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95화
고대의 별자리 (6)
“대체 어디서 이런 숫자의 마수들이….”
이우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에 게이트라도 있으면 모를까.
지금 마수가 창궐하고 있는 구로동에는 그 흔한 1~2성급 게이트조차 없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괴수가 아닌 것 같아요.”
이우혁의 뒤를 따라온 김선영이 차분히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평범한 괴수가 아니라면….”
“마수에요.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김선영은 안경을 쓱 들어 올리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흑성회의 짓이었나.”
까득.
이우혁은 사납게 이를 갈았다.
수천에 달하는 마수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건 흑성회 말고는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마수의 손에 갈가리 찢긴 시체들을 내려다봤다.
“…….”
잔혹하게 학살당한 그들의 시체에 순간 이신혁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너무나도 소중한.
단 하나뿐이었던 그의 가족.
“…형.”
애달픈 부름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아.”
이우혁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한 분노를 간신히 억눌렀다.
‘복수는 나중에.’
지금은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는 마수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선영아. 넌 생존자들부터 대피시켜줘.”
“예, 길드장님.”
김선영이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허벅지에 찬 단검 두 자리를 양손에 쥐었다.
퓨마가 나무를 타듯 날렵한 동작으로 건물 잔해를 밟으며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그럼.”
이우혁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사자자리의 성흔 옆에 새겨진 8개의 획(劃)이 밝게 타오르며 날카로운 돌풍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간다.”
“옙!!”
“다 쓸어버리자고요 형님!!!”
발할라 길드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마수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발을 박찼다.
“크르르르르륵!!!”
마수들은 학익진을 펼치듯 넓게 퍼져 발할라 길드원들을 포위했다.
“어딜 감히.”
이우혁이 재빠르게 포위진의 한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높게 검을 든 채,
“마수 따위가 진형을 갖출 생각을 해?”
내려친다.
-콰자자자자작!!!!
검에서 뿜어져 나온 돌풍이 일직선으로 쭉 퍼지며 포위진을 짜려던 마수들을 휩쓸었다.
사나운 야수의 발톱에 찢긴 듯 돌풍에 맞은 마수들이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갔다.
“쓰읍.”
이우혁은 파죽지세로 마수들을 쓸어버리며 천천히 호흡을 들이쉬었다.
성흔의 마력을 검에 집중하며 자세를 취했다.
“돌개바람.”
바람이 분다.
겹치고 뒤섞이고 흔들리며 돌풍이 된 검기(劍氣)가 소용돌이쳤다.
“크아아아아!!”
“케륵! 케르륵!”
죽음의 돌풍.
믹서기에 갈린 듯 갈가리 찢겨나간 마수들의 육편(肉片)이 비산한다.
-촤악! 촤아아아악!
양 떼 사이로 들어간 야수가 이러할까.
한 번의 검격에 수십의 마수들이 갈려 나가며 포위진이 종잇장처럼 뚫렸다.
“와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게 흑사자 이우혁의 진짜 실력인가.’
전에 한 번 유진과 싸우는 걸 보긴 했지만, 그때는 제대로 된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진이 바로 빤스런을 해버려서 지켜볼 틈이 없었다.
‘괜히 칠성 후보라 불리는 게 아니었네.’
소문으로 들은 흑사자 이우혁의 경지는 8성의 끝자락.
9성까지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둔 상태라고 들었다.
‘누나랑 차원이 달라.’
이제 갓 8성에 진입한 하은과 8성의 끝자락에 도달한 이우혁과의 실력 차이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
솔직히 진짜 같은 8성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정도면… 조금 여유가 생기겠어.’
발할라 길드와 협회원들의 지원으로 당장 급한 불씨는 껐다.
오진은 한 걸음 떨어진 채 근처 건물 옥상을 향해 와이어 슈터를 발사했다.
-타앙!
와이어를 이용해 건물 옥상에 올라선 뒤,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전장을 살폈다.
‘이렇게 해도 피해자가 많네.’
하긴.
도심 한복판에 갑자기 수천 마리의 마수떼가 나타났으니 피해자가 많은 건 어쩔 수 없으리라.
