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4)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94화
고대의 별자리 (5)
거리를 뒤덮은 수천의 마수.
마치 벌집을 들쑤신 듯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마수들이 도시 한복판을 날뛰며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속초 때보다 많아.’
그리고 속초 때야 사람들이 대피해 있기라도 했지 이건 그것조차 아니었다.
“크르르륵!”
“아아악!!”
“내, 내 다리!! 내 다리이이이이!!”
넘실거리는 핏물.
귓가를 어지럽히는 비명과 통곡.
이신혁의 기억을 통해 봤던 이탈리아의 모습과 흡사한 광경.
‘아니.’
오진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로마처럼 도시 전체가 마수들에게 휩쓸린 건 아니었다.
이제 막 마수들이 날뛰기 시작한 상황.
‘막을 수 있어.’
막아야 한다.
마수들에게 찢겨 죽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은과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누나.”
“…응.”
“뒤에서 보조해 줘.”
“알았어.”
달칵.
하은은 두 팔을 머리 뒤로 돌려 안대를 풀었다.
흉측한 힘줄이 나무뿌리처럼 뒤덮고 있는 왼쪽 눈가가 드러났다.
용안이 사납게 빛나며 그녀의 몸 주위로 화염이 넘실거렸다.
-쿠웅!
“아아아악!”
“태, 태호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소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답잖은 농담을 즐기며 피시방을 갈까 노래방을 갈까 고민하고 있었을 평범한 학생들을 향해 마수는 쩌억 입을 벌렸다.
“키라라라락!!”
“으아아아아아!!!”
“피, 피해!”
찢어질 듯한 비명.
“쓰읍.”
오진은 허리를 숙인 채 왼발을 내디뎠다.
-파지지지직!!
다리를 휘감는 푸른 뇌전.
콰아아아앙!!
포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오진의 몸이 앞으로 쭉 쏘아졌다.
“흡!”
소년들을 향해 달려들던 마수의 목덜미에 창을 쑤셔 박았다.
귀청을 울리는 괴성.
-촤아아아악!
비틀어, 내리긋는다.
검은 핏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아….”
“가, 감사합….”
말을 들어줄 여유는 없다.
몸을 돌려 바로 다른 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수 수준 자체는 속초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
하지만.
“카라라라락!”
“귀청 떨어지겠다 새끼야.”
그때와 지금 자신은 전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의 깃털이 오진의 오른팔을 휘감았다.
마수를 겨누며 앞으로 쭉 팔을 뻗었다.
‘뇌익 산탄.’
뇌전으로 이뤄진 수백 개의 깃털이 부채꼴 형태로 전방을 휩쓸었다.
마수 세 마리의 몸이 갈가리 찢겨 터졌다.
‘아직 부족해.’
단 일격에 세 마리의 마수를 즉사시켰음에도.
순식간에 그 배가 되는 숫자의 마수가 주변을 둘러쌌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그들을 몰아붙여야 한다.
-파지지지직!!
창날에 맺힌 푸른 뇌전이 화염처럼 타올랐다.
뇌염을 사용하자 빠른 속도로 마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하아.”
낮은 숨을 토해내며 창을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옆으로.
옆에서 다시 위로.
-촤악! 촤악! 촤아아악!
“크르륵!”
“키샤아앗!!”
미치광이 과학자가 끔찍한 실험을 통해 탄생시킨 듯 흉측한 외형을 지닌 마수들이 사납게 몰아치는 창격에 갈가리 찢겼다.
“크르르르르라!!”
“캬하핫!”
“케르륵!!”
소란을 듣고 몰려든 건지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작게는 2미터, 크게는 4~5미터까지 되는 덩치를 지닌 마수들이 수백 마리가 모여 달려들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축이 뒤흔들렸다.
마치 해일이 덮쳐오는 듯한 광경.
수백 마리의 마수로 이뤄진 해일을 향해━
“쓰읍.”
오진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빙글. 창을 돌려 바닥을 찍었다.
‘창뢰.’
콘크리트 바닥을 파고든 창날에 마력을 집중한다.
‘조금 더.’
이 정도로는 몰려드는 마수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없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마력 회로가 터질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력을 일순 끌어올렸다.
‘폭뢰.’
파지지지지직!!!!
창뢰에 폭뢰를 겹친다.
넓게 퍼져나가려는 힘과 사납게 폭발하려는 힘이 뒤섞이며 증폭된다.
“크윽.”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몰아넣은 탓일까.
마력 회로가 당장에라도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한계 이상의 바람을 불어 넣은 풍선처럼 위태로운 상황.
