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93화
고대의 별자리 (4)
“뭐 먹을래?”
하은이 팔을 잡아끌며 물었다.
“글쎄다.”
딱히 땡기는 건 없었지만.
“떡볶이 어때?”
전에 뉴스를 훑어보다가 20대 여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1순위가 떡볶이라는 기사를 본 적 있었다.
‘우리 누나가 20대가 아니긴 한데.’
해가 바뀌며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지만.
외모만 본다면 20대 초반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성이 높아질수록 노화도 늦춰진다 했었나.’
9성 이상의 고위 각성자가 되면 아예 노화가 멈춘다고도 들었다.
‘뭐,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어차피 그녀가 쭈그렁 할머니가 된다 해도 변하는 건 없을 테니까.
“떡볶이? 좀 더 비싼 거 먹어도 괜찮은뎅.”
“그냥 먹고 싶어서.”
“히히. 좋아! 그럼 떡볶이로 가자!”
하은과 함께 근처 분식집으로 향했다.
순대에 떡볶이, 튀김을 같이 시켜 먹고 있을 때.
“그거 들었어? 이번에 대림동 쪽에도 비각성자 안보관리 센터 들어왔데.”
“오, 진짜? 협회에서 만든 거야?”
“그렇지 뭐. 길드 놈들은 지들 구역 아니면 신경도 안 쓰니깐.”
“하긴.”
옆자리에 앉은 두 사내가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게 들려왔다.
“이런 거 보면 그래도 우리 같은 비각성자 생각해주는 건 협회밖에 없는 것 같다니깐.”
“근데…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아.”
“응? 왜?”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센터를 관리하는 게 임원진 쪽인데 우리 대~ 단하신 협회장 나으리께서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고 임원진들에게 안보관리 센터를 줄여야 한다 했다지 뭐냐.”
“뭐?”
“원래 그래서 구로동이랑 대림동이랑 같이 관리 센터가 들어서기로 한 건데 협회장이 반대하는 바람에 임원진들이 사비까지 털어서 센터 세운 거란다.”
“하. 씨벌 새끼. 우린 뭐 사람 목숨도 아니라 이거야?”
“하여간 대형 길드 눈치는 존나게 보면서 정작 지가 받아 처먹는 세금 내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놈이라니깐.”
두 사내는 그렇게 앉아 협회장을 향해 거친 욕을 퍼부었다.
‘…협회장이 센터 증설을 반대했다고?’
한 부장에게는 듣지 못했던 얘기였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단순한 헛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사정이 있어 반대를 한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역시 비각성자들 사이에선 협회장 이미지가 좋지 않구만.’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흑성회의 특성상 비각성자들을 위한 정책을 계속해서 펼쳐왔을 테니까.
‘문제는 그게 순수한 목적에서 도움을 주는 게 아니란 거지만.’
장석호에게 받은 문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흑성회에게 ‘검은 별의 성흔’을 받아 각성자가 된 비각성자들은 그 대가로 크게 수명이 줄어든다고 한다.
‘수명이 줄어들기만 하면 다행이지.’
오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장석호가 준 문서에선 검은 별의 성흔에 적응하지 못하고 광인이 되어버리거나 온몸의 살점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녹아내려 괴수 같은 존재가 된 흑성회원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애초에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지.’
사람마다 각각 자신에게 맞는 성흔이 따로 있다.
만약 억지로 다른 성흔을 받아들이게 되면 전신의 기혈이 뒤틀려 즉사하게 된다.
‘이신혁처럼 말이지.’
특히 비각성자들은 ‘성흔’ 자체가 몸에 맞지 않아 성좌의 선택을 받지 못한 케이스가 많았다.
그런 그들에게 억지로 성흔을 부여했으니.
아무런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말이 안 되는 일이리라.
“우엉? 웅. 뭐해?”
하은은 뜨거운 튀김을 떡볶이 소스에 찍어 한입에 넣으며 물었다.
“암 것도 아냐.”
오진은 그녀를 따라 남은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흐아! 자알~ 먹었다!”
계산을 마친 후.
밖에 나온 하은이 기지개를 켜며 배를 두드렸다.
“이제 뭐 할까?”
