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5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58화
마이 홈 (2)
“이, 이 미친 새끼!”
뻐억.
하은의 가느다란 다리가 등짝을 후려친다.
“아,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앙? 가, 감히 누나한테!!”
꾸우욱.
이번에는 발바닥으로 등을 짓누른다.
“…미안하다니깐.”
순간적인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입술을 겹친 후 두 시간.
오진은 거실 바닥에 앉은 채 앵무새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은은 소파에 앉아 그의 등을 발로 퍽퍽 걷어찼다.
“미안하면 다냐?! 누나의!! 그, 이, 입술을… 으헤헤. 입술을 인마! 어? 이히힛!”
누나.
화를 내든지 좋아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해.
“…그래서. 좋았냐?”
꼼지락꼼지락.
하은이 발가락 끝으로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당연히 좋지. 이렇게 좋은 집이 생겼는데.”
자신에게 용마안을 선물 받았던 하은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비좁고 냄새나는 집에서 살다가 이렇게 호화로운 아파트에 오니 진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그래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하은을 끌어안고 입을 맞춘 거고.
‘뒤져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있었네.’
단순히 집 내부만 좋은 게 아니라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전망도 좋았고, 주변 시설도 원래 살던 곳과 비교할 수 없었다.
원래 살던 동네는 무슨 괴수의 습격이라도 당한 것 마냥 황량했으니까.
“아니, 집 얘기가 아니고.”
“엉?”
집 얘기가 아니면 뭐야?
“…그. 크, 크흠! 키, 키스한 거… 기, 기분 좋았냐고.”
빨갛게 얼굴을 붉힌 채 머리칼을 빙빙 손끝으로 돌렸다.
오진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뭘 새삼스레.”
“엥? 언제 했다고 처음이 아니야.”
“어렸을 때 많이 했잖아? 보육원에서 소꿉놀이 하던 거 기억 안 나?”
“아니.”
하은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그건 치면 안 되지 짜샤!”
하은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두 팔을 목에 감아 끌어당겼다.
숨이 막히는 감각과 함께 등 뒤에 묵직한 압박이 느껴졌다.
‘세상에.’
우리 누나가 원래 이렇게 컸던가.
아니. 어느 정도 볼륨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몸으로 느껴보니 그 압도적인 전투력에 잠깐 정신이 혼미해졌다.
“모른 척하지 말고 얼렁 말해.”
“…….”
“쓰읍. 누나 화낸다?”
“아니 뭐… 당연히 좋았지. 그걸 뭐 하러 물어봐?”
입술에 닿았던 보드라운 감촉을 떠올렸다.
뭐 만화에서 흔히 표현하는 것처럼 벼락이 몸을 꿰뚫는 듯한 감각까진 들지 않았지만.
솔직히 좋은 감촉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 그래?”
하은의 입꼬리 히죽히죽 올라갔다.
로또 1등 당첨된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친척처럼 몸을 베베 꼰다.
“흐, 흐흐흐흐!!”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오진의 뺨을 쭈욱 잡아당겼다.
“그래. 지금 당장 튀어 나가서 빤스차림으로 공중제비를 돌 정도로 기분 좋았다 이거지?”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이히힛! 하여트은~ 이 귀여운 새끼.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면 집 들어오자마자 입술부터 드리미니?”
“누가 들으면 깨 쏟아지는 신혼부분 줄 알겠네.”
“캬하하하핫! 아니 이 새끼 키스 한 번 했다고 갑자기 결혼 얘기가 왜 나와?”
“……?”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여자.
“이 누나는 그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니란다~?”
“어, 응.”
뭐지.
저 거들먹거리는 얼굴을 보니 몹시 화가 치미는군.
“그러고 보니 좀 뭣 같은 기억이긴 한데. 그 최종철인가 뭔가 하는 새끼가 누나 얼굴만 딱! 보고 바로 60억… 아니 100억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이건 이 누나가 그만큼 매력적이란 뜻 아니겠니?”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 누나의 입술을 함부로 훔쳐간 책임을 지란 말이지.”
하은이 콧대를 높이며 씩 웃었다.
