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6화
마수 토벌 (2)
토벌에 맞는 장비들을 준비하다 보니 금방 이틀이 흘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흣차.
오진은 다소 묵직한 배낭을 등에 짊어졌다.
무게가 꽤 나가긴 했지만, 4성에 올라서면서 한층 강력해진 육체 덕분에 그냥 가벼운 노트북 가방 정도를 등에 멘 느낌이었다.
“너무 많은 거 아냐?”
하은이 다가와 물었다.
“부족한 것보단 넘치는 게 낫지.”
“천생 짠돌이가 웬일이래?”
“그래도 쓸 때랑 아낄 때를 구분할 줄은 압니다만.”
다른 것도 아니고 생존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하는데 돈은 아낄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누난 왜 그런 복장이야?”
몸에 짝 달라붙는 가죽 갑옷을 입은 하은을 가늘게 뜬 눈으로 살폈다.
활동성을 중시한 건 알겠지만, 레이싱 슈트처럼 짝 달라붙는 갑옷 덕분에 그녀의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히히힛! 왜? 좋냐?”
하은은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잡지 모델이 지을 법한 포즈를 취했다.
민망하기 짝이 없는 포즈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이 누나가 진짜.’
지금이야 둘만 있다지만 밖에선 어쩌려고 저런 걸 입었단 말인가.
“빨리 딴 거 입어.”
“흐흐흥. 왜에~? 이거 움직이기 엄청 편하고 좋은데~?”
입가를 손으로 가린 채 실실 웃고 있는 하은의 모습.
“…….”
오진의 눈썹이 슬며시 올라갔다.
“캬하하하! 장난이야 새꺄! 아무렴 누나가 이대로 입고 밖에 나가겠니?”
그녀는 구석에 숨겨둔 재킷을 입으며 깔깔 웃었다.
재킷이라 해도 꽤 긴 덕분에 허벅지까지 싹 다 가려졌다.
“에구. 이 귀여운 새끼! 왜? 다른 사람이 볼까 봐 질투했엉?”
하은이 폴짝 뛰어올라 헤드록을 걸며 장난스레 오진의 머리를 헝클였다.
오진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어, 맞아. 질투했어.”
“…엉?”
움찔.
하은의 몸이 떨렸다.
오진은 목에 둘러진 그녀의 팔을 슬며시 풀어내며 한 걸음 다가갔다.
“누나 몸은 나만 볼 수 있어. 다른 누구에도 보여줄 수 없어.”
“오, 오지나?”
“하은아.”
쿵!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어? 어어어?”
하은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안대로 가리지 않은 왼쪽 눈동자가 정신 사납게 흔들렸다.
천천히.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기울였다.
“오, 오지나! 자, 잠깐!”
허둥지둥거리는 하은의 모습.
“…눈 감아.”
“으읏!”
하은이 질끈 눈을 감았다.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
“오지나….”
조심스럽게 턱을 들어 올리며 입술을 내미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에━
-딱!
“아악!”
손가락을 튕겼다.
앞니에 부딪힌 손톱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푸흐흐! 장난이야.”
“이, 이 개새끼가!”
하은이 입술을 북북 문지르며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게 누가 먼저 놀리래.
“시간 늦겠다. 얼렁 가자.”
“씨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눈살을 좁히면서도 짐을 챙겨 따라 나왔다.
부르릉.
협회에서 빌려준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속초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은 하은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근데 너 운전도 할 줄 알았냐?”
“배웠지.”
“오오. 언제?”
“어제.”
“씨발아.”
창백해진 표정으로 창문 위에 보조 손잡이를 잡았다.
-뾰로롱.
그때.
오진의 목에 찬 펜던트가 빛나며 작은 인형 사이즈의 여신이 나타났다.
[오오. 이제 출발하는 게냐?]“응. 몇 시간 걸리니까 들어가 있어. 도착하면 부를게.”
[흐응. 그 전에 잠깐 이 자동차란 것을 구경해보고 싶구나.]오진의 머리 위에 턱 앉은 베가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인간들이 이런 쇳덩이를 타고 다닌다는 건 라이크에게 들었지만… 실제 이 안에 타보게 될 줄이야!]“그렇게 신기해?”