“뭐하긴. 집 들어가서 수련해야지.”
오늘 협회를 들르느라 만족스럽게 수련을 하지 못했다.
“에이, 기껏 나왔는데 바로 들어가면 아쉽잖아?”
하은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옆구리를 꼬집었다.
“간만에 드라이브나 하자!”
“음.”
뭐.
평소에 빡시게 수련에 매진하니만큼 가끔 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베가랑 리아크도 부르자.”
“엥. 걔들은 왜?”
“이제까지 제대로 서울 구경도 시켜준 적 없잖아. 맨날 성소에 있는 것도 답답할 테니 이럴 때 같이 돌아댕기면 좋지.”
“끄응.”
하은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둘이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응? 뭐라고? 잘 안 들렸어.”
당연히 거짓말이다.
5성이 되고 청각이 예민해진 덕분에 쏙쏙 귀에 들어왔다.
“크흠! 아, 암것도 아냐!”
아이고.
우리 누나 왜 이렇게 귀엽냐 진짜.
“흐흐. 그럼 부른다?”
오진은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탄 후 목걸이를 만졌다.
-우우우웅!
은색 목걸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베가와 리아크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느냐?]“아니, 그런 건 아니고.”
오진은 차의 시동을 걸며 말을 이었다.
“간만에 누나랑 드라이브 좀 할까 해서 겸사겸사 불렀지.”
[드라이브…?]“차 타고 밖에 경치 구경하거나 어디 놀러가거나 하는 거야.”
[오오! 좋구나! 안 그래도 인간들의 세상을 한 번 느긋이 구경해보고 싶었느니라!]베가가 눈을 반짝이며 오진의 머리 위에 찰싹 달라붙었다.
[헌데… 그, 그대가 운전하는 게냐?]예전의 악몽이 떠올랐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제 운전 잘하니까 걱정하지 마.”
[흐, 흐음. 믿어보겠느니라.]베가가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르릉. 간만에 연락이 왔다 싶더니 고작 이런 일로 부른 거냐?”
리아크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무릇 진정한 전사라면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해선 안 되거늘!!! 경치 구경 따위를 할 시간이 어디 있다는 건가!!”
달칵.
그렇게 말하면서 자동차 문을 열고 재빠르게 뒷좌석에 탑승하더니 창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새끼 좋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조, 좋다니! 진정한 전사가 경치 구경 따위에 흥분할 것 같은가?!”
-살랑살랑.
아니.
신명 나게 흔들리는 꼬리를 휘두르면서 그런 말을 해봤자.
“크흠! 아,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인간들의 세상에 관심이 생겼을 뿐이다!”
리아크는 다급히 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외쳤다.
“그래도 요즘 집에 있을 땐 베가랑 둘이서 같이 티비도 보고 그러잖아?”
최근 리아크와 베가는 인간 세상을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자주 티비 앞에 앉아 드라마나 뉴스, 영화 등을 보곤 했다.
특히 리아크는 스포츠 채널이 마음에 드는지 야구, 축구 등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에 유행했던 스포츠를 하루종일 티비 앞에 죽치고 앉아 정주행한 적도 있었다.
‘전사의 투혼이 느껴지니 뭐니 했던가.’
솔직히 룰이나 알고 보는지 모르겠다.
[후훗. 그래도 티비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다르지 않으냐!]베가가 머리칼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콧바람을 뿜었다.
“푸흐흐! 그렇긴 하지.”
오진은 천천히 차를 몰아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과 바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이토록 많은 아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구나.]베가는 오진의 머리 위에 앉은 채 어딘가 아련한 눈빛으로 거리를 바라봤다.
“처음 보는 거야?”
[이렇게 느긋이 관찰한 건 처음이로구나.]“으음. 근데 전에 성좌들은 지구의 관리자라 하지 않았어?”
관리자라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빠삭하게 지구를 알고 있는 게 맞지 않나?
[성좌들이 알 수 있는 건 별의 운명이나 존망, 위기와 같은 거시적인 일들뿐이니라. 별 위에 살아가는 존재들이 하나하나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느니라.]아하.
