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97)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97화
고대의 별자리 (8)
“이, 이 개자….”
박건우가 창백해진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콰앙!
그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전에.
섬전처럼 쏘아져 나간 오진이 창을 내질렀다.
“크윽!”
박건우는 다급히 창을 들어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막을 수 있겠냐.’
아무리 3성의 격차가 있다 해도 성흔조차 사용하지 않은 각성자가 익시드까지 사용한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촤악!!
“크학! 칵!”
뇌염에 휩싸인 창날이 박건우의 창을 가볍게 튕겨내며 가슴을 길게 베었다.
심장을 바로 꿰뚫을 생각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박건우가 몸을 비트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쯧.”
오진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도 헛소리 떠들 만큼의 실력은 있다는 건가.’
마력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 정도 기민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박건우의 실력 자체는 진짜였다.
‘그래 봤자지.’
피식.
가슴에서 철철 피를 흘리고 있는 박건우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한 번에 심장을 꿰뚫는 건 실패했지만, 치명상에 가까운 큰 상처를 입히는 건 성공했다.
“하아, 하아!”
박건우는 가슴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이 사기꾼 자식이!!”
그는 증오로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왕의 대리자께서 직녀성의 사도는 건드리지 말라 하셨지만….”
우우우웅!!!
박건우의 성흔이 사납게 타올랐다.
“네놈만큼은 용서할 수 없구나!”
“예이~ 예이~ 맘대로 하십셔, 맘대로.”
“이익!!”
박건우가 야차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발을 박차자.
“크윽!”
가슴의 상처가 벌어지며 핏물이 한층 더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뭐해? 용서할 수 없는 거 아니었어?”
“크으으.”
박건우는 크게 벌어진 상처를 부여잡으며 입술을 짓씹었다.
이대로라면 몇 번 공방을 나눈다 해도 출혈이 너무 심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리라.
남은 방법은 두 가지.
도망치거나, 그게 아니라면━
“…아직, 끝났다 생각하지 마라.”
쿠웅!!
창날을 거칠게 바닥에 내려찍는다.
“올빼미의 별, 녹투아시여!!! 이 미천한 사도에게 검은 별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양팔을 넓게 펼치며 울부짖듯 외쳤다.
우득! 우드드득!
뼈가 우그러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전신의 피부가 급격하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카흑! 카학!! 칵!!”
누렇게 변색한 치아와 나무껍질처럼 주름진 피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년은 늙어버린 듯한 모습의 박건우의 몸에서 폭발하듯 검은 마력이 솟구쳐 올랐다.
‘올빼미자리의 성좌, 녹투아.’
검은 별이라 불리는 초월자가.
죽어가는 박건우의 몸을 일으켰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녹투아시여.”
박건우는 고개를 높게 쳐들더니 빌딩 천장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검은 별의 뜻을 따라.”
카드드드득!!
피부를 뚫으며 나온 검은 깃털이 박건우의 전신을 뒤덮었다.
마치 검은 깃털로 이뤄진 갑주를 입은 듯한 모습.
빼곡히 몸을 뒤덮은 깃털 사이로 유일하게 드러난 검은 눈동자가 오진을 향했다.
“직녀성의 별을━ 오늘 이 자리에서 떨어트리겠나이다.”
콰아아앙!!!!
박건우가 거칠게 발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크읏!”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오진은 목을 노리고 쏘아지는 창끝을 가까스로 쳐냈다.
다급히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리며 검은 깃털에 뒤덮인 박건우를 노려봤다.
‘수명을 대가로 축복을 받은 건가.’
아니.
과연 저걸 축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저주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겠구만.’
어쨌든.
끝난 줄 알았던 박건우와의 전투는 아직 좀 더 이어지게 됐다.
“그래. 그대로 끝났으면 너무 심심할 뻔했잖아?”
오진은 씩 웃으며 움켜쥔 창을 빙글 돌렸다.
상황은 처음보다 악화됐지만.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간만에 싸워볼 만한 놈 만났는데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이제까지 자신이 성장해왔던 것을 돌아보면.
꾸준한 수련을 통해 성장한 것보다 위기의 순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한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즐거워하는 것 같군.”
“푸흐흐! 그래?”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지?”
“수련에서는 아무리 해도 이런 기분은 안 느껴지거든.”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춤사위를 펼치는 기분.
두근두근.
심장이 맥동하는 소리가 천둥처럼 귀를 울리며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게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
그래.
수련 따위로는 절대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없다.
오롯이 목숨을 건 실전에서만.
이런 아찔한 환희와 쾌락을 누릴 수 있다.
“제정신이 아닌 놈이군.”
“네가 할 소리냐 인마.”
삼라만상이니 태극의 이치니 개소리를 주절이던 놈이 무슨.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척.
박건우는 창을 겨눴다.
성좌의 축복을 받으며 쭈그렁 할아버지가 됐지만.
그럼에도 창을 움켜쥔 그의 자세만큼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죽어라.”
“싫은데.”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창이 격돌했다.
익시드를 사용한 오진은 성좌의 축복을 받은 박건우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은 힘과 스피드로 팽팽하게 공방을 주고받았다.
-카강! 캉! 카가가강!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쇳소리.
창날과 창날이 격돌할 때마다 퍼지는 충격파에 고층 빌딩 전체가 뒤흔들렸다.
“하아, 하아!”
전투가 길어질수록 오진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졌다.
오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리를 벌렸다.
‘마력이 딸려.’
마력의 총량 하나만큼은 고위 각성자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거라 자부했었지만.
익시드와 뇌염이 워낙 많은 마력을 빨아들이는 탓에 끝이 없을 줄만 알았던 성흔의 마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건 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도 아니고.’
익시드도, 뇌염도.
현재 5성에 불과한 그의 수준에선 원래라면 다룰 수 없는 기술이었다.