“…….”
아무 말 없이 허벅지 위에 올려진 그녀의 발을 붙잡아 간질였다.
“꺄아악!! 뭐, 뭔 개짓거리야 이 새꺄!!”
다급히 발을 빼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단순한 완력만 놓고 보면 지금 자신이 더 강했으니깐.
“푸흡!! 꺄하하핫!! 그만!! 그마아아안!”
“어이구. 비싸신 분이 체통에 안 맞게 왜 그러실까?”
“놔!! 놓으라고 이 새끼야아아아!!”
그렇게 한 5분 정도를 더 발을 간질였다.
그러게 누가 함부로 도발하래.
“허억! 허억! 씨잉….”
하은이 거친 숨을 내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식은땀까지 줄줄 흘린 것을 보면 꽤나 자극이 셌던 모양.
우리 누나가 간지럼에 약했구나.
“그보다 집 구경 좀 하자.”
집에 들어온 지 두 시간이 넘었는데 거실 말고는 본 적이 없다.
“후우. 알았어.”
하은이 산발 된 머리칼을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화장실이고… 방은 두 개 있어. 이쪽이 큰 방.”
달칵.
방문이 열리며 넓은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와 씨. 방 하나가 예전 우리 집만 하네.’
방 안에는 예전 집에서 쓰던 가구들이 들어와 있었다.
“이거 가구도 조만간 더 사야겠네.”
“그치? 원래 쓰던 건 좀 낡았으니깐.”
“그것도 그거지만.”
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른 방 하나를 가리켰다.
이쪽이 큰 방이라 했으니 저쪽이 작은 방이리라.
“저쪽 방에서 쓸 가구도 사야지.”
뭐.
하은이 산 집이니 여기선 당연히 내가 작은 방을 써야겠지.
상관없다.
작은 방이라곤 해도 예전에 그 비좁은 집에서 둘이 낑겨 살았을 때보다는 여유로울 테니까.
“엉? 뭔 소리 하는 거야?”
“뭔 소리냐니.”
“저쪽 방은 창고 방인데?”
“……?”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누나.
“우리 방은 여기야.”
하은이 방금 문을 연 큰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방이 두 갠데 큰 방 하나를 둘이 쓰자고?”
“엉.”
“아니.”
그게 뭔 뷔페 가서 물만 마시다 오는 소리란 말인가.
“짐도 별로 없고만 무슨 창고 방이야. 걍 내가 작은 방을 쓸게.”
“안 돼.”
“왜.”
“집주인 맘인데.”
씨발.
할 말이 없네.
“헹. 꼬우면 나가 사시던가?”
하은이 씩 웃으며 도발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도발에 넘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곰팡이에 녹물에… 여름엔 존나게 덥고, 겨울엔 드럽게 춥고.”
“크윽.”
농담으로라도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은이 승리를 확신한 장군처럼 씩 웃었다.
“이 집엔 무려━ ‘온수’가 나온다고.”
“그, 그런!”
이런 미친.
온수!
온수라니!!
집에서 온수로 몸을 씻을 수 있다니!!!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아찔한 사치였다.
“어때? 집주인 말을 들을래? 아니면 나갈래?”
“…크흡!”
마음을 능멸당하는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지만.
차마 온수의 유혹을 뿌리칠 순 없었다.
이대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가.
‘…잠깐.’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누나 분명 이 집 살 때 이번 토벌 작전에서 받은 포상금을 썼다고 했지?”
“어? 응. 그랬지.”
“그거 내 포상금도 들어 있었던 거 아냐?”
이번에 3일 동안 의식을 잃었던 것도 있고 그 뒤에 이것저것 새로 얻은 스킬을 신경 쓰느라 포상금에 대해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어. 그, 그게.”
슬쩍.
하은이 시선을 피했다.
“마수를 제일 많이 잡은 건 날 텐데?”
솔직히 자신이 죽인 마수만 하더라도 가볍게 백 단위가 넘는다.
심지어 사건의 주모자라 할 수 있는 최종철까지 자신이 죽였으니 두둑한 포상금이 나왔을 건 당연지사.
