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10
10. 영웅, 회의, 그리고…(1)
기절한 채 질질 끌려가는 침입자를 암울한 눈으로 지켜보며 군단원들은 속으로 ‘난 오늘 죽었다’를 미친 듯이 복창하고 있었다.
식사 후 잠시 쉬고 있을 때, 밖에서 들어온 한 놈이 빨리 집합하라고 외칠 때까지만 해도 장난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군단장님이 오셨다니. 그분은 가끔, 아주 가아끔씩만 들르신단 말이다.
그러나 블루베리처럼 파랗게 질려버린 녀석의 얼굴엔 한 치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고, 그 말이 사실임을 안 순간 우린 기겁하며 미친 듯이 연무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우리의 군단장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궁금해서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용기 내어 던진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의미심장했다.
무엇이 궁금하단 말인가.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데몬 님이 어디론가 느긋하게 걸어간다.
그러더니 한순간, 믿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허리를 숙이며 목을 노린 검을 피하고는 그대로 상체를 돌려 팔꿈치로 적의 명치를 가격했다. 하나같이 재빠르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제야 우린 알 수 있었다. ‘궁금하다’는 말의 의미를.
‘궁금해서요.’
─정말 몰랐는지.
무려 연무장까지 침입자를 허용해놓고, 정말로 몰랐던 건지.
그런 주제에 이리도 느긋하게 쉬고 있었던 건지.
충격에 얼어버린 우리에겐 시선도 던지지 않고, 데몬 님은 상대를 기절시키려는 듯 느긋하게 목검을 들어 올리셨다.
그리고 이어서, 경쾌한 소리가 연무장 가득 울려 퍼졌다.
빠악!
***
자꾸만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리며 자학하는 군단원들을 간신히 뜯어말리고, 난 다시 내 방에 틀어박혔다.
할 일은 전부 끝냈다.
정원 산책도 했고, 군단도 살폈다. 벤이 요구했던 식당에서의 식사도 했으니 한동안은 밖에 안 나가도 되리라.
모처럼 찾아온 평화로운 일상에 행복한 기분으로 침대 위를 뒹굴거리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데몬 님, 에드입니다.”
에드라면 내 부관이잖아? 심심해 죽으려 하는 나를 위해 색다른 퍼즐이나 큐브를 찾겠다며 인간계까지 나갔다더니만, 드디어 돌아왔구나.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들어오세요.”
오랜만에 보는 에드의 표정은 어쩐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밖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당했던 건가? 아니, 근데 0군단장의 부관 자리는 그에 걸맞은 인재가 차지해야 한다며 마왕이 무려 군단장 후보로 거론되던 녀석을 뽑아준 건데? 그러니까 에드 실력이면 웬만한 녀석들은 찜쪄먹고도 남을….
“새로운 큐브를 가져왔습니다. 미러 큐브라고, 조금 독특한 큐브입니다.”
“오.”
“그리고….”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가 힐긋 시선을 옆으로 옮긴다.
문만 열어놓고 아직 복도에 서 있는 상태였기에 나는 그가 뭘 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마른침을 삼킨 에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왕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
……오?
“바쁘지 않다면 잠시 시간 괜찮을까?”
저벅.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익숙한 누군가 방 안에 들어섰다.
방 안을 한 번 훑어본 역안이 침대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하더니 이내 싱긋, 반달처럼 휘어진다.
잠깐의 침묵 끝에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끌어안고 있던 베개를 내팽개치듯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섰다.
마, 마왕이 왜 여기에? 나 이번엔 사고 안 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긴 한데.
“설마 그 침입자에 관한 겁니까?”
“맞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듯 흐뭇한 웃음을 지은 그가 문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어. 괜찮다면 잠시 같이 죄수를 보러 가지.”
그 말인즉, 지하 감옥에 같이 가자는 뜻 아닌가?
무슨 일이지? 설마 그 침입자 놈이 나에 대해 뭔가 이상한 말이라도 한 건가? 같은 인간이라 나름 신빙성이 있었을 테고.
뭔진 몰라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죽는 건 사양이다. 살려달라는 의미를 담아 슬쩍 에드를 돌아봤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내 눈을 피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망할 놈.
지하 감옥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축축하기까지 했다.
그래, 결국 끌려와 버렸다.
“열어.”
마왕의 한 마디에 튼튼해 보이던 철창이 단숨에 열렸다.
문을 열어준 병사가 물러가라는 말에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사라진다.
그 뒷모습을 보던 마왕이 시선을 돌려 감옥 안의 ‘인간’을 쳐다봤다.
그새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침입자가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으나, 마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 들어가 그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데온.”
주위를 물렸기에 나온 본명.
동시에 침입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빛이 할 수만 있다면 나를 씹어 먹고 싶다는 눈빛이다. 마왕을 볼 때보다 나를 볼 때의 눈빛이 더 살기가 넘쳐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마왕은 거칠게 침입자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더니 고개만 돌려 나를 봤다.
“이 녀석, 잘 봐봐. 어딘가 익숙하지 않아?”
인간이라는 것 빼고는 자, 잘 모르겠는데요….
침묵으로 답을 하자, 마왕이 힌트를 주려는 듯 차근차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인간임에도 어지간한 마족은 혼자 쓰러트리는 무력, ‘마왕’인 나를 상대로 유독 강해지는 힘.”
녀석의 몸 상태가 엉망이다 했더니, 그새 가지고 놀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왕의 설명을 들은 난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설마….”
“그래.”
던지듯 머리채를 놓은 마왕이 피 묻은 손을 탁탁 털며 웃었다.
“용사의 찌꺼기. 제국에서는 용사의 파편이라 부르며 찬양하는─”
“……영웅.”
