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76화
천재 각성자의 스트리밍 (5)
“뭐… 야?”
침묵이 내려앉았다.
채팅창을 가득 수놓고 있는 무수한 물음표.
제리킴의 머릿속은 지금 딱 저 채팅창과 같은 상태였다.
‘뭐, 뭔 일이 일어난 거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푸른 뇌전이 사납게 타오르더니 순식간에 세 마리의 네글리쉬가 잔혹하게 도륙 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강력한 성유물을 상용한 것도, 수명을 깎아내리는 필살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태연하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세 마리나 되는 5성급 괴수들을 쓸어버린 것이다.
“30분 내내 그렇게 가만히 계실 생각입니까?”
오진이 피식 입가를 올리며 멍하니 굳어있는 제리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 가시면 저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자, 잠깐!”
제리킴이 다급히 오진을 붙잡으려 했다.
물론.
느긋이 기다려줄 이유는 없었다.
-타다다닥!!
거칠게 발을 박차며 터널 안을 질주했다.
“크윽! 제기랄!”
뒤에서 제리킴이 다급하게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옳옳옳!!”
“아옳!!”
터널 깊숙이 들어갈수록 네글리쉬의 숫자도 점차 늘어났다.
‘오른쪽에 두 마리. 왼쪽에 세 마리. 그리고.’
바닥 아래 몸을 숨긴 암살자 타입 네글리쉬가 두 마리.
‘암살자 타입이 있다는 건 몰랐을 땐 기척을 못 잡았지만.’
숨어 있는 놈이 있다는 걸 안 이상.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조금만 섞어 사용해줘도 위치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개틀링 샷!!”
지지 않겠다는 듯.
이번에는 제리킴이 재빠르게 화살을 쏘아냈다.
투두두두두!!
푸른 빛으로 이뤄진 화살이 마치 기관총을 쏘듯 네글리쉬를 향해 쏘아졌다.
“아옳옳옳!!”
분명 위력적인 기술이었지만.
‘정확도는 형편 없구만.’
오진은 피식 웃으며 쏟아진 화살 세례에 고슴도치가 된 네글리쉬를 향해 팔을 뻗었다.
타앙!!!
와이어어 끝에 달린 뾰족한 추가 네글리쉬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앗…!”
“막타를 친 사람이 잡은 거라 하셨죠?”
“크윽!”
제리킴이 사납게 입술을 짓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미쳤네;;
-ㅅㅂ아까 뇌랑 3성이라 한 새끼 어딨냐???
-아니 이게 4성이라고????
-ㅁㅊ 내가 뭘 보고 있는 거냐 지금??
-아니 ㅅㅂ 나 이번 달 월급 다 걸었다고!!!!
-역배는승리한다역배는승리한다역배는승리한다.
제리킴을 압도하는 오진의 모습에 채팅창이 뜨겁게 타올랐다.
“제길!”
제리킴은 자기도 모르게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초조한 표정으로 입가는 짓씹었다.
‘이렇게 질 수는 없어!’
수만, 아니 수십만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중이다.
변변찮은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패배하게 된다면 그 꼬리표는 평생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크으으으!”
젖먹던 힘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마력의 양에 전신의 마력 회로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로우━ 블레스트!!”
패배할 수는 없는 싸움이었다.
-콰과과과과광!!!
수십, 수백에 달하는 화살들이 소용돌이치며 왼쪽에 서 있던 세 마리의 네글리쉬를 덮쳤다.
“아옳옳옳옳!!!”
근육질의 어인족들이 화살 세례에 휩쓸려 바닥에 쓰러졌다.
-오오오오오!!!
-제리킴! 제리킴!!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
-엄마 이번에 따면 진짜 효도할게요!!!!
제리킴의 활약에 시청자들도 열광했다.
“하아! 하아!”
제리킴은 채팅창의 반응을 살펴볼 새도 없이 거칠어진 숨을 헐떡이며 풀썩 주저앉았다.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사용한 탓에 강렬한 탈력감이 몸을 짓눌렀다.
그때.
“아옳!!”
파악!!
