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1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15화
별들의 전쟁 (6)
“흐읍!”
가장 선두로 달려 나간 건 데네브의 12사도 중 실질적인 서열 1위이며, 칠성 중에서도 최강자라 알려진 무곡성 알렌 오스칼이었다.
‘뫼비우스는 오진 씨가 맡겠다고 했으니.’
그가 노려야 할 것은 뫼비우스의 꼭두각시로 변한 성좌들.
그중에서도 파리자리의 성좌, 무스였다.
흑성의 성좌들의 서열이 흑성회 집행관들의 서열과 동일하다면 뫼비우스 다음가는 힘을 지닌 성좌는 바로 무스일 터.
물론 이지를 상실한 꼭두각시가 된 시점에 서열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같은 꼭두각시 중에서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지 않겠는가.
‘파리자리의 성좌, 무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저 다섯 중 누가 ‘파리자리의 성좌’인지 구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검은 머리에 검은 피부.
안면의 반을 뒤덮은 흉측한 붉은 눈동자.
마치 파리의 눈을 연상시키듯 수천, 수만 개에 달하는 눈동자는 멀리서 보면 눈이라기보단 바이저 헬멧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 *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오진 씨와 합류한다.’
성좌를 상대해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딱히 긴장되지는 않았다.
약에 취한 듯 흐리멍덩한 무스의 눈빛을 보면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웠으니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는 ‘성역’을 유지하는 것도 불안정할 거야! 사정 봐줄 것 없이 몰아붙여 알렌!]알렌의 뒤를 따라 날아온 데네브가 무스를 가리키며 외쳤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알렌이 백조자리 성흔의 힘을 끌어올렸다.
-콰자자자작!
내딛는 발걸음마다 얼어붙는 대지.
하얀 서리 폭풍이 휘몰아치며 섬전 같은 검격이 무스를 노렸다.
[아, 으.]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멍하니 다가오는 검격을 바라보던 무스.
그의 안면을 뒤덮고 있는 눈동자에 순간 빛이 번뜩였다.
카가가가가각!
무스의 팔에 돋아난 검은 가시가 알렌의 검을 튕겨냈다.
검을 쉰 손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에 알렌이 눈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꼭두각시가 됐어도 성좌는 성좌라는 건가.”
이지를 상실한 듯 흐리멍덩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무스는 알렌의 검이 다가오자 언제 가만히 있었냐는 듯 민첩한 몸놀림으로 그의 검을 튕겨냈다.
[…각성, 자.]검과 부딪힌 팔 일부를 뒤덮고 있는 서리를 멍하니 내려다보던 무스의 입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각성자를… 죽여, 라.]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우우우우웅!
스위치가 켜진 기계장치처럼 폭발적인 마력이 무스의 전신을 뒤덮었다.
등가죽이 갈라지며 투명한 날개가 펼쳐졌다.
그리고, 한 걸음.
슈욱, 슉! 슈슉!
마치 입체 기동을 하는 것처럼 공중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틀며 접근한 무스.
무스의 팔에 돋은 검은 가시가 송곳처럼 알렌을 찔렀다.
가까스로 검을 들어 방어한 알렌의 몸이 거칠게 뒤로 튕겨 나갔다.
“크윽!”
백여 미터를 튕겨 나간 알렌이 건물 외벽에 충돌했다.
유아용 개그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선명한 사람 모양 자국이 외벽에 새겨졌다.
[알렌!]“…괜찮아.”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 알렌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다는 계획은 접어둬야겠네.’
꼭두각시가 된 성좌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판단했지만.
껍데기만 남아도 성좌는 성좌였다.
성역을 둘째치더라도 기본적인 힘과 속도부터가 인간과는 궤를 달리했다.
‘하지만.’
백조자리 성흔이 타오르듯 빛을 뿜는다.
‘상대할 수 없을 정도는 아냐.’
인간과 궤를 달리하는 스펙을 지니고 있는 건 11성에 올라선 각성자인 알렌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더해 전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흔’의 능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의 성좌라면.