“우습지도 않지.“
***
용사는 죽을 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중 하나만 우선하여 말해보자면, 죽음과 동시에 바스러져 사라질 ‘용사의 힘’을 대륙 전체에 뿌려 미약하게나마 마왕을 상대할 이를 만들어내는 것 정도가 되겠지.
힘 자체를 온전히 한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생전엔 양도가 불가능한 데다 죽음과 동시에 용사의 힘은 바스러지기 시작하기에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죽을 목숨을 대가로 그 파편을 뿌려 용사의 힘을 일부나마 지닌 자들을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제국은 그런 파편을 가진 자들을 ‘영웅’이라 부르며 모으려 했다.
물론 ‘영웅’ 칭호를 아무에게나 주지는 않았다. 비공식적으로는 ‘용사의 파편’을 지닌 이들을 전부 영웅이라 부르지만, 공식적으로는 그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훌륭한 공을 세운 이들에게만 ‘영웅’이란 칭호를 내리며 차원이 다른 영광을 부여했다.
눈앞의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인간은 안타깝게도 ‘전자’였다.
‘공식적인 영웅이 되지 못한 용사의 파편.’
그래도, ‘영웅’이라 불리진 못했을지라도 ‘영웅 후보’라 불리던 몸이다. 함부로 쓰고 버리기엔 아까운 패일 터.
그런 녀석이 마왕성에 침입한 것이다.
‘도대체 왜?’
새빨간 눈동자가 소름 끼치는 빛을 담고 번들거린다.
그 속에서 얼핏 비친 감정은 다름 아닌 혼란과 의문.
왜, 혹은 어떻게 여기까지 쳐들어왔는가- 따위의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곳에 영웅 후보가 올 이유는 없다. 그는 어떠한 메시지도 담지 않았고, 마왕을 포함한 마족들을 제거하는 것 이외의 어떤 특별한 목적도 없는 듯 보였으며, 결정적으로 데온 자신을 공격했다.
‘나를 공격한 이유는 뭐지? 여기에 무슨 이유가 담겨 있나?’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가.
“…그런고로 오늘 오후에 군단장 회의가 있을 예정이야. 직접 마중을 나갈 테니 이따 보도록 하지.”
“…….”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난 마왕이 데온을 돌아봤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 모습.
아무래도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모양이다. 평소에도 딱딱하던 표정이 더더욱 굳어진 채 멈춰 있었다.
‘아무래도 같이 올라갈 생각은 없는 것 같군.’
속으로 고개를 내저은 그가 일단 확인은 해보려는 심산으로 넌지시 말을 꺼냈다.
“좀 더 있을 생각인가?”
“예.”
“그래, 그럼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지.”
철창을 나온 마왕이 느릿느릿 사라졌다.
……고민은 끝났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로 거리를 파악하던 데온이, 시선을 내려 침입자를 바라봤다.
속을 알 수 없는 건조한 눈빛. 피를 머금은 듯 번들거리는 붉은 눈이 침입자를 향한다.
그러나 침입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데온을 노려보았다.
그 눈에는 명백한 증오와 분노가, 배신감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윽고 피딱지가 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데온 하르트.”
오랜만에 듣는 풀 네임.
데온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침입자는 이를 악물고 부글부글 끓는 분노와 증오, 그리고 서늘한 원한을 담아 씹어뱉듯 말을 내뱉었다.
“배신자 새끼.”
“…….”
아하.
이것으로 답이 나왔다.
가늘어진 채 잔뜩 힘이 들어갔던 눈이 김이 샜다는 듯 풀어진다. 마찬가지로 한결 풀린, 긴장감이 사라진 목소리가 흘리듯 말을 뱉었다.
“너는 버린 패로군.”
“뭐?”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녀석이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얼빠진 되물음에 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데온이 한심하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질문을 던졌다.
“너는 무슨 죄를 지었지?”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야! 버린 패? 죄라니!”
“무슨 짓을 했길래 황제의 눈 밖에 났냐는 말이다.”
“헛소리! 폐하께서는 내게 중대한 임무를 내리셨다! 내가 눈 밖에 났다면 임무를 부여하지도 않으셨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딘가 찔리는 것이 있는 듯, 놈의 눈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빛이라고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촛불밖에 없는 공간에서 그 떨림을 기민하게 잡아챈 데온이 철창을 넘어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마왕처럼 침입자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은 그는, 마왕과 달리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고,
──말한다.
“아니, 네가 나를 ‘배신자’라 칭한 것이 그 증거다. 넌 황제의 눈 밖에 났고, 지금 이렇게 버려졌지.”
“그럴 리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가르치듯 현실을 짚어준 데온이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판단하고 일어섰다.
결론이 내려졌다.
이 녀석을 굳이 살려야 할 필요는 없다. 아니, 확실히 죽이는 편이 오히려 좋겠지.
하지만 이를 결정할 권한이 본인에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데온은 그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어서 누군가에게 들리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지하를 울렸다.
“폐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
놈의 눈이 커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데온은 더 볼 것 없이 돌아섰다.
등 뒤로 지독한 발악이 이어졌다.
“이 황제 새끼가아아아!!”
참으로 얄팍한 충성심이 아닐 수 없다.
입가에 비웃음을 띤 채 걸음을 옮기던 데온은 지하 감옥 입구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마왕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언제 웃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을 뜯어보던 마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었어.”
이내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너무하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녀석을 죽일 수밖에 없잖아. 그래도 잘만 하면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일부러 그런 거지?”
“…….”
“됐다, 됐어. 안에서도 말했지만 못 들은 것 같았으니 다시 한 번 말할게. 오늘 오후에 군단장 회의가 있을 예정이야. 직접 데리러 갈 생각이니 방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