바닥을 뚫고 뛰쳐 오른 두 마리의 네글리쉬가 제리킴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랏빛 독액이 묻은 뾰족한 가시들이 날카롭게 목을 노렸다.
“히, 히이이이익!”
제리킴의 입에서 꼴사나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마력을 한 번에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생각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 살려….”
타앙! 타앙!
“아오로로록!”
와이어가 달려들던 네글리쉬의 몸을 휘감았다.
푸른 뇌전에 감전된 네글리쉬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흐, 흐끅!”
제리킴은 자신의 바로 앞에 쓰러진 네글리쉬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어깨를 움찔 떨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독액이 한가득 묻은 가시가 그의 몸을 난자했을 것이다.
“독특한 비명소리시네요.”
오진은 피식 웃으며 와이어를 회수했다.
-히이이이익 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 방송 레전드네 진짜ㅋㅋ
-내 제리짱은 이렇지 않아ㅠㅠ!
-제리킴 반응 개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새 채팅창은 제리킴을 조롱하는 채팅들로 가득했다.
“크윽….”
제리킴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죠.”
이 굴욕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파지지지지지직!!!
“아옳옳옳!!!”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진과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졌다.
“마, 말도 안 돼….”
제리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30분 동안 잡은 네글리쉬의 숫자는 오진이 24마리, 제리킴이 7마리.
졌지만 잘 싸웠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격차였다.
-ㅁㅊ;;; 이게 말이 되냐?
-이게 어딜 봐서 4성이얔ㅋㅋㅋㅋㅋ
-아니 내 월급 어떻게 함 ㅅㅂ?
-정배충 개 발렸죠ㅋㅋㅋ? 어질어질하죠?
-뇌랑! 뇌랑! 뇌랑!
-엄마 난 커서 뇌랑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뇌랑이 될래요! 엄마 난 커서 뇌랑이 될래요!
승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참교육을 해달라던 채팅창도 어느새 오진에 대한 찬양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30분 다 지났네요?”
“…….”
제리킴은 허탈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분명 4성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따지듯 외쳤다.
“언제요?”
“예?”
“언제 제가 4성이라고 했죠?”
“…아.”
제리킴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진은 자신의 입으로 4성이라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처음 그와 마주쳤을 때부터.
아니, 그와 마주치기도 전부터.
완벽하게 속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그러면 대체….”
뇌랑은 몇 성이란 말인가.
“5성입니다. 5성.”
오진은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5성…?”
제리킴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각성한 지 반년이 좀 넘은 각성자가 5성에 도달했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지만.
“아, 아무리 5성이라 해도 대체 어떻게….”
각성자들 사이에서 1성의 격차를 뒤집는 것 정도는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잡스러운 성흔이었을 때 얘기.
제리킴은 수백에 달하는 별자리 중에서 최상위로 손꼽히는 황도 12궁의 각성자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압도적으로 진다는 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황도 12궁의 각성자들이 잡스러운 성흔을 지닌 각성자들을 압도하듯.
━북극성 앞에서 황도 12궁은 흔하게 굴러다니는 잡스러운 성흔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인가.
“미친….”
제리킴은 떨리는 눈빛으로 오진을 바라보았다.
마치 인간이 아닌, 우주에서 내려온 외계인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그럼 이건 제가 가져갑니다?”
“아….”
안타까운 탄성을 뱉으며 자루를 바라봤다.
내기는 사실 장난이었다고 억지를 써서라도 자루를 빼앗고 싶었지만, 수십만의 시청자가 바라보고 있는 앞에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꾸욱.
주먹을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와;;; 5성이었다고??
-아니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성 됐다고 기사 나온 지 두 달 된 거 아님??
-이거 녹존성보다 빠른데;;?
-속보) 제리킴 한 달 동안 모은 성유석 다 털림.
-속보) 정배충들도 같이 털림.
-아 제리킴ㅂㅅ아 몇 성인지는 물어보고 내기를 해야지.
힐끗 바라본 채팅창은 예상했던 대로 난장판.
선을 넘는 욕설들까지 한가득 채팅을 메우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방송을 꺼버리고 싶었지만.
“자~ 그럼 슬슬 포인트 도박도 정산하셔야지?”
하은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제리킴에게 다가갔다.