특히 성좌의 선택을 받지 못한 비각성자들에겐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겠지.
“비각성자를 안 건드리긴 개뿔.”
오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천우성의 지시로 일어난 일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올빼미’ 파벌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존재가 천우성인 이상 그가 이번 계획에 아무런 연관이 없을 가능성은 적었다.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당장 급한 일은 따로 있었다.
[나의 아이야. 저들을 돕지 않는 게냐?]“잠깐만.”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으로 민감해진 감각을 활용해 전장을 살폈다.
끝없이 밀려오는 마수들.
그들은 어설프게나마 진형을 짜며 각성자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역시.’
일부러 어설프게 만들어 숨기려고 한 모양이지만.
‘누군가 뒤에서 마수들을 조종하고 있어.’
괴수 중에서 뛰어난 지능을 지닌 존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구로동에 창궐한 마수의 경우 ‘진형’이라는 걸 짤 만한 지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놈을 찾아야 해.’
아마 그자가 이번 사태의 원흉이리라.
‘어디지?’
당장 육안으로 보이는 곳엔 없었다.
흑천을 통해 기운을 감지하려 해봐도, 사방에 워낙 ‘검은 별’의 기운이 넘쳐나는 바람에 놈이 어디 숨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끄응.”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넓이만 수 킬로미터.
적어도 자신에겐 한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범위에서 마수를 조종하고 있는 존재를 정확히 찾을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오진은 베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베가, 전에 느껴졌던 꺼림칙한 기운들. 지금도 느껴지고 있지?”
[그러느니라. 불쾌한 기운이 사방에 넘쳐흐르고 있구나.]베가는 눈살을 찌푸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중 가장 짙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 없어?”
적어도 검은 별의 기운을 감지하는 측면에서 베가는 자신보다 몇 배는 뛰어났다.
힘을 제약받고 있다고는 하나 그녀는 같은 성좌조차 머리를 조아리는 북극성의 성좌였으니까.
[으음. 잠시만 기다리거라.]밝은 은빛 빛무리가 그녀의 몸을 휘감으며 점차 크기를 불려갔다.
[하아.]본 모습으로 돌아온 베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무언가를 가리키듯 검지를 뻗는다.
파직, 파지직.
앞으로 뻗은 검지 끝에 푸른 뇌전이 맺혔다.
하늘과 땅을 나누듯 내뻗은 검지를 서서히 옆으로 움직이자.
[검은 별이여, 그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거라.]━뇌전의 해일이 대지를 뒤덮는다.
“…이게 무슨.”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약한 뇌전이었지만.
오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지가 푸른 뇌전에 뒤덮였음을.
‘미친.’
그냥 가벼운 손짓 한 번에 구로동 전체에 뇌전을 퍼트렸다고?
‘만약 힘이 제약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지금은 오진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뇌전이었지만.
저 뇌전이 모두 살상력을 지닌 진짜 뇌전이었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등골이 아찔해졌다.
‘손짓 한 번에 수천 마리의 마수들이 전멸했겠구만.’
새삼 성좌라는 초월자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존재인지 실감이 났다.
[으읏….]율법의 제약이 시작됐는지 베가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찾았느니라.]베가는 손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마수들이 끝없이 기어 나오고 있는 장소 중 하나.
수십 층에 달하는 고층 빌딩의 꼭대기 층이었다.
‘건물 안에 숨어 있었던 건가.’
사방이 빌딩이니 나름 탁월한 선택이다.
“…그럼.”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았으니 이제 찾아가서 놈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저곳까지 갈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와이어 슈터를 이용해서 가자니 빌딩 높이가 너무 높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올라가자니 마수가 너무 많았다.
“골치 아프네.”
만약 전에 베가가 말한 ‘뇌흔 밟기’를 익혔다면 허공을 날아서 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에겐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갈 수 있는 스킬은 없었다.
“애송이! 거기 가만히 서서 뭘 하는 거냐!”
마수와 싸우던 리아크가 날렵한 동작으로 옥상에 올라오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아하.”
딱.