수준에 맞지 않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니만큼.
그 부작용으로 무지막지한 양의 마력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후우.”
“벌써 지친 건가?”
점자 호흡이 거칠어지는 오진에 비해 박건우는 아직 멀쩡한 상태.
“새끼, 축복 빨로 버티고 있는 주제에 뭐 잘 났다고 지랄이야?”
퉤.
오진은 입안에 고인 침을 뱉었다.
아무리 박건우가 8성 각성자라고 해도 이 정도로 격렬한 공방을 나눴는데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가 지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녹투아’의 축복을 받고 있기 때문.
온전한 그의 힘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크흐흐! 그러면 네놈도 직녀성의 축복을 받으면 되지 않은가?”
“우리 여신님의 손을 빌리긴 아직 여유가 좀 있어서 말이야.”
“…여유가 있다고?”
박건우는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는 그의 모습은 ‘여유가 있다’라는 말과는 꽤나 거리가 멀어 보였다.
“허세를 부리는군.”
“글쎄. 허세인지 아닌지는.”
빙글. 오진은 몸을 돌렸다.
“━직접 보고 확인하라고.”
깨진 유리창을 향해 전력으로 달린다.
“무, 무슨!”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 봐.”
다급히 손을 뻗는 박건우를 향해 중지를 추켜올리며 50층 높이의 빌딩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후우우웅!!
매서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아찔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퍼지며 수천 마리의 마수와 격전이 펼쳐지고 있는 구로동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흐읍!”
타앙! 타앙!!
건물 벽을 향해 와이어 슈터를 날렸다.
타잔이 넝쿨을 타고 정글을 질주하듯.
건물과 건물 사이를 와이어를 통해 날아다니며 속도를 줄였다.
‘올라가는 건 리아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내려가는 건 와이어 슈터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다.
-슈우웅! 슈웅!!
빠른 속도로 건물 사이를 누비며 목표를 찾았다.
‘저기.’
마수들의 시체가 언덕을 이루고 있는 곳을 찾은 오진은 와이어 슈터를 해체하고 공중곡예를 펼치듯 핑그르르 몸을 돌리며 착지했다.
“자, 그럼.”
고개를 들어 까마득하게 멀어진 고층 빌딩을 올려다봤다.
박건우가 자신을 쫓아오지 못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축복까지 사용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쫓아오겠지.’
수십 년에 달하는 수명을 바쳤는데 쿨하게 포기할 리가 없다.
‘미리 준비 좀 하고 있을까.’
오진은 주변을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마수들의 시체가 가득 쌓인 언덕 위로 올라섰다.
생각으로만 남겨줬던 ‘비장의 수’를 쓸 차례.
‘진짜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논리도, 개연도 들어맞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과연 그 아득한 힘에.
이미 한 차례 세계를 멸망시켰다는 힘에 섣부르게 손을 대는 게 옳은 일일까.
“하.”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언제부터 그런 걸 따지며 살았다고.”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손바닥을 펼쳤다.
-후드드득!
그때, 검은 깃털이 흩날리며 그의 앞에 박건우가 나타났다.
“여유가 있다 허세를 떨더니 결국 도망치는 게 전부냐?”
낮게 깔린 목소리에 실망스럽다는 감정이 섞였다.
“도망칠 생각이었으면 여기 말고 이우혁이 있는 쪽으로 갔겠지 이 빡대가리 새끼야.”
오진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활짝 펼친 손바닥을 날카로운 창날에 비볐다.
살점이 갈라지며 핏물이 후두둑 쏟아져 흘렀다.
각성자의 피에는 성흔의 마력이 깃들어 있다.
그의 경우,
‘흑천.’
성흔 말고 다른 힘도 깃들어 있지만.
-꾸륵꾸륵.
핏물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검은 먹구름이 퍼진다.
주변에 널브러진 수백, 수천의 마수의 시체를 뒤덮을 정도로.
넓게.
“그러고 보니 이 말을 하는 걸 잊었네.”
“무슨…?”
“고마워. 무한으로 즐길 수 있는 뷔페를 차려줘서.”
낄낄.
오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까지 흑천을 이 정도로 광범위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지만.
‘역시, 될 줄 알았지.’
애초에 직접 피부와 피부가 맞닿아야만 흡수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흑천의 먹구름을 넓게 퍼트릴 수만 있다면.
주변에 널브러진 마수들의 시체 속에 숨어 있는 성유석들을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가 준비한 비장의 수.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워 넣는 방법이 뭔지 알고 있어?”
“…뭔 짓을 하려는 거냐?”
꾸르르륵!!
넓게 퍼져나간 먹구름이 마수들의 시체 속으로 파고든다.
짙게 깔린 먹구름이 별빛을 가리듯.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수백, 수천 개의 성유석이 흑천의 어둠에 집어 삼켜졌다.
“장독대째로 물웅덩이에 처박으면 돼.”
바닥을 보였던 마력이.
폭발하는 듯한 기세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검은 별’의 힘이 깃든 성유석을 흡수했습니다.] [성유석의 품질에 보정치가 적용됩니다.] [퀘스트 ‘별을 삼키는 하늘의 악마①’가 진행됩니다.] [진행률 76.7%] [진행률 87.2%] [진행률 94.8%] [진행률 100%]쿠르르르르륵!!!!
갈라진 손바닥 틈으로 검은 먹구름이 폭발하듯 솟구쳐 나와 안개처럼 펼쳐졌다.
[퀘스트 ‘별을 삼키는 하늘의 악마①’를 완료했습니다.] [흑천의 내부에 저장된 ‘고대의 별자리’ 중 하나를 무작위로 획득합니다.] [획득한 별자리는━]어둠 속에 떠오른 푸른빛 창이 별처럼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