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71화
심, 기, 체 (4)
한 부장을 따라 협회 건물에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건물로 향했다.
이글루 같은 형태를 지닌 10층짜리 건물.
안에서는 짙은 쇠 냄새와 알 수 없는 약품 냄새가 새어 나왔다.
“여긴….”
“성유물 연구소입니다. 성유석을 이용한 각종 장비나 무기들을 연구하고 만드는 곳이죠.”
띠디딕.
한 부장이 비밀번호를 치고 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고릴라 아저씨이이이이!! 여긴 웬일이야?!”
타다다다다!
문이 열리자마자 한 소년이 환한 미소와 함께 달려왔다.
나이는 중학생 정도 됐을까.
왜소한 몸집에 갈색 더벅머리,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있는 귀여운 인상의 소년이었다.
“아저씨 아니라니깐.”
그러면서 다가오는 소년을 바라보며 팍 인상을 구겼다.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이던 그의 얼굴이 한층 사납게 변했다.
“푸하하핫!! 얼굴 박보~ 검나 웃겨!!”
소년은 달려오다 말고 배를 부여잡은 채 깔깔 폭소를 터트렸다.
“하아. 하여간 이 꼬맹이 자식이.”
“히힛. 미안 아저씨.”
사이가 꽤 좋은 걸까, 아니면 성격이 원래 이런 걸까.
소년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넉살을 떨었다.
한 부장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소년의 더벅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 꼬맹이가 이 연구소의 총책임자 김시후 군입니다.”
“안녕!! 형이 뇌랑 맞지? 티비에서 봤어!”
김시후은 명랑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히힛! 와아~! 뇌랑이랑 악수했다!”
마주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전에 말했던 꼬맹이가 바로 얘였구만.’
자신의 와이어 슈터를 만들어준 것도 이 소년이리라.
그리고.
‘장석호가 말한 꼬맹이도… 김시후일 확률이 높겠지.’
협회에 있다는 뛰어난 성유물 제작자.
장석호가 말했던 꼬맹이도 김시후를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 그때 만들어준 와이어 슈터는 잘 쓰고 있어?”
“잘 쓰고 있‘었’지.”
“응?”
김시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과거형이야?”
“그게 말이지….”
무기를 만들어준 당사자 앞에서 박살 내버렸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에 임무 중에 부서지셨다.”
다행히 한 부장이 대신 나서줬다.
“에엑? 부서졌다고?”
김시후는 충격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동그랗게 눈을 뜨더니.
“━다행이네!!”
이내 환하게 웃으며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다행이라고?”
뭐가 다행이란 말인가.
“응! 헤헤. 안 그래도 그때 너무 일이 많아서 엄청 대충 만들었거든!”
허.
그 와이어 슈터가 대충 만든 거라고?
“미안! 요즘은 급한 일도 없으니 훨씬 더 좋게 만들어줄게!”
김시후가 번쩍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이럴 수가.’
이 빌어먹을 세상에 아직 이런 총명하고 예의 바르며 훌륭한 소년이 남아 있었다니.
“으음~ 근데 그 와이어 슈터라는 게 은근히 만들기가 까다로워서 말이야. 돈이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헤헤헤.”
이 빌어먹을 세상에 걸맞게 탐욕스럽고 버르장머리 없으며 영악한 애새끼로구나.
“뭐, 모자란 부분은 내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만들어줄게! 형 무기는 만드는 거 재밌으니까!”
“앞으론 당신을 빛시후 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으, 응?”
아아!! 너무 눈부셔!!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필요하신 게 있으면 뭐든 말해주십쇼 빛시후 님.”
“하하핫! 이 형 재밌는 형이었네! SNS에선 츤데레라 하더니!”
꺄르르.
김시후가 배를 움켜쥐며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 맞다. 근데 와이어 슈터 말고 창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어?”
“창?”
“응. 이번에 창도 부숴 먹어서 말이야.”
“으음. 창은 재미없는데….”
