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7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79화
천재 각성자의 스트리밍 (8)
“어? 지, 진짜네?”
하은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봤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용자리의 성흔.
그 성흔이 찬란한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설마….”
전투가 끝나고 마력을 거둬들였는데도 성흔이 빛나고 있는 경우는 단 하나.
“아윽!! 아악!! 조, 존나 아파!!”
하은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짙게 타오르는 화염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것도 잠시.
폭발하듯 솟구쳤던 화염이 그녀의 몸속으로 서서히 흡수되기 시작했다.
“아….”
하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화르르르륵!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세 마리의 화룡이 만들어져 그녀의 팔뚝을 타고 똬리를 틀었다.
“와.”
방금 전에 히드라를 상대할 때보다 한층 더 강렬한 열기가 느껴지는 화룡들.
이 정도로 갑작스럽게 성흔의 위력이 늘어나는 경우는 한 가지 외엔 없다.
“오, 오지나!!! 누, 누, 누나 8성 됐어!!”
하은은 흥분에 찬 표정으로 외치며 오진에게 달려들었다.
“꺄하하핫!!”
어지간히 기뻤는지 오진을 꽉 끌어안고는 뺨에 여덟 번 입을 맞췄다.
“푸흐흐! 알았으니까 진정해 누나.”
“진정하게 생겼냐?! 8성! 8성이라고 인마!!!”
흥분할만한 일이긴 했다.
‘성(星)’이 높아질수록 한 단계마다 격차는 더욱 심해지니까.
‘8성이면 ‘인간’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기도 하고.’
인간을 벗어난 단계.
흔히 ‘고위 각성자’라 불리는 9성 이상은 수많은 각성자들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8성은 탈 인간이라 불리는 고위 각성자가 되기까지 딱 한 걸음이 남은 경지.
그녀가 키스를 퍼부으며 흥분할만한 성취였다.
마음 같아서는 기뻐하는 그녀와 어울려 주고 싶었지만.
[흐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은 게냐?]베가가 가늘게 눈을 뜨며 하은을 노려봤다.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은 주변에서 보는 눈이 많았다.
“어, 어떻게 히드라를 두 명이서…?”
“뇌랑도 그렇고 저 여자도 그렇고 미쳤는데?”
“와… 8성? 8성이라고?”
“뇌랑 애인도 있었네… 부럽다.”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각성자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이쪽을 주시하는 게 보였다.
“아.”
[흥! 수치심이라는 게 없는 아이로구나.]베가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오진의 머리 위에 올라타 달달 다리를 떨었다.
다리를 떨 때마다 구두 굽이 이마를 콕콕 찔렀다.
“까, 깜빡한 거거든!”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않으냐! 그리고 남매 사이에 스킨십 치고는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헹. 누가 들으면 친남매인 줄 알겠네?”
[피만 안 이어져 있을 뿐 사실상 친남매 같은 관계 아니더냐?]“아니거든!”
하은과 베가가 서로 으르렁거리며 다투기 시작했다.
“워워, 두 분 다 진정하십쇼.”
하은과 베가를 말린 후 히드라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창을 짧게 만들어 쓱쓱 시체를 갈랐다.
‘역시.’
안에서는 푸른빛이 흘러나오는 성유석이 두 개 들어있었다.
크기만 해도 축구공만 한 크기.
흘러나오는 빛의 양까지 생각하면 수억은 가볍게 넘을 만큼 상등품의 성유석이었다.
‘크으! 좋구만!’
이것과 제리킴에게 뜯어낸 천 개가 넘는 성유석이 있다면 흑천의 퀘스트를 깨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뒷정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나가자.”
익시드를 사용한 탓에 피곤한 것도 피곤한 거지만, 마력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뇌염이 성능은 좋긴 한데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한 게 문제란 말이야.’
마력 양이 비상식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거지 다른 각성자였다면 1분도 채 유지하기 어려우리라.
“끄응. 그래. 나도 얼런 돌아가서 씻고 싶다. 땀 너무 많이 났어.”
“나 먼저 띱.”
“어딜? 당연히 누나 먼저 아니겠니?”
“꼬우면 같이 들어가시던가.”
“어쭈? 못 들어갈 줄 아나 보네?”