[나의 아이야! 그 이상은…!]베가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할 수 있어.’
창뢰와 폭뢰.
이제까지 한 가지 스킬을 여러 번 겹쳐 위력을 증폭시킨 적은 종종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두 스킬을 융화시키는 건 처음 시도해보는 일이다.
두 종류의 스킬을 하나로 겹치는 건 한 손으로는 원을, 반대편 손으로는 별 모양을 그리는 것처럼 난해한 일이었지만.
‘나라면, 할 수 있어.’
그래.
못 할 리가 없다.
확신에 가까운 직감.
자신의 재능을 믿는 게 아니다.
이제까지 매일 같이 반복해 왔던 수련.
성흔의 마력을 수족처럼 자유롭게 다루기 위해 발버둥 쳐왔던 나날들.
그날의 기억들을.
몸을 적셨던 땀방울과 턱 끝까지 차올랐던 숨을.
믿는다.
-파지지지지직!!!
창뢰와 폭뢰가 뒤섞여 타올랐다.
“뒤져 새끼들아.”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내리꽂았던 창을 거칠게 비틀었다.
-쩌저저저저적!!
갈라지는 대지.
쿵! 쿵! 쿠구궁!!
유리창에 돌덩어리를 집어 던진 듯 콘크리트 대지가 갈라지며 수십 미터에 달하는 지반이 무너져 내렸다.
“키에에에에엑!”
“크르륵! 끄륵!”
“그루아아아아아악!!”
오진을 향해 달려들던 수백의 마수들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흐읍!”
파지지지직!
짧은 기합을 터트리며 창을 올려치자 콘크리트 틈으로 푸른 뇌전의 다발이 솟구쳐 올랐다.
메케하게 코를 자극하는 탄내.
용이 승천하듯 솟구쳐 오른 뇌전이 수백의 마수들을 휩쓸었다.
-띠링!
스킬 융화에 성공한 덕분일까.
눈앞에 주르륵 푸른 창이 떠오르며 창뢰와 폭뢰의 레벨이 세 단계나 올라갔다.
“후우.”
비틀.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쏟아낸 탓일까.
오진의 몸이 가볍게 휘청거렸다.
[하아. 매번 본녀의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구나.]베가가 뇌전을 일으켜 휘청거리는 오진의 몸을 휘감았다.
뇌전이 몸을 휘감자 보송보송한 이불 속에 들어간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크르릉. 하여간 제정신이 아닌 놈이로군.”
리아크까지 질린다는 표정으로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이내, 날카로운 눈으로 난장판이 된 거리를 노려봤다.
수백에 달하는 마수들이 오진의 일격에 재가 됐지만, 아직 배의 배가 되는 숫자의 마수들이 우글우글 모여들고 있었다.
“흥.”
리아크는 콧방귀를 끼며 자세를 낮췄다.
오진 쪽을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애송이, 설마 그거 한 방 쐈다고 지친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베가의 뇌전에 휘감겨 있던 오진이 창을 고쳐잡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언제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죽었냐는 듯 다시 한가득 몰려드는 마수들을 향해 창을 겨눴다.
“크아아앙!”
“키륵! 키르르륵!”
정신없이 창을 휘두르며 리아크와 함께 몰려드는 마수들을 상대했다.
빠른 속도로 마수들을 줄이고는 있었지만.
-콰득!
“크윽!”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오지나!”
반대편에서 몰려드는 마수를 상대하던 하은이 다급히 팔을 뻗었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화염 줄기가 뿜어져 나와 오진을 둘러싸고 있던 수십 마리의 마수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키르르륵! 키헥!”
“크아아아!!”
“이 짜식들이 감히!!”
하은이 성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양팔을 넓게 펼치며 전신에 화염을 휘감았다.
이제까진 사람들이 휘말릴까 봐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오진과 리아크가 마수들과 싸우는 사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대피한 상황.
“용자리의 성좌, 엘타닌의 이름을 빌려 명한다.”
화르르르륵!
하은을 중심으로 수십 마리의 화룡(火龍)이 만들어졌다.
“불이여━ 춤춰라.”
불꽃이 춤춘다.
살아 있는 생명처럼 자유로이 움직이는 화룡이 마수를 휘감은 채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통째로 그 몸을 집어삼켰다.
“…와우.”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가는 마수들을 바라보며 오진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예전에 봤던 화룡과는 비교가 안 되는 위력.
‘이게 8성 각성자의 힘인가.’
순수한 파괴력만 놓고 본다면 방금 자신이 사용한 융합 스킬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화르르르륵!!