김시후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뭐, 하나 만들어줄게. 아! 대신 창 만드는 데는 내 돈 안 쓸 거다?”
취향 확실한 친구로구만.
뭐, 어차피 상관없다.
대신 우리 부장님 지갑이 있으니까.
“요즘 임원진들이 예산을 너무 많이 써서 지원금이 얼마 없….”
“부탁드립니다. 준만 씨.”
난 우리 준만이 형 믿어.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 부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끄응. 알겠습니다. 창 제작비는 제가 내 드릴게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지갑을 꺼내려던 그를 말렸다.
“푸흐흐. 농담입니다. 제 무기니까 제 돈을 써야죠.”
솔직히 이번에도 부장님 찬스를 쓰고 싶긴 한데.
‘이제까지 많이 얻어먹었으니까.’
전에 얻어먹은 소고기를 제외하더라도 그에겐 꽤나 많은 빚을 졌다.
회삿돈이면 몰라도 사비까지 털어먹기는 좀 그렇지.
“오, 오진 씨.”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아니.
근데 이런 거로 감동하면 오히려 이쪽이 더 민망해지는데.
“뭐 적금이라도 깨실 생각이셨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결혼을 생각해서 아껴둔 비상금이었거든요.”
“아. 준만 씨 애인 있으셨어요?”
“…아직은 없습니다만 언젠가는.”
“안 생깁니다.”
그의 눈가가 흔들렸다.
“푸하핫! 농담입니다! 곧 생기실 거예요!”
안 생길 거다.
“그, 그런가요?”
“준만 씨의 이 빵빵한 근육을 보세요! 여자들은 원래 다 근육을 보면 난리 나지 않습니까!”
“그쵸? 하하핫!”
응.
다만 동물원에서 도망쳐 나온 것 같은 고릴라처럼 생긴 남자가 빵빵한 근육을 지니고 있다면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나겠지.
“이번에 좋은 무기가 뽑히면 제가 괜찮은 여자분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진짜죠?”
아니.
구라야.
나도 누나랑 우리 여신님 말고 아는 여자가 없거든.
“하핫! 무기 퀄리티는 맡겨만 주십쇼! 제가 이 꼬맹이를 닦달해서 엄청난 걸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한 부장이 김시후의 머리를 헝클이며 가슴을 쳤다.
‘역시 우리 준만이 형뿐이야.’
보면 볼수록 호구, 아니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그럼 이쪽으로 와. 체크할 게 있으니까.”
김시후가 손을 붙잡고 어딘가로 끌고 갔다.
대략 20평 정도 크기의 넓은 공간.
벽면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그것 말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자. 여기 안에서 한 번 이걸 들고 평소 창 휘두를 때처럼 휘둘러 줘.”
김시후가 기다란 막대기를 내밀었다.
막대기라고 해도 진짜 쇳덩이로 만든 무기처럼 꽤 무게가 나갔다.
막대기를 받아든 후.
“쓰읍.”
방 중앙에 선 오진은 천천히 호흡을 들이켰다.
-후웅! 훙! 훙!
찌르고, 베고, 내려치고.
나침반자리의 창술이 이끄는 감각을 따라 사납게 창을 휘둘렀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쉬지 않고 휘둘렀을 때.
“오케이. 이제 그만해도 돼 형.”
유리창 너머의 김시후가 양팔을 높게 들어 원을 만들었다.
“다른 건 필요 없어?”
“이걸로 충분해.”
김시후가 버튼을 몇 개 누르더니 9개의 모니터에 오진이 창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각각 다른 구도로 찍은 영상이 떠올랐다.
“잠깐만 기다려 봐.”
드륵.
김시후는 몸을 일으키더니 의자 위에 걸쳐둔 흰색 박사 가운을 입었다.
몸집이 왜소한 소년이 무릎 아래까지 오는 흰색 가운을 입고 있는 모습은 퍽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작할게.”
소년의 입에서 친근한 미소가 사라졌다.
마치 기계장치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9개의 모니터를 빠르게 돌려보기 시작했다.
