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4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48화
마수 토벌 (4)
“그런….”
박창현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축 늘어진 박정우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가슴에 그어진 큰 상흔과 뒤통수가 함몰된 끔찍한 상처.
특히 뒤통수의 상처는 절로 등골이 섬뜩해질 정도로 심했다.
“하아.”
각성자가 괴수의 손에 죽는 일은 굳이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비일비재한 일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처참히 살해당한 시체를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저분과 같이 있던 다른 각성자는 어디 있을까요?”
“모르겠네요.”
오진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물론, 진짜 모르는 건 아니었다.
‘저쪽으로 갔군.’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통해 최종철과 대머리 사내가 어디로 향했는지 확인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도심지의 중앙 쪽.
마수들이 도망치던 방향과 정확히 일치했다.
“근데 전에 오진 씨랑 이분과 무슨 일이 있으셨던 가요? 아까 분위기가 좀 험악하던데.”
“예전에 잠깐 협회 등록소에서 말다툼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하아. 저도 솔직히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겁네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수에게 당할 줄 몰랐던 걸까.
눈을 부릅뜬 채 죽은 박정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시체를 수습할만한 상황도 아니니.”
부릅뜬 눈을 감겨주며 시체를 들어 바닥에 눕혔다.
-꾸륵, 꾸르륵.
검은 먹구름이 박정우의 왼쪽 가슴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갔다.
“…….”
혹시 주변에서 눈치채지 않을까 잠시 살펴봤지만, ‘흑막’ 특성의 효과 덕분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대놓고 써도 모르겠는데.’
흑막 특성이 얼마나 사기적인 성능을 지녔는지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흑천의 구름이 박정우의 왼쪽 가슴에 도착하자.
[‘흑천’이 ‘전갈자리의 성흔’을 흡수합니다.]눈앞에 푸른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그렇지.’
전갈자리의 성흔.
수십, 수백 종류의 독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과 동시에 신체의 민첩성을 폭발적으로 올려주는 암살자 계열 최고의 성능.
물론, 거문고자리의 성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무려 황도 12궁에 속하는 성흔이다.
가지고 있어서 나쁠 리가 없었다.
“부디 평안한 곳으로 갔길.”
박정우의 성흔을 흡수한 후.
고개를 숙인 채 잠깐 묵념했다.
박창현이 따라 묵념했고 하은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다시 출발하죠.”
“예.”
아까보다 다소 어두워진 분위기 속에 발걸음을 옮겼다.
-콰앙!
“카르르르륵!!”
“오진 씨!”
“예!”
다시 시작된 마수의 습격.
이번에는 사마귀와 같은 팔과 네 개의 다리를 지닌 마수였다.
-부우우웅!!
거기에 더해 비행도 가능한 타입.
“어딜!”
쿠우우웅!!
박창현이 거칠게 발을 구르며 망치를 휘둘렀다.
그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황소자리가 빛을 뿜었다.
-쿠드드득!
“카라락?!”
묵직한 파동이 공중으로 날아오려던 마수를 후려쳤다.
마수가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날면 귀찮아지니까 한 방에 보내 버리자고!”
“오키.”
하은이 앞으로 달려나가며 손가락을 튕겼다.
붉은 화염의 그물이 만들어져 마수의 몸을 덮었다.
파지지지직!
그 자리에 내려꽂히는 은창.
푸른 뇌전이 마수의 몸을 태웠다.
“키, 키르륵, 키륵!”
“이 새끼들 도망 하나는 존나 잘 치네.”
상처 입은 마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날개를 퍼덕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은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도망치는 마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붉은 화염이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 이글거렸다.
“누나, 잠깐만.”
“엉? 왜?”
“도망치도록 가만히 둬봐.”
오진은 도망치는 마수를 지그시 살폈다.
‘역시.’
이번에도 마수는 도심지 중앙 쪽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따라가자.”
“뭘 어쩌려고?”
하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진의 뒤를 따랐다.
도망치는 마수의 뒤를 쫓아 달리며 마수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
하은은 눈을 좁히며 도망치는 마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눈치챈 걸까.
