크는 분하다는 듯 앞발을 굴렀다.
지금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의 일이지만, 주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자책하지 말거라, 리아크여.]베가가 자상한 손길로 리아크를 쓰다듬었다.
[그 미래를 막기 위해 나의 아이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냐.]“…….”
리아크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오진을 노려보았다.
역천의 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약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자가 진정 역천의 별이란 말씀입니까?”
[후훗. 시간이 지나면 그대도 알게 될 것이니라.]베가는 자신에 찬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베가.”
[알겠느니라.]베가는 리아크에게 오진이 이곳에 온 목적을 설명했다.
“대련… 말씀입니까? 저자와?”
[그러느니라.]“크르릉.”
리아크는 눈을 좁히며 오진을 위아래로 살폈다.
솔직히 전혀 미덥지 못했지만.
“베가 님의 명이라면.”
우드득!
리아크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2미터에 달하는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은빛 털 사이에 튀어 올랐다.
‘와 씨, 뭐야?’
꿀꺽.
오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리아크를 올려다보았다.
늑대인간으로 변신한 리아크에게서 숨이 턱 막힐 듯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솔직히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는 베가보다도 더 강해 보인다.
‘그건 베가가 본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지금 자신과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의 강자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지.”
리아크가 자세를 잡았다.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들어 올렸다.
‘솔직히 이기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적어도 버티는 것만이라면.
‘할 수 있━’
콰아앙!!
“……!”
육안으로는 보이지조차 않았다.
본능에 맡겨 창을 들어 올렸다.
-쿠웅!!
“커헉!!”
손에 쥔 창이 거칠게 튕겨 나갔다.
손바닥이 찢어지며 핏물이 튀어 올랐다.
“크윽!”
다급히 바닥을 구르기 위해 자세를 낮췄지만.
“느리군.”
뻐억!
리아크가 축구공을 차듯 오진의 배를 걷어찼다.
“커허억! 컥! 쿨럭!”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이런 미친.’
3초.
오진과 리아크의 첫 대련이 끝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