“찌르기는 284회. 베기는 592회. 내려치기는 192회. 창으로 거리를 벌리면서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라 파고들어서 크게 베어내는 스타일이구나. 평균 보폭은 1미터 17센티. 굉장히 넓게 발을 내딛는 편이네. 주로 잡는 창대의 위치는….”
중얼중얼중얼.
눈이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영상을 돌려보며 철저하게 오진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허.’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는 김시후의 모습에 오진은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탁.
“후우. 형한테는 기존에 쓰던 창보다 창대는 더 짧고 날이 긴 게 어울리겠네.”
“방금 그것만 봐서 알 수 있는 거야?”
“엉.”
김시후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같은 무기를 쓰더라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제각각이거든. 형은 창의 긴 리치를 이용해서 견제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근접해서 파고드는 스타일이야. 그러니까.”
달칵. 팬을 꺼내 종이에 간단한 그림을 그렸다.
“창대가 짧고 상대적으로 베기에 중점을 둔 언월도 형태의 창이 형한테 딱 맞을 거야.”
“…….”
리아크가 자신을 바라보던 느낌이 딱 이랬을까.
이렇게 단시간에 움직임을 분석해서 최적의 무기를 찾아내는 김시후의 모습에 일종의 경외감까지 느껴졌다.
“그럼 이거랑 와이어 슈터 개량 버전까지 해서 바로 제작 들어갈게. 일주일 정도 걸릴 거야.”
일주일이라.
아샤드 칸과의 전투에서 입은 내상을 치유하기엔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땡큐. 부탁할게.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얘기해 줘.”
이 정도로 해주는데 필요한 게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챙겨줄 의향이 있다.
“뭐든?”
김시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쓰윽 한 부장을 돌아봤다.
“우리 아저씨 좀 도와줘 형. 요즘 임원진 녀석들 때문에 되게 고생 많거든.”
“…….”
애새끼인 줄 알았는데, 애늙은이였던 건가.
“네가 걱정할 일 아니다.”
한 부장이 김시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히힛! 응!”
김시후는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더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이만 장비 만들러 가볼게!!!”
타다다다다.
가운을 펄럭이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좋은 아이네요.”
“뭐, 성격이 좀 괴짜긴 하지만요.”
그러곤 뿌듯하다는 눈으로 멀어지는 소년의 등 뒤를 바라봤다.
“무기를 만드신 다음에 계획은 있으십니까?”
계획이라.
발할라 길드원들 대부분이 중태 상태니 바로 발할라 길드로 찾아가긴 좀 그렇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성유석을 구해볼까 합니다. 최대한 많이요.”
흑천의 퀘스트.
고대의 별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퀘스트에 당분간 전념할 생각이었다.
‘괴수를 잡으면서 뇌전 스킬도 올려보고.’
이제까지처럼 쉽게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뇌전 스킬과 퀘스트,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건 역시 게이트에 들어가 괴수를 사냥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돈이 많이 필요하신 겁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성유석 자체가 많이 필요합니다.”
“흐음. 그렇다면….”
말을 이으려던 그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
뭔데?
“뭔 일 있으신 겁니까?”
“그런 게 아니라… 음. 성유석 파밍 쪽으로 요즘에 핫한 게이트가 있어서요.”
핫한 게이트라.
“부산 쪽에 좀…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게이트가 하나 있습니다.”
“특이한 현상이요?”
“예. 그 게이트 안에 있는 괴수들은 성유석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씩 지니고 있다 합니다. 품질이 그닥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뭐?
‘성유석이 복사가 된다고?’
이게 무슨 미친 경험치 이벤트란 말인가.
안 그래도 퀘스트를 깨는데 얼마나 많은 성유석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근데… 오진 씨가 가기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무슨 문제요?”
한 부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부에서 나오는 괴수들이 모두 5성급 이상의 강력한 괴수들입니다. 이제 막 4성이 되신 오진 씨가 가시기엔 좀 무리가 있는….”
“저 5성인데요.”
“예?”
그의 눈이 부릅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