평소와 같이 하은과 장난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중.
“저… 오, 오진 씨!”
제리킴이 다가왔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깊게 허리를 숙이며 작은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제 연락처입니다. 언제든 말씀만 하시면 꼭 이 은혜는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처음엔 죄송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을 찍어누르기 위해 내기를 걸었던 걸 말하는 모양.
“뭐, 괜찮습니다.”
확실히 처음 자신에게 다가온 의도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성유석과 막대한 돈을 손쉽게 벌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그리 나쁜 만남은 아니었다.
연락처를 교환해서 인맥을 만들어두는 것 정도는 좋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제리킴은 이용가치가 충분한 인간이다.
수십만이 동시에 시청하는 방송이 지닌 영향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니.
“그, 그럼 방송도 마무리할 겸 시청자들에게 인사한 번 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오진은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 이렇게 방송에 참여하게 돼서 재밌었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 되면 찾아뵐게요.”
-뇌랑 옵빠아아아아아!! 너무 멋졌어요오오오오!! (덜렁덜렁)
-누님 제게 뇌랑을 주십쇼!! 누님 제게 뇌랑을 주십쇼!!
-오바(오진 바이라는 뜻ㅎ)!!!
-히드라 잡으신 거 너무 멋있었어요! 앞으로도 응원할게요!
-ㅋㅋㅋ솔직히 기사만 보고 싸가지 없는 재능충이라 생각했는데 넘 의외였음.
시청자들의 반응도 대부분 긍정적.
이 정도면 이번 합방으로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겼다 봐도 좋으리라.
“그럼 돌아가 볼━”
“너, 너 이 새끼!!”
뒤에서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아까 ‘미끼’로 사용했던 사내기 이쪽을 바라보며 씨익씨익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게 보였다.
“네, 네가 한 짓이지?!”
“뭘 말입니까?”
“시치미 떼지 마 새끼야!!”
사내가 까득 이를 갈며 외쳤다.
“아까 날 히드라 쪽으로 달려가게 한 거 다 네가 한 짓이잖아!”
“하. 뭔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요.”
능청스럽게 모른 척을 하니 사내가 오진에게 다가와 거칠게 멱살을 틀어쥐었다.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앙?”
사내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 네놈이 한 짓! 모두 다 협회 쪽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어!”
“아, 예. 맘~ 대로 하십쇼.”
오진은 피식 웃으며 멱살을 틀어쥔 사내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나저나.”
우득!
“아악!!”
“함부로 손대지 마, 새끼야.”
X추 새끼가 어딜 감히.
“가자.”
손목을 부여잡으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내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 * *
처음에는 집에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몸이 비명을 지르듯 피로를 호소하는 바람에 우선 게이트 가까이에 있는 호텔로 들어왔다.
하은와 오진은 가볍게 샤워를 한 후 방에 모였다.
“자, 그럼!!!”
하은이 손에 쥔 맥주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늘 이 누나의 8성 승격과 성공적인 사냥을 경축하며!”
테이블에는 먹음직스러운 치킨이 그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건배애애애애애애!”
“건배.”
가볍게 맥주 캔을 부딪쳤다.
“꿀꺽꿀꺽.”
하은은 벌컥벌컥 맥주캔을 들이켰다.
“캬흐으으으으!!! 이 맛에 산다니깐!!”
야근에 지친 직장인 같은 대사로구만.
[뭘 마시는 게냐?]“맥주. 우리 여신님도 한 번 먹어볼래?”
[흐음. 한 번 줘 보거라.]베가가 쪼르르 날아와 작은 잔에 옮겨 딴 맥주를 들이켰다.
[으읏! 쓰지 않으냐!]“캬하핫!! 우리 여신님이 인생의 맛을 모르네! 원래 인생이 쓰니까 술도 쓴 거야!”
송부장님 오늘 기분이 많이 좋으신가 봅니다.
“그럼 이거 한 번 마셔봐 베가.”
그녀에게 다른 잔을 내밀었다.
[이건 무엇이냐?]“과일 소주. 달달하니 먹을 만할 거야.”
[어디 그럼.]베가가 과일 소주가 든 잔을 들이켰다.
[오, 오오!!!]반짝거리는 황금빛 눈동자.
