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8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85화
로마의 성녀 (6)
“하아, 하아!”
타다다닥!
좁고 어두운 골목을 한 여인이 달린다.
흔들리는 백금발 머리칼.
백옥 같은 피부가 땀과 먼지로 더럽혀진 채 그녀는 거친 숨을 헐떡였다.
“쫓아!!”
“이쪽이다!”
도망치는 여인 뒤로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쫓았다.
“으읏…!”
백금발의 여인은 다급히 숨을 들이켜며 구석진 골목 틈을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그녀의 표정에 긴장과 다급함이 서렸다.
“제길! 어디야?!”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빨리 쫓아!”
사내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각자 흩어져 여인을 찾았다.
“…….”
짧은 침묵이 흐른 후.
“하아.”
사내들을 피해 도망치던 여인, 이사벨라 콜그란데는 낮은 숨을 토해냈다.
“…방심했어.”
그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올빼미’들까지 끼어들 줄이야.
‘이대로면… 위험해.’
이사벨라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내려다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빛을 잃은 성흔.
평소엔 수족처럼 자연스럽게 다루던 마력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연락도 안 되고.”
대체 얼마나 철저하게 이번 계획을 준비한 건지.
스마트폰을 비롯한 통신용 성유물까지 모조리 먹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도망쳐야 해.’
로마 전체를 뒤덮고 있는 그들의 포위망을 통을 최대한 오래 시간을 끌며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마력도 못 쓰는 몸으로….’
사방에 깔린 암살자들의 시선을 피해 어떻게 도망친단 말인가.
“으읏.”
이사벨라는 표정을 찡그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아도.
지금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만약 붙잡힌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깔끔한 죽음을 맞이하면 그나마 다행.
그들에게 끌려가 지옥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조심히.’
이사벨라는 몸을 낮게 숙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지금 그녀가 있는 집시촌의 지리는 머릿속에 훤히 꿰고 있는 상태.
미로처럼 얽힌 집시촌의 특성상 잘만 도망친다면━
“저깄다!”
“빨리 쫓아!!”
세 명의 사내들이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다급하게 뛰어오는 사내들.
“치잇!”
이사벨라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다급히 몸을 돌려 발을 박찼다.
-타다다다닥!
좁은 골목과 골목 사이를 질주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갈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들이 코를 찔렀다.
“하아! 하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어깨 위에 거대한 추를 하나씩 올리는 듯한 느낌.
마력이 깃들지 않은 육체가 이리도 무거웠던 건가.
“흐하하하핫! 느려 터졌구만그래!”
사내들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여유롭게 그녀의 뒤를 쫓았다.
“어이쿠! 여기 있네!”
“꺄악!”
미로처럼 복잡한 집시촌을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며 시간을 끌었지만, 결국 붙잡혀 버리고 말았다.
“이거 첨엔 똥줄 좀 탔는데 별거 아니구만!”
“크흐흐흐! ‘자미원(紫微垣)의 저주’를 받았으니 당연하지.”
사내는 그녀의 가느다란 팔을 움켜쥔 채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거 놔!!”
이사벨라는 거칠게 몸을 비틀며 팔을 빼내려 했지만, 마력이 봉인 당한 채 사내의 손을 뿌리치는 건 불가능했다.
“닥쳐 이 년아!”
짜악!
사내가 사납게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고개를 획 돌아가며 뺨이 붉게 부풀어 올랐다.
“감히….”
이사벨라는 입술을 짓씹으며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크하핫!! 그렇게 앙칼지게 노려보지 말라고~”
사내는 즐겁다는 듯 혀를 길게 내밀었다.
“━자꾸 그러면 더 고통스럽게 죽여 버리고 싶잖아?”
그녀의 가는 목덜미를 우악스럽게 움켜쥐며 입술을 핥았다.
“아으! 악!”
이사벨라는 고통스럽게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목을 조르는 팔을 손톱을 세워 긁었다.
“허, 허업!”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손톱이 팔뚝을 뚫기는커녕 작은 생채기조차 남기지 못한 걸 본 사내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하… 하하하핫!! 이야~! 저주 효과 죽이는데?”