[뭐… 그래도 사도가 많은 성좌의 경우 인간 세상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경우도 있느니라. 하지만 본녀는 그대 이전에는 사도가 없었으니… 이렇게 인간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구나.]“조금 더 빨리 보여줄 것 그랬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함께 밖을 돌아다녀 볼 걸 그랬다.
[후훗. 그런 생각 말거라. 본녀는 인간들의 세상보단, 그대와 지금 이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이 좋은 것이니.]베가가 이마를 토닥이며 자상하게 웃었다.
[앞으로도 자주 이렇게 함께 세상 구경을 나와보자꾸나.]“물론입니다 여신님.”
예전에는 회귀자인 척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그녀와 함께 있는 걸 꺼렸지만.
어느 정도 신뢰가 두터워졌다는 확신이 든 이후로는 그런 중압감도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자신의 거짓말을 너무 의심 없이 믿어주는 그녀의 모습에 죄책감이 들 정도.
‘차라리… 싹 다 밝혀버릴까?’
자신이 회귀자가 아니라는 것을.
흑천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니.’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먼 강을 건너왔다.
신뢰가 두터운 만큼 배신감 또한 클 것은 당연한 일.
사이가 가까워졌다 해서 그녀에게 모든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오오! 나의 아이야! 저 피시방이란 건 무엇이느냐?]뭐, 지금은 일단 복잡한 건 잊고 드라이브를 즐겨볼까.
“컴퓨터 게임을 하는 곳이야.”
[컴퓨터? 게임?]“음.”
이거 일일이 설명하면 끝도 없을 것 같은데.
“크르릉! 애송이! 저기 라면 천국이라는 곳은 어디냐?!”
“여러 종류의 라면을 파는 라면 전문점.”
“발할라인가!”
“아닌데요.”
이 새끼 언제 이렇게 라면 빌런이 됐지.
생긴 건 날고기를 통째로 씹어 먹게 생겼으면서.
[나의 아이야! 저기 ‘간다 간다 뿅 간다’라는 곳은 어디느냐?]“칼국수 집인데.”
가게 이름 왜 저래 씨발.
[그럼 저 ‘꽃츄’라는 곳은?]“꽃차랑 츄러스 파는 곳이네요.”
아니.
[호오. 그럼 저~기 ‘야동 상회’는 무얼 파는 곳이냐?]저도 알고 싶네요.
대체 뭘 팔아야 저딴 이름이 나올까요.
[흥미로운 가게 들이 많구나!!]그러게요.
다른 건 몰라도 야동 상회는 존나 궁금하네.
“…아니 왜 찾아도 저런 것만 찾냐.”
옆자리에 앉은 하은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동감이다.
[나의 아이야! 나의 아이야! 저기….]흥분에 찬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베가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졌다.
베가는 어딘가를 지그시 바라보며 눈살을 좁혔다.
[나의 아이야. 저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구나.]“응?”
그녀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진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불이라도 났나?”
“저기 구로동 쪽 맞지?”
하은이 창문을 내리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빠아아아앙!!
“뭐, 뭐야?”
거친 크라션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에서 차들이 역주행 해왔다.
쿵! 콰앙! 콰직!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도로.
“뭐 하는 짓이야 이 미친놈들아!”
사고가 난 차량에서 나온 운전자들이 거친 욕을 터트렸다.
“사, 살려.”
“뭐?”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
역주행 오던 차량에서 빠져나온 청년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저 새끼 잡아!!”
운전자는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았지만.
-빠아아앙!!
“비켜!! 씨발 비키라고!!!”
“길 막지 마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뒤따라 역주행하던 차들이 운전자를 그대로 들이받고 도로를 질주했다.
“오, 오지나, 이거.”
“…….”
오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가자.”
“으, 응!”
[알겠느니라!]하은과 리아크, 베가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곳에는.
“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아아아악! 괴, 괴수!! 괴수가 왜 여기에!!”
“근처에 게이트도 없잖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그들을 뒤쫓으며 수백, 수천에 달하는 괴수들이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미친!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괴수들이…!”
하은은 거리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바글거리는 괴수들을 바라보며 쩍 입을 벌렸다.
“…아니.”
오진은 고개를 저으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괴수가 아니라… 마수야.”
괴수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선명한 ‘검은 별’의 기운을 느끼며.
오진은 사납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