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24)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24화
막간–도주 (1)
“왜… 이브가 죽었냐고요?”
목걸이를 품에 끌어안은 채 오열하고 있던 뫼비우스가 날카로운 눈으로 오진을 쏘아봤다.
“여기까지 와서 그 아이가 왜 죽게 됐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뫼비우스의 시선이 성좌들을 향했다.
“당신들의 그 더럽고 이기적인 신념 때문에! 그 아이는 죽게 된 겁니다!”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그때 지금처럼 성좌들이 도와줬다면…….”
“그 얘기가, 아니야.”
“…예?”
분명 이신혁의 기억 속에서 뫼비우스는 천마에게 우리의 목적은 ‘같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한 목적은 성좌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복수 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천마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니까.’
천마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
이신혁을 과거로 보내 ‘운명’을 뒤바꾸는 것.
그리고.
원래라면 죽음을 맞이했을 하은의 운명을 뒤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천마의 목적이었다.
‘전생의 뫼비우스가 그걸 몰랐을까?’
아니.
몰랐을 리가 없다.
몰랐을 수가 없다.
-그 아이는 당신의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아이지 않습니까?
흥분한 천마를 뜯어말리며 뫼비우스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이신혁은 당신의 계획에 있어서 중요한 아이라고.
천마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겁니까?”
뫼비우스는 지금 오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 크윽!”
그때.
성흔에서 격통이 느껴지며 흑천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지금 빠져나가는 흑천의 기운은 가장 처음 천마에게 받았던 기운.
흑천을 성흔에 뿌리내려 자라나는 나무에 비유한다면, ‘씨앗’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이 기운이 빠져나간다는 건….’
자신의 완전한 ‘소멸’이 머지않았다는 의미.
“…이제 다, 끝이군요.”
뫼비우스의 입가에 자조 섞인 미소가 지어졌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허망한 끝을 맞이하게 됐다.
“하, 하하.”
뫼비우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악한 사과 목걸이를 손에 쥐었다.
별빛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제, 곧… 만날, 수… 있을, 까요?”
이브에 대한 추억들을 곱씹으며 서서히 눈을 감으려고 했을 때.
“멋대로 끝내려고 하지 마.”
오진이 그의 성흔 위에 손을 올리더니 흑천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기 시작했다.
천마의 흑천이 빠져나간 자리를 오진의 흑천이 대신 채웠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적인 자신을 갑자기 살려주려고 하다니?
“동정… 하는, 거라면… 필요, 없…”
“그딴 이유가 아니야.”
오진은 초조한 표정으로 뫼비우스의 성흔에 계속해서 흑천의 힘을 불어넣었다.
가루가 되어 흩어져 가던 뫼비우스의 몸이 수면 위에 돌을 던진 것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네게 물어볼 게 있어.”
“물어볼… 거라, 니… 아까 이브가 왜… 죽었냐는, 그건… 가요?”
뫼비우스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격통 속에서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왜 이브가 죽었냐니.
인제 와서 그걸 물어보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아이는, 우리의 욕심… 때문, 에… 죽은, 겁니다.”
그날 전장을 향하는 그 아이를 억지로 붙잡았다면.
아니, 애초에 자신이 그 아이에게 성흔을 내려주지 않았다면.
이브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내가… 그 아이를, 죽인 겁니다.”
그래.
이브를 죽인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래.
만약 자신이 천마와 같은 ‘회귀자’였다면 절대로 그 아이에게 성흔을 내려주지는 않았━
“어?”
그때.
기이한 위화감이 뫼비우스의 등골을 타고 퍼졌다.
오진이 지닌 흑천이 그에게 흘러 들어감에 따라 낯선 기억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잊지 마세요.
천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신의 모습.
-당신과 제 목적은 하나뿐이라는 걸.
-알고 있어.
천마는 흠씬 두들겨 패던 인간을 뒤로 한 채 자신과 함께 몸을 돌렸다.
‘뭐야 이건…?’
낯선 기억이다.
없는 기억이다.
지금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기억 속의 자신은.
‘내가 아니야.’
자신은 천마와 저런 대화를 나눈 적도, 그와 함께 다닌 적도 없었다.
천마와 직접 마주친 건 처음 힘을 받았을 때 정도.
그에게 흑천의 힘을 받아 검은 별이 된 이후에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연락을 주고받은 것뿐 직접적으로 만나서 같이 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기억 속 자신은 누구란 말인가?
닮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자신과 너무 흡사했다.
자신이라고 하기에는 저런 대화를 나눈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아니야…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인과가 연결되지 않는다.
천마는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 분명 이브가 죽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회귀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전생에 그와 자신 사이에 접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 없었다.
당연했다.
천마와 이브의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점이 없었으니까.