“크흐흐! 멍청한 새끼. 그걸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쫄았냐?”
“앙? 뭐라고 인마?”
사내 둘이 언성을 높이며 욕지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방심으로 인해 생긴 짧은 틈.
‘지금 도망쳐야…!’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이사벨라는 목이 졸려지는 고통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발을 들었다.
구두 굽으로 급소를 걷어찬 후 도망칠 생각.
“야, 야. 적당히들 지랄하고 저년이나 도망가지 않게 잘 붙잡아.”
“지금 잘 붙들고 있잖….”
“어라? 이년 보소?”
하지만.
급소를 걷어차기 전에 다른 한 명의 사내가 그녀의 움직임을 눈치채 버렸다.
“크흐흐! 이런 상태에서도 도망칠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니.”
“역시 이름값은 한다 이건가?”
사내들은 가소롭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자아, 그렇게 슬퍼하지 말라고 아가씨.”
“우리랑 같이 가면 앞으로 즐거운 일만 가득할 테니 말이야!”
질척한 욕망이 담긴 눈동자가 그녀를 훑는다.
‘안… 돼.’
점차 흐려지는 의식.
이사벨라는 서서히 몸을 잠식하는 공포에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잔뜩 남아 있는데.
“싫… 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허망하게.
끝날 수는 없━
-파지지지지직!!!
시야를 가득 채우는 푸른 뇌전.
분노한 신이 천벌을 내리듯.
하늘에서 푸른 벼락이 떨어져 내려 주변을 휩쓸었다.
“아아아악!”
“뭐, 뭐야?”
당황하는 사내들.
그들 사이로.
-촤아아악!!
“커헉!! 아악!”
푸른 화염에 휩싸인 창이 춤춘다.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며, 움직임을 봉쇄하며.
팔방(八方)의 모든 방향을 점한 채 날카로운 창날이 사내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끄아아아아악!!”
“내, 내 파아아알! 커헉! 크르륵!”
세 사내가 순식간에 토막 난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어?”
이사벨라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동그랗게 눈을 떴다.
파랗게 멍이 든 목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 보인 것은.
“괜찮으십니까?”
곱슬기 있는 검은 머리칼.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온화한 눈매를 지닌 청년.
“오진 씨…?”
뇌랑(雷狼).
직녀성의 늑대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여길… 읏!”
비틀.
몸을 일으키려던 이사벨라가 휘청였다.
오진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냄새를 맡고 쫓아왔습니다.”
“…예? 내, 냄새요?”
이사벨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푸흐흐! 농담입니다.”
“아앗! 너, 너무해요!”
오진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린 걸까.
이사벨라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때 냄새를 쫓아간 게 아니라니까요!”
“하하하! 알고 있습니다.”
오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근처를 지나가던 길에 비명이 들려서 와봤습니다.”
“아.”
이사벨라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눈을 글썽이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오진은 고개를 숙인 이사벨라를 내려다보며,
“뭘요.”
씨익.
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좋았어.’
이른 아침부터 흑막을 사용하고 그녀의 뒤를 쫓은 보람이 있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어.’
이번 계획의 목표는 단순히 그녀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은(恩)’을 만들어 이후에도 자신의 말에 따르게 만드는 것.
‘발할라 길드랑은 다르지.’
지금 자신과 발할라 길드가 협력 관계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마음대로 발할라 길드에게 명령과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사벨라 성격에 생명의 은인의 말을 거절할 순 없겠지.’
그것도 자신을 목숨을 다 바쳐 ‘처절하게’ 지켜준 사람이라면.
더더욱 손바닥 위에 그녀를 놓고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도망부터 치죠.”
오진은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 예! 알겠어요!”
타다닥!
그녀와 손을 맞잡고 골목을 달렸다.
“저기다!!”
“빌어먹을! 저 자식은 또 누구야?!”
얼마 가지 않아 다른 암살자들이 나타났다.
오진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그들을 살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선명한 ‘검은 별’의 마력.
‘역시 흑성회였군.’
주변에서 느껴지는 검은 별의 마력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대체 몇 명이야 이게?’
이 집시촌을 포위하고 있는 암살자들의 숫자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많았다.