[흐응! 물론이다! 이제껏 본녀가 살아왔던 세계에선 보지 못했던 것이니!]“나도 신기해.”
[……?]자.
슬슬 출발해 볼까?
“오른쪽이 액셀이고 왼쪽이 브레이크.”
[나의 아이야?]“좋아, 완벽해.”
[완벽한 것 맞느냐?]“아냐. 그거 완벽한 거 아니라고.”
부아아아앙!!!!
엔진이 야수처럼 울부짖는다.
협회에서 빌려준 차의 성능이 꽤 뛰어났던 걸까.
무시무시한 가속도와 함께 차가 질주했다.
“이, 이건!”
제작자의 예상을 훨씬 추월한 추진력!!
“꺄아아아악!!!”
[머, 멈추거라!!]두 여인의 비명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졌다.
* * *
찰칵.
차 문을 열었다.
“금방 도착했네.”
“하아, 하아, 하아!”
조수석에서 하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왔다.
베가는 차가 출발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펜던트 속으로 도망쳤다.
“소, 속 뒤집어지는 줄 알았네.”
“그래도 중간부턴 감 잡고 속도 조절했잖아.”
처음에야 익숙하지가 않아서 과하게 액셀을 밟았지만 중간부턴 나름 잘 운전해서 왔다.
“내가 다시는 타나 봐라.”
“어차피 돌아갈 때도 타야함.”
“제기랄.”
하은이 울상을 지었다.
낄낄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5분 정도를 걸어가자 저 멀리 속초의 모습이 보였다.
“저건….”
“심하긴 하네.”
멀리 보이는 도시 곳곳에서 매캐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수들이 도심지까지 내려와 습격했다는 게 사실인 모양.
“사람들은 다 대피했다 했지?”
“응.”
협회를 비롯한 길드의 각성자들은 토벌 작전에 앞서 도시의 주민들을 우선적으로 대피시켰다.
“그럼 지금 속초는 아주 마수 천지가 됐겠네.”
“그렇겠지.”
사람이 없어졌으니 설악산 쪽에서 서식하고 있던 마수들이 대거 내려와 도심지를 장악했을 것이다.
“끄응. 차라리 산에 숨어 있을 때 습격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그러다 도망친 마수들이 한 번에 도심지로 몰려들면 그것도 문제였을 테니까.”
협회 입장에선 주민 대피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가자.”
“엉.”
조금 더 걸어가자 어림잡아 2백 명이 넘어가는 각정사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찰칵! 찰칵!
“이번 토벌 작전에 [평화의 별] 길드에선 어떤 각오로 임하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언제나 국민의 평화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사악한 마수 무리를 처단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토벌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가자 묵직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길드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길드 쪽에서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토벌은 어느새 뒷전이 되고 다들 국민의 평화니 안전이니 떠들기만 열심히 떠드는 모습.
하지만 그것도 잠시.
“뇌, 뇌랑!! 뇌랑이다!”
“와아아!”
“권오진 각성자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진이 등장하자 기자들이 설탕을 발견한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
찰칵! 찰칵! 찰칵!
카메라의 플래시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어디 보자.’
오진은 기자들에게 할 말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잠시 뜸을 들인 후.
“…다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예?”
“그… 인터뷰를.”
찌릿.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가하게 인터뷰나 하고 있을 상황인가요?”
“아.”
“쯧. 비켜요. 저 바쁩니다.”
괜히 더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기자들을 지나쳤다.
솔직히 대피하지 못한 시민이 남아 있건 말건 쥐뿔도 신경 안 썼지만.
“여, 역시 뇌랑!”
“크으! 그래 이거지!”
“벌써 기사 한 3개는 뽑았구만!”
예상한 대로 뜨거운 반응이 돌아왔다.
‘여기선 국민의 안전이니 뭐니 입으로 떠드는 것보단 이런 게 더 잘 먹히지.’
식상하기 짝이 없는 말을 주절주절 떠들어봤자 누가 신경 쓰겠는가.
“…여전히 말 하나는 귀신같이 잘한단 말이야.”
“그거 하나로 먹고살았는데 잘해야지.”
대충 오진의 의도를 눈치챈 하은이 혀를 내둘렀다.