“흐읍!”
깊게 숨을 들이켜며 검을 역수로 쥐었다.
떠올리는 이미지는 눈 덮인 설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대지 위에 칼날 같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모습.
머릿속으로 구현한 이미지에 백조자리의 성흔이 공명했다.
“얼어붙어라!”
영창을 내뱉으며 역수로 쥔 검을 내려찍었다.
바닥을 파고든 검을 중심으로 대지가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 휘몰아치는 눈송이.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광경일지 몰라도, 흩날리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모두 날카로운 검기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아름답다’라는 감상은 나오지 않으리라.
[아, 으.]휘몰아치는 눈송이가 무스의 몸을 난도질했다.
피 대신 흉측한 녹색 체액이 상처 사이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처 단면 사이로 구더기가 거품처럼 끓어오르더니 순식간에 벌어진 살점이 다시 달라붙었다.
[으… 저 성흔은 언제봐도 불쾌하단 말이야.]데네브가 헛구역질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 어!”
더욱 거센 눈보라를 만들어내며 무스를 압박했지만, 알렌 혼자의 힘으로는 파리자리 성흔의 재생 능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나도 나쁜 사람… 응? 아, 맞다 사람 아니지. 나쁜 성좌 혼내줄 거야!”
백무강이 알렌을 도와 무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 칠성의 맹렬한 공세가 성좌를 향해 쏟아졌다.
그렇게 성좌와 치열한 교전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은 알렌과 백무강만이 아니었다.
화르르르륵!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이 검은 깃털에 뒤덮인 올빼미를 노렸다.
[용안의… 각성, 자.]올빼미자리의 성좌, 녹투아가 하은을 바라보며 더듬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꼬라지가 돼도 기억은 나나 보지?”
하은은 씨익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손에 쥔 연초를 녹투아를 향해 겨눴다.
“내가 네 애새끼 때문에 고생 좀 했거든.”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천도윤에게 붙잡혀 생으로 눈이 뽑힐 뻔했던 기억을.
그때 오진이 ‘개천’을 각성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그녀는 다시 빛 한 점 없는 컴컴한 어둠 속 갇혀 있었을 것이다.
“뭐, 그 덕분에 우리 오지니한테 고백도 하고 잘 됐지만.”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그날 겪은 일들이 유쾌통쾌 납치극(본인이 당함)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널, 납치한… 기억, 없다.]“원래 자식의 잘못은 부모가 대신 지는 거야. 몰랐어?”
연초 끝에 맺힌 불빛이 점차 크기를 키우더니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했다.
“타올라라.”
거대한 불길이 해일처럼 녹투아를 덮쳤다.
녹투아를 덮친 불꽃의 해일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듯 사방으로 뻗어나가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읏…! 하은 언니, 화력 조절 좀 해주세요.”
사방으로 퍼진 불길에 그을린 이사벨라가 눈을 찌푸리며 하은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은이 뻘쭘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이사벨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그녀가 상대하고 있던 ‘적’을 응시했다.
길게 째진 입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닌 흉측한 외모의 성좌.
그는 몽롱한 눈빛으로 이사벨라를 바라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 아이. 왜, 날 공격… 하지?]“당신의 아이 같은 거 아니에요.”
이사벨라는 거머리자리의 성좌, 히루도를 바라보며 핏빛 낫을 움켜쥐었다.
“제게 있어서 이 성흔은… 끔찍한 저주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지금에야 오진 덕분에 흡혈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과거 그녀는 거머리자리 성흔이 가져다주는 끔찍한 흡혈 충동에 매일 같이 시달려야만 했다.
영혼이 메마른 것 같았던 끔찍한 갈증.
그 갈증에 몇 년을 넘도록 시달려 온 그녀에게 있어 거머리자리의 성좌는 성흔을 베풀어준 은인이 아닌, 증오해야 할 원수였다.
[나는… 왜… 윽, 아… 으.]“아쉽네요. 복수를 한다면, 조금 더 정상적인 상태의 당신에게 하고 싶었는데.”