“쟤… 뭐 좀 이상하지 않냐?”
“그렇지?”
도망치던 마수는 일정 거리 이상이 벌어지면 유독 좌우로 몸을 비틀대면서 속도를 늦췄다.
그래.
마치 뒤따라오는 오진 일행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제 확실해졌네.’
오진은 쯧 혀를 차며 팔을 들어 비틀거리는 마수를 겨눴다.
타앙!
와이어 슈터가 불을 뿜었다.
-파지지지직!
“키르르륵!”
비틀거리며 도망치던 마수가 풀썩 쓰러졌다.
“아까부터 한 마리씩만 나오는 것도 그렇고. 오지나 이거… 혹시?”
“아마 누나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도심지 전체를 장악했음에도 한 마리씩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마수들.
적당히 싸우다가 위험해질 때쯤 되면 도심 중심지를 향해 도망치는 것까지.
이건.
‘유인하고 있는 거야.’
자연스럽게 도심지 중앙으로 오기까지.
‘마수에게 이런 지능이 있나?’
오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마수.
즉 변종 괴수는 일반 괴수에 비해 몇 배는 더 흉포한 성질을 지닌다.
강력한 대신 지능적으로는 다소 떨어진다는 의미.
‘근데 이렇게 미끼를 던지듯 방향을 유도한다고?’
뭔가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끈적한 옷이 피부에 달라붙는 듯한 불쾌한 예감이.
“음. 저는 뭐가 이상한지 잘 모르겠네요.”
박창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름 잔뼈가 굵은 그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치밀하고, 은밀하게 마수들이 움직이고 있단 뜻이리라.
‘속임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오진이나 한때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하은이기에 그나마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다른 각성자들한테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면.’
아마 각성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심지 중앙으로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최종철이 도심지 중앙으로 간 것도 그것 때문인가?’
마수들의 행동을 보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
“오지나.”
“응.”
딱딱하게 굳은 하은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수들이 각성자들을 도심지 중앙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게 확실해진 이상.
“창현 씨. 그만 돌아가죠.”
“예?”
박창현은 무슨 소릴 하냐는 듯 오진을 돌아보았다.
“벌써 돌아가신다고요? 아직 다들 체력도 쌩쌩한데….”
“아까부터 마수들이 도심지 중앙으로 저희를 유인하고 있습니다.”
“마수한테 그런 지능이 있다고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더 안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할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남은 마수가….”
박창현은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완전히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도시 외곽 쪽에서 마수들을 처리하죠.”
“으음.”
“마수를 소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수들이 속초를 벗어나 다른 도시를 습격하는 걸 막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적당한 이유를 들어 박창현을 설득했다.
“끄응. 오진 씨 말도 일리가 있네요. 알겠습니다. 도시 외곽 쪽으로 이동하죠 그럼.”
다행히 박창현은 별다른 군소리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바로 가실 거죠?”
“아… 잠깐 그 전에.”
오진은 도심 중심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직 그에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물병자리의 성흔을 놓칠 수 없지.’
씨익.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다른 조에도 언질 정도는 주고 오겠습니다. 마수들이 도심 중심지 쪽으로 각성자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 같다고.”
“아. 그거라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나도 같이 갈래.”
박창현과 하은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뇨. 저 혼자 가겠습니다.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 제가 제일 빨리 몸을 뺄 수 있으니까요.”
와이어 슈터를 이용한 압도적인 기동력은 그동안의 전투를 통해 차고 넘칠 정도로 보여줬다.
반론이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으음. 그러시다면.”
“끄응.”
예상대로.
두 사람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튀어야 한다? 알겠지?”
하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오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내 한 몸 챙기는 건 자신 있으니까.”
“자, 누나랑 약속. 안 다치고 돌아오기.”
하은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손을 걸었다.
“그럼. 좀 있다가 연락할게.”
오진은 팔을 들어 근처 빌딩을 겨눴다.
타앙!
와이어 슈터를 이용해 빌딩과 빌딩 사이를 날아올랐다.