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토벌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토벌대는 시가지 특성상 3인 1조로 나눠서 진입하겠습니다! 인원이 부족하신 분들은 여기 신청서에 이름과 특성을 작성해 주세요!”
인원이 하은과 둘뿐이었기 때문에 가서 신청서를 작성했다.
잠시 기다리자 묵직한 방패를 든 청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각도기로 잰 듯한 사각 턱이 인상적인 청년이었다.
‘탱커 계열인가.’
파티 밸런스를 생각하면 딱 좋다.
‘…그냥 탱커는 아닌 것 같지만.’
방패를 든 반대편 손에는 큼지막한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오우! 뇌랑! 뇌랑 맞죠?!”
사각 턱의 청년은 오진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이야~! 이거 또 이렇게 인연이 닿네요!”
“인연이요?”
뭔 인연?
“하핫! 전 발할라 길드 소속입니다! 오진 씨에 대한 건 서울역 사건 전부터 알고 있었죠!”
“아.”
발할라 길드 소속이었나.
“흐흐. 잘 부탁드립니다! 아, 맞다. 저는 황소자리의 사도 박창현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거문고자리의 사도 권오진입니다.”
박창현.
‘1회차 세계에서 목동 게이트를 공략한 각성자였던가?’
전승받은 이신혁의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들어본 기억이 났다.
“이우혁 씨는 요즘 어떤가요?”
“형님은 지금 흑성회인지 뭔지 그놈들 꼬리 잡겠다고 정신없으셔요.”
잘하고 있구만.
‘그나저나 3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 단서를 못 잡은 건가.’
이우혁에게 아샤드 칸의 연락처를 주긴 했지만 아직 결정적인 단서를 잡지는 못한 것 같았다.
‘하긴.’
연락처는 있다.
바꿔 말하면 ‘연락처만’ 있다.
이우혁의 목표는 아샤드 칸이 아닌 흑성회 전체를 무너트리는 것.
음지에서 은밀하게 활동하는 놈들을 한 번에 소탕하기 위해선 연락처 이상의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최근엔 뭘 알아내셨는지 자주 밖에 나갑니다.”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흑성회는 오진 자신도 신경을 쓰고 있는 조직이었다.
‘미래에 무려 천마가 탄생할 조직이니 말이야.’
당연히 그들을 이용할 목적도 있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주의해야 할 놈들이지.’
검은 별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만들겠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이다.
그냥 정신만 이상한 놈들이면 모를까.
그들에겐 그 미친 소리를 현실화할 수 있을 만한 힘과 세력이 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오진 씨에게도 연락드릴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창현과 악수를 나눴다.
악수를 나눈 박창현의 시선이 하은을 향했다.
“그나저나 저쪽 분은 누구시죠?”
“용자리의 사도 송하은. 존댓말은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쪽도 말 편하게 해.”
“휘유! 화끈하셔서 좋네요! 음… 말은 좀 더 익숙해지면 편하게 하겠습니다.”
박창현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슬슬 출발할까요?”
“그러죠.”
고개를 끄덕이며 도심지로 향하려 할 때.
“이야, 이게 누구야? 우리 대~단하신 루키님 아니야? 엉?”
성격 더럽게 생긴 금발의 청년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 기억하지 새꺄?”
금발의 청년은 자신의 턱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기억 안 나는데.”
“이익! 박정우!!! 판디누스 길드의 박정우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아.
그때 협회에서 만난 새끼구나.
“푸흐흐! 길드장님에게 안부는 잘 전해줬어?”
“안부는 개뿔!!!”
박정우가 씩씩 성을 내며 이를 드러냈다.
‘뭐, 진짜 안부 물어보다 깨진 건 아니겠지.’
아마 뉴스 기사 등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 뒤 그때야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워워! 진정하세요, 정우 씨.”
저벅.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며 박정우를 말렸다.
보는 것만으로 불쾌해지는 음흉한 얼굴의 중년 사내.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기억에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야아~ 이거 또 이렇게 인연이 닿네요!”
흐흐흐!
중년 사내가 오진과 하은을 돌아보며 길게 혀를 내밀었다.
하은을 향하는 그의 눈빛이 끈적한 욕망에 번들거렸다.
오진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최종철?”
이 새낀 또 왜 여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