이사벨라는 몸 주위에 핏빛 사슬을 만들어내며 히루도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다들 열심히 싸워주고 있네요.”
치열한 교전이 시작된 전장을 바라보며 뫼비우스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남 일처럼 굴 때가 아닐 텐… 데!”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을 머금은 창날이 뫼비우스를 노리고 쏘아졌다.
뫼비우스는 바닥을 미끄러지듯 창을 피하며 손에 쥔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특별한 기교도, 그렇다고 압도적인 힘도 담겨 있지 않은 평범한 검격.
오진의 실력이라면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검격이었지만.
“크윽!”
오진의 가슴이 길게 베이며 핏물이 흘러나왔다.
‘뭐야 대체.’
분명 검을 피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검날은커녕 검이 휘둘러지며 생긴 검풍조차 닿지 않을 거리였을 텐데.
대체 뭐에 가슴이 베였단 말인가.
[그림자이니라!]“…그림자?”
오진의 시선이 검 아래쪽으로 향했다.
뫼비우스가 쥔 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이거였나.’
뱀주인자리의 성흔은 ‘그림자’를 다루는 성흔.
검에 시선이 쏠려 드리워진 그림자를 캐치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실책이었다.
“하하, 역시 베가 님이시군요. 한 번에 제 능력을 파악하시다니.”
뫼비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검을 든 팔을 내렸다.
요동치는 그림자가 검극을 따라 넓게 펼쳐졌다.
‘그림자라.’
카시아를 상대할 때도 느꼈지만 확실히 까다로운 능력이었다.
빛이 있는 한 그림자의 존재를 없애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아니, 빛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지.’
뫼비우스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그림자는 실제 그림자가 아니라 그림자의 성질을 띤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모든 빛을 차단한다고 해도 그림자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그림자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면 될 뿐.
“흐읍!”
높게 점프한 후 뇌흔 밟기를 사용해 허공을 밟았다.
애초에 ‘공중’은 그림자가 닿을 수 없는 장소.
뫼비우스의 성흔이 그림자에 그 본질을 두고 있는 이상, 공중까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다.
“전에 카시아에게도 쓰셨던 방법이네요.”
뫼비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녀에게 통한 방법이… 제게도 먹힐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느긋하게 휘둘러지는 검격.
검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허공이 갈라지며 그림자가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공중을 연기처럼 떠도는 그림자라니.
물리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성좌를 상대할 때는 때로는 상식이 독이 되기도 하죠.”
공중에는 그림자가 닿지 않을 거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
하지만 그런 당연한 법칙들을 조롱하고 왜곡하는 것이 바로 성좌가 지닌 성역의 힘이었다.
-촤아아아악!
허공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칼날이 솟구쳐 올랐다.
공중으로 떠올랐던 오진의 몸이 수십 개의 칼날에 난도질당했다.
“커헉!”
오진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흐음. 너무 과대평가였을까요?”
뫼비우스는 실망스럽다는 듯 바닥에 쓰러진 오진을 향해 걸어갔다.
그림자 칼날에 잘린 팔과 다리.
사지가 잘려 나간 오진은 고장 난 오뚝이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 으아! 아아아아악! 내, 내 파아아아알!”
“예, 이해합니다. 아프시겠죠. 하지만….”
“내, 내 파알!! 내 팔이이이이!”
“……?”
뫼비우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의 팔이 잘려 나간 건 사실이지만.
잘려 나간 것으로 치면 다리도 마찬가지일 텐데 저렇게 팔만 부르짖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뫼비우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잘려 나간 오진의 팔로 향했다.
그곳에는.
중지를 치켜든 채 잘려 나간 오진의 팔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무슨?”
의문이 마저 입 밖으로 새어 나오기도 전에.
푸욱.
뫼비우스의 가슴을 꿰뚫으며 창이 빠져나왔다.
“뭐긴 뭐야, 새끼야.”
엿이나 처먹으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