근데.
난 돈을 받은 기억이 없어.
“대, 대출받고 돈이 쪼오~금 모자라서 말이야. 헤, 헤헤헤!”
하은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호오.
그러니까 나한테 말도 없이 내 포상금을 날름 집 사는 데 썼다 이거지?
뭐 그것까진 상관없다.
하지만.
“이러면 저 작은 방 하나 정도는 내 거라 할 수 있는 거 아냐?”
“으읏!”
움찔.
하은의 어깨가 떨렸다.
“아앗! 다, 다리가!! 으윽!!”
그러더니 갑자기 오른쪽 의족을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연기였다.
‘이 누나 또 뭔 짓을 하려고.’
하은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오지니 넌 이렇게 다리도 불편한 누나 앞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아니 이년이 치트키를?
“누난… 누가 따로 옆에서 보살펴주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잖아.”
“…….”
오진은 당했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니 씨벌.
이러면 나보고 어쩌라고.
“하아… 알았다, 알았어. 같은 방 쓰자.”
“앗쓰아아! 노예 계약 연장 좋구연~!”
하은이 불끈 주먹을 쥐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어차피 이제까지 쭉 그녀와 같은 방을 써왔기에 특별히 불편할 것도 없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끄응. 이제 좀 침대에서 잘 수 있나 싶었더니.”
또 바닥에서 자야 한다는 게 못내 아쉬울 따름.
“캬하하핫! 그건 걱정 마라 인마. 이 누나가 다~ 생각해 뒀지!”
하은이 밝은 웃음을 터트리며 침대로 갔다.
“어?”
그러고 보니 다른 가구는 다 똑같은데 침대만 새것이었다.
“짜잔!”
드르르륵.
그녀가 침대 아래를 열자 또 다른 침대 하나가 옆으로 빠져나왔다.
“오오!”
오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생각해 보면 간단한 해결법이긴 한데, 전에 살던 집이 워낙 비좁다 보니 미처 생각을 못 했다.
“헤헹. 이거면 어때?”
“쌉가능이지.”
오진은 척 엄지를 내밀었다.
이거면 같은 방을 쓰더라도 아무런 문제없다.
그나저나.
“집은 참 좋은데… 옥상을 못 쓰는 게 좀 아쉽네.”
전에 살던 집은 어차피 아무도 옥상을 안 쓰니 시간 나면 올라가서 편하게 수련할 수 있었지만 여기선 힘들 것 같았다.
“아, 그거라면 이 아파트 근처에 각성자 전용 수련장이 있다 하더라고.”
“그런 것도 있어?”
“엉. 이용료가 좀 비싸긴 한데 남 시선 안 쓰면서 수련할 공간을 마련해준 데.”
“오.”
나쁘지 않다.
“그리고 여기 홍대도 가깝잖아? 빡세게 수련할 일 있으면 성소 가서 하면 돼.”
“그 방법도 있네.”
성소에 가면 리아크에게 수련을 도움받을 수도 있었다.
“히히. 이 누나가 다~ 생각해서 집을 여기로 고른 거 아니겠냐!”
그녀의 말마따나.
여의도에 있는 협회와 홍대에 있는 성소로 들어가는 게이트 둘 다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푸흐흐! 역시 우리 누나밖에 없어.”
이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구만.
“후훗. 그러면 오늘 저녁은 맛있는 소고기를 대령하도록.”
“옙, 마님.”
이런 집을 사줬는데 그깟 소고기가 대수랴.
“그럼 같이 마트나 갈까?”
“여기 지하에 마트도 있더라.”
“오오.”
딱 좋구만.
-달칵.
그렇게 마트로 향하려 했을 때.
-뚜르르르르!
전화가 걸려왔다.
“음?”
오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박창현?’
한 부장에게 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더니 박창현이 건 전화였다.
“여보세요.”
[…오진 씨. 지금 바로 발할라 길드로 와주실 수 있나요?]“무슨 일이시죠?”
오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길드장님이 흑성회 녀석들에게 당했습니다.]“…….”
소고기는 다음에 먹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