과일 소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벌컥벌컥 소주가 든 잔을 들이켰다.
그렇게 석 잔 정도를 연달아 들이켰을까.
[후후후훗. 역시 본녀의 아이니라. 본녀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구나.]베가가 뾰로롱 날아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옳지, 옳지~ 착한 아이니라.]…취했나?
‘에이, 설마 성좌가 취하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에헤헤헤. 본녀가아~ 많은 도움이 못 돼서어~ 미안하구나아~]“이거 진짜 취했는데?”
[우응?]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칼을 잡아당긴다.
[취한다는 게에~ 무슨 말이더냐~? 본녀는 직녀성의 성좌! 취하는 일 따위는….]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비틀거린다.
머리에서 떨어질 것 같은 베가를 손으로 잡고 헛웃음을 흘렸다.
“리아크. 성좌가 술에 취할 수도 있냐?”
“으음. 제약 때문에 육체가 약해져 계시기 때문인 것 같군.”
리아크도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베가를 바라봤다.
“어차피 현신해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없으실 거다. 조금은 취할 수 있게 내버려 둬라.”
“그러지 뭐.”
주정을 부리는 베가를 뒤로하고 치킨을 한입 와그작 베어 물었다.
“그나저나 오지나.”
“엉?”
“그… 아까 그 자식 괜찮겠냐?”
치익!
하은이 새롭게 맥주캔을 따며 물었다.
“잘은 못 봤는데 네가 뭐 한 거 맞지?”
“그렇지.”
“그거 방송으로도 나갔으니까 뭐라 따지면 골 아파질 것 같은데.”
확실히.
그쪽에서 먼저 노골적인 시비를 걸어오긴 했지만 미끼로 사용했다는 게 밝혀지면 여론이 안 좋아지리라.
“다 방법이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어.”
오진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잔을 내밀었다.
“캬하핫! 그럼 너만 믿는다? 자! 다시 건배!!”
그렇게 즐거운 술자리가 한 시간 정도 이어졌을 무렵.
“헤헤헤… 오지나아아~ 누나 8성 됐따아~?”
[나의 아이야아~ 이리 오려무나! 본녀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마!]씨벌.
“리아크! 리아크 이 새끼 어디 갔어!”
“진정한 전사는 다음 날의 수련을 위해 일찍 잠드는 법.”
“아니.”
* * *
“제길! 제길! 제길!!!”
덥수룩한 수염이 돋아있는 사내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
“뇌랑… 이 새끼. 가만 안 두겠어.”
그는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장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충 뇌랑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해 미끼로 사용했다는 내용의 글.
“흐흐흐. 여기에 그때 영상까지 첨부해서 올리면….”
뇌랑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지에 타격만 줄까.
의도적으로 몬스터의 주의를 끌게 만들어 남에게 유도하는 건 엄연한 범죄였다.
그 어떤 집단보다 법을 수호해야 할 협회의 일원이 그런 악질적인 범죄를 일으켰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비난을 아끼지 않으리라.
“크흐흐흐! 그러게 사람을 잘 보고 건드렸어야지.”
사내는 뇌랑의 잘못을 고발하는 내용의 영상을 촬영한 후 인터넷에 접속했다.
“음?”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어? 뭐야?”
자신이 만든 영상은 아직 업로드조차 하지 않은 상태.
“왜 영상이 벌써 올라와 있어?”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클릭했다.
[이번에 방송을 통해 저의 행동에 많은 불쾌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우선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영상을 재생하자 어딜 어떻게 봐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정장 차림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왜 ‘자신’이 영상 속에 나오고 있단 말인가?
[제가 중간에 비명을 지르면서 히드라 쪽으로 달려간 것에 대해 해명하겠습니다.]“…어?”
[당시 공포에 질린 저는 어떻게든 뇌랑과 제리킴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선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어야만 한다 생각했습니다. 명백한 범죄 행위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어? 어어? 뭐, 뭐야. 뭔 개소리 하는 거야 이 새끼!!!”
사내는 다급하게 모니터를 부여잡으며 울부짖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드리며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을 것을 약속드립니다.]영상의 조회수는 이미 백만을 훌쩍 넘겨 버린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