“…예.”
제리킴은 힘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내기를 시작하기 전에 걸었던 포인트 도박을 정산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점심나가서먹을것같아!점심나가서먹을것같아!점심나가서먹을것같아!
-무효야무효야무효야무효야무효야무효야.
-엄마미안해엄마미안해엄마미안해엄마미안해엄마미안해엄마미안해.
-역배는 무적이고 뇌랑은 신이다. 역배는 무적이고 뇌랑은 신이다.
대부분 제리킴 쪽에 돈을 건 시청자가 많다 보니 포인트 정산을 한다는 말에 채팅창은 광기로 가득 찼다.
제리킴은 채팅창을 쭉 읽어내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포인트를 가장 많이 버신 분의 아이디를 발표하겠습니다!”
포인트 정산 버튼에 손을 올린 제리킴이 외쳤다.
“━어?”
하은이 눈을 부릅떴다.
“자, 잠깐만!! 아이디 발표는 갑자기 왜 하는데!!!”
“예? 왜라뇨? 토이치 규정이니까 하죠.”
제리킴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하은을 돌아봤다.
“뭐, 뭐, 뭐? 그, 그딴 규정이 어디 있어? 전에 봤던 방송에는 그런 거 없었는데!!!”
“…그건 하꼬 방송이나 그렇죠. 저처럼 토이치 파트너면 포인트 도박 결과 다 밝혀야 해요.”
승부 조작 등 불법적인 행동을 막기 위해 누가 얼마 벌었는지 결과를 다 공개하는 게 규정이었다.
“그럼 발표….”
“자, 잠깐!!!”
하은이 제리킴을 다급히 말렸다.
“취소! 포인트 도박은 취소하자!!”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누나?”
오진과 제리킴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시, 시청자들은 오지니가 몇 성인지 모르고 투표했잖아?”
하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무효!! 이번 건 무효야!!!”
다급한 외침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ㄹㅇ 이건 무효임.
-누나사랑해누나사랑해누나사랑해.
-아니 그런 게 어딨음ㅡㅡ 몇 성인지 밝히고 하자는 말도 없었는데.
-ㅂㅅ들 ㅋㅋㅋㅋ 뇌랑이 5성인 거 알았으면 뇌랑 찍었을 거냐?
채팅창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무효라고 주장하는 쪽과 그게 뭔 상관이냐고 하는 쪽이 치열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워워, 다들 진정하세요.”
난장판이 된 채팅창을 관리하는 건 스트리머의 몫.
“내기 조항에 몇 성이지 밝히라는 것도 없었으니 정산은 그냥 진행하겠습니다.”
제리킴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하은의 말을 따라 진짜 무효로 했다간 민심이 바닥을 치게 될 거란 이유도 있었지만.
‘내가 다 털렸는데 너희도 털려야지.’
솔직히 자신 혼자만 잃을 수 없다는 치졸한 생각도 있었다.
‘어차피 내 돈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니깐.’
누가 손해 보든 알게 뭐란 말인가.
“그럼 1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아마 아까 역배에 크게 거신 분이겠네요.”
“아아악!! 머, 멈춰!!”
제리킴을 향해 달려들려는 하은을 오진이 붙잡았다.
“가만히 있어 누나.”
“놔!! 놔 이 새끼야!!”
그녀가 이러는 이유가 ‘아이디’ 때문이라는 걸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니 아이디로 뭘 썼길래 이래?’
품속에서 바둥거리는 하은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흑안의 사신 이런 아이딘가?’
아마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유치찬란한 아이디이리라.
‘쯧쯧. 우리 누나도 참 돈 아까운 줄 모르고 그깟 아이디 좀 나오는 게 어쨌다고 이걸 나가리로 만들라고 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흑안의 사신이건 타락천사파워이건 뭔 상관이란 말인가.
4억 6천을 쏟아부은 도박에 역배가 터졌는데 절대 무효로 만들 순 없었다.
“이번 포인트 투표 1위는━!”
“아아아악!! 아, 안 돼!!!”
“‘귀염뽀짝오지니츄릅츄릅’님 입니다!!!”
“…….”
“…….”
…츄릅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