리아크를 발견한 오진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리아크. 부탁할 게 있어.”
“뭐냐?”
“내가 지금 저~기 건물 꼭대기 층으로 가야 하거든?”
“저 건물 말하는 건가?”
리아크는 고층 빌딩을 올려다보며 쯧, 혀를 찼다.
“미안하지만 네놈을 저기로 데려다줄 수는 없다. 배가님보다는 율법의 제약이 덜하긴 하지만, 성소도 아닌 곳에선 뇌흔 밟기를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알고 있어.”
“…응? 알고 있다고? 그러면 저길 무슨 수로 가겠단 말이냐?”
리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리아크, 전에 티비에서 야구 경기하는 거 본 적 있지?”
“본 적은 있다만 그걸 지금 왜… 잠깐.”
리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제, 제정신이냐?”
“할 수 있어, 없어?”
“아니 뭐 이런 정신 나간….”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슨 방법이길래 그러느냐?]베가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오진과 리아크를 번갈아 돌아봤다.
“설명은 나중에. 리아크, 설마 힘이 달리는 건 아니지?”
“크르릉! 이 몸을 뭐라 생각하나? 직녀성의 성령에게 그 정도는 일도 아니다!”
“흐흐. 그럼 부탁할게.”
오진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직선거리는 한 오백 미터쯤 되려나.’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엔 밀려드는 마수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뭐… 좋다. 네놈의 뜻이 그렇다면 어울려 주지!”
우드득! 우득!
리아크가 늑대인간 폼으로 모습을 바꿨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바닥을 잘라내 우악스럽게 철근을 잡아 뜯었다.
“준비해라 애송이!!”
후웅! 후웅!
철근을 꼬아 만든 방망이를 위협적으로 허공에 휘둘렀다.
“좋아! 하나, 둘, 셋 하면 가는 거다!”
[잠깐. 지금 설마….]이제야 오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베가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나, 나의 아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하나아아아!!!”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오진은 허리를 낮게 숙였다.
“크르릉!!! 떨어져 뒤지지나 마라, 애송이!!!”
“그런 걱정할 시간에 힘이나 더 빡 줘, 새끼야!!!”
“이미 전력이다!!!”
리아크가 철근 방망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방망이를 쥔 팔의 삼두근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크으으윽!!”
율법의 제약이 시작됐는지 그의 입술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허허허헝!!!”
쿠우웅!!
리아크는 거칠게 발을 구르며 사납게 포효했다.
“이까짓━ 고통 쯤으으으으은!!!!”
전신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을 무시하며.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직!! 파지지지직!!
은빛 털 사이로 푸른 스파크가 맹렬하게 타올랐다.
“크아아아아아!!”
실핏줄이 터지며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린다.
유리창에 쇠공을 떨어트린 듯 쩌적, 피부가 갈라진다.
갈라진 피부 밖으로 핏줄과 살점이 터져 흐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리아크는━ 두 번 다시 고통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수백 년의 시간 동안 경지의 벽에 막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허비했던 과거.
아득한 무력감과 패배감에 짓눌려 썩어 가던 나날들.
‘이젠 다르다.’
아직 경지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수십 번에 달하는 죽음의 고통을 겪고도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던 한 인간이.
검은 하늘 속에 찬연히 빛나는 역천의 별이.
━자신을 바꿨다.
그래.
그날 이후로, 자신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두우우우우울!!!”
“쓰으으으읍!!!!”
[기, 기다리거라!!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니라!!]오진은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두 다리에 뇌전을 둘러 도약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후.
“세에에에에에엣!!!!”
가볍게 점프해서 방망이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가라아아아아앗!!!!! 애송이이이이!!!!!!”
콰아앙!!!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오진의 몸이 포탄처럼 공중으로 쏘아 올려졌다.
“으아아아아아아!!!!!”
뺨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
중력을 거스르는 아찔한 감각.
“난다아아아! 날아아아아!!! 씨바아아아아아알!!!”
수천의 마수들이 들끓고 있는 전장.
재와 먼지로 뒤덮인 하늘을 가르며.
푸른 번개가 흑성회가 숨어 있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