‘사백… 아니, 오백이 넘나?’
6성 각성자 한 명을 잡는데 이 정도 인원을 투자하는 게 기이하게 느껴졌지만.
‘뭐, 나야 좋지.’
덕분에 조금 더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쓰읍.”
깊게 숨을 들이켜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창을 길게 내질러 달려드는 암살자들을 찔렀다.
-푸욱!
“커헉!”
“제길!! 이 자식 뭐냐고 대체!”
암살자들이 혼비백산하며 욕지기를 터트렸다.
훈련받은 암살자라고 생각하기 힘든 어수룩한 모습이었지만, 그 실력만큼은 수준 이상이었다.
-캉! 카강! 카가가강!
암살자들은 사납게 몰아치는 오진의 공격을 가까스로 쳐냈다.
하지만 그것뿐.
사납게 타오르는 푸른 뇌전이 점차 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타앙!
“크윽!”
“뭐, 뭐야 이건 또?”
좁은 골목길 안을 빼곡하게 뒤덮은 와이어.
와이어를 타고 푸른 뇌전이 사납게 타올랐다.
-파지지지지직!!
“아아아악!”
메케한 연기와 함께 암살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쿵!
길을 가로막던 암살자들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와아….”
이사벨라는 짧은 탄성을 흘리며 오진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오진의 손을 잡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이쪽으로 가면 갈림길이 많은 곳이 나와요!”
“알고 있습니다.”
이곳 주변의 지리는 지난 6일간 사전 조사를 하며 모두 파악해둔 상태였다.
“그럼 빨리….”
“아뇨.”
고개를 저으며 쓰러진 암살자에게 다가갔다.
‘역시.’
시체를 뒤적이자 붉게 점멸하는 성유물이 나왔다.
아마 추적을 위해 심어둔 통신용 성유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이용해 줘야겠지.
“오진 씨?”
“잠시만요.”
오진은 와이어 슈터 끝에 성유물을 묶었다.
타앙!
미리 생각해둔 포인트를 향해 성유물을 날려 보냈다.
‘가장 추적하기 까다로운 곳이지.’
건물들을 일직선으로 박살 내며 쫓지 않는 이상, 꽤나 빙빙 돌아가게 되리라.
“이쪽으로 오세요.”
오진은 그녀의 손을 잡고 근처에 있는 낡은 아파트로 들어갔다.
“도망치시는 거 아니었나요?”
“어차피 이대로 도망쳐도 걸립니다.”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는 암살자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오백.
그것도 기척으로 확인한 숫자만 그 정도지 실제로는 더 많을 가능성이 컸다.
“적당한 곳에 숨어 있다가 이동해야 합니다.”
뭐, 그렇게 해도 완전히 따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정면 돌파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
“…예.”
이사벨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진이 이끄는 대로 낡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아니었는지 내부는 휑하니 비어있었다.
“후우. 여기서 좀 쉬죠.”
오진은 바닥에 털썩 앉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바닥에 깔았다.
“여기 위에 앉으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이사벨라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
“…….”
돌연 찾아온 어색한 침묵.
“…오진 씨.”
어색한 침묵을 깨며.
이사벨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진 씨는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떨리는 눈빛으로 오진을 응시했다.
피식.
오진은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전에 보답을 바라는 선행도 선행이라 했던가요?”
“…예. 그러셨죠.”
“그럼 이것도 나름 선행이라고 해두죠.”
“…….”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제가 줄 수 있는 보답은 없….”
“따로 보답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사벨라 양도 뭘 원해서 집시분들에게 봉사하신 건 아니잖아요?”
“하, 하지만! 그거랑 이건 다르잖아요!”
선심 쓰듯 남을 돕는 것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남을 지키는 것이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정 그러시다면.”
오진은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건 있네요.”
“무슨….”
천천히 손을 뻗어 떨리는 그녀의 뺨을 덮었다.
‘시선은 눈 쪽으로. 목소리는 담담하게.’
원하는 대로 분위기를 만드는 것 정도.
이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쭉 제 옆에 이사벨라 양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캬하.
‘지렸다.’
존나 멋있어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