“키에에에엑!”
“카락… 카르륵.”
하은의 활약으로 3백 마리가 넘는 마수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아.’
어디서 찍어내기라도 하는 건지 마수들이 끝도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크읏… 이럴 때 다른 각성자들은 뭘 하고 있단 말이냐!]베가가 인상을 찌푸리며 호통 쳤다.
그녀의 말마따나.
‘다른 각성자들은 뭘 하는 거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마수들이 날뛰고 있는데 마수를 상대하는 각성자가 자신밖에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오진은 계속해서 밀려드는 마수들을 창으로 베어내며 주변을 살폈다.
“저, 저 각성자 맞으시죠?!”
“저분을 도와주세요!!”
멀찍이 피난한 채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한 여인을 가리키며 외쳤다.
사람들의 주목이 자신에게 쏠리자 그녀는 사납게 인상을 구겼다.
“미쳤어요? 지금 제 몸 하나 지키기도 버거운데 도와주긴 뭘 도와줘요?”
그녀는 달라붙는 사람들을 차갑게 내치며 몸을 돌려 도망쳤다.
“…….”
그녀만이 아니다.
주변의 각성자들은 수천에 달하는 마수를 보자마자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재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이, 이 천인공노할 놈들! 별을 깨우쳤다는 자들이 어찌 저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단 말이냐!]베가는 도망치는 각성자들을 노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분노하는 베가에 비해 오진은 꽤나 덤덤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각성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 이게 당연한 거지.’
누가 수천의 마수를 상대로 싸우고 싶어하겠는가.
타인까지 신경 써 주기엔.
자신의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벅찬 세상이다.
‘나만 해도 마찬가지니까.’
다른 사람이 뒤지든 말든.
뭔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마수와 싸우는 것만 해도 아직까진 버틸 만하니까 싸우는 거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 싶으면 하은을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베가의 비난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겠지만.
‘이름도 모르는 생판 남을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할 생각은 없거든.’
원래 세상이 다 이렇다는 구차한 합리화를 할 생각은 없다.
이기적이라 욕해도 좋다.
비겁하다 욕해도 상관없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사정 따윈 알 바 아니다.
‘슬슬 퇴로를 확보해 둬야겠네.’
오진은 마수들을 상대하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각성자들이 모두 도망친 이상.
끝없이 밀려드는 마수들을 혼자서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려 했을 때.
-콰아앙!
“오진 씨!!!”
굉음과 함께 백여 명의 각성자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한 부장이 오진을 향해 다급히 다가왔다.
“먼저와 계셨군요!!”
“…여긴 어떻게.”
“경보를 듣고 바로 직원들을 모아 왔습니다!”
한 부장이 사납게 인상을 찌푸리며 마수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협회를 드나들며 스쳐 가듯 봐왔던 몇몇 얼굴들이 보였다.
‘최우진까지 왔네.’
전견(畋犬)이라 불리며 협회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도 한 부장을 따라 전장에 도착했다.
“지금 다른 길드들도 이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오진 씨는 잠깐 숨 돌리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한 부장이 우드득 어깨를 풀며 앞으로 걸어갔다.
-뚜벅, 뚜벅.
한 부장의 뒤를 따라 정갈한 발걸음 소리가 겹치며 십수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오진에게도 익숙한 얼굴들.
이우혁이 이끄는 발할라 길드의 각성자들이었다.
“이거 속초 때보다 훨씬 심각한데요, 형님?”
“…서울 한복판에서 갑자기 이런 괴수 무리가 나타날 줄이야.”
호들갑을 떠는 박창현을 뒤로한 채 이우혁이 오진에게 다가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우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밀려드는 마수들을 향해 나지막이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부턴.”
촤자자자자작!!!
이우혁이 검을 뽑아들자 맹렬한 돌풍이 사방에 몰아쳤다.
달려들던 마수의 몸이 야수의 발톱에 찢긴 것처럼 피를 뿜으며 갈라졌다.
“저희가 맡겠습니다.”
이우혁의 뒤를 따라 발할라 길드원들이 무기를 각자 무기를 빼 들었다.
[역시! 이래야 별을 깨달을 자라 할 수 있지! 다행히 무책임한 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베가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
오진은 한준만과 이우혁, 그리고 마수에게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모인 각성자들을 쭉 돌아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건 내가 너무 한쪽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네.’
목숨이 위험해지자 몸을 돌려 도망치는 각성자도 있었지만.
오히려 소식을 듣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 와준 각성자들도 있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지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수를 향해 걸어가는 한준만과 이우혁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새끼들 좀 멋지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