검은 별이 된 직후에는 마수 무리의 갑작스러운 습격이 혹시 천마의 지시가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었지만, 직접 조사해본 결과 그것도 아니었다.
마수 무리의 갑작스러운 습격은 어디까지나 마경의 생태 변화에 따른 결과일 뿐.
누군가가 의도를 지니고 일으킨 건 아니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 자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브가 죽은 이유는 그저 성좌들이 그 아이를 외면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이, 이 기억은 뭐냐고, 대체!”
뫼비우스는 오진의 멱살을 틀어쥐며 외쳤다.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전승으로 받은 기억이… 공유됐다고?”
이건 오진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전승? 공유? 그게 무슨 말이야?”
“흐음.”
어쨌든.
이신혁을 통해 전승받은 전생의 기억이 뫼비우스에게까지 전해졌다면 얘기는 오히려 편했다.
“방금 네가 본 건 전생의 네 기억이야.”
“전생의… 나?”
“그래.”
천마와 이신혁이 회귀하지 않은.
운명이 뒤틀리기 전의 세계.
“아, 으.”
뫼비우스가 새하얀 머리칼을 쥐어뜯듯 움켜쥐며 몸을 숙였다.
“그러면… 나랑 천마와 전생에도 알고 있던 사이였다고?”
“알고만 지냈을까.”
동료… 라고 부르기엔 둘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으니.
‘협업자’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왜, 왜…! 이브를 지켜주지 않은 거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했잖아! 그렇다면! 왜, 대체 왜 그 아이의 운명만 바뀌지 않은 건데!”
절규하듯 외치는 뫼비우스.
오진은 씁쓸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걸 알고 싶어서 널 살려둔 거야.”
“아, 아으, 아.”
뫼비우스의 몸이 발작을 일으키듯 바들바들 떨렸다.
지나친 감정의 격류가 이성을 불사르며 사납게 타올랐다.
“왜, 왜, 왜, 왜, 왜, 왜, 대체… 왜!”
머리를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을 때.
쩌저저저적!
허공이 일그러지며 검은 균열이 나타났다.
칠흑의 균열 속에서 한 사내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너.”
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서로 다른 운명을 걸어온 또 다른 오진.
천마였다.
“너어어어어어!!!”
“음?”
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뫼비우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뭐야? 아직 살아 있었어?”
지금쯤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천마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였다.
“너… 이브가 죽을 걸 알고 있었어?”
“흐음. 아무래도 네가 다 알려준 모양이지?”
오진 쪽을 쓱 돌아보며 비릿하게 웃는 천마.
그것만으로 ‘알고 있었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 정도는 충분했다.
“왜, 왜 구해주지 않은 거야!”
뫼비우스는 손에 쥔 목걸이를 부서지라 움켜쥐며 토해내듯 외쳤다.
“우린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했잖아! 너를 도와주는 대신, 그 아이를 구해주기로 나랑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왜 그 아이의 운명만 바뀌지 않은 거냐고!!!”
“잠깐…!”
콰앙!
오진이 말릴 새도 없이 대지를 박차며 뫼비우스가 질주했다.
오진의 흑천을 흡수해서 가까스로 소멸을 피한 뱀주인자리의 성흔이 환하게 타올랐다.
“대답해 이 새끼야!!!”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내 펼치는 성역.
대지를 뒤덮은 그림자가 천마를 노리고 뻗어나갔다.
딱.
천마는 달려드는 뫼비우스를 바라보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부싯돌을 부딪친 것처럼 손가락을 튕긴 자리에 검은 불씨가 타올랐다.
화르르륵!
바닥에 떨어진 작은 불씨는 뫼비우스의 그림자와 맞닿자마자 기름을 들이부은 듯 사납게 타올랐다.
“아아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뫼비우스의 성역이 검은 불꽃에 전부 집어 삼켜졌다.
검은 불꽃에 전신이 뒤덮인 뫼비우스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대답, 해… 왜… 그, 아이, 를.”
전신이 불타오르면서도 뫼비우스는 엉금엉금 바닥을 기어 천마에게 다가갔다.
“아, 그거?”
천마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뫼비우스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렸다.
“거짓말이야.”
퍼석.
천마의 발에 짓밟힌 뫼비우스의 머리가 산산이 터져나갔다.
뫼비우스가 움켜쥐고 있던 목걸이가 그의 손에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뫼비우스의 머리를 가볍게 짓밟아 터트린 천마는 느긋한 시선으로 성좌들을 바라봤다.
“이걸로 일단 ‘성역’에 대한 변수는 다 정리됐네.”
율법의 제약이 예상했던 것보다 약해진 탓에 성좌들 대부분이 ‘소멸’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아마 율법을 어긴 대가로 향후 몇 년… 아니 수십 년 이상을 성소 안에 갇힌 채 지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막’을 내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안녕?”
천마는 오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활짝 웃었다.
“내가 말했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