적당한 건물 옥상에 올라온 후.
-우우우웅!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했다.
“킁킁.”
콧속으로 파고드는 무수한 냄새.
그중에 최종철의 냄새를 찾았다.
‘저쪽이군.’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폐허가 된 도시의 중심지.
수십에 달하는 마수에게 둘러싸인 중년 사내는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히, 히히히! 몇 번을 봐도 믿을 수가 없네요.”
그는 마치 인형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마수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쓱쓱.
흉포함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마수들이 온순한 양처럼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진짜 마수를 조종할 수 있다니…!”
최종철은 전율에 몸을 떨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구슬에서 보기만 해도 꺼림칙한 사이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힘만 있다면!’
불끈!
그는 주먹을 쥐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 인생 진짜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군요.”
3개월 전.
그의 인생은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처박혔었다.
‘그 빌어먹을 새끼 때문에…!’
까득.
오진의 얼굴을 떠올리자 절로 속이 뒤틀렸다.
“후후후. 뭐, 덕분에 그분을 만날 수 있었지만요.”
모든 걸 잃은 채 방황하던 중.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판디누스 길드의 사무실에서 그는 한 남자를 만났다.
아샤드 칸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최종철의 그때의 만남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받아줄 곳을 찾고 있다고?
-그, 그렇습니다!
-흐음.
구릿빛 피부의 사내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지.
-조건이라면…?
-이걸 가지고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그에게 받은 것은 검은 별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성유물.
그 성유물에는 난폭한 마수를 순종적인 개처럼 조종할 수 있는 힘이 담겨 있었다.
‘아니, 그건 이 성유물이 지닌 힘의 일부에 불과하지.’
불길한 빛을 뿜어내는 검은 성유물의 진정한 힘은 단순히 마수를 자유롭게 조종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 성유물의 진가는 따로 있었으니까.
“흐. 흐흐흐흐!!”
최종철은 사랑스럽다는 듯 검은 구슬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검은 별이 밤하늘을 뒤덮을 때. 이 불합리한 세상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아샤드 칸이 주문을 읊듯 내뱉은 말이 머릿속에 잔향처럼 남아 떠돌았다.
음울하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뭔 상관이야.’
검은 별인지 뭔지 중요치 않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그놈에게 복수할 기회를 손에 넣었단 거지.’
최종철은 눈을 반짝이며 검은 구슬을 움켜쥐었다.
“마수들이여. 계속해서 각성자들을 도시 중앙으로 유인하라!”
척!
괜히 폼을 잡으며 마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크르르륵!”
“카락!”
시체처럼 아무 반응도 없던 마수들이 난폭한 괴성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종철 님.”
그때.
곁에 다가온 대머리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최종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뭐죠?”
“정우 그 자식 괜찮을까요?”
“또 그 얘깁니까.”
대머리 사내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그 새끼가 저한테 꾼 돈이 얼만 줄 아십니까!”
“하아. 전에도 설명 드리지 않았습니까?”
쯧쯧.
최종철이 혀를 찼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선 저희 쪽에서도 피해자가 나와야 한다고.”
앞으로 벌어질 ‘학살’의 주범으로 판디누스 길드가 지목되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피해자인 채로 이번 작전을 끝마쳐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 한 명 정도는 희생해야죠.”
“끄응.”
대머리 사내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일부러 죽지 않도록 적당히 상처를 입혔으니까요.”
후유증은 남을지 몰라도 적어도 죽을 일은 없다.
“쩝. 알겠습니다.”
“그럼 각성자들이 중심지로 모일 때까지 주변 정찰 부탁드립니다.”
“옙.”
대머리 사내가 몸을 돌려 나갔다.
그렇게 15분쯤이 흘렀을까.
“허억! 허억! 조, 종철 님!!”
“또 무슨 일입니까?”
거친 숨을 내쉬며 다가온 대머리 사내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주, 죽었습니다!”
“누가 죽어요?”
“저, 정우!! 그 자식이 뒤졌다고요!!”
